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2009년, 블로그를 통해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며 화제를 모은 인물이 있다. 2000년 게임빌 창업 멤버로 시작해, 2009년부터 미국 오라클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했으며 스파크랩, 디쓰리주빌리를 통해 투자자로서의 경력도 있는 조성문 빅브레인랩 대표가 그 사람이다. 그가 스타트업 대표로, 창업자로 돌아왔다.
“현재 엑소와 빅뱅 중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요?”
작년 말 글로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스파크랩의 6기 데모데이 현장에서 조성문 대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쉽게 답을 내리기 애매한 질문이다. 음원 순위? 음반 판매량? 팬클럽 회원 수? SNS 팔로워 수? 따져볼 자료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기준으로 잡아야 할지 난감해진다.
이렇듯 비정형적으로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음악 업계의 트렌드를 수치로 보여주는 일을 하는 곳이 빅브레인랩이다. 수식하자면, 음악 빅데이터 기업이다.
조성문 대표는 ‘준비가 된 것 같았다’고 창업의 계기를 설명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그가 음악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차트메트릭‘를 내놓은 이유가 궁금했다.
게임빌, 오라클, 스파크랩스를 거쳐 창업에 뛰어든 이유가 뭐냐고?
애초에 창업을 위해 7년 전 실리콘밸리로 떠난 거였다.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쳤고,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오라클에 입사했다. 5년을 일하면서 창업을 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핵심 기술이나 기반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했다. 직접 체감한 실리콘밸리 생태계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도 열었다. 준비의 시간을 가진거다.
미국에서 잘하고 있는 CEO들의 공통점이 뭐냐면.
곁에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는 거다. 물론 첫째는 제품의 품질이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것을 시장에 내놓는다고 해도 유사한 제품은 금방 나올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니까. 좋은 걸 만들었다면 그다음에는 본인이 발로 뛰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하나씩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들과 진짜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기 출장으로 해결볼 일이 아니다. 5년간 오라클에 있으면서 실리콘밸리 내에서 네트워크를 쌓았고,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막상 오라클을 그만두려고 하니 두렵더라. 실리콘밸리 생활비가 악명 높지 않나.
“저 회사는 왜 저것밖에 못 해?”라고 비난하기는 쉽다.
나도 그랬다. 창업은 처음이지 않나. 게임빌 때는 초기 멤버였기 때문에 이번처럼 내가 결정지어야 할 것이 많지 않았다. 오라클에 있으면서는 좀 만만하게 본 것 같다. 세상에 해결할 문제는 많고, 사업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면 뭐든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창업에 뛰어들면서 겸손을 배웠다. 아이디어를 찾고, 사업화하고, 고객까지 만든 모든 회사를 존경하게 됐다. 외관만 보고 왜 더 잘해내지 못하느냐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그 기업을 시장에 포지셔닝 시키고 대중의 인식 속에 위치시키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나도 꽤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차트메트릭은 어떤 서비스냐고?
음악·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를 위한 구글 애널리틱스라고 보면 된다. 차트메트릭은 음반 업계 트렌드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다.
광고 기획사에서 특정 가수의 인기도를 측정한다고 가정해보자. 대중이 음악을 듣고 즐기는 방식은 훨씬 다양해졌다. 이제는 음원 다운로드 횟수와 스트리밍 순위, 음반 판매량, 소셜미디어 지수 등을 다 따로 측정해야 한다. 해외 차트도 고려해야 된다. 굉장히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는 작업이다. 차트메트릭은 이 모든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서 보기 좋은 그래프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그룹 내 각 멤버별 SNS 친구 수가 매일 몇 명씩 늘어나고 있는지, 음원·유튜브 순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경쟁 가수와 비교했을 때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어떤 국가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예측(predict) 옵션을 통해 내일의 지수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데이터는 어떻게 뽑아내고 있냐면.
1차적으로는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순위, 유튜브 동영상의 조회수 같은 것들이다. SNS의 경우 팔로워 수와 라이크 수치를 통해 반응 정도를 측정한다. 이 정보들을 모두 합산해서 차트메트릭 스코어를 매긴다. 나라별 GDP와 같은 거시적 정보들을 각기 다른 가중치로 반영한 분석 결과도 볼 수 있다. 향후 유료 고객에게는 더욱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음악 빅데이터 서비스에 도전한 이유?
세 가지가 기준이었다. 첫째,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가. 둘째, 사명감이 있는가. 셋째, 시장이 존재하는가다. 어떤 사업이든 시작하고 나면 그 즉시 전투장에 들어가야 한다. 남들보다 잘할 수 없는 일이면,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게 되어있다. 난 기본적인 성향 자체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파고들어서 의미를 끌어내는 걸 좋아한다. MBA 과정이나 오라클 재직 중에도 계속해서 데이터를 다루는 일을 했었다.
지치지 않고 계속 가기 위해서는 돈 이상의 더 높은 가치가 필요할 거라고 봤다.
난 음악 업계에 대한 경험이 없다. 왜 내가 음악 데이터를 다루기로 했냐고 묻는다면 ‘사명감’ 때문이라고 답할 거다.
미국에 있다 보니 케이팝을 비롯한 케이컬쳐의 힘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케이팝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다. 라쿠텐에 인수된 비키(viki)라는 국내 회사가 한류 콘텐츠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 데이터 기술을 통해 케이컬쳐 확산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봤다. 그 시작점이 된 게 케이팝이다.
음반 기획사, 언론사, 광고기획사가 주 대상 고객이다.
음반 기획사 입장에서도 팬층이 더 글로벌화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하고 색다른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 광고기획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주 고객이 된다. 언론사의 경우 우리가 기사에 필요한 각종 음반 업계 데이터를 그래프 형식으로 제공해줄 수 있다. 임베드(embed) 형식으로 기사 중간에 넣으면, 인터랙티브한 요소가 늘어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다. 빌보드닷컴 같은 음악 미디어들이 주요 대상이 될 거다. 일반 사용자도 차트메트릭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일단은 B2B가 주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돈은 어떻게 버냐고?
프리미엄(freemium)모델이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더 심층적인 정보를 얻으려면 월정액으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앱 시장 분석 회사인 앱애니(App Annie)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어떤 영역에서든 시장에 가치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나면 이후 돈을 버는 방법이 따라올 거라고 본다.
시장은 있다고 가정하고 시작했다.
증거는 있다. 미국에서는 작년을 기점으로 음악 빅데이터 스타트업들이 500억에서 1,000억 원 사이로 대기업에 많이 인수됐다. 작년 1월, 애플이 영국의 음악 데이터 분석 회사인 뮤직메트릭을, 5월에는 판도라가 더넥스트빅사운드를 인수했다. 재작년에는 스포티파이가 디에코네스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미 경쟁자가 많은 시장에 뛰어든 것 아니냐고?
그게 좋은 거다. 시장이 있다는 증거니까. 이미 7, 8년 전부터 관련 비즈니스가 등장했는데,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음악 빅데이터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음악 시장이 계속해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경쟁력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음악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시작한 것 자체가 경쟁력이라고 본다. 스타트업은 항상 거대 트렌드 변화가 일어나는 최전방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런 시장이 아니면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없다. 돈도, 인력도, 브랜드도 없는 스타트업이 뜬금없이 철강 산업에 뛰어들면 게임이 되겠나.
음반에서 음원으로,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흐름이 변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기존 강자들이 활용했던 지표와 기준은 무의미하다. 음반 판매량이나 다운로드 숫자를 넘어서서 소셜지수, 음원 추이 등 더 다양한 요소를 측정해야만 되는 거다. 기존 기획사가 직접 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도 이 틈새 속에서 기회를 봤다.
제품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결국 고꾸라진다.
세일즈, 브랜딩, 네트워크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존경을 받는다. 그렇게 훌륭하게 만들어진 제품은 사용자에게 계속해서 감동을 준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뛰어난 팀이다.
에어비앤비를 예로 들어보자. 예약자와 호스트가 추구하는 이익이 충돌한다. 예약자는 싸고 좋은 집을 찾고 호스트는 비싸게 좋은 고객을 찾는다. 에어비앤비는 양쪽을 다 만족시키면서 돈까지 벌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뛰어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서비스를 쉽게 잘 만들었고, 프로덕트 매니저가 두 개의 니즈 사이에서 디시전 메이킹을 너무나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빅브레인랩스도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팀이 되고 싶다. 올해는 한국과 미국에서 B2B 고객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음악 산업에 관한 한 가장 인사이트 있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