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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노래
사천성 여행
2015.08.13~08.18
성도-아미산-낙산-구채구-황룡
세상의 모든 울부짖음이
욕설처럼 밀려들던 날에도
나는 몰랐다.
그것이 곧 寂靜임을
번뇌의 도량임을.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이 봄에 내려 만물이 소생하는구나!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비는 바람 따라 이 밤에 몰래 스며들어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신다
호우시절
이번 여행 내내 비가 따라 다녔다.
하늘은 늘 비가 올것같이 무거웠고
그렇지 않은 날에도 비는 기어이 내렸다.
여행 중의 비가 반가울리 없지만
不吉의 예고는 아니었다.
해가 뜨고 밤이 오듯 비는 내렸고
희망을 비웃듯 또 비는 내렸다.
성도에 내리는 이런 비를 好雨라 아껴불렀던 시인이 있었다.
바로 시성 두보다.
소리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시는 비!
적신다는것은 스민다는것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비록 봄밤을 적시는 좋은 비는 아니었지만
꽃잎지듯 내리는 비였고
함초롬한 여수의 비였다.
대륙의 물봉선
두보의 춘야희우 첫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 '호우시절'
이 영화에도 우중충하지 않는 성도의 비가 등장한다.
정우성과 고원원이라는 중국 여배우가 열연한 제법 세월이 지난 영화다.
허진호 감독의 前作 '8월의 크리스마'나 '봄날은 간다'만큼 빼어난 영화는 아니었지만
사랑의 내래이션이 무척 담담했었던 영화였다.
"내가 그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지금 뭔가 달라졌을까"
있지도 않은 과거에대한 고민은 고민을 두배로 만든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별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밍숭한 대사지만
사실 이 한마디야 말로 이 영화의 전부다.
영화의 무대가 된 성도에서
그 영화 속 비를 맞아 본다.
기대에 못 미치는 영화처럼 비 역시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고원원은 영화에서 이 곳 두보초당의 해설사로 나왔다.
두보는 759년 안사의 난을 피해 현종을 따라 성도로 피난와
이곳에서 (완화계 근처)초당을 짓고 살았다.
이 곳에서 지은 시가 240수가 넘는다고 하는데 춘야희우도 이 때 씌여진 시다.
두보와 더불어 사천성과 관련된 또 하나의 문인은 소동파다.
소동파는 사천성 미산 근처에서 태어났다.
모르는것과 못하는것이 없었다는
진정한 대륙의 르네상스인 소동파.
문득 그가 만들었다는 동파육이 먹고싶어졌다.
인구 일억의 사천성
그중 천구백만 인구를 자랑하는 고도 성도.
맑은 물과 비옥한 토질로 사천 요리라는 독특한 요리문화를 탄생시킨 곳이지만
정작 중국에선
오히려 名酒의 본향으로 더 알려져있다.
맑은 물을 바탕으로 각종 좋은 술을 빚어
술꾼들의 이상향이 된 곳이 바로 이곳 사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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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詩仙) 이백(李白)의 명시 ‘촉도난(蜀道難)’의 무대이고
잔도(棧道·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 선반처럼 달아서 낸다)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중국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이라면 이곳이 등소평(鄧小平)의 고향이라는 것도 안다.
사천성은 중국의 상징 팬더의 서식지이고 중국 4대요리의 하나인 사천요리의 본산이다.
사천은 무술의 성지이기도 하다.
무협지의 단골 격인 9대문파 중 도가의 청성파(靑城派)와 불가의
아미파(峨眉派), 5대세가의 하나인 당문(唐家)도 사천에 있다.
성도의 아침은 예상외로 고요했다.
최신의 고급차종과 最古의 운송수단이 공존하여
외지인들에게는 교통의 카오스로 보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는 그들만의 체계가 엄존했다
중국은 그런 나라다.
우리와 다르다고 하여 비정상적이라 여겨서는 안된다.
16억 인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질서요 상식이된다.
엉망인 그들의 공중 질서도,거북하기만 한 화장실도
그들 입장에서는 다 상식이다.
대나무 지팡이를 팔고있는 노인
아미산 입구에서 지팡이를 팔고 있는 노인을 만났다.
범상치 않은 인상 만큼 지팡이를 팔겠다는 집념 또한 대단했다.
버스에서 내려 로프웨이 탑승대까지 얼마 안되는 거리를
왠 지팡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법 많은 현지인들이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다녔다.
중국 사천 지방은 고온 다습하여 연중 습도가 83%를 유지해 대나무가 자라기
안성맞춤인 생육조건을 갖추고 있다.
60여종의 대나무가 竹海를 이루는 촉남죽해도 여기에 있다.
대나무만 먹고사는 팬더가 이 지방에 서식하는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어메이산
저장성의 보타산(지장보살),
안후이성의 구화산(관세음보살),
산시성의 오대산(문수보살)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불교 4대 명산이다
보현보살의 성지로 알려져있다
아미산 산장에서의 점심식사
사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과 요리다.
사천요리 하면 중국의 광동요리와 함께 중국 4대요리에 들어간다.
사천요리 특징 중의 하나는 매운 맛이다.
사천사람들의 사천요리 자부심은
그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난다는데
'음식은 중국에 있고, 맛은 사천에 있다(食在中國 味在四川)’든지
‘매운 것은 두렵지 않다. 맵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不辣, 不辣)’ 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고 한다.
기름지고 느끼한 중국음식을 별 달가와 하지 않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맵싸한 사천요리가 제격일지 모른다.
하지만 매운 입맛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사천이 자랑하는 매운맛은 생각보다 덜했다.
오히려 뜻밖의 산초향 때문에 더 고생을 했다.
스프를 먹다가도 산초 때문에 입술이 얼얼해진 적도 있다
사천성은 면적이 남북한 합친 것보다 2배나 넓고 중국에서도 관광자원이 가장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중국 내에서 사천성이 가장 많고 관광자원이 4000곳이 넘는다.
원숭이 보호구역
아미산에 자생하는 원숭이들.
아미산 원숭이 보호구역 내에는 약 800마리의 원숭이가 살고있다
중국에서도 제일 많은 원숭이가 살고 있는 곳이란다
야생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부탁은 곳곳에 적혀있지만
머리 좋은 원숭이가 쉽게 먹이를 얻는 법을 모를 리 없다.
여느 관광지 원숭이처럼 관광객에 빌붙어 살고있는듯 했다
아미산 정상의 시방보현보살
높이가 48m, 무게600톤이나 되는 대형불상이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대표적인 부처님의 협시보살이다
여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돕고 널리 선양한다.
생명을 연장하는 덕을 가져 보현연명보살이라고도 부른다.
여래의 전위답게
하얀 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부처님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48은 48개의 소원을 의미하며
시방은 10개의 방향 즉
동서남북 동남 서남 동북 서북 상하
보현보살의 원력이 도처에 두리 미침을 의미한다
아미산 정상에는 금정 은정 동정으로 불리는 건물이있다
고풍스럽지도 않거니와 썩 끌리는 외관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냥 중국풍의 사찰이구나 할 정도다.
겉모습에대한 선입견 때문일까
번거로이 건물 내부를 기웃거리는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감성을 자극하는 에스프리가 부족했다.
하기야 절집을 받혀 주는 풍경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아미산 산정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기로 한다
3079m 금정비
아미산 정상 부근에 있는 금정비.
백두산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미산은 쿤룬 산맥 동쪽 끝자락 칭라이 산맥 중의 一山으로
1966년 세계 자연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나
불행히도 운무에 가려 아무런 경치도 구경하지 못했다.
아미산 즉 어메이산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도교의 성지였다고한다.
아미산 정상부인 금정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최종 버스 종착지로부터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하므로
대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걸어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한다.
하지만 심한 비로 말미암아 이도 저도 못하고
중국 인민들과 더불어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야했다.
옥동화(dove tree)
비둘기 나무,손수건 나무,유령나무라고도 부른다
1862년에서 1874년까지 중국에서 머문 데이빗이라는 프랑스 선교사가
사천지방에서 발견한 나무라고 한다
비둘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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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언(都江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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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생소한 도강언은 도강(민강)의 제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촉군(蜀郡)의 태수 이빙(李)과 그의 아들 이랑(李郞)이 기원전 256년에 건설한 수리시설이다.
도강언이 물살이 거센 민강(岷江)의 범람을 막아준 덕분에 성도(成都)사람들이 편하게 농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사천성 사람들은 ‘세계 수력문화의 원조’이며
‘만리장성과 겨루는 중국의 위대한 토목 유산’이라고 자랑하는데 현지에서 보니 자연에 굴하지 않은 인간의 기개가 느껴져 수긍이 됐다.
2000년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민강, 대도하, 청의강의 합수머리
물이 모여든다
가덕도 앞바다에 숭어떼가 모여들듯 물이 이글거린다
물과 물이 이루는 경계가 성상이 다른 두 질료처럼 분명하다.
물결의 움직임은 일출의 수평처럼 장엄하고
뒤섞인 물들은 고요해 마침내 입정의 도량이 되어갔다.
생멸을 뛰어넘은 강물 위로 한가로이 비가 내렸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의 한켠으로 모호한 역사의 신기루가 떠올랐다
물가의 풍경들은 모두 씻기워져 人情을 압도했고
탁류에 부유하는 역사는 문득 신산했다.
비내리는 민강 어슴푸레 일어나는 강안개를 보다 문득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티멘탈리즘에 빠져들 나이는 아니지만
무엇엔가 씻겨진 뒤에 느껴지는 개운한 슬픔이었다.
비내리는 몰운대 앞바다에서도,
눈보라가 그친 선자령 위에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연암이 들렀다는 그 끝없는 만주 벌판의 호곡장이 생각났다
훌륭한 울음터
크게 한번 통곡할만한 곳
진정한 울음터란 감정이 지극히 사무치는 곳이다.
기쁨에 사무쳐도 울게되고
즐거움에 사무쳐도 울게되며
노여움에 사무쳐도 울게도고 사랑에 사무쳐도 울게된다.
그런데 나는 무엇에 사무쳐 이렇게 울고 싶은것일까.
無心
시간의 무심함
한치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저 도도한 시간의 흐름.
요동치는 七情의 극이 아니라
칠정을 억누르는 시간의 준엄함에대한 슬픔이었다.
절멸된 언어에대한 슬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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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대불은 당나라 때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위고(韋皋)가 쓴 비문 가주능운사대상기(嘉州凌雲寺大像)의 기술에 의하면,
713년 (개원 원년) 당시 빈번하게 일어나던 수해를 막기 위해 승려 해통(海通)이
능운사(淩雲寺)에 인접한 절벽에 석상을 조각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743년 (천보 2년) 해통은 대불이 완성되기 전에 입적을 했고,
절도사로 있던 위고가 건설을 이어받아 803년 (정원 19년)에 완성했다고 한다.
강의 합류 지점에는 공사로 인해 떨어져 나간 대량의 토사 때문에, 강바닥이 얕아지고,
해통의 의도대로 수해는 대폭 감소했다고 한다.
완성 당시 대불은 대불상각이라고 칭한 13층의 목조건축물로 덮히고,
법의에는 금박, 몸통에는 주홍색이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또 용수를 배출하기 위한 배수구와 빗물을 효율적으로 방출하는 홈이 파여져 있었다.
그러나 명대 임종에 이르러 건물은 소실되고, 대불도 풍우에 노출되어 색이 바래고 잡초에 덮히고 말았다.
1962년 일부 복구작업을 일부 진행하였고, 명대에는 경전을 넣기 위해 구멍이 뚫어 가슴에 넣었던 것을 발견하였다.
최근에는 산성비에 의해 불상 표면이 약화되어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
1996년 아미산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도중에 비가 와서 배에 앉아 느긋하게 불상을 감상하는것 조차 불가능했고
사진 몇장 허겁지겁 담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번 여행 최고의 패착은 낙산대불 관람을 선상에서 진행한거였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 놈의 수줍음 때문에 나는 내 주장을 관철하지 못했다. 일생을 두고 후회할 짓을 하고 말았다. 주마간산으로 사진이나 찍자고 나선 여행이 아닌데 그렇게 되고말았다. 허둥거리며 셔터를 누르는 나 자신이 몹시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단지 단체의 일원일 뿐인데... 후덕한 아미타 부처님의 모습에서 '너도 어쩔수 없는 인간이다'라는 묘한 파토스를 느꼈다.
흠선제
맛갈난 음식이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는 행위를 food porno라한다.
섹스장면이 성욕을 자극하듯 음식이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은 food porno에 관한 최선진국이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음식을 먹기 전에 휴대폰으로 음식 사진을 찍는 모습 정도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 사실 이번 여행 중 음식 사진을 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설명할 사진이 없어 좀 서운하기는 하다.
흠선당은 사천 약선 요리로 유명한 집이다. 약선 요리란 음식을 보양에 입각하여 만든다는 뜻이다. 식당은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점의 위엄이 느껴졌으며 음식은 생각보다 맵거나 짜지 않았다. 다른 음식점에서 먹어 본 음식들에 비해 향신료가 주는 거부감이 덜했으며 대체로 담백한 편이었다. 식재의 특성을 잘 살린 누구라도 먹기 편한 음식이었다. 점심 시간이라 시간에 쫒기듯 음식이 나왔으나 그런 일로 음식의 수준이 저하된것 같지는 않았다.
삼국 촉나라 수도
무후사 한조열묘
유비와 제갈량을 모신 사당이다. 수어지교의 二人이 죽어 한자리에 모셔졌다.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자 삼국의 역사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의 코멘트가 줄줄이 이어졌다.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의 역할이 졸지에 무색해졌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는 주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연의다. 그러므로 소설을 기반으로 인물을 해석하는것은 위험하다. 그렇다고 진수가 쓴 정사가 모두 옳은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것이다. 그 또한 촉나라에서 벼슬을 한 사람이지만 그가 머물며 역사를 기술한 서진은 위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악비가 쓴 출사표 서각
악비의 서명이 눈에 들어온다. 금의 침공으로 정강의 변을 당하고 남으로 천도한 송나라는 중원을 회복하기위해 전전하는데 이때 등장한 장수가 악비이다. 하지만 이 천하명장 악비도 화진파 진회의 농간에 빠져 옥사하고 만다. 악비가 금군을 대파하고 남양을 지날 때 무후사에 들른 적이 있다 그는 밤새 제갈량의 출사표를 베끼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갈수록 흐려지는 글씨체가 그날의 심정을 대변하는듯하다.
출사표
악비가 쓴 출사표 서각 갈수록 글씨가 흐려짐을 알수 있다
무후사를 나와 유비의 묘로 가는 길에 하늘을 찌르는 대나무가 인상적이다 국궁진췌의 의리를 상징하는듯 하다 붉은 원형의 벽과 수직으로 자라는 푸른 대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도도한 시간의 흐름 속에 우뚝 선 한컷의 역사를 형상화한듯하다.
공명의 아내는 좀 못생긴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은 꽤 빵빵했었나보다 야사에 의하면 결혼후 공명은 두번 집을 방문하여 두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동남풍의 타이밍을 맞춘 공명이니 어련했겠나. 사당에는 그렇게 얻은 두아들 제갈첨과 제갈상의 조각상이 있다. 위나라 군사와 대항하다 첨은 자결하고 상은 전사한다. 귀하게 자란 두 아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행한것이다.
한편 유비의 아들 유선의 彫像은 없다 그 대신 그의 아들이 할아버지 곁을 지킨다 유선은 위나라에 투항하여 안락공으로 봉해져 평생을 편안히 지냈기 때문이다.
무후사 후원
보는 각도에 따라 산이 달라보인다고하여 그 산이 다 별개의 산은 아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비록 역사적 사실에 다가가는 수단이기는 해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현존하는 해석이 불완전하다고하여 역사적 해석의 유효성이 소멸되는것은 아니다.
한 때 악인으로 여겨졌던 조조가 오늘날 처세의 관점에서 더 평가받는것도 해석의 변화에서 기인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상호 작용이라기 보다는 어찌보면 끊임없는 현재의 재현이 아닐까. 역사가의 대상은 소멸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금리
인사동과 같은 전통 풍물거리다 . 전통이란 과거의 옷을 빌은 현대적 해석을 의미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가 이니라 현재의 나에게 도달하는 일종의 알고리즘이다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평가하고 대비하는 실용성을 지닌다.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는 삶과 그러지 못한 삶. 나는 과연 어느편의 삶을 살고 있을까?
금리거리의 스타벅스
바빠서 스타벅스 커피 한잔 마실 겨를이 없었지만 딱히 그 커피가 스타벅스여야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운한것은 중국 음식점에는 우리나라처럼 무료 커피가 제공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참 후한 나라이다. 헛헛한 오후 어디 앉아 차한잔 마실 여유조차 없다면 이런 여행이 포르노와 무엇이 다르랴 사람을 찍고 풍경에 비친 제 얼굴들을 찍고 음식을 찍는 오로지 보여주기위한 노력들....
차를 덕는 손놀림이 빠르다
설탕 과자 만드는 수준이 확실히 우리나라 보다 높아보인다. 하지만 손님은 무엇이 불만인지 자꾸 불평을 늘어놓는다 화가난 장인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다
금리 거리의 안쪽은 이처럼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며져있다.
성도에서 최근 유행하는 머리 장식
구채구 입구
구채구 하워드 존슨 호텔에서 새벽같이 잠을 깨어 구채구 관광에 나섰다.
아미산에서 중국 인민들의 힘에 놀란 우리는 아침 일찍 기상하여 일찌감치 선두에 입장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를 실은 버스가 길 중간쯤 우리를 내리게 하더니 그냥 걸어가라는 거다 뭐 얼마 안가면 입구가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무려 30분 정도를 도보로 걸어가야했다. 아마 우리 여행을 주관한 여행사에서 구채구 가이드에게 돈을 얼마 지불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불만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와 이런 엉뚱한 보복이 된다.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화를 낸다고 해결이 될 일도 아니었다. 괜히 화를 내 일정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다.
오화해
'구채구의 물을 보고나면 다른 물은 물로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구채구의 물빛은 특별나다.
형형색색의 물빛의 조화뿐 아니라 물이 세상과 어떻게 화해하며 어우러져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구채구의 물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삶이 보이고 삶을 주관하는 궁극의 마음이 보인다.
구채구는 1992년 유엔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1997년 세계 생물권보호구로 지정된바있다 입구로부터 수정구, 일측구, 측사와구로 구성된 Y자형의 계곡에는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 고산 준봉과 어울리는 경치는 산길을 걷는 자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九寨溝
구채구의 채는 장족을 의미하는데 티벳에서 이주한 소수민족이다
한자 溝는 붓도랑 구라고 하는데,봇물을 빼거나 가두는 도랑이라는 뜻으로
크고 작은 호수와 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9개의 마을 중에 현재 4곳만 개방되었는데
개방된 마을의 면모를 보면 개방되었다기보다는
문명에 강제 편입되었다는 아픈 마음이 더 든다.
버스를 타고 일칙구를 따라 오른다
얼마안가 오화해가 나온다
오화해의 물빛만으로도 영혼을 온통 저당잡힌 기분이지만
이 헤어나올 수 없는 존재를
자히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히르는 이슬람 전통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코엘류의 소설 오! 자히르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눈에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것으로
일단 그것과 접하게되면 서서히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나가
결국 다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
자히르!
오화해의 물빛이 자히르였고
거울같은 호수에 비춰진 그 황홀한 반영이 다 자히르였다
알아야할것은 언제나 눈 앞에 있다는 말이
신의 가르침이라면
나는 지금 내 눈 앞의 진실을 따라야한다.
하지만 어떻게 따를것인가
앎을 떠나 신의 마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견문각지를 초월한 각성이 필요하다.
至高의 아름다움 뒤에 감추어진 본성을 향한 직관을
지금 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신이 눈 앞에 선보인 그 무언가의 까닭에 대한 확신만은
신앙처럼 굳게 간직하고 있다.
마음 속 슬픔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듯,
여름 벌레의 슬픔의 이유를 알 수 없듯,
나는 이 처연히 울고있는 물의 슬픔을 모른다.
아마 나도 저 물빛에 기대어 울고 싶을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슬픔을 정리한 여인의
한 서린 얼굴,깊게 입다문 침묵일지도 모른다.
제 모양을 빚은 그림자는 슬픔의 깊이를 확인한 것일까
맑은 호수에 수심이 가득하다
오화해에 잠겨있는 이 나무들은
이 곳이 과거 티벳 사람들의 벌목 현장이었음을 증명하는 유산입니다.
구채구가 세상에 알려진것도 그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물에 잠긴 나무에 석회 성분이 침착되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는것이라네요.
2472m의 고도에 위치하며 수심은 대략 5m정도고
너비는 9만 평방정도 되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팬더곰이 출몰하여 물을 마신다는
웅묘해가 있는데
熊猫는 중국어로 슝마오라 읽고 팬더곰을 이르는 말입니다
오화해에는 생물이라고는 하나 살아있지 않을것 같은
짙은 고요만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 고요를 흐트리는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살고있습니다
비늘이 없는 산천어과의 물고기라하는데
불행이 내 눈에는 띄지 않았습니다.
氷 景
千樹가 병열하여 물빛을 바라봅니다
나무는 그림자와 구분이 가지않고
水深에 비친 마음만 수수롭습니다
도무지
흐려질줄 모르는 맑은 물은
고요한 아침처럼 미동조차 싫어해
마음 한 자락 감출 곳 없습니다
진주탄 (眞珠灘)
灘은 여울을 의미한다.
끈이 떨어진 진주목걸이가 콩타작을 하듯 우수수 진주를 쏟아낸다
진주 구르는 소리가 마치 살결 위를 걸어가는 자벌레의 걸음처럼 간지럼을 태운다
여름 하늘에 쏟아지는 은하수를 보는듯했고
이기대 해식동을 빠져나가는 긴 썰물을 보는듯 했다
사람이 죽어 다음 생애를 얻기까지의 기간을 中有 혹은 中陰이라고 한다.
깊은 고요 속에 유리처럼 굳어버린 中有의 호수를 지나
물은 마치 새 생을 얻은듯 퍼덕이기 시작했다.
음울과 쇠락의 기운이 걷히고 물은 스스로를 다독여 생명을 일구어냈다.
노안으로 흐려진 눈이 열려 문득 상쾌했고,마음은 빗장을 열어 감성을 다듬었다.
움직일수록 물은 섬세히 빛났고
그물처럼 올올이 마음을 옭아매어 물에 선 나무처럼
홀로 몸서리치게했다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여산의 진면목을 알수없는것은
내가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라네
소동파의 題 西林壁에 나오는 문장이다
10일간이나 여산 여행을 하였음에도
결국은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었다는 뜻이다.
숲길을 걸어오며
다채로운 풍경들을 만다보면
어디까지가 이 구채구의 진면목인지 정말 알 수 가 없다.
나무를 보되 숲을 보지못하고
숲을 보되 산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
하지만 어떠랴
卽物의 감흥도 주체하지 못하면서
어찌 通念을 논하겠는가.
사랑이란 회복되고 싶지않은 질병입니다.
사랑의 고통을 따를 지언정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기 원경으로 멀어지는 은빛 물결을 바라보며
사랑이라고 규제하지 못한 또 하나의 사랑을 봅니다
벗어나고 싶지 않는 정말 사랑스런 풍경입니다
이대로 발 담그고 앉아 저 나무처럼 나도 풍경이 되고 싶습니다
물에 걸린 나무를 보았다.
세상에 걸린 나를 또 보았다
물의 그물 속 나무나
세상의 그물 속 나나 다 하나의 一物
그래서인지 저 물 속 나무들에 더 마음이 간다.
내 생애도 저 물처럼 흐름과 멈춤을 반복해왔다.
그물코 사이로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르듯
물이 흐른다
그 보이지 않는 힘들이 얼마나 강한것이기에
우리는 늘 한자리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소리가 공명한다.
관악의 숲 위로
나팔꽃처럼 소리가 동그라미를 만들며 피어오른다.
자비네마이어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라면 얼마나 어울릴까.
음이 오르듯 마음이 풍선처럼 날아오른다.
날아오르는것은 다 새가 된다.
그물을 벗어난 새가된다.
진주탄 폭포
낙차 21m 너비 280m의 웅장하진 않으나
가슴을 꽉 채우고도 남는 감동을 주는 폭포다.
진주탄 폭포 아래에서 서성이다
보조국사 지눌이 저술한 진심직설의 마지막편
眞心所往을 떠올린다.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며 산길을 걸은 바 없지만
풍경은 자꾸 즉답을 요구했다.
흘러내리는 물이 그랬고
하얗게 피어나는 포말이 그랬다.
자연에 묻힌 내 존재의 확인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의 본질에대한 물음이었다
山河大地 悉是眞心(산하대지 실시진심)
不可離此眞心之外(불가이차진심지외)
別有依託處也(별유의탁처야)
산하대지가 다 참마음이라
이 마음 밖을 떠날 수 없어
따로 의탁할 곳이 없다
無所從來 亦無所去(무소종래 역무소거)
但以空寂 爲自體( 단인공적 위자체)
勿認色身 (몰인색신)
어디서 오는것도 없으며
어디로 가는곳도 없으니
다만 공적한 마음을
스스로 체로 삼아
색신을 오인하지 말지니
如水
예컨데 물이
以濕性爲體(이습성위체)
습성을 체(體)로 삼고
波浪爲用(파랑위용)
파도를 용(用)으로 삼으니
濕性 元無生滅故(습성 원무생멸고)
습성에는 원래 생멸이 없는 고로
波中濕性 (파중습성) 何生滅耶(하생멸야)
파도 속의 습성인들 어찌 생멸하겠는가
波離濕性(파리습성) 別無故(별무고) 波亦無生滅(파역무생멸)
파도가 습성을 떠날수 없는 까닭에
파도 역시 생멸이 없다
생멸이 없는 물결
물결 속에서 영원한 물의 성품을 보듯
인간의 삶 속에서도 삶을 관통하는 참 마음을 볼 수 있어야합니다.
생멸이 없는 眞心
생멸이 없다는 말이야말로 생사해탈입니다.
불교의 본질입니다.
내가 죽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거나
언제 어떻게 태어난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이처럼 참마음의 본질을 깨닫아
생사를 해탈하는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요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진심이 가는 곳(眞心所往)
지눌스님은 참마음을 정의하는 진심직설의 말미에
사람의 육신이 사라지면 어디에 의탁하게 되는가 하는 의심에 대하여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모두 진심이요,
이 진심은 본래 어디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의탁할 곳이 있겠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그 답으로
망념으로 인해 그렇지 못하여 그 업(業)에 따라서 의탁하는 바가 있게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깨닫은 사람에게는 오고 감이 없습니다
그 자체가 우문일 뿐입니다
진주탄 폭포는 나이애가라나 이구아스 폭포와 같은
사람을 압도하는 위압적인 세력의 폭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설악산 대승폭포나 토왕성 폭포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었다.
한참 정신없이 사진으로 풍경을 담다보니 경치가 참 눈에 익다는 느낌이 들었다.
옛날 이발소나 동네 음식점에 걸려있던 꼭 그 그림 속의 풍경이었다.
평화와 풍요의 상징.
신기하게도 정말 그런 넉넉함이 느껴졌다.
나는 仙景과도 같이 신비로운 풍경의 구도를 잡아내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을 찍었다.
일행들은 다 떠나가고
오로지 남은것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내 뿐이었다.
끊어야할 때를 알려주는 장치가 있다는것이
내 생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깨닫았다.
늙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기념삼아 마지막으로 사진 한장을 더 찍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했다.
전단향나무!
불상을 조성하는데 쓰이는 최고의 향나무입니다
그 전단향나무로 부처를 만들면 부처요,
나한을 만들면 나한이요,
야차를 만들면 야차가 되는것입니다.
구채구의 물이던 낙동강의 물이던
결코 모양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모든 물은 오로지 물일 뿐입니다
물살이 빨라진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흐른다
흐르는 물살로부터 현의 힘이 느껴진다
영혼에 활기를 불러넣는 이 활달한 bowing!
관과 현의 속삭임이 물처럼 이어진다
뇌의 주름 구석까지 음의 물줄기가 흘러
머리가 얼음처럼 맑고 개운해진다.
樹海
숲은 막힌 창문처럼 답답하다.
바람이 도달할 수 없는 길을 나 또한 다달을 수 없기에
차라리 내 마음을 비워버리려한다
하지만 마음을 어떻게 비울것인가
채울수도 비울수도 없는것이 마음 아닌가.
생각을 지울수록 숲은 더 커갔고
마침내 후지산의 아오키가하라 주카이와 같은 음산함이 밀려왔다
사람을 압도하는 풍경의 에스프리는 동일하다
모두 죽음의 반영이다.
長海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장족 사람들은 넓은 호수를 바다로 생각했을것이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구름 너머의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넓은 호수를 이루었다.
장해는 해발 3040m의 위치한 호수로 구채구 입구로부터 32km나 떨어진 곳에 있다.
면적은 2백만 평방미터로 구채구 호주 중 제일 넓다.
백두산보다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고산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피요르트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장족 의상
풍경은 가슴 가운데 존재하는걸까
가슴 밖에 존재하는걸까
가슴 속에 존재한다면 영원히 가슴 속에 존재할것이요
가슴 밖에 존재한다면
가슴이라는 실체가 당연히 필요할것이다.
가슴 밖에도
가슴 안에도 존재할 수 없는 저 풍경은
대체 어디에 있단말인가
풍경을 적시는 저 구름처럼
가슴 언저리를 맴돌다 아득한 우주로 휘발하고말
풍경 하나가
날아오르지 못하는 새처럼
졸고있다.
천신에게는 예쁜 9명의 딸이 있었는데
어느날 땅으로 내려와 뱀이 사람을 물어죽이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 딸들은 뱀을 죽이고 그곳 장족 청년들과 결혼해 아홉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그 아홉군데의 장족이 사는 산채를 일컬어 구채구라하였다한다
한편 산신 達戈(달과)는 색모에게 구름으로 만든 거울을 선물했는데
색모가 그 거울을 떨어떠리는 바람에
거울이 108조각으로 깨어져
구채구의 108개 호수가 되었다한다
구채구 서북쪽의 4200m의 높은 산이 달과이며
마주보이는 동남쪽 산이 색모다.
오채지
여신이 찾아와 목욕을 하고 갔다는 오채지
새가 왔다.
탄생을 위한 빛을 가지고.
그 모든 지저귐으로부터 물은 태어난다.
네루다의 시 봄의 일구다.
새의 지저귐을 대신해 人聲만이 高高한 숲에
함초롬이 빛을 베어 문 물과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것 같은 대기가
세상을 일구는 씨앗과 터처럼 마주보고 있다.
빗방울의 반흔조차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명징함
물빛을 흐릴 물고기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호수는 더 이상 보일것 없는 바닥인채
나부처럼 고고하다.
살아있는 풍경과 죽은 말들이 싸우고 있었다.
번뇌를 끊어야할 활인검의 언어가 풍경 앞에 맥없이 쪼그라 들었다.
말도 없고
그림도 없는 답답함에 갇히어
쓸데없는 초조함이 호수에 가득하다.
말 가운데 말이 없는 말이야말로 살아있는 말이요
말 가운데 말이 있는 말은 죽은 말이라는데
나는 저 무정한 물빛으로부터 무슨 말을 만들려할까.
티벳의 전성기인 송첸캄포시절
위협을 느낀 주위 네팔과 당나라에서는 공주를 보내
혼인을 맺게된다.
네팔의 공주는 첫째 부인,당나라의 문성공주는 둘째 부인이 되었다.
당의 문선 공주가 혼인 예물로 가져온 녹옥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라싸의 초캉사원에 봉안되어있다.
지금 티벳인의 오체투지의 종착점이 되는 곳이다.
송첸캄포 시절 티벳인들은 그들의 고유 문자를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민초들은 문맹상태였기때문에
불경대신 마니차를 돌림으로써 독경을 대신했다.
바람에 깃발이 펄럭일 때 마다 한번씩 경을 읽은것으로 생각하며
그 깃발이 다 닳아 없어질때까지 걸어둔다고 한다
티벳불교는 타르초(Tharchog), 초르텐(Chorten:불탑), 룽따(Lungta)
바람에 펄럭이는 오색기 타르초(Tharchog).
청색은 하늘, 노랑은 땅, 녹색은 바다, 백색은 구름, 적색은 불을 상징하며,
불성과 우주만물의 상생을 의미한다.
불교 경전과 기도문을 가득 적어서 높은 곳에 걸어두어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 모든 중생들이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 티벳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깃발이다
타르초(Tharchog)는 티벳의 토착종교 뵌교(Bonpo)에서 유래 되었다.
초르텐(Chorten佛舍利塔)은 부처님 공경의 상징으로 출발 하였다.
초르텐(Chorten)은 부처님이 입적하신 후 사리를 가져간 부족들이
사리를 안치하고 쌓은 구조물로 불탑(佛塔) 으로 발전되었다.
룽따(Lungta)는 티베트어로 '바람을 타고
달리는 말'(風馬)이란
뜻이다.
세로로 서있는 긴 장대가 룽따다
바람의 말 룽따
룽따는
옛날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 집에 깃발을 꽂았던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성공주가 시집와서 불교를 전파함으로써 깃발에 불경을 새기기 시작했는데
타르초와 룽다의 천에 적힌 불경은 이전에는 스님이 직접 쓰셨지만
지금은 인쇄 작업으로 대량생산되고 있다.
소나기가 연잎을 두드리는 소리
호박 넝쿨이 울타리를 넘는 소리
운문사 뒤란에 물봉선 씨앗이 터져가는 소리
그렇게 바람에 실려오는 모든 소리들은
다 독경 소리였다
낙일랑 폭포
諾日朗은 티벳어로 웅장하다는 뜻
~을보면~을 하고싶다.
얼마나 많은 풍경들이 나를 유혹하였나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은 동심처럼
웅장한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를 앞에두고
형용할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마시고 싶다
무량의 역동성을,
하고 싶다
위해없는 역동성으로.
주체할수 없는 원시의 힘을,
뜨거운 갈망을
식히고 싶다
서우해
서우는 코뿔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늙은 라마승이 코풀소를 타고 가다가
이곳 호수에서 물을 마시니 지병이 씻은듯 나아
코뿔소를 탄 채 호수로 뛰어들어 살았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빠른 교통수단을 갈아타듯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저 물빛처럼 그대로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도 그대로다
빠르다는것은 오직 주관의 문제일뿐
빠르고 느림의 실체는 없다.
삶에 의미를 둔다고하여 의미있는 삶이 될까?
의미있는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虛明이 自照하듯
삶은 제 스스로 이미 의미이다.
마음이 수고로울것이 없다.
의미에 집착하는것이야말로 妄情이다
망정헐진(妄情歇盡:잘못된 생각을 다 끊어버림)의 快流를 바라보다
一靈身後(일령신후 즉 사후)의 세계가 다 맑아짐을 느꼈다.
물살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코뿔소의 바다에서 호랑이의 바다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호랑이의 바다에 잠시 고였던 물은
속도를 높이며 수정폭포로 나아갑니다
물고기는 물고기의 세상밖에 아는것이 없고
사자는 세상을 초원으로 이해한다.
황금 원숭이는 세상을 정글이라 생각하고
구채구의 판다는 대밭을 세상으로 여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결국 다 자기가 생각하는 한도로만 세상을 이해한다.
진실이 설령 존재한다 하여도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진실을 이해한다하여도 결코 전하기는 어려운것이 사람이다.
라디오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구채구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무척 공감이 갔다.
히말라야의 끝자락에 사는 장족은 산과 계곡만을 오로지 세상이라 생각했을것이다.
구채구가 열리며 세상을 처음 맞이한 장족 사람들의 놀라움은 어땠을까?
세상의 빗장을 열고 보면 늘 이런 새로움의 투성이다
삶이 공허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간다고하는데
늙을수록 빨라지는 시간의 속도는
내 삶의 공허함의 측도였을까
의미없는 삶들은 나의 역에 서지 않는다.
구채구의 계류처럼 빨리 지나칠 뿐이다
물은
잊혀진 詩들의 묘지로 흘러가버리고
나는 더 이상 풍경을 말하지 못한다
매발톱을 닮은 중국 야생화
수정폭포
수정폭포는 높이15m 너비 65m의
구채구 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폭포입니다
수정폭포에서
여행을 하는것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는것도
다 메마른 감성에 물기를 주는 일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단순히 보고 들어서 얻는 지식이 아니라
감흥의 물줄기로부터
마음의 변화를 유도하는것이다.
이런 변화의 인상이 또렷할수록 좋은 여행이된다.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생애를 담은 영화
'샤인'의 주인공처럼 일행이 멋진 포즈를 취한다.
감흥의 퍼포먼스다.
수정폭포를 지난 물은 19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무리를 이루는 수정군해로 흘러든다
흐르는 물을 보고있으니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습니다
위치를 낮추어 물이 흘러가는것이나
그 물에 편승해 마음을 낮추는 일은 어쩌면 같은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直指人心을 통해 안정된 마음을 가졌다고 하여 다 깨닫음이 될 수 없듯
거울처럼 고요한 구채구의 물도 灘과 瀑을 반복하며 얼굴을 바꿉니다.
거침없이 흐르는 물속에 묘한 각성이 느껴져서인지
해묵은 의심이 되살아납니다.
마음을 아는 일이 곧 깨닫음일까요?
문득 깨닫음의 뒤의 나는 무엇일까요?
깨닫음을 기다린적이 있습니다
깨닫음을 얻기위해 용맹증진해야한다고 생각한적이 있습니다.
사뮤엘베케트의 희곡'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남자 주인공이 허무와 무료 속에 끝없이 기다리는 그 고도는 무엇일까요
어떤이는 신이라고 했고
어떤이는 희망이라고 했으며
어떤이는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깨닫음을 슬며시 집어넣는다고 하여도 달라질것은 없습니다
깨닫음을 기다린다는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어리석다는것의 다른 표현일지 모릅니다.
깨닫음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것은
마치 물 속에서 물을 찾는거와 같습니다.
번뇌와 망상을 떨치기 위해
마음을 차단하고 생각에 방벽을 칠일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을 觀하여 마음의 밭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합니다.
살아가는것이 다 道입니다
삶의 여정이 다 道입니다
살다보면 선업의 길에도 들게되고
악업의 길도 걷게됩니다
삶은 어짜피 半苦半樂입니다.
중요한것은 선과 악의 결과가 아니라
선악을 초월한 마음의 중심을 아는 일일것입니다.
선과 악은 하나의 몸입니다
다 본마음에서 나옵니다.
수정군해
혼자 가질 수 없는 물처럼
비처럼
혹은 생명처럼
때가 되면
나도 너처럼 흘러야할까보다
흐르고
흘러
나무의 발을 적시고
저문날
호수에 앉아
기쁨을 잃은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물처럼 나도 흘러야 할까보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는 날
찬물에 말아 먹던 물밥처럼 마음이 허허로운 날
볼품없는 고들빼기가
사라진 입맛을 위로하듯
쌉싸름한 풍경 하나가 등장한다
비에 젖어
반을 가린 외로운 풍경
길섶에 핀 야생화처럼 산이 외롭다
외로우니 아름다운가.
되돌아보면
물밥에 걸쳐진 고들빼기야말로 참맛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변함이 없는 그맛
맛의 자성이다.
비를 털고있는 먼 산이 그랬다.
물봉선을 닮은 꽃
황룡가는 길
로프웨이로 등산로에 들어서면
나지막한 길을 3km쯤 걸어 오채지가 있는 황룡 상부까지 걸어 올라야한다.
산책하기 좋은 오르막이었다.
길섶에는 알듯 모를듯 한 아름다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었고
모국 산천의 꽃들이 떠올라
세상의 꽃들은 참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보는 마음이 먼 이국에서 고향 뒷산에 핀 꽃을 만나는 기분이다
쪼그려 앉아 숨을 멈춘 채 꽃사진을 찍은 후
일어 설 때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났다.
낮은 산에서도 흔히 겪는 증상이지만
고산이라 정도가 훨씬 심했다
그때 가지고 간 산소를 한번 흡입하니 그 증상이 순식간에 없어졌다
아무 쓸모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산소캔을 참 유용하게 사용했다.
처녀치마를 닮은 야생화
望龍坪
해발 3530m에 위치한 황룡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푸른 산록 사이로 고름처럼 흐르는 황룡의 첫모습은 다소 실망적이었다
상상했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설마 저걸 보기위해 내가 여기까지 온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자 얼른가서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황룡풍경구
황룡풍경구는 사천성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천성 아바티베트족 찬족 자치주 송판현 지역을 중심으로하고 있다.
남으로 밍산 산맥의 일부분으로
해발 3500m에 자리한 구황공항으로부터 50km, 성도로부터 400km 북북서에
위치해있다.
구황공황으로부터 버스로 이동하면서해발 4007m 설보정 전망대를 지나게되며
중국을 대포하는 자이언터 팬더와 황금원숭이가 서식해
1992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설보정 오르는 길
설보정 4007m
석회암
석회암은 탄산칼슘(CaCO3)을 주성분으로 하는 주요 퇴적암의 하나로서, 석회석이라고도 한다.
보통 세립, 괴상의 무구조 암석으로 순백 또는 회백색이나, 불순물이 섞인 것은 암회색이나 흑색 등을 띤다.
석회암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생물의 유해로 이루어지는데 비교적 pH가 높은 곳에서 탄산 석회질의 껍질을 분비하는 생물에 의해 유기적으로 침전,
고정되어 형성된 것으로 유기(적) 석회암 또는 유기(적) 침전암이라 하며,
주로 따뜻하고 얕은 바다의 조용한 환경에서 산호, 조개 및 유공충과 같은 탄산염 껍데기를 갖는 광물이 번성한 후 이들의 유해가 퇴적되어 형성된다.
다른 하나는 물에 용해된 탄산칼슘이 무기적 화학작용에 의해 침전되어 생성된 것으로, 이를 침전석회암 또는 화학적침전암이라고 한다.
최근 엄청난 두께의 석회암층은 생물체에 의한 유기적 석회암이 아니라
바닷속 화산폭발에 의해 단기간내에 만들어진 무기적 석회암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용한 일본식 정원이 생각나는 연못
3400개의 웅덩이와 계류,폭포가 어우러진 황룡.
3400개의 물웅덩이가 3400개의 정원을 만드는 곳이 황룡이다
때로는 모여서
때로는 하나의 연못 만으로도 능히 개성있는 모습의 정원을 만든다.
그 수가 하도 많아 감당할 수 없는 탄식을 뱉고말지만
점입가경 문자 그대로
갈수록 아름다움은 더해갔다.
황룡사 초입에 선보인 이 소박한 모습의 개울조차도
내게는 더없이 아름다왔다.
황룡사
옥빛 물빛과 나즈막한 관목 뒤로
여염집 처녀같은 황룡사가 보인다.
인공과 자연이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자연을 배제한 인공,
인공을 배제한 자연보다
이처럼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풍경을 통해 사진은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든다.
단 한번의 기회
내가 언제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을것인가.
여행을 떠날 때 혹시 빠진것이 없나 꼼꼼이 챙겨보는 마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풍경을 하나 하나 담아보았다.
어짜피 마음을 채우지 못할 짓인줄 알면서도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숨을 멎게 만든 오채지의 아름다운 풍경.
촉촉히 비를 받아내는 오채지의 우수가 깃든 모습에서
영화 애수에 나오는 비비안리의 촉촉한 눈빛을 보았다.
보면 볼수록 빠져들어 헤어 나오고 싶지 않는 그런 눈.
그래서 일까
이루어 지지못한 사랑의 호수에는 차분한 슬픔이 가득했고
눈물을 만드는 슬픈 술처럼 형언할수없는 깊이의 우수를
여름비는 차분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애수의 서정을 본뜰려하였나보다.
먼 원경에 기다림의 장치를 걸어두고 그 앞으로
공허한 삶을 닮은 넓은 호수를 배치했다.
옥색 비늘처럼 화려한 삶.
하지만 그런 화려함 뒤에도 고비란 있다.
흐름을 가두는 석회의 두렁이 그랬다.
흐름과 멈춤은 한몸이 되어
물은 흐르듯 멈추었고
멈춘듯 흘렀다.
술에 술을 섞어 취기를 높히듯
비에 젖은 호수는 슬픔을 더했다
2.1만㎢ 너비의 오채지
693개의 계단식 논모양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마치 용의 비늘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황룡의 눈이라고 할만큼 황룡풍경의 정수가 녹아있는 곳이라는데
사실 계곡을 내려갈수록 볼거리는 더 풍성했다
빈교행(貧交行)
-두보-
손을 뒤집으면 구름
엎으면 비.
경박한 세사(世事)를
어찌 다 헤아릴까.
그대도 보았으리
관포(館鮑)之交를
이제는 그 길을 버렸어
흙같이 버렸어
손뒤집듯 변하는 사천의 날씨를 詩聖 두보는
경박한 세상사에 비유하였다
맑은 날씨가 싫은것은 아니지만
굳이 청명을 탓할 일은 아니다.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우산을 씌워 주는 아내의 배려가 애틋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먼지처럼 털어버릴 그런 사랑이 아니다
관포의 우정조차
어린애 장난같았다
산과 나무가 나란하듯
새와 허공이 나란하듯
푸른 물에 기대 선 절집이 나란하듯
너와 내가 기대어
화엄처럼 살자
상처없는 삶이 있으랴
내 인생 어딘가에도 숨죽여 울었던 날이 있었다.
비는 내리고
시간의 흔적 위에
물은 물로 포개어져
회복불능의 상처가 되어버린다
늙어가는 내 얼굴처럼.
玉翠彩池(옥취채지)
땅위로 드러난 비취처럼 영롱하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옥취채지를 바라본 순간
물이 아니라 옥이 흐르는것 같았다
정작 흐르는것은 물이겠지만
흐르는것과 흐르지 않는것의 분간이 가지 않았다.
動과 靜이 不二였다.
연못은
힘을 상실한 해변의 파도처럼, 혹은 물리력을 잃은 無位의 수평처럼 고요했고
흐름은 흐름을 불식한 채
서로에 길들여진 사랑같았고
가두어 지지않는 이해와 관용같았다.
황룡사 내부 모습
모셔진 부처님은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
사람의 모습에 더 가까왔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오채지를 따라 내려 옵니다
울창한 관목의 숲에 어우러진 물빛은 더욱 영롱했고
그 영롱함을 시샘하듯 빗줄기는 굵어져
청옥의 거울 위에 수많은 생채기를 만들었습니다.
파묵카레의 애플 셔빗과 같은 하얀 석회암 온천지대와 비교되는 풍경이었지만
살짝 손한번 담궈 볼수 없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하나 의아한것은 중국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중국인들의 무질서하고 시끄러운 행태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자연을 감상하는 태도는 한국인보다 더 모범적으로 보였습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린다거나
탐방로를 이탈해 개별행동을 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습니다.
가고있거나
혹은 가고 있음을 말하거나.
나무처럼 홀로 서 있거나
혹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붉은 꽃을 매단 여름은 탁류에 실려 흘러갔고
척박한 땅 위에 선 나무처럼
나는 참 오래 서 있었다
睡美人(슈이메이런)
황룡이 수도를 마치고 천궁으로 승천할 때
오채지를 하늘로 가지고 갈 시도를 하였다.
이 때 설보정 산신의 딸 達美가 아버지의 지팡이에 달린
진주를 오채지로 변하게하여 하늘로 올려보냈다고한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깊은 잠에 빠져든 달미는 그 후로도 깨어나지 못한채
아름다운 오채지의 물과 영원히 이 골짜기에 잠들어있다
사라영채지(娑羅映彩池)
400여개의 연못으로이루어진 시라잉차이츠
사라는 두견화를 말하는데 티벳에서는 격상화라고 하고 강족들은
양각화라고 부른다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에 피며
종류가 다양해 각가지 빛깔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흰색 붉은색 보라색 분홍색의 아름다운꽃으로 물든 연못을 상상해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두견화라고 하면 진달래를 말하는데
황룡의 두견화도 진달래과에 속하는 식물로 꽃 중의 서시(월나라 미녀)라
불릴만큼
우리나라의 진달래와 많이 닮았다
명경도영지(明鏡倒映池)
180여개의 영롱한 물빛을 간직한 연못으로
세상만물의 풍경이 다 비친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인듯하나
서둘러 되짚어 보는 기억처럼 낯선
하지만 짙은 아우라
이 生이 내 첫 생이 아님을...
세신동(洗身洞)
해발 3280m에 위치한 높이 10m 너비 40m인 거대한 석회 침적물
仙人들이 몸을 씻고 도를 닦던 곳이랍니다
금빛의 칼슘 퇴적물 위로 세차게 흐르는 물의 모습에서
신선한 활력을 느끼게됩니다
슬픔의 격조를 느끼게한 풍경
오직 슬픔으로 치장되어
슬픔을 더욱 슬프게 하는 풍경같았다.
가림도 드러남도
온통 슬픈 빛이었다.
飛瀑流輝(비폭류휘)
진주처럼 하얀 포말을 반짝이며 떨어지는 폭포
비폭류휘의 네 글자가 정말 잘 어울리는 폭포다.
물줄기 하나에도 품격이 느껴진다.
너비 45m 높이는 16m정도의 아담한 폭포다.
爭艶
아름다움을 다투는듯.
사랑과 이별을 나누듯
흘러갈 모든것은 흘러간다.
흐르지 못하던것들도 모습을 바꾸어 결국 그렇게 흘러간다.
바다 밑에서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돌아오지 못할 모든것들이
다 흘러간다.
늦어도 세시까지 내려오라는 하산 시간이 임박해지자
마음이 바빠왔다.
거의 뛰다시피 계곡을 내려왔다.
풍경은 허둥대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바쁜 시간 중에도 아랑곳 없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대체 얼마나 거창한 일정이 기다리길래
이처럼 서두러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공연한 시비심이 물로 채워진 마음을 흔들었다.
풍경이 心을 잃고 가오리연의꼬리처럼 펄럭거렸다.
헛되이해서는 안될것을 헛되이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것도
어쩌면 대륙에 순응해 살아가는
이땅 어진 백성들의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迎賓池
끌림
끌지 않아도 머물게되는 저 보이지 않는 引力을
나는 가진적이 없다.
청춘이란 치명적 시기에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웠다.
전체의 권력은 침묵을 강요했다.
월나라의 서시처럼 맑은 낯빛의 영빈지에
내 낡은 청춘을 비추어 본다.
下雨에 흐트러진 물빛이 교교하다.
면적 9600㎟.해발 3230m에 위치한 영빈지는
연잎모양의 350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져있다.
크고 작은 옥빛 연못이 층층으로 오묘한 빛을 내며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
지나는 사람을 절로 모이게 하는 신묘한 힘이 느껴진다
영빈지에 발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담기도 어렵거니와
그 아름다움을 간결히 표현하는것은 더욱 어려웠다.
세상을 구획하는 가장 독특한 아름다움.
가우디의 카사밀라를 연상케하는 유려한 곡선.
험결이 없는 이 완벽한 공간을 어떻게
배경이 되는 숲과 대비시키느냐가 가장 어려운 난관이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보니
그 사진이 다 그사진이다.
공연히 풍경의 언저리를 맴돌았을 뿐이다.
깊고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가 헤엄쳐 겨우 수면 가가이 올라왔는데
그 곳이 그가 살수 없는 곳이라는것을 알았을 때의 낭패감.
능력 밖의 일을 하고 난 후의 내 소회다.
가우디의 카사밀라의 유려한 곡선
황룡과 구채구의 물을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황룡의 물이 여성적이며 규방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면
구채구의 물에서는 문무를 겸비한 명장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천하의 물을 보았다
현실의 길 위에서 환상을 경험했다
깨닫음은 종종 어긋난 현실의 뒤안에서 만나지만
물 속에 아름다움이 있었고
물 밖에 또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물이 곧 아름다움이요, 천하만물이 不增不減의 생명이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길을 내려왔다.
흥분이 서서히 저무는 길과 함께 조율되었다.
감동을 유지한 채 영화관을 빠져나올 때처럼 기분이 상기되었다.
지혜의 문이 보였고 또 만져 볼 빗장이 보였다.
흐르고 흘러도 비워지지 않는것이 있다는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 비워지지 않는 끝에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마르지 않는 물이 희망처럼 느껴졌다.
높은 명도로 채색된 희망.
오채의 빛으로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희망이
잘 불려진 노래같았다.
-完-
- 후 기 -
구채구가 숨기려한 은밀한 풍경을
황룡은 들추어 밝히려하였다
구채구의 물빛은 그림자의 아름다움이요
황룡의 물빛은 은은한 메아리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
그림과 풍경 사이의 해묵은 경중을 어떻게 비교할것인가?
난하를 바라 본 연암은 말한다
"그 장관은 한폭 그림같지만 그림이 어찌 산수를 따를것인가!"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판정문이다.
산수를 묘사하는 짓은 결국 헛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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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악도 글도 슬픔을 잘 여과해 낸 맑은 풍경 같아요.
장문의 글 시차를 두고 다 읽고 나니 거대한 사유의 숲을 관통한 느낌입니다.
호우가 내리는 봄날에 읽기에 최적의 여행기네요.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위안삼아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앞에 두고 설레면서 느긋하게 기분좋은 느낌처럼요.
영혼을 온통 저당잡히 듯 헤어나올 수 없는 오와해의 우수어린 물빛 풍경...
사랑이라고 규제하지 못한 또 하나의 사랑의 진주가 쏟아지는 것같은 진주탄의 눈부신 풍경...
저문 날 호수에 앉아 기쁨을 잃은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신비의 환상같은 영빈지의 풍경 등등...
비록 그림이 산수를 따를 수 없고 글로 산수를 묘사하는 일이 부질없다 해도
비에 젖은 관념의 세계가 정갈하기에 처음 접하는 새로운 풍경들이 더욱 고즈늑하고 아름다워요.
회복불능의 상처가 있었다 해도 님이 써내려간 사유의 오솔길에 마냥 머무르고 싶네요.
가끔 올려주세요.
먼 원경에 기다림의 장치를 걸어두고 에메랄드빛 희망을 바라보는 것 같은 님의 이런 글이 님의 애독자는 무척이나 목말랐으니까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