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홍의 나쁜 생각745 - 모르는 게 약이다
좀 알려진 종합병원 대기실은 늘 분주하다.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간호사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보기가 힘든 종합병원. 피로에 지치고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그들의 얼굴을 보다 보면 더 아파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간호사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의 고단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병원 대기실 프론트에 놓인 팜프렛에 대해서다. 요 며칠째 병원엘 다니면서 몸의 이곳, 저곳 검사 하기 위해 지루함과 불안함에 시달리며 기다리는 대기실에서 필자에 눈에 띈 팜플렛엔 간암, 위암, 폐암 등에 대한 자세한 증세와 치료방법이 친절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필자는 그 팜플렛을 읽다 슬그머니 공포심과 소외감이 밀려와서 도로 제자리에 꽂아 두었다. 거기에 인쇄된 증상들이 거의 필자의 증상과 비슷하게 읽혔기 때문이다. 도둑놈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처럼 필자는 아무래도 필자의 건강을 무모하게 도둑질하고 탕진해 온 것이 찔렸던 것이겠지.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다신 병원 팜플렛은 읽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을 자꾸 가슴 속에 쓸어 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읽고 싶어지는 것일까?
이 글은 수년 전에 쓴 글이다. 요즘 의료대란이 일고 있다. 비교적 필자의 집에서 가까운 몇몇 대형 병원도 영업을 종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늘 병원 근처에서 어슬렁거려야 하는 필자로선 암담한 일이다.
봄의 제전 / 송찬호
마침내 겨울은 힘을 잃었다
여자는 겨울의 머리에서
왕관이 굴러 떨어지는 것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제 깊고 지리한 겨울과의 싸움은 지나갔다
북벽으로 이어진 낭하를 지나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차가운 방에
얼음 침대에
겨울은 유폐되었다
여자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왕관은 숲 속에 버려졌다
겨울은 벌써 잊혔다
오직 신생만을 얻기 바랐던
재투성이 여자는
봄이 오는 숲과 들판을 지나
다시 아궁이 앞으로 돌아왔다
이제 부엌과 정원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오직 그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유하는 공기들 / 송찬호
그는 아주 느린 삶을 살았다
촛불과
고양이와
잔소리 많은 공기의 여자와 함께
촛불은 날마다 몇 개의 밤을 더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그는 촛불에게
진주가 들어 있는 검은 밤은
이 세계에서 더는 찾기 힘들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집 가까이 있는 오랜 우정의 나무에
그의 삶의 보폭을 맞췄다
그 나무는 지난 백 년 동안
오직 한 걸음만 앞으로 내 디뎠기에
정의가 그렇게 누추할 수 없던 시대
그는 한 걸음만 나아가
오래된 미래를 기다렸다
한꺼번에 세 걸음 이상 걸으면 공기는 죽기 때문에
하녀(下女) / 송찬호
캄캄한 폭풍우 속을 날다
길을 잃고 떨어진 거울을
여자는 자기의 방에 갖다 걸었다
여자는 세상이 쓰고 버린
헌 물과 헌 불을 모아
빨고 깁고 다림질하는 하녀였다
시린 물의 손등을 꼬집고
젖은 불의 뺨을 부비는
아직 나이 어린 하녀였다
어느새 달이 차올라
여자의 방에서 기력을 회복한
둥그런 거울이 다시 공중에 갖다 걸렸다
거울이 마녀처럼 깔깔 웃으며
멀리 폭풍 속으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운명을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지상의 여자가 오래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