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관 - 워싱턴 DC : 스미스소미언 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이자 연구 · 문화 기관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3. 17. 7:03
세계의 과학관 - 워싱턴 DC : 스미스소미언 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이자 연구 · 문화 기관
2024.01.23. 01:52조회 18
워싱턴 DC : 스미스소미언 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이자 연구 · 문화 기관
빌 게이츠, 아이폰, NASA, 마릴린 먼로, 스타벅스, 나이키,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디즈니 영화, 9 · 11 테러. 미국 하면 떠오르는 단어와 상징은 무수히 많다. 그만큼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와 있다. 세계 경제와 군사력은 물론이고, 음악과 예술 및 건축 그리고 음식 문화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넓은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국가에 걸맞게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밭이 펼쳐지는가 하면, 며칠을 달려야만 도착하는 오지 마을도 있다.
또 ‘대형’ 국가답게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거의 모든 생활필수품이 ‘대형’ 패키지로 판매되며, 심지어 햄버거도 다른 나라보다 거의 두 배 크기에 달한다. 하지만 미국이 어떤 의미에서 진짜 ‘대형’ 국가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럽 국가들에 비할 때 20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어떻게 오늘날 초대형 국가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부 포토맥 강이 유유히 흐르는 워싱턴 DC에 가 보면 알 수가 있다.
워싱턴 DC의 전경
국회의사당과 백악관이 위치해 있어 세계 정치의 중심이자 미국의 입법 · 행정 · 사법부의 중심인 워싱턴 DC는 미합중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남부의 불만을 받아들여 새로 건설한 도시다. 대통령의 이름을 기념하여 ‘워싱턴 컬럼비아 특별 자치구(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로 불렸던 이곳은 원래 황량한 늪지와 초지가 대부분이었고, 워싱턴은 개인적으로 화려한 뉴욕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안정을 위해서 새 수도를 건설하는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건축설계사 피에르 랑팡로의 설계안에 따라 행정 수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물로 오늘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백악관의 이름은 1812년 영미 전쟁 때 불에 타 버렸다가 복구하는 과정에서 건물 외벽을 하얗게 색칠한 데서 비롯되었고, 앞뜰의 로즈 가든은 역대 백악관 안주인 가운데 최고 멋쟁이로 꼽히는 재클린 케네디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은 물론이고 의회 도서관1)이나 링컨 기념관, 케네디 대통령이 묻힌 알링턴 국립 묘지보다 워싱턴 DC를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미스소니언 재단(Smithsonian Institute)이다. 파리에서 출생한 영국의 부유한 화학자 제임스 스미손(James Smithson)이 남긴 거대한 유산에서 시작된 이곳은 국립 자연사박물관, 국립 역사 기술 박물관,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 국립 동물원 등 19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및 도서관을 구비하고, 모든 분야의 자료를 소장한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이자 연구 · 문화 기관이다.
부유한 귀족 집안이지만 비밀리에 태어나서 그 생일이 정확치 않은 스미손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화학, 광물학, 지질학에서 매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한 과학자였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었던 그는 평생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유럽 국가를 여행하는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프랑스 대혁명기 동안에는 파리에 머물렀고, 나폴레옹 집권기에는 감옥에 투옥되었다. 과학과 지식이 사회의 행복과 번영을 가져오는 열쇠라고 믿었던 그는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세계의 시민’이라 불렀다. 그는 뱀의 독, 화산의 화학, 여자의 눈물의 구성 요소, 커피를 잘 만드는 법 등을 포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들을 수행했다.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된 스페이스 셔틀, 디스커버리호
스미스소니언 재단에 속한 기관들 중에서 과학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국립 자연사박물관과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이 있다. 먼저 1946년에 문을 연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은 항공과 우주 및 천문을 주제로 한 과학박물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적이다. 전 세계에서 운행되었던 항공기의 실물과 모형, 우주선 등과 함께 항공 우주과학의 발달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정부 문서, 장비들을 보관 ·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비행기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어 마치 격납고에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곳을 대표하는 전시물로는 라이트 형제가 개발한 플라이어호(Flyer)2)와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가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 ‘세인트루이스 정신(Spirit of St. Louis)호’ 그리고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비행의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긋는 기술자 형제인 오빌과 윌버 라이트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사다 주신 헬리콥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비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종이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코르크와 고무줄로 회전날개를 돌리는 비행기가 망가지자 이들은 스스로 비행기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둘 다 졸업은 하지 못했다. 형은 가족이 이사하는 바람에 그리고 동생은 말썽을 피운 바람에 최종학력은 고졸이 되지 못했다.
이들은 얼마 후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웨스트사이드 뉴스(WestSide News)」라는 주간지를 만들다가 일간지도 발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아 1892년부터는 자전거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가게를 열었고 1896년에는 그들만의 브랜드로 자전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가게가 성공을 거두자 이들은 항공 분야로 관심을 옮겼고, 신문과 잡지를 통해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이 제작한 환상적인 글라이더 사진들을 수집하며 비행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런데 1896년에 항공학의 역사에서 중대한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5월에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장인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가 무인 증기 항공기 비행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시카고의 엔지니어이자 항공공학의 권위자인 옥바트 차누트(Octave Chanute)가 미시건 호수의 모래사장에서 다양한 글라이더를 시험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또 8월에는 글라이더를 타고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했던 오토 릴리엔탈이 안타깝게 추락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라이트 형제로 하여금 비행기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도록 자극했다. 그 결과 이들은 1903년 12월 17일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키티호크 인근 칼데빌 언덕에서 직접 제작한 플라이어호를 타고 12초 동안 36.5m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초로 인간을 태운 기계가 자체 동력만으로 자유비행에 성공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들은 1906년 5월 22일에 ‘나는 기계’로 미국 특허를 획득했다.
1927년에는 뉴욕에서 파리까지 역사상 최초로 쉬지 않고 대서양을 횡단한 쾌거가 일어났다. 1919년에 뉴욕의 호텔왕인 레이먼드 오티크는 “뉴욕과 파리 구간을 무착륙 비행으로 성공한 사람에게 상금 2만 5,000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25세의 청년, 찰스 린드버그가 도전장을 냈을 때는 이미 6명의 도전자가 사망했던 터였다. 주변에서는 그의 무모함을 말리느라 성화였지만 이 젊은이는 과감하게 도전에 응했다. 그는 비행기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혼자 탑승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무전기 등 생존에 필요한 것들조차 비행기에 싣지 않았다.
물론 비행기의 이름은 그에게 기꺼이 투자해 준 세인트루이스 지역의 사업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뜻에서 ‘세인트루이스 정신’이라고 붙였다.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33시간 30분 29.8초 만에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 성공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르부르제 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그는 일약 스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비행 이후 1년 만에 세계의 비행기가 4배, 승객수가 30배로 증가하는 쾌거가 이루어졌다.
비행기로 서로 다른 지역을 오고가는 일이 자유로워지자 인류의 꿈은 지구 밖에 있는 달을 향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로 지구 궤도 위에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주 연구 개발3)에 돌입했다.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냉전 시대에 일어난 사건으로 미국은 크게 자극받았으며, 1961년 케네디(John F. Kennedy)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원대한 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귀환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아폴로 계획은 1969년 7월 16일에 아폴로 11호를 달에 발사했고,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도착하여 미국 국기를 꽂았다. 그는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는 아주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4)
2015년 2월에 이곳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은 달 착륙 당시의 카메라 등 닐 암스트롱이 달 탐사에서 가지고 돌아온 물품들을 46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닐 암스트롱의 가방은 그가 2012년에 세상을 떠난 뒤 부인 캐롤 여사가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4.5kg의 하얀 가방 속에는 총 17점의 물건이 담겨 있었다.
달 착륙선
가방 안에는 달 착륙선 내부에 장착되어 달을 향해 내려가는 우주인들의 모습과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디디는 장면을 모두 촬영했던 16mm 카메라를 비롯하여 휴대용 다목적 손전등, 전선 케이블, 광학 관측용 기기 및 부속 장비들, 허리용 묶음 장치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 카메라 등 달 관측과 관련된 장비들은 달에 두고 오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닐 암스트롱의 가방은 그가 기념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닐 암스트롱은 1969년에 달에 같이 갔던 동료 마이클 콜린스, 닐 에드윈 알드린과 함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 항공 우주 박물관에서는 대기권 상공에서 지구의 모습을 내려다보거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 비행을 하는 등의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는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고, 태양계 이외의 천체를 살펴볼 수 있는 플래나타리움도 마련되어 있다.
스미스소니언 기관들 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얻는 곳은 단연 자연사박물관이다. 지구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종 동물, 식물, 광물 등을 전시하는 이곳은 1946년에 스미스소니언 재단에 합류한 이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소장품 중 88%인 1억 2,600만 개의 전시품을 소장한 이곳에 들어서면 중앙 로비의 거대한 코끼리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입구
1층 왼쪽에 위치한 포유동물관에서는 금방이라도 움직이며 다가올 것 같은 크고 작은 포유류 동물들이 육지와 하늘이라는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전시되어 있다. 나란히 마련된 해양관에 들어서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고래와 오징어가 매우 인상적이며, 바다에 살고 있는 670여 종의 각종 해양동물도 전시되어 있다. 해양생태계 모두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마련된 이곳에 들어서면 마치 신비로운 바닷속에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박물관 2층에는 지질학, 광물, 이집트 미라, 곤충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중 특히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살아 있는 나비와 나비 표본을 전시한 공간이다. 나비의 모습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나비 파빌리온(Butterfly Pavilion)에서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 세계의 나비들을 만날 수 있다. 나비가 지난 수천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하고 다양화되었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나비를 모티프로 한 수많은 상품도 뮤지엄 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영국의 자연환경 센터가 수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40여 년 동안 나비의 일부 종류는 71%, 새의 일부 종류는 54%, 자생식물은 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 자연사박물관은 나비에 관한 전시뿐 아니라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수행한다. 왜냐하면 나비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른 곤충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좋은 지표이며 이를 통해 지구 생태계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지구상에 살았던 동식물 표본보다 더 흥미로운 전시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광물이 있다. 특히 이곳에는 45캐럿이 넘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인 ‘희망 다이아몬드(hope diamond)’를 보기 위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도의 황무지를 개척하던 한 농부가 발견했다는 희망 다이아몬드는 17세기에 루이 14세에게 팔린 이후 왕의 보석(Le Bijou du Roi)으로 불렸고, 루이 16세 때 도난당했으며, 경매를 통해 영국으로 넘어가 조지 4세의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미국으로 옮겨 갔다.
이런 역사 속에서 주인들이 대부분 사망하는 바람에 저주의 다이아몬드, 마법의 다이아몬드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다. 아름답고 신비한 빛 때문에 프랑스의 푸른빛(Le Blue de France)으로도 불렸던 이 다이아몬드는 1958년에 박물관 소속 광물학자의 설득에 감동받은 보석상 해리 윈스톤이 박물관에 기증한 이후 해리 윈스톤 갤러리에 보존되어 있다.
또 이곳 자연사박물관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는, 직원들과 관람객이 모두 사라지는 밤이 되면 박제되었던 동물들이 생기를 얻어 살아난다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2(Night at the museum 2: Battle of the Smithsonian)>의 배경 무대이기 때문이다.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또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한국 사람에게 특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이곳에 마련된 한국관 때문이다. 2007년 6월에 개관한 한국관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복식과 옷감, 예술품과 문화 유물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전시함으로써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 관광객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해 왔다. 한국관 전시는 스미스소니언재단 입장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경우인 만큼 워싱턴 DC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해 보아야 할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워싱턴 DC : 스미스소미언 박물관 -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 박물관이자 연구 · 문화 기관 (세계의 과학관, 2015. 10. 25., 조숙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