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일 동안 출가한 자녀들과 처가 식구가 다녀간 자리는 늘상 그러 듯 두 내외만이 큰집에 덜렁 남았다.
모처럼 쉬는 한가한 시간이 다가 온지라 간밤에 오늘은 산엘 다녀 오리라 했는데 프로당구 라이브 중계가 내 발목을 잡아 버린다. 더군다나 베트남 선수 응고다이를 응원하는 터라 두시간 동안을 오무락 딸싹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당구 좋아하는 친구와도 상대 선수를 응원하면서 점심 내기 까지 걸었으니 내가 누구냐. 산이고 나발이고 승부는 이겨야...
망중한이다. 뭘 할까...
전기장판 덕에 엉덩이가 날 붙잡는다. 도무지 화장실 외에는 그 어느 곳도 나서지 말라다. 오늘 만큼은 내 말 들으라고 강력히 날 ...
허니 맨맛한게 티비다. 몇해 전 같으면 보고 싶은 책이라도 보련만 나이 탓인지 아니면 이 놈의 티비와 핸드폰 탓인지 도무지 돋보기 돗수를 올려서 써 봐도 몇 글자 외에는 쉬 피곤할 뿐 도통 읽어 지지가 않는지 오래다.
당구 준결승전 한판을 보고 나니 왠지 집안이 조용하다. 아내가 안방에 있는 것 같은데 생각 보다 조용한거다. 아까 전 산엘 갈려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내가 갈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인지 주저 앉은 듯 헌데 그래도 그렇치...
어라? 없네? 산엘 갔건가? 이 추위에?
독한 여자다. 독한 여자란걸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지만 이 엄동설한에 마무렴 그렇치...
갑자기 내가 왜소해 진다. 나도 산엘 다녀 왔어야 했는데 넘 춥다는걸 핑계 대구서 이리 방구석에서 티비나 보면서 뭉그적 거리고만 있다니...
갑자기 자신이 쫌 스러워움이다. 아무렴 내일 모레면 칩십줄에 다다를 아녀자 보다도 못하다니...
벌떡 일어 섰다. 순식간에 등산복을 입었다. 손장갑도 챙기고 털모자도 챙겼다. 목도리도 챙길려다 속에 겹옷을 껴 입는걸로 대신했다. 조금치라도 미적 거렸다가는 현관문도 체 나서지 못할가 봐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무명용사 처럼 단단히 맘을 먹고 승강기를 눌렸다.
밖은 그야말로 음산할 정도로 넘 춥다. 매서운 칼바람이 목줄기를 파고 들고 바지 가랭이 속으로 내 중앙청을 허락도 없이 들락 거린다. 오고 가는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안 보이는데 놀이 터에서의 애들 소리가 요란하다. 뭐하나 봤더니 너댓명이서 축구를하고 있는거다. 설이라고 어르신 집에들 와 형제들을 만나 강추워에도 아랑곳 없이 추억을 만드는 모양이다. 애들도 이렇게 친구가 좋은데 코로나가 풀리면서 3년에 못 만난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이태원에 모이다가...
나설 때는 3키로 코스 한바퀴만 돌고 들어 올려고 했는데 한바퀴 돌고 나니 이왕 나선건데 한바퀴만 돌고서 산행 했다고 하겠나 싶다. 허여 한바퀴를 더 돌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니...
천국이 따로 없다. 빨리 몸을 녹히기 위해 샤워 부터 했다. 속옷을 벗으니 지놈도 살아 남을거라고 깊숙히 쳐 박혀 있다. 한편 짠하기도 해서 억지로 끄집어 내는데 좀처럼 나서질 않는다. 뜨거운 샤워물로 얼마간 몸을 데치고 나니 그제서야 삐긋히 내민다.
또 다시 한동안을 티비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데도 지금쯤은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내가 귀가를 안 하는거다. 날씨가 지금처럼 춥지 않는다면 그다지 염려가 안 되는데...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셔? 아까 말했잖아요. 수영하는 친구들과 만나러 나갔다 좀 늦게 올거라고... 그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다. 친구 만나러 간거라면 이 엄동설한에 산행을 안해도 될건데 나이 먹은 할매급도 산을 다녀 오는데 춥다고 다녀 오는걸 집에서 보고만 있었다는게 남자로써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을 것 같아서 다녀온건데 친구를 만나러 갈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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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준비로
만보 이상 걷는데 오늘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