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랑이 아니다. 산유령이 될 뻔했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도 잘 즐겨 찾지 않는 화악산을 찾았다. 이유는 몇가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조망이 없는 그저 그런 육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단지 100대 명산이라니 오를 뿐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 코스는 잘 선택하지 않고 대신 훨씬 오르 내리기 쉬운 900미터에 위치한 화악터널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 관청마을에서 시작하는 높이는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능선에 다다라야 그나마 조망이 있지만 그도 시원치 않다.남한의 높은 산 중에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산이지만 볼 것 없고 마냥 정상까지 끝도 없는 오르막을 인내심을 갖고 올라야한다. 성질 급한 한국인의 정서에 안맞다
그런데 우린 왜 이코스를 간 걸까?
1.산행일자 : 2023년 2월 11일(토) 오전 7 시 초월읍 사무소 출발
2.산행코스 : 도대리 관청마을~가마소폭포~큰골~임도~1421.6m봉 서릉(중봉 서릉 언니통봉 능선)~애기봉 갈림길~중봉 정상(1,446m)~애기봉 갈림길~관청리~임도길~가내소폭포~관청마을(원점회귀)
3.참석자 : 마스터.비미.여행.탄산수.가을.가을새.영쓰.청솔.법률.산타.블루.하미 모두 12명
4.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 11.30㎞ , 7시간 11분 (휴식시간포함)
5.산행사진 및 코스지도
관청 마을에 도착했다. 주자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 설 채비를 한다
들머리 초입에서 출발 직전 깔끔한 차림으로 화사하게 웃지만.. 오늘 고행길을 알랑가..
아침 기온은 견딜만 했고 바람은 잦아 차갑지 않다
시냇가의 버들강아지는 봄을 준비 중이다. 평화로운 산골 풍경이다
들머리에서 400여 미터 올라 온 지점. 중봉까지의 거리를 왕복하는 지극히 단순한 산행이라 생각했다
임도길을 조금 올라서니
비포장 길이 이어지고
완만한 큰골 계곡길을 따라 도착한 곳에
너도 나도 시선 고정인 걸 보니 볼만한게 있나 보다
뭣들 보고 계신겝니까?
가내소 폭포다. 규모가 꽤나 컸다. 겨울 치고 수량은 상당했으며 한여름이라면 알탕에 최적화된 곳으로 보였다
이때까지도 생각을 못했다. 운명의 애기봉 코스로 내려 오리라는 것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나름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벌써 2키로 넘는 구간을 쉽게 왔다
이곳까지는 무난하게 오른 듯하여 금방이라도 정상에 들것같은 근자감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가지고 온 간식으로 당보충한다
아름드리 잣나무 숲을 지나는 길은 생각 이상으로 가파르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글지.. 쉬울리가 있나..현타가 온다
38임도길을 몇차례 지나며 오른 이곳에서 서로 옥신각신. 다들 땀을 한됫박씩 흘렸는데 이정목 거리가 맘에 들지 않는가 보다~ㅎ
틈을 주지 않고 계속된 된비알의 연속이다.
후미와의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약속한(?) 능선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조무락골 계곡에서 올라오는 또다른 능선과 만나는 지점 능선길이다. 결국 이쯤에서 하미님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힘에 부쳐 내려가신다고... 혼자 잘 내려가신다 하니 그러시라했다. 이게 이분의 신의 한 수 일 줄이야..
1.6키로 저 산넘어 중봉이 있다. 육산을 버리고 제법 칼진 바위길이 이어진다
이미 시간은 12시를 지나 허지진지라 청솔님이 준비한 떡으로 달래며 계속진행이다
지친 기색이 보이는 가을새 형님
높이가 높아지니 아이젠 장착을 요청하고
밧줄을 부여잡고 힘겹게 오른다
능선길은 비교적 완만했다. 이제 남은 거리도 멀지 않다
눈으로 덮여진 설치구조물은 아무래도 사납고 조심스럽다
선명한 명지산 정상이 한눈에 보인다
저곳이 중봉 정상이다. 실제적인 정상은 군기지로 이용되고 있어 갈 수 없다
정상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애기봉쪽으로 하산길을 선택하여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맞는다
여기는 겨울겨울하다
정상에서 바라본 설악산 서북능선이 한 눈에 저 멀리 펼쳐져 있다
이래서 중봉이란다
바람은 심하게 불지 않았다. 각자 인증하고 정상석 뒷쪽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해결했다
당겨본 설악산의 귀때기청봉과 대청봉정상
애기봉쪽으로 막 내려셨다. 코스를 바꾼 이유는 첫째 정상까지 오름길이 너무 벅차고 힘겨워서 조금이나마 덜 하지 않을까와 시종일관 초입부터 젊었을때 가평산을 섭렵하여 더줏대감인 듯 코스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여행님의 강력한 추천이다. 30년전의 기억이 어제인 듯 어찌그리 선명한지 ~ㅎ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두어명의 선행자의 발자욱이 있어 따라간게 도움이 되었으나
그래도 편안함을 기대하기엔 가파른 경사길은 여전히 도전이고 어려웠다
길은 보이지 않고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그저 감사하다
그러나 그분들의 리딩은 여기까지. 우린 관청리 쪽으로 간다. 이제 2KM의 생 야생속으로 진입이다.
자연속 오지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겨울 하산길로 향한다
자못 비장함이 묻어난다
밧줄이 있는 곳은 길이니 그나마 낫다. 하지만 발밑은 알 수 없다.
서너 차례의 러셀과 알바를 반복한다. 아이젠과 스패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길이다
사방이 길인 듯 보이고 아닌 듯하다
간간히 나오는 이런 표시판과 십수년은 되어 보이는 색바랜 시그널이 사람의 흔적을 말해준다
수차례의 넘어짐과 구름을 하고 후미 기다리며 휴식한다
이쯤에 고생다했다 생각했다. 오산이였다
잊을 만하며 나오는 이정목이 반갑기도하고 밉기도하다. 오른쪽 관청리쪽은 가파른 경사에 눈이 쌓여 위험천만했고 계곡인지 길인지도 불분명했다
변함없이 길은 없고 감으로 내려선다
올겨울 이곳은 산객이 없었던 것인가.. 아.. 산을 편애하지 말고 이 코스도 자주 다니시길..
온갖 감각을 동원해 흔적을 찾고 내려선다
GPS 위치상 아침에 올라선 등로와 가까워졌다. 이제 안심이 된다.
마스터님과 산타님은 뭐.. 쉬운 산행으로 보인다. 믿음직허다~ㅎ
마지막 밧줄구간을 내려서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다들 힘겹게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가을님
대장~, 얼마나 가야되는 겨~ 거짐 다 내려왔네요~ㅎ
아침에 올라갈 때 본 이정목과 다시 조우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제 걸리적 거리는 아이젠을 벗고
가볍게 가본다
계곡에 다다라서 한시름 놓은 듯 잠시 정비하고
다시 채비한다
이제 맘이 평온해 지지유 영쓰님~ㅎ
멀리서 이미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하미님의 얼굴이 보인다. 미리 얘기를 들었던 건지 미리접은 본인의 결정에 만족해 하신다. 이구동성 동의한다. 나도 그렇다
산행은 늘 예정된 계획대로 되었을 때 좋긴하다. 하지만 흥미롭진 않다. 밋밋하리라 생각된 코스에 부딪힌 환경은 잠든 본능을 깨워 도전하게 만들고 시시각각 변하는 조건들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지만 길을 찾거나 아니면 만들어 가는 과정의 순간들은 우릴 더 즐겁게 만드는 듯하다.
산행중 했던 말말들이 여전히 귓가에 들린다. 땀을 흘리며 쏟아내는 속내는 다들 진국이다. 고생하면 짜증이 날만도 한데 재치있게 답하며 웃으며 내려오는 우리 산유랑 회원들이 그렇다. 어디서 그런 예능감이 나오는 건지.. 원.. 산행 전반전에 분위기 타서 오르고 이후 내려오며 맨정신을 버리고 토해낸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서로 웃음짓게 만든.. 이날 힘은 들었지만 보기드문 만족스런 산행이였다. 악조건의 화악산은 우리들에게 긴장감 돌게 한 멋진 놀이터일 뿐이라 생각하니 아침에 올려본 화악산이 다시금 새롭게 보였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이 산의 매력이 어딘가 더 있지 싶겠단 생각이 든다. 이거.. 또 와야하나..
-끝-
첫댓글 생생한 고행길
가보지 않은길
길인지 아닌지
눈 속을 알 수 없음에도
무탈하게 하산 하였으니
참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ㅣ 이렇게 내려왓네요 ㅎ
z 요로케 내려와야하는데요 ㅋ
이게 산행길인가요? 삼각봉 인가요? 무산귀환 산행하신 유랑님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몇년은 산행후 무용담 들어드려야 할듯하네요.
제대도 ⛰️ 모양이구만 ㅎㅎ
누가봐도 무용담급
다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