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통일광주광역시협의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민족통일광주협의회 부회장 및 전국대회 추진위원장으로 역할을 하게됐다.
이형만 장학회 이사장이 민족통일광주광역시 회장으로 재임하고 계셨다. 고향 선배를 모시고 통일운동을 함께한다는 취지에서 나도 가입하게 됐다. 수석부회장은 회장의 위임에 따라 매월 회의를 주재하고 전국의 각종 통일 행사에 참여했다. 그러다 제30회 전국대회를 광주에서 치르게 됐다. 큰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했던 기억이 새롭다.
30회 전국대회는 경북·전남 등 먼저 전국대회를 개최했던 지역의 자료를 분석하고 그곳 임원들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6000여 명이 광주 염주체육관에 모여 행사를 치렀다. 이재윤 민통중앙협의회 의장을 비롯한 전국의 임원들은 “규모나 내용면에서 역대 제일이었다”고 칭송했다.
수석 부회장으로 월례회의나 관련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때론 문예제전 심사도 맡았고 중앙회 참석이나 전국대회 기획 등 참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형만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강대의 사무처장의 열정적인 협력도 큰 힘이 됐다.
필자는 통일 문예제전 심사도 맡았다. 제42회 한민족 상생과 공영을 위한 통일 문예 제전 심사평을 여기 기록한다.
통일문예제전 심사 맡아
‘통일’이라는 명제가 우리 온 국민들의 화두로 등장한지 어언 62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국의 하나 됨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의 현실을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가.
이젠 슬픈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 모두 조국통일의 기쁨 속에 생동감 넘치는 삶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분단 조국은 이제 회갑을 넘겼다. 전후 세대들에겐 6·25라는 전쟁이 체감되지 않은 채 통일의 당위성보다는 통일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을 문제로 제기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눈앞에 펼져진다.
그러나 기필코 통일은 우리 손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사명의식에서 시작한 ‘한민족 상생과 공영을 위한 통일 문예 제전’이 올해로 벌써 42회째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중·고·대·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통일 의지를 다지기 위한 문예 제전에 우리 광주에서도 150여 편이 응모하는 고무적인 현상이 펼쳐졌다.
여기서 작품의 우수성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초등부 학생들은 듣고 배우며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이야기들을 순수한 감정으로 진솔하게 표현했다. 중·고등학교 및 대학생들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통일에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호소했다.
그러나 한편 ‘모든 학생들과 국민들에게 이런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데…’ 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각급 학교에서 고루 참여하지 않았고 지도 교사들의 열정에 따라 학교 급별로 응모 인원의 편차가 컸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통일의 염원을 담은 작품들이 계속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고 가슴마다 메아리칠 때 통일에의 의지는 분명해질 것이다.
문예 제전 심사에 두 번째 참여했지만 응모한 작품 속에서 희망을 보았고 통일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는 기회였다.
중앙회 심사 결과 작년보다 조금 나아진 결과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많았다.
민족통일 협의회가 주관하는 제 42회 문예제전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감사드리고 입상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한다.
드디어 대통령상을 받다
한편 제30회 전국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룬 공로로 다음해인 2012년 이형만 광주회장은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수받았고 2013년도에는 수석부회장과 전국대회 추진위원장으로서 성공적인 대회 추진을 인정받아 필자가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련의 활동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교직에 있을 때는 승진 가사점에 눈독 들여 그렇게 갈망했던 상을 퇴임 후 받게 되니 감개무량 한편에 안타까움도 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