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법과대학 이호선 교수
사법연수원 제21기 수료 (1992).제31회 사법시험합격 (1989)
논물출처: http://blog.naver.com/hslee1427/220834743981
정의론적 관점에서 본 한국식 로스쿨 제도 *
* 이 논문은 조선대학교 법학연구원과 사단법인 전국법과대학교수회가 2016. 5. 20. <한국, 미국, 일본 법학 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 ; 우리나라의 법학교육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임.
**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hosunlee@kookmin.ac.kr
<국문초론>
로스쿨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중추 역할을 하는 법조인을 양성하는 기관이고, 더구나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면 유일하게 존속할 법조인 배출 통로이므로 어느 특정 집단,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로스쿨 제도와 그 운용 과정에 대한 시민적 평가와 감시는 사회정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저자는 각 이해관계 당사자들에 대한 설문조사와 로스쿨협의회에서 발간된 자료를 토대로 파악한 로스쿨 체제의 실상(實狀)을 정당성, 기회균등과 직위 개방성, 가치지배와 독점, 그리고 다양성에 비춰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현재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소득과 관계망으로 차별하고 있으며, 부모라는 타인의 돈, 타인의 가치 (기존의 공직, 권위, 인간관계 등)들을 다음 세대의 권력, 공직, 기타 신망 있는 전문직으로 전환 시켜주는 “전환과 세습”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직업이 철저하게 재능에 개방되도록 하는 것, 모든 시민이 공직의 후보자가 될 수 있는 권리의 확보는 시민이 갖는 정치적 기본권의 출발임에도 한국식 로스쿨은 소수의 직업적 이해관계인들에 의해 법조인 자격과 공직 자격이 좌지우지되고 있는 바, 이런 식의 공직이라는 공공재 분배가 로스쿨 교수들에게 사실상 맡겨지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로스쿨의 장점이라고 하는 다양성 역시 소득은 상대적인 기준에 불과하며, 매우 가변적이라는 점에서 로스쿨의 본 고장 미국에서 유래한 다양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학부 다양성은 주요 로스쿨에서 학벌 편중 심화 현상이 보여주듯 매우 기만적이다. 로스쿨은 여타의 전문대학원과 달리 공직으로 들어가는 배타적 자격을 부여하는 곳이다.
따라서 공정성이라는 정의와 전문성을 통해 사회적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운영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설계 과정의 부실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는커녕 그 한계를 방치하거나 혹은 이용하면서 공정보다는 불공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균등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무담임권이 열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교육의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돈도 없는 사람이 사회 관계망이 풍성하고 돈도 많은 사람과 동등하게 공무를 담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표한다. 진정으로 평등한 기회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명목적, 공식적 평등 기회가 아닌 정치적 삶에의 평등한 참여를 위한 규제적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사회의 일부 그룹이 정치적 권리들을 효과적으로 행사함에 있어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보장하는 주도적 정책들을 이끌어 냄으로써 실효적인 평등한 기회(effective equal opportunity)를 촉진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스스로 원하는 인생계획을 추구할 자유가 동등하게 주어져야만 한다.
입학과정에서 최소한 4년제 대학 이상의 졸업자격을 요하는 현행 로스쿨 제도는 적어도 학부과정까지 마칠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스스로 갖고 있음을 전제로 사법 공직에 배타적 자격을 부여하자는 것으로 실효적 평등 기회(effective equal opportunity)를 박탈하는 것이다. 월 평균소득 500만원 이하 가정 출신 청년들의 94.3퍼센트가 공직 진출을 포기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현행 로스쿨 제도는 기회균등에 치명적인 위험을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스쿨협의회 자료 통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각 소득분위별 재학생 비율에 따라 공직에 고르게 진출한다고 했을 때, 최상위 소득계층에서 가장 많은 공직자를 배출하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그래프2]처럼 될 경우 대한민국 사법공직의 38퍼센트 가량은 상위 소득 2개 층에서 차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다. 공직 진출과 보직, 승진 등에서 사회적 관계망과 경제적 배경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현실에 비추어 실제로 공직에 진출하여 주도적인 세력으로 성장하는 소득계층은 재학생 비율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고소득계층으로 쏠릴 개연성이 높다.
드워킨은 국가 정책이 대체로 정의롭지 않을지라도 정당하다면 국민들은 원칙적으로 그 국가의 법에 복종할 책무가 있다고 한다. 그는 정당성이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정부의 법과 정책들을 판단할 때 각 국민들의 운명의 중요성을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합리적 해석이 가능하고, 나아가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갈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지 여부를 든다. 이런 전제 하에 정부가 해당 국민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분투한다면, 비록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에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그 정부는 정당하다는 것이 드워킨의 주장이다. 한국식 로스쿨 제도의 정당성 주장의 하나는 저소득층에 대하여 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배려를 받아 저소득층도 사법공직이나 기타 공무담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만, 이는 로스쿨 제도가 배타적인 관문으로 작동하지 않을 때만 설득력이 있다. 법조인이 되는데 학력 제한이 과연 필요한가.
2009-2015년까지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들을 상대로 한 법무부의 전수조사자료에 의하면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의 학력은 대졸 미만 42퍼센트, 대졸 47.4퍼센트이며, 대학원 재학 이상의 학력은 10.5퍼센트이다.
2009-2015년까지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들을 상대로 한 법무부의 전수조사자료에 의하면 사법시험 최종 합격자의 학력은 대졸 미만 42퍼센트, 대졸 47.4퍼센트이며, 대학원 재학 이상의 학력은 10.5퍼센트이다. 이는 로스쿨 도입으로 말미암아 굳이 전문대학원을 다니지 않더라도 법조인이 될 수 있었을 사람들 중 89.4퍼센트는 확실히 사실상 불필요한 교육기간과 비용을 강요당한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47.4퍼센트는 로스쿨 3년을 추가로 강요당하고, 42퍼센트는 “3년+알파”의 부담을 져야만 하는 것이다. 드워킨의 정당성 요건으로 돌아가 보자. 대졸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지원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법조인 자격을 취득하고 나아가 공직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봉쇄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행 로스쿨 제도는 국가가 국민 각자가 책임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롤스는 직위가 형식적으로만 열려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획득의 기회가 주어져야만 한다고 하면서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유사한 인생의 기회를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위 결과가 보여주듯 한국식 로스쿨 제도가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보다는 중산층의 기회를 앗아가 능력 및 재능 외적인 요소, 다시 말해 경제적 배경과 사회적 지위에서 유리한 계층에게 기회를 더 부여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
로버트 노직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는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차등화 원리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가장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식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이유로 삼은 바 있다. 롤스가 최열위의 사람들이 차등원리에 의하여 혜택을 받으므로 불평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반대로 최우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협력을 위해 차등원리를 똑같이 이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걸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한다.
“공정성이라는 이름하에, 자발적인 사회협동(그리고 이로부터 생긴 소유물의 세트)에 제약을 가하여, 이 일반적 협동에 의해 이미 최대의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큰 이익을 얻도록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의혹이다!”
노직의 비판은 불행히도 지금 한국식 로스쿨 제도의 운영 실태, 그리고 장학지원과 저소득층 배려로 모든 불공정을 덮어보려는 사람들의 기만적 행태에 대한 예견으로서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 기회균등과 직위 개방성의 문제
기회균등의 사상은 가능한 개인이 선택한 학교나 직업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인종, 종교, 성별 등에 따라 좌우되지 않도록 사회적 원칙과 제도들을 설계할 것을 요구하는 바, 정당한 국가라면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권리의 확장에 덧붙여 국민들이 번창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복지(general welfare)를 제공해야만 한다. 자유주의적 평등은 개인들이 타인들의 권리와 자유들을 존중하는 한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자율성(autonomy)에 무게 중심을 둔다.
따라서 국가에게는 사회 각 그룹들이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계획을 합법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가로 막는 공적 영역 내에서의 모든 장애를 제거할 것이 요구된다. 국가는 개인이 합리적인 삶의 계획 실현에 중심이 되는 공적 영역에 실질적으로 참여함에 있어 다른 그룹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이 없도록 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
롤스의 정의론은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리와 차등원리의 결합에 토대를 두고 있다. 롤스의 차등원리, 즉 사회적 및 경제적 불평등은 (a)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고, (b)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직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될 때에만 정당성을 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롤스는 첫 번째 원칙은 두 번째 원칙에 앞서며 기회에 대한 공정한 평등(fair equality of opportunity) 또는 최열위(最劣位)집단에 대한 혜택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민 및 정치적 권리들의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힉 있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최열위집단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회의 공정한 평등을 침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식 로스쿨이 대학원제라는 진입장벽을 전제로 하였다는 것은 그 태생부터 기본적인 정의관에 반하였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물론 롤스 역시 직위의 개방성과 그에 대한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제한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과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
제한이 고르게 적용된다면 불평등한 정치적 자유보다 정당화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법조진입과 공직진출의 가능성에서 한국식 로스쿨이 소득분위별로 큰 차이 없이 평평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는 한 롤스의 어떤 입장에 의해서도 한국식 로스쿨은 정당성을 띌 수 없다. 롤스에 의하면 어떤 직위가 공정한 기반 위에서 모든 이에게 개방되지 않을 경우에는 제외된 자들이 비록 그 직위를 갖게 된 자들의 더 큰 노력에 의해 이익을 보게 된다 할지라도 자신들이 정의롭게 대우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볼 때 이들은 “인간적인 가치(善)의 주요형태 중 하나를 박탈당한 셈”인데, 왜냐하면 이로 인해 예컨대 특전이나 부처럼, 어떤 직책이 주는 외부적 보상으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다는 자아실현의 기회를 제지당한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탈은 기본가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가치감, 즉 자존감인 까닭에 참을 수 없는 불의이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입학 과정에서의 집안 배경의 작동, 불투명한 입시 과정 등이 갖고 있는 불공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제도 자체로서 로스쿨은 소득에 누진적으로 비례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소득이 낮은 계층의 사회적 기본가치들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평등한 정치적 자유를 실질적으로 구현케 하는 공정한 가치에 기반한 자율성은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을 드높이고 정치적 자신감을 북돋아 주게 되며, 시민 생활의 도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정치 생활에의 참여는 사회의 기본 조건이 배정되는 방식을 결정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평등한 발언권을 갖게 되는 출발임을 감안하면 법조인이 된다는 것, 이를 기반으로 사법공직에 대한 배타적 공직수행, 그리고 여타 공직으로 진출기회에서의 유리한 기반을 갖는 의미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민이란 무엇인가 정의하면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민이란 “관직과 법정의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요약한 바 있다.
왈쩌는 “헌법에 기초한 신뢰와 권위 혹은 봉사의 자리,......공적인 직위 혹은 직무” 라는 사전적 정의에 더하여 “공직은 즉 정치 공동체 전체가 그것을 보유할 사람을 선정하거나 그 사람을 선정하는 절차를 규제하는 과정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직위”로 정의한다.
공직의 분배는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이 재량권을 가질 수 있는 문제가 되
어서는 안 되며, 사인에 의해서 전유되거나, 한 가문에 의해서 세습되거나. 시장에서 판매될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로스쿨은 그 입학 과정에서 매우 불투명, 불공정하게 운영되면서 소수의 직업적 이해관계인들이 사실상 사법공직의 자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국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로스쿨 입시부정 의혹에 대한 일부 조사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로스쿨들의 선발절차 개선안이 나오고는 있지만 과연 이들에게 공직 분배를 맡겨 두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직업이 철저하게 재능에 개방되도록 하는 것, 즉 모든 시민이 공직의 후보자가 될 수 있는 권리의 확보는 시민이 갖는 정치적 기본권의 출발이다. 공직은 승자의 이권으로 간주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왈쩌는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우리는 무능력한 사람이 태생이나 어떤 힘 있는 개인의 임의적인 후원에 의해서 선발되어 공직에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어느 정도 정교한 훈련과 시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 마음대로 어떤 공직을 차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직은 상대적으로 희소하기 때문에 공직자의 선발 과정은 모든 후보자들에게 공정해야 하며, 최소한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직선발과정이 공정하려면 사적인 판단자의 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왈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시험이 중요한 분배 기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로 일원화하려는 한국 사회와는 완연히 대비된다.
사법시험의 경우 필자가 2015. 3. 현직 변호사들을 상대로 법원과 검찰 공직 임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얻은 결론에 의하면 사법연수원 출신의 공직 임명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로스쿨 경우 3.5배에 가까운 신뢰도를 보임으로써 매우 공정하며, 공직이라는 한정된 공공재를 성공적으로 분배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와 같은 결과는 같은 해 2015. 10. 사법연수원 40기에서 44
기까지를 상대로 한 판검사 공직 임용 기준 수긍도 조사에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2015. 10. 의 조사의 경우 응답자의 70 퍼센트가 10점 만점에 8점을 주고 있고, 10점 만점을 부여한 비율도 25퍼센트를 넘고 있다.
3. 가치지배와 독점의 문제
다원주의적 평등을 주창하는 왈쩌는 사회의 각 가치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이런 가치들은 서로 교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예컨대, 돈은 성직의 영역에서는 부적절하며 이것은 다른 영역으로부터의 침해다. 경건이나 신앙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신앙을 갖겠다면 그에 대한 접근은 신자건 이교도건 죄인이건 누구에게나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편적 매개물인 돈이 가치들 사이를 중개, 매매한다. 돈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중개하며, 사회생활의 “자립적인 실체들”을 파괴하며, 개체성을 변형시키며, “정반대의 것들조차 강제로 껴안으려 한다.”
왈쩌가 볼 때 “이런 종류의 교환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시장이 암시장이며 이 암시장과 친숙한사람들은 은밀하게 거래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있는 짓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점된 하나의 가치들은 체계적으로 다른 모든 종류의 가치들(기회, 권력, 명예)로 전환되고, 그 과정에서 이런 장악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진리인양 광범하게 신봉될 것이지만, 그에 대한 의분과 저항 역시 그에 못지않게 널리 퍼져 나간다. 왜냐하면 지배적 가치를 이런 식으로 강탈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식 로스쿨에서 일단 돈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앞에서 제시된 바와 같다. 그리고 그 배타성으로 인해 공직 진출 역시 계층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불평등이 노정될 것임은 크게 어렵지 않다. 부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의 한도를 넘어섰을 경우 공정한 절차를 위해 고안된 제도들은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때는 정치적 자유도 가치를 잃는 경향을 보이고, 대의정부원리는 외형상으로만 그럴듯하게 된다. 따라서 이 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점진적 및 계속적으로 부의 분배를 바로잡고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와 공정한 기회 균등 등을 해치는 힘의 집중을 막아야 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도 긴요한 과제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지배 집단이 자신들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질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비단 그런 자질이 지금의 지배 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분배 투쟁은 어떤 형태로건 표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로스쿨 제도 하에서 소득과 부가 공직과 권력이라는 다른 가치로 전환되는 것만큼은 숨길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서도 매개체는 돈이다. 법조인이 됨에 있어 능력과 의지 면에서 아무런 결격사유가 없는 시민들의 70퍼센트 가량이 공직이라는 가치를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이 자리의 대부분은 돈 있는 계층, 보다 엄밀히 말하면 시험제도 하에서는 진입 가능성이 없거나 현저히 낮았던 그룹으로 채워질 것임은 로스쿨협의회의 자료와 필자의 설문조사 결과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한국식 로스쿨은 공적의무의 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뤄지도록 돈의 “뚜쟁이” 역할 을 제도화시켜 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왈쩌는 가치 중에서도 정치권력을 가장 위험한 가치로 보고 있다. 다양한 집단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 독점을 꾀하고 이용하려는 속성을 갖는데, 이 때 정치는 지배로 나아가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기 때문이다. 돈과 자의성에 그 위험한 가치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로스쿨 제도에 다름 아니다. 굳이 로스쿨처럼 제도화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는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제압하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지배적이며 또한 특권과 권력으로 쉽게 전환된다. 여기서 지배적란 말의 의미를 왈쩌는 어느 가치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이 “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더욱 광범위한 다른 가치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지배 (dominiance) 및 지배행위 (domination)는 건강한 사회의 적이며, 불의이다. 어떠한 사회적 가치 x도, x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지 누군가가 다른 가치 y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y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국식 로스쿨의 경우처럼 돈이 법조 전문직 및 공직 예비 자격으로 전환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왈쩌는 “대체로 최고의 업적을 성취한 정치가들, 기업가들, 학자들, 군인들 그리고 연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른 사람들일 것이며, 그들이 소유한 가치들이 연쇄적으로 다른 가치들을 불러들이지 않는 한, 우리가 그들의 업적들을 두려워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고 한다.
정상적인 다원적 평등의 조건들이라면 타인이 타인의 성공을 물려받을 개연성이 별로 없다. 구체적으로 지위와 재산, 영예가 세습되지 않으며, 반대로 불평등 역시 세습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한국식 로스쿨은 어떤가? 한국식 로스쿨은 왈쩌가 지적하는 독점까지 갖춤으로써 돈,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이 아닌 부모라는 타인의 돈, 타인의 가치 (기존의 공직, 권위, 인간관계 등)들을 다음 세대의 권력 내지 공직으로 전환 시켜주는 “전환과 세습”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4. 다양성 주장의 허와 실
로스쿨의 장점 중 하나로 드는 유력한 논거 중의 하나는 양성되는 법조인의 “다양성”,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로스쿨에 들어가는 자원들의 다양성을 들고 있다. 이는 로스쿨 방어론이자 사시폐지에 대한 강력한 공격무기로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은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이념은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에 있다” (제2조)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양성은 법률소비자의 다양성이지, 입학자원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입학자원이 갖는 다양성을 찾자면 다양한 법률 수요에 맞추기 위해서는 걸맞는 공급자의 전문 역량의 다양성도 확보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우회적으로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원래 로스쿨 입학에서의 자원 구성의 다양성의 논거는 미국의 ‘소수인종우대정책 (affirmative action)’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케네디 대통령이 1961. 3. “정부는 인종 차별이 없는 국가 정책의 실현을 위해...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국적과 관계없이 처우하도록 하는 ‘affirmative action’을 시행해야 한다” 라고 발표한 행정명령(제10925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케네디가 처음이 아니었고 1941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1948년 트루만 대통령의 행정명령에서 천명되고 군대와 방위산업체 등에 이미 실시 중이던 인종차별철폐 정책의 계승이었다. 일반적으로 소수인종우대정책이란 대학입시나 공무원채용, 정부의 공사수주계약 등에서 소수인종 특히 흑인들에게 일정한 혜택을 부여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이 정책은 흑인들을 착취한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소수인종우대 정책은 연방정부의 재원이 지원되는 공공기관의 고용과 교육에서 소수집단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 간에 또 다른 불평등을 양산하고 백인에 대해 역차별(reverse discrimination)을 한다는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불만에 대한 대응논리로 법정 다툼을 통해 등장한 것이 ‘우대’가 아닌 ‘다양성’이었다.
이 문제가 연방대법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것은 배키(Bakke) 사건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메디컬 스쿨(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School of Medicine)은 100명의 정원 중에 16명을 소수인종 우대 기준의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원고인 앨런 배키(Allan Bakke)는 백인 남성이라는 이유로 흑인 학생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지만 불합격되었다. 배키는 이 정책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입학 허가를 요구했고 주 대법원에서 배키는 승소하였다. 대학 측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1978. 4. 연방대법원은 대학 측이 시행하는 절대적 할당제(rigid quotas)는 연방 민권법 6조에 위반된다고 판시하여 원고의 입학을 허가토록 하였고, 대신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을 위해 인종을 하나의 전형요소((a factor in admission)로서 고려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후자의 합헌 판정도 5:4라는 간발의 차이였다. 이 때부터 대학 입학에서의 할당제는 허용되지 않으나 대학 측이 다양성을 고려하여 선발하는 정책은 존중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듯 보였고, 여러 대학에서 가산점제를 비롯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였으나 위헌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베키 사건 이후 소수인종우대정책과 관련한 첫 번째 위헌 논쟁이자 로스쿨 입시와 관련하여 내려진 판결은 홉우드(Hopwood) 사건이다. 1992. 텍사스 주립대 로스쿨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백인 여학생 세릴 홉우드(Cheryl Hopwood)가 대학을 상대로 소수인종우대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흑인과 멕시코 학생들이 합격하고 자신이 탈락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연방지방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항소심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학 측이 관행적으로 적용해 오던 인종 고려(consideration of race) 입학정책을 위헌으로 판결한 것이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에서 이 판결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홉우드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1년 뒤에 로스쿨 입시 등과 관련한 주립대학의 소수인종우대정책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1997년 미시건 주립대 학부와 로스쿨에 각 응시했던 백인학생 3명이 학교 측을 상대로 소수인종 지원자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정책은 위헌이라고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학부 사건과 로스쿨 사건, 두 개로 나눠진 사건을 판단하면서 연방대법원은 성적과 무관하여 일정 점수를 추가로 부여하는 학부 입시 정책은 사실상 할당제이므로 위헌으로, 대학 구성원의 다양성을 위한 로스쿨 입학 정책은 합헌으로 각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합헌 판정의 주심 판사였던 오코너는 다양성을 논리적 근거로 삼는 소수인종 우대정책은 향후 25년 이후에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하여 다양성이 차별적 입학의 확실한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까지 인종적 다양성을 학교 측이 고려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근래의 피셔(Fisher) 판결로도 확인되고 있다. 1997년 제정된 텍사스 주법에 의하면 주내 고등학교 성적 상위 10퍼센트 졸업생들은 주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운영과정에서 백인의 비율이 너무 많은 것으로 드러나자 학교 측은 인종중립적인 정책을 변경하여 성적우수자를 제외한 일반 입학사정에서는, 학업성취도, 과외활동에 인종도 하나의 심사요소로 포함시켰다. 아비가일 피셔(Abigail N. Fisher) 는 텍사스 주 거주 백인 여성으로 2008년 텍사스 주립대학의 일반전형에 지원하였지만 불합격하였다.
피셔는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소수인종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바람에 차별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과 2심은 인종 구성의 다양성 필요성이 상당하다는 학교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연방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원심 판결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일찍부터 소수인종우대정책이 또 다른 역차별을 불러오고 있다면서 이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법조치에 대하여 연방 대법원은 합헌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2014. 4. 연방대법원이 미시간주가 2006년 주민투표를 통해 공립대학으로 하여금 소수인종우대 정책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주 헌법을 개정한 결정에 대해 찬성 6명, 반대 2명의 결정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원래 이 정책은 연방 항소심에서는 위헌 판정을 받은 바 있었는데 대법원에서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상과 같은 미국 대학 입시에서의 다양성 논란은 우리 로스쿨 입학전형에서의 다양성 주장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대학 입학에서의 특정 인종에 대한 우대가 갖는 정당성 내지 그 기대하는 바 역할은 크게 과거의 차별에 대한 사회적인 반성과 구제, 장기간 차별 관행이 가져온 정치적 힘의 상대적 약세에 대한 보완, 다양성의 확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그룹의 역할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꿈과 희망의 부여, 전문직 배출로 출신 인종이나 사회에서의 전문 서비스 향상 및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 제공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리 로스쿨 입시의 다양성은 어떤 점에서 정당성을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소득 분위가 낮은 계층을 우선 선발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다양성인가. 인종과 민족은 생래적으로 명백한 구분 지표이지만, 소득은 상대적인 기준에 불과하며, 매우 가변적이다. 빈곤층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분명 필요하지만 현재의 로스쿨 입학 제도가 소수자 배려를 명분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음은 앞에서 본 자료와 같다. 사실 빈곤층에 대한 입학 할당과 전액 장학금 지원 등은 엄밀히 말해 그 기준의 모호함으로 인해 다 소득계층에 대한 역차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정의롭다고 할 수 없으며, 복지차원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다.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주창자인 브루스 액커만의 말을 들어보자.
“국가가 빈민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정의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대학보조의 형태로 상위 25퍼센트의 인구에 대해 직접적 원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하위 20퍼센트에 대해서는 자산조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직접 원조한다. 그러나 그 중간의 대다수 집단인 청년들은 스스로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이 결핍된 채로 성인기를 보낸다.”
한국 로스쿨의 저소득층 지원, 그러나 사실상 상위 계층이 가장 많은 국가 지원 (세금)을 받아가는 기형적인 구조를 이 이상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한국식 로스쿨제 하에서 학부 다양성 주장은 매우 기만적이다. 2009 - 2015년 기간 중 서울대, 고려대 및 연세대, 소위 ‘스카이’ 대학으로 불리우는 세 학교 로스쿨 입학생들 중 서울대 학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스카이’ 내에서 43.27퍼센트로, 같은 기간 사법시험합격자들 중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 26.04퍼센트에 비해 약 1.7배나 높다.
한국식 로스쿨제 하에서 학부 다양성 주장은 매우 기만적이다. 2009 - 2015년 기간 중 서울대, 고려대 및 연세대, 소위 ‘스카이’ 대학으로 불리우는 세 학교 로스쿨 입학생들 중 서울대 학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은 ‘스카이’ 내에서 43.27퍼센트로, 같은 기간 사법시험합격자들 중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 26.04퍼센트에 비해 약 1.7배나 높다.
[그래프9] 주요 3개 대학 로스쿨에서의 서울대 학부 편중도 비교
‘스카이’ 학부가 ‘스카이’ 로스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놀라울 정도이다. 서울대 로스쿨의 경우 스카이 학부 출신은 87.7퍼센트, 고려대 로스쿨의 경우엔 87.6퍼센트, 연세대 로스쿨의 경우엔 83.4퍼센트로 이들 학교들은 로스쿨 체제 하에서 학벌주의를 더욱 적나라하게 과시하고 있다. 비단 ‘스카이’ 로스쿨뿐만이 아니다. 2009-2015년 법무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로스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국내 대학들 중 사법시험 합격자를 배출한 학교들이 소위 ‘스카이’ 로스쿨과 소위 ‘인 서울’ 로스쿨 12개 학교에 얼마나 졸업생들을 진학시키고 있는지 분석한 결과 비로스쿨 대학들의 사법시험에서의 점유율이 6.73퍼센트인데 비해, ‘스카이’ 로스쿨에서의 비율은 1.38퍼센트로 1/5에 불과하며, ‘인 서울’은 1/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래 그래프는 로스쿨 체제 하에서 출신 학부 다양성 실질적으로 얼마나 더 감소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그래프10] 로스쿨과 사법시험 하에서 비로스쿨 대학 출신의 비중
다양성이라는 허울 속에 공정성이 희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성이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공정성이 포기되어도 좋거나, 다양성보다 하위의 가치가 아님은 분명하다.
IV.나가며
현재 대한민국의 로스쿨 재학생들의 소득분포는 고소득층으로 몰려 있으며, 특히 일부 학교들의 경우 소득 9분위와 10분위에 속하는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로스쿨이 중산층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소득분포도 뿐만 아니라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 중 열 명 중 일곱 명이 로스쿨만 있었다면 진학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응답하고, 그 응답자의 94.3퍼센트가 월 소득 500만원 이하 가정인 데서도 확인된다. 위 기간 중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380만원은 대한민국 평균 가구의 소득과 같은데, 반면 로스쿨 출신 가정의 월 평균 소득은 1,063만원으로 사법시험 합격자들 평균 소득의 2.8배에 달한다.
모든 사람들은 정의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인생계획을 세우고 쫓을 동등한 자유를 보장받아야만 하고 국가는 이를 시행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현행 대학원제 로스쿨 제도는 위 소득분포와 비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실효적인 기회의 평등을 박탈하고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지원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법조인 자격을 취득하고 나아가 공직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봉쇄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행 로스쿨 제도는 국가가 국민 각자가 책임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롤스의 말대로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유사한 인생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유사한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돈과 소득으로 차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식 로스쿨 제도는 차등의 원리를 인정하는 롤스의 정의 공식에도 반한다. 최열위(最劣位)집단에 대한 혜택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민 및 정치적 권리들의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직업이 철저하게 재능에 개방되도록 하는 것, 즉 모든 시민이 공직의 후보자가 될 수 있는 권리의 확보는 시민이 갖는 정치적 기본권의 출발이다. 그러나 한국식 로스쿨은 소수의 직업적 이해관계인들이 사실상 사법공직의 자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과연 이들에게 공직 분배를 맡겨 두는 것이 옳은지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지배와 독점의 문제에서도 한국식 로스쿨은 상당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왈쩌의 말처럼 어떠한 사회적 가치 x도, x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지 누군가가 다른 가치 y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y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어서는 안 되지만, 현행 로스쿨 제도 하에서는 소득과 부가 공직, 권력, 사회적 신망이 부여되는 전문직이라는 다른 가치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 로스쿨은 독점까지 갖춤으로써 돈,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이 아닌 부모라는 타인의 돈, 타인의 가치 (기존의 공직, 권위, 인간관계 등)들을 다음 세대의 권력, 공직, 기타 신망 있는 전문직으로 전환 시켜주는 “전환과 세습”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로스쿨의 장점 중 하나로 드는 유력한 논거 중의 하나는 양성되는 법조인의 “다양성”에 관하여도 회의적이다. 원래 로스쿨 입학에서의 자원 구성의 다양성의 논거는 미국의 ‘소수인종우대정책 (affirmative action)’에서 비롯되었다. 그 논리적 기반은 과거의 차별에 대한 사회적인 반성과 구제, 장기간 차별 관행이 가져온 정치적 힘의 상대적 약세에 대한 보완, 다양성의 확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그룹의 역할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꿈과 희망의 부여, 전문직 배출로 출신 인종이나 사회에서의 전문 서비스 향상 및 경제적 지위 상승의 기회 제공 등에 있었다. 하지만 위헌논란에 싸여 법리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남게 된 논리가 “학내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필요성”이었고, 그나마 이 다양성 역시 역차별 논란으로 많은 주에서 입법으로 금지하고 있고, 연방 대법원 역시 다양성을 궁극적 가치로 보고 있지 않다.
우리 로스쿨 제도에서의 저소득층 선발과 지원은 엄밀히 말해 다양성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인종과 민족은 생래적으로 명백한 구분 지표이지만, 소득은 상대적인 기준에 불과하며, 매우 가변적이다. 저소득층 지원제도는 한국 로스쿨 제도 하에서는 노직의 지적처럼 롤스의 차등의 원리를 더 가진 자들을 위한 것으로 변질시키는데 이용되고, 액커만의 질타처럼 “중간의 대다수 집단인 청년들은 스스로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결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
로스쿨 측에서는 과거 사법시험 합격자를 내지 못했던 학부 출신들도 로스쿨에 진학하고 있다면서 다양성 확보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이는 주요 로스쿨들에서의 특정 학부 비율은 더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성공 했다기보다는 로스쿨의 입학 과정의 불공정, 불투명성을 반증하는 사례인 것이다. 법조인은 여타의 전문직과 그 성격이 다르다. 타인의 생명, 신체, 재산, 명예에 영향을 미치는 쟁송의 전문가이면서 판사와 검사라는 사법공직에 입문하는 배타적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 직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신뢰와 승복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확보수단은 공정성이라는 정의와 전문성이다. 로스쿨이 도입된 지 7년째를 맞고 있다. 그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로스쿨 제도는 설계 과정의 부실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기는커녕 그 한계를 방치하거나 혹은 이용하면서 공정보다는 불공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국내문헌
김대근 (2014), 미국 연방대법원의 적극적 평등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한 판결의 의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소식 130, 8-13
염철현 (2011), 미국 공립대학 입학정책에서 Affirmative Action 운영사례와 법원 판결 의 최근 동향, 대한교육법학회 교육법학연구 23(1)
오대성 (2011), 미국의 대학에서의 소수인종우대정책, 전남대 법학논총, 31(3)
이재협/이준웅/황현정(2015), “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 - 사법연수원 출 신 법률가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서을대 법학 제56권 제1호, 367-411.
이준웅/ 이재협 (2016), “경험적 법률가 연구의 발전을 위하여 – 이호선의 「법과 정책 연구」 글에 대한 검토와 제언”, 법과 정책 연구 제16호 제2집 제2호
이호선 (2015), 한국 로스쿨 체제, 과연 사법시험의 대안인가, 법과 정책연구 제15집 제4호
이호선 (2015), 현행 로스쿨 운영에 관한 실증적 분석 연구, 법과정책연구 제15집 제2 호
천도정/ 황인태(2014), 법조인 선발제도별 법조계 진입유인 실증 분석
국외문헌
Aristotle, Politics, 손명현 역 (2007), 동서문화사
Bruce Ackerman et al, Redesigning Distribution, 너른복지연구회 역 (2011), 도서출판 나눔의 집
George W. Rainbolt, "Justice", IN Hugh LaFollette eds.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Ethics, Wiley-Blackwell.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황경식 역 (2002), 이학사.
Larry S. Temkin (2013), "Equality of Opportunity", IN Hugh LaFollette eds.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Ethics, Wiley-Blackwell.
Michael Walzer, Spheres of Justice, 정원섭 외 역 (1999), 정의와 다원적 평등, 철학과 현실사.
Robert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강성학 역 (1990), 자유주의의 정의론, 대광문화사.
Ronald Dworkin, Justice for Hedghogs, 박경신 역 (2015), 정의론, 민음사.
|
출처: 사법시험 존치 국민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o공정사회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