일주일에 사흘, 나는 한강에 투신한다 / 원정란
새벽의 질감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삼십에 맞는 새벽은 투명하면서도 찰기가 있었다. 그저 어찌어찌하다 '엄마'라는 소임을 맡게 된 일상, 서툴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생각 없이 하루를 짓다 가끔 마주친 신기루 같은 시간은 덜 털린 잠속에서 피어난 여명이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야금야금 깨지는 것을 보며 하얗게 지켜낸 밤 끝에 매달린 또 다른 희망. 그러나 백마 탄 왕자는 동화와 내 착각 속에만 존재했다.
사십에는 시푸르면서도 온기가 있었다. 일산에서 개포동 선원까지, 교대역 대성학원까지 새벽을 갈랐다. 어느새 '엄마'가 튼튼히 자릴 잡아 거칠 것 없이 치맛바람을 일으켰다. '아내'도 새끼 호랑이로 자라있었고,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체력이 내 뒤를 봐주고 있었던 대책 없이 용감한 시절이었다. 죽으면 평생 자는 게 잠이라며 눈을 뜨고 자고 싶어하던 때이기도 했다.
오십에는 붉으면서도 숫기가 있었다. 서초동에서 안양 선원까지 새로 난 강남순환도로를 달리며 환호작약했다. 새벽마다 나만의 아우토반을 달리며 시큼하고 꾀죄죄한 상념들을 털어냈다. 늘 그랬듯이 기회의 신은 뒤통수가 대머리라는 걸 상기시키며, 충실하게 그 시간을 만끽했다. 살짝 힘들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반부터 덜컹거렸다. 더 이상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멈췄고 새벽을 기꺼이 반납했다. 예감했던 대로 다시는 못 올 과분한 시간이었다.
이즈음에는 그 때의 새벽처럼 아침을 만나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 담연하고 희푸르고 성성한 바람을 가르며 1시간, 짧고도 긴 여행을 떠난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파고들며 청춘들과 골고루 흔들린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칸과 칸 사이에 기대어 서서 필라델피아와 홍콩과 워싱턴의 세 딸에게 굿모닝 법문과 하루의 안녕을 선물하다 보면 어느새 30분, 다리가 뻐근해질 때쯤이면 사람파도를 따라 썰물처럼 빠져 나온다. 계단을 오르고 개찰구를 지나 다시 계단을 올라 첫 번보다 낡고 기다란 은하철도에 올라탄다. 오금에서 대화를 잇는 3호선.
몇 번의 안내 끝에 문을 닫고 출발한 양재역, 그 다음 남부터미널역은 수더분하게 지나치고 교대역이 되면 다시 안내가 되풀이 된다, 뒤차를 이용하라는. 그 다음역인 고속터미널에서 몇 번 더 문을 여닫고 그 다음 잠원, 그리고 신사에 오면 숨통이 트인다. 그렇게 빽빽하던 두더지들이 빠져 나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이 그렇게 많은 지, 특히 젊은 여인들이 행렬을 이루며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그곳이 여대 앞인가? 하는 유쾌한 착각을 하게 한다. 그녀들을 따라 가고 싶은 궁금증을 애써 붙잡는다.
갑자기 지하철 안이 헐렁하다. 그제야 군데군데 빈자리가 생긴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치열했던 과거가 여유로운 현재가 된다. 사는 것도 그랬지.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러다보면 좋은날이 오셨다. 압구정역이 지나면 지하철은 지상으로 부상한다. 아, 한강!
50초 그 짧은 시간, 전철은 가로로 가고 있으나 나는 세로로 한강을 향한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그저 탁 트인 강물을 보기만 해도 좋았다. 날씨와 무관하게 평온한 출렁임은 달관한 구도자의 모습. 하얀 물보라가 플리트비체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 온몸이 흠뻑 젖는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해 일주일에 사흘, 나는 한강으로 뛰어든다. 일상의 피로와 하루의 중압감이 속옷을 벗고 알몸으로 낙하한다. 매일 망설이고 매일 후회하고 그리고 매일 저울질하는 나를 깊숙이 빠트린다. 불안과 두려움과 패배감이라는 오염도 함께 수장시킨다. 비록 찰나이긴 하지만 빛나는 윤슬이 나를 아주 말갛게 휑궈준다. 한강의 기적은 빈 말이 아니다.
채 1분도 안 되는 질주가 끝나면 어느새 전철은 다시 지하로 기어들어간다. 그러나 그 이후는 이미 땅속이 아니다. 세례 받듯 푸르른 강물로 정화된 내게 옥수, 금호, 약수, 동대입구, 충무로, 을지로3가, 종로3가까지 더 이상 어둡고 칙칙한 공간이 아니다. 안 · 이 · 비 · 설 · 신 · 의 육근이 멈춘, 푸른 물이 베인 무아의 공간일 뿐이다.
하루에 두 번, 아침엔 피로와 권태로 쇳덩이 같은 나를 한강에 던지고 해 지는 저녁엔 8시간 소금에 절인 배추 같은 나를 다시 던진다. 매번 그 무모한 급강하를 받아 준 강물은 나의 겨드랑이에 견고하고 건강한 의지를 달아 번번이 살려낸다, 나를 리바이벌revival해 준다.
그래서 일주일에 사흘, 아침저녁으로 나는 압구정역과 옥수역 사이의 한강에 투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