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
1년을 먹으면 10년을 더 산다는 측백
▶길인이 머무는 곳이 곧 명당
구름처럼 떠돌던 비분강개 지사 김삿갓이 석양을 등지고 한 고을을 지난다. 권세 높은 자가 명당을 찾아 자기 조상시체를 남의 선산에 묻음으로 힘없는 백성이 부모선영을 빼앗겨야 할 딱한 처지에 놓인 이야기를 김삿갓이 전해 듣는다. 억울함을 당해서 관아에 제소야 했겠으나 고을 원이란 자는 권세 있는 자를 감히 건드리기 어려워 잡아 오라는 말만, 피소자 그쪽은 파간다 말뿐이고. 그래서 김삿갓이 일필휘지 시 한 수를 적어 고을 원에게 보낸다.
파가마파가마 하는 것은 항시 저쪽이 하는 말이요.
잡아 오라 잡아 오라 함은 늘 이 고을 원이 하는 소리.
이같이 오늘내일 차일피일하는 사이에.
천지에 늙지 않는 세월 적막강산이 어느 듯 백년을 헤아리네.
蘭皐 金炳淵 1807~1864 詩 「山所訴狀원문생략」
예나 지금이나 명당을 찾아 발복을 비는 가진 자들의 영악한 탐욕에는 동정의 여지가 없겠으나, 너무나 절박했던 가난. 굶주리고 배고팠던 서러움. 없어서 당해야 했던 천대와 수모 그래서 부모의 시신이라도 명당에 묻어 입신양명하여 비천했던 한풀이나 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면 누구를 탓하랴. 민초들의 그 슬픈 몸짓에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명당은 과연 있는가? 중국 진晋나라 곽박郭璞이 창시했다는 풍수설 정통방법인 장풍藏風. 득수得水․간룡看龍․정혈定穴법과 좌향坐向․형국形局 논에 근거하고 충실히 살펴 한시대의 이름난 풍수가 당대의 권력자 한사람의 선산 묘자리를 잡았다. 아홉룡이 산맥을 타고 굽이굽이 내려와서 하나의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고 있는 참으로 길지 중의 길지요 이곳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을 혈穴자리로 잡아 묘를 쓰면 용이 여의주를 얻어 만사 형통하는 형국의 명당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가? 묘자리를 파놓고 다시 지형을 유심히 살펴보니 용과 여의주가 아니라 아홉 마리 뱀이 한 마리 개구리를 놓고 서로 얼러고 있는 폐가망신 할 자리더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금풍수설禁風水說을 들어보자. 풍수지가의 글이 많기로 수레에 실으면 소가 무거워 땀을 흘릴 정도라도 결국은 「길吉한 사람이 길吉한 땅을 만난다」는 내용에 불과하다. 대개 인생의 길흉화복은 하늘-자연의 이치에 매였다. 비록 길한 땅이 있다하더라도 실상 하늘이 주관하여 길한 사람이 길한 땅을 얻게 하고 길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길한 땅이 돌아갈 수 없게 하는데 어찌 사람이 구한다하여 얻겠는가 吉人住處是明堂 좋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곧 명당이더라 그 말이지.
▶물보라치듯 잎이 기묘한 나무
염라충이라 하여 간혹 무덤 속에 벌레가 생겨 시신을 갉아먹는데 묘지 옆에 측백나무를 심으면 시신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측백은 예로부터 묘지뿐만 아니라 향교나 대가집 정원에 생울타리나무로 널리 심어왔다. 측백나무과에 속한 측백側栢은 향나무처럼 늘푸른 비늘잎 침엽수이다. 키가 25m까지 자라는 교목이지만 이 땅에서는 관목 같은 생김새로 자란 것이 많다.
꽃은 4월경 암․수꽃이 같은 그루에서 각기 다른 묵은 나무가지 끝에 자갈색으로 피고 10월에 열매가 익는다. 열매는 딱딱한 8개 조각이 둥근 형태를 이루며 씨앗을 감싸고 있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녹색열매가 보랏빛 갈색으로 변하고 벌어지면서 1~3개의 씨앗을 터뜨린다. 굵은가지는 적갈색을, 부채살 모양으로 갈라지는 잔가지 끝은 푸른빛을 띤다.
측백나무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보다도 기묘하게 생긴 잎에 있다. 잔가지 끝마다 넉줄로 배열된 아주 미세한 비늘모양의 작은 잎들이 나란히 포개진 것처럼 모여 피어나는데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파도가 되고 몰보라가 치듯하다 측백잎은 향기 또한 독특하다.
이러한 측백나무의 본래고향은 어디일까. 학계에서는 중국원산이라는 주장과 이 땅의 자생목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대체로 모든 동식물들이 인위적으로 돌봐주지 않아도 자연이 그곳에 살고있다면 그곳을 고향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이 땅에는 측백과 비슷한 몇 종들이 살고 있다. 눈측백-일명 찝빵나무는 잎의 뒷면이 하얀색이며 씨앗에 날개가 붙어있다. 서양측백은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잎 뒷면이 황색이거나 회청색이므로 토종측백나무와 구별된다.
측백나무 집단자생지 천연기념물 제1호는 대구시 도동 향산에 있으며 그 외 충북단양 자생지 제62호. 경북 영양 자생지 제114호 등이 대표적인 자생지로 보호되고 있다.
▶1년을 먹으면 10년을 더 산다
한방에서 측백나무 잎을 백엽柏葉 그 씨를 백자인柏子仁이라하며 잎과 씨를 다른 용도의 약재로 쓴다. 즉 잎은 피와 관계되는 모든 질환에 쓰고 씨는 신체허약증에 자양강장제가 된다. 「동의보감」에서 「신농본초경」과 「의학입문」을 인용한 측백에 관한 기록이 있다. 약성은 차고 맛은 쓰고 떫으며 폐와 간 대장경에 작용한다. 약리 실험에서 측백잎 달임약은 혈분속의 열을 없애고 지혈의 효과가 다른 약재에 비해 가장 세다는 것이 밝혀졌다. 잎에는 지혈, 양혈, 수렴, 소염, 억균, 이뇨작용을 나타내는 효능이 있다.
적용질환은 여러 가지 출혈성 혈증질환 토혈, 장출혈, 혈뇨, 혈변, 장출혈, 비염코피, 부인생리과다, 산후 멈추지 않는 자궁출혈, 뇌질, 경풍, 간질 등이며 이러한 증상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있는데 쑥을 배합하면 더욱 확실한 효험이 있다고 하였다.
측백의 씨앗 백자인은 자양, 강장, 진정의 효능이 있어 식은땀이 흐르는 허약체질, 노쇠음위, 꿈이 많고 불면증이 있는 신경쇠약에 약이 된다. 그리고 측백을 오래먹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탈모예방과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나며 빠졌던 이가 새롭게 난다고 했다. 그 외 기침과 관계되는 기관지염, 백일해 가래 삭임에 쓰고 심계항진과 고혈압, 통풍에도 쓴다.
측백의 약초는 여름에 싱그러운 잎을, 열매는 가을에 익어 씨앗이 흐르기 전에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서 가루 내어 환을 짓거나 달여서 복용하는데 약성을 높이기 위해 연하게 볶거나 찌거나 술에 불구어 쪄서 쓰기도 한다. 하루 쓰는 양 6~12g. 측백나무 열매로 술을 담그면 그 유명한 고려명종때부터 전래되었다는 향기로운 백자주柏子酒가 된다.
「동의보감」내경편 신형단방身刑單方에서 측백잎을 오래먹으면 모든 병이 없어지고 오래 산다. 환을 지어 여든한알씩 술로 먹는다. 1년을 먹으면 10년을 더 살고 2년을 먹으면 20년을 더 사는데 잡다한 고기나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먹지 말아야 한다. 「본초」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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