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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기입
세조부터는 좀 재밌어 지니까 앞에는 한번씩 훑어보고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국사 공부도 할겸 제대로 알자구요 ㅎ_ㅎ
chapter2 조선왕조★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왜 이걸 외우라고 하나 그때는 정말 생각이 많았는데,
정말 중요한것 같음. 이거정돈 알지요? 꼭 기억해두셈.
태조 이성계는 나라를 건국하였으므로 태조임. 이 사람은 세종의 할아버지..임 맞나? ㅇㅋ 맞음.
이 사람은 신흥 무인 세력인데 이건 신진사대부, 문벌귀족과 연계됨.
대충 신흥무인세력이라고만 알아두면 ㅇㅋ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천도. 도읍을 한양으로 함.
정도전이라는 학자와 되게 친했다고 알아 두셈.
정도전은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매우 도왔으나 왕자의 난때 태종 이방원한테 살해를 당하게 됨.
정종은 이렇다 할 업적없음 패스
태종. 태종은 이방원.. 이는 1,2차 왕자의 난을 벌이게 됨.
왕자들이 난리를 친건데 태종이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보면 됨.
태종은 의정부를 설치함. 의정부는 6조 체제인데,
이호예병형공이라고 왕이 내린 업무를 직접 시행함.
또 6조 직계제를 체택함 (행정업무 6조-이호예병형공-가 왕에게 직접보고하는 것)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를 하면 당연히 왕이 결정하고
그러면 왕권이 강화되지 않겠음? 또 호패법,양전사업,사병혁파등
많은걸 했는데 제일 중요한건
호패법(호구를 파악하고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민증따위의 것들)과 6조 직계제임.
= 그니까 의정부를 거쳐 왕한테 가면 의정부 서사제, 6조가 왕한테 그냥 가면 6조 직계제.
세종은 참 많이 알거라고 봄.
유교정치
왕권과 신권의 조화
의정부 서사제
(6조에서 올라오는 일들을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합의 후 왕에게 올려 결재를 받음.)
집현전 설치 (정책을 연구함. 유교정치 실현 꾀함ㅇㅋ)
훈민정음
4군 6진 (지금의 국경선을 확보한거에요.)
농사직설 (冊. for국민)
전세(토지세)
이를 다 이루었음.
문종 단종 한거 없으니 넘어가고 세조.
세조는 단종을 죽이고 지가 왕위에 오른 아주 무서운 싸람임. 이름하야 이것을 왕위 찬탈.
왕위까지 찬탈했는데 가만히 있었겠음? 왕권강화를 위해 아주 힘을 썼음.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하고 종친등용을 함. 이건 중요치 않으나 왕권에 엄청 쏟아부음.
태종과 마찬가지로 6조 직계제를 체택하고 경국대전(정치 법전)을 만들기 시작함.
이는 성종때 완료됨^^ㅋ
성종때는 경국대전이 편찬 완료 되었다 하였음. 경국대전이 완'성'되었으니 '성'종임.
통치체제를 정비하고 집현전을 계승하여 홍문관을 설치하기도 하고 참 바빴음.
근데 제일 중요한건 사림을 등용했다는 사실임.
사림 얘네는 나중에 또 하겠지만 아주 보수적이고 사대적임. 왕도 정치를 강조했고
진짜 순수 정통성리학자들이라서 성리학 이외의 것들은 싹 다 배척해버리는 무써운 단체임.
성종 자체가 훈구파를 견제할려고 사림을 지방에서 끌어온거임.
얘네는 지방애들이었으니까 향촌자치를 아주 긍정적으로 봄.
그래서 막 훈구세력을 비판하기 시작함.
왜냐하면 훈구 얘네는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중앙집권적이며,
성리학 외에도 관대했으니까 매우 진보적이란 말임.
사림은 원리 원칙, 정의를 엄청나게 중요시 하는 애들인데
이렇게 자꾸 앞으로 나아갈려고만 하고
미래를 자꾸 지향하니까 눈엣가시가 아닐수 없었던 거임.
그래서 훈구와 사림은 계속 싸우게 됨.
연산군때는 무오/갑자사화, 중종때는 기묘사화, 명종때는 을사사화. 총 四화가 일어남.
갑자 사화때 대부분의 사림이 몰락하게 되었지만 제일 중요한건 기묘사화임.
중종때 일어난 기묘사화는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심각해지게 됨ㅋ
바로 조광조임. 문신임.
이 사람은 매우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하게 됨.
국민의 여망에 부합해 현량과(사림은 과거도 안보고 무조건 등용) 실시,
유교적인 성향에 힘입어 불교,도교 행사 폐지.
향약, 향촌 자치제 실시
(사림은 지방양반들이었으니까, 향촌을 엄청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잖슴~),
성리학적 윤리를 강화하는 등 훈구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아주 엄청 많이 함.
특히나 제일 중요했던게 위훈 삭제가 문제가 되었음.
위훈은 여태까지 공을 세웠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둔 어떤 문서 따위인데
이때 훈구 세력의 이름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가 있었음.
이걸 조광조가 훈구 대립하겠다고 다 삭제한다고 뭐라하니까
훈구가 드디어 들고 일어난거임.
따라서 기묘사화의 이유는 바로 조광조의 말도 안되는 급진개혁이라고 할 수 있음.
인종, 명종까지 을사사화가 끝이나고, 15c는 거의 훈구가 all 집권 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음.
허나 선조때 이제 16c가 시작됨. 이때는 사림임.
15c=훈구 16c=사림을 꼭 기억해두길 바람.
선조때 사림이 재진출함. (서원=대학/ 향약 기반) 이때 붕당이 시작됨.
사림끼리 대립을 하는거임.
사림에서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게 됨. 분열이 시작됨..
동인은 정파적인 성격이고, 서인은 학파적인 성격이라고 보면 됨.
사림끼리도 또 이념이 대립된거임.
16c는 나라가 매우 혼란한 시기였음. 때문에 선조 자체로서도 힘이 별로 없었음.
그 틈을 밀고 붕당이 난리가 난거임.
허나 사림들은 모두 정통 성리학자였기 때문에
그 복잡한 와중에서도 성리학은 자리를 잡음.
(이때 주기론을 주장하는 영남학파의 이황과
주리론을 주장하는 기호학파의 이이가 나타남.)
그런데 또 이게 무슨 일인가 동인 조차도 지들끼리 대립되어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함. 남인과 북인으로.
그니까 그냥 사림이 붕당-사림에서 동인과 서인으로-
동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이렇게 난리였다고만 보면 됨.
선조! 근데 이때 임진왜란(1592)이 터짐ㅋ..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함.
(참고: 일본과의 전쟁은 왜란, 여진-후금-과의 전쟁은 호란이라고 함)
암튼 이때 선조가 의주 피난을 가는등 진짜 난리가 난거임.
이때 이순신이 학익진으로 수군에서의 승리를 함.
전라도 곡창지대도 보호하고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움. (한산도대첩)
또 의병(곽재우,김시민,권율)들의 항쟁도 대단했음.
지리에 관한 이점을 내세워 요리조리 잘 피하고 잘 무찌름.
김시민은 진주혈전, 한산도/명량대첩은 이순신,
권율은 행주대첩으로 알아두시면 ㅇㅋ
임진왜란 초기에는 좀 주춤했지만 수군과 의병의 승전으로 반격을 시작함.
그리고 행주산성에서 승리를 해 왜군이 후퇴하는 등 엄청 힘을 씀.
근데 또 정유재란(1597)이 터짐. 얘네가 재침략한거임. but 이때 명량대첩(이순신)으로 후퇴하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나서야 본국으로 철수 했음.
전쟁은 이겼지만 나라 자체에 아주 난리가 남..
조선은 전기와 후기를 왜란과 호란 기준 삼아 나눈다고는 하지만..
전쟁이므로 인구도 격감하고, 토지 대장과 호적등이 소실되어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기에 오름..
또 식량이 부족해서 다들 관직에 올라 좀 먹고 살려고 하는데, 이때 신분제가 동요하기 시작함.
공명첩(이름이 공란으로 되어있어서 이름만 적으면 그 이름이 관직에 오르게 됨ㅋ)이나
납속책(매관매직. 관직을 돈으로 살수 있는 방법)이 아주 문란하게 일어남..ㅠㅠ
but 국외 일본에서는 문화 발전의 계기가 됨 (성리학,도자기) 이때 우리가 많은걸 뺏김.
또 여진족은 우리가 정신없는 틈을 타 급성장해서 후금을 만듬.
얘네가 쳐들어오는건 호란(*인조)인데 나중에.
아무튼 명나라는 이때 쇠퇴를 맛봄. 송원명청이니 명나라 다음은 청나라가 됨^^..
아무튼 이렇게 완전 복잡하고 전쟁때문에 나라가 황폐해진 가운데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다음인 광해군이 전후 복구사업을 하게 됨.
광해군! 임진왜란 때문에 나라가 난리가 되고 선조 다음 왕위에는 오르지 못한 광해군이 등장함.
북인을 등용하여 혁신 정책을 추진함.
양안이라는 토지대장도 만들고, 세금이 밑바탕되는 호적을 정리하기도 함.
그리고 허준이 이때 임진왜란때 다친 병사들을 위해 동의보감을 만들기도 함.
근데 광해군이 또 실수를 하기 시작함.. 이놈의 조선왕조는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음.
중립외교 정책을 피우기 시작함.
바로 명나라와 후금(前여진족)을 중립적으로 외교하는거임.
근데 아까 말했듯 북인은 동인에서 분리된거니까 동인에 속함.
근데 붕당정치때 누구와 누구의 대립이었음? 바로 동인과 서인의 대립이었음.
사림들이 모두 정통 성리학자라고는 예전에 설명했음.
원리 원칙을 중시하고, 절대적인 의리 뭐 이런걸 중시하는 참.. 참 보수적인 싸람들임.
근데 광해군이 우리를 도와준 명에게까지 후금과 같은 외교를 하는것에 대해 당연히 불만을 품었음.
근데 이때 일이 터짐.
여진족이 점점 힘을 키워서 대단해지고 있을 무렵 명 나라가 쇠퇴해졌다고 하지 않았음?
쇠퇴해진 명나라는 왜란때 우리를 도와줬으니
우리도 명을 도와 힘을 키워 후금(여진)을 같이 치자고 부탁함.
근데 이놈의 왕권을 확 잡고 있는 광해군이중립외교를 외치며 명과 후금 아무곳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명을 배신할라고 하니까 사림(의리, 정통 성리학)파들이 얼마나 어이가 없겠음?
사림은 곧 "쟤네는 우리 도와줬는데 우리는 왜 안도와줌? 의리가 그따구밖에 없음?" 이런 생각인거임.
그래서 광해군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함.
그러면서 또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얕은 속셈도 있었던 거임. 그래서 일어난게
인조때의 인조반정임. 서인(사림의 일부)이 주도하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로 올려버린 사건임.
그러면서 정권을 장악한거임ㅋ 광해군은 어쩌겠음 물러나고 말았지..
서인들은 지들 마음대로 드디어 친명배금(명나라는 친하게, 후금은 배척)정책을 세우도록 함.
이때 여진(후금)족의 정묘호란(1627)이 일어나게 됨.
서인이 친명배금 어쩌고 하니까 그게 자극된거임.
지네 나라를 배척한다는데 누가 좋아하겠음?
여진이 후금이고 후금이 여진이니까 광해군을 보복하겠다는 구실로서
침입을 하게 됨. 그래서 후금은 결국 중국대륙을 장악하게 됨. 이때 국호를 청나라로 바꾸게 됨.
그니까 여진이 후금을 세우고 명을 먹어버린게 다 합해서 청입니다요.
그리고 또 삘 받은 청(후금,여진,前명나라)이 우리나라까지 먹으려고 들음.
지네가 중국 강대국이니까 우리를 아랫것들이라고 단정지음.
이때 일어난게 바로 병자호란(1636)입니다.
우리나라로 쳐들어옴~ 우리나라 진짜 완전 불ㅋ쌍ㅋ
원인은 그러니까 정리하면 청의 군신관계 요구라고 할수 있겠죠.
지네는 중국 강대국이니까 우리보고 신하해라 이거지.
암튼 그렇게 되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왕이니까 살겠다 이거지 뭐.
어쨌든 그러다가 결국 청에 굴복하게 되는 굴욕을 맞이 해요.
중국은 강대국이고 너무 커서 이길수가 없었던 거지요.
우리나라는 이때 결국 청과의 군신관계가 성립하게 됩니다요.
그리고 서서히 북벌론이 제기가 되겠죠. 북을 벌하자는 이론임돠.
청과 군신관계가 성립되긴 했지만, 외적으로 사대형식의 외교를 추진하긴 했슴.
근데 실질적으로는 청에 대한 북벌 준비를 하기에 이름.
이때 서인(사림)들은 아직도 원리원칙을 따지면서
명이 여진에게 먹혀서 청으로 흡수되었으니
명을 대신 복수해서 빚을 갚자는 원리원칙을 제시함다.
허나 이건 그냥 지들 정권을 유지하고 싶어서 하는 못된 북벌론의 제기라고 합죠.
병자호란이 일어났을때 광인효현숙경영의 효종은 인질로 잡혀갔던적이 있음. 효종은 인조의 차남임.ㅎㅅㅎ
그래서 그때 무섭고 너무너무 두려웠으니까
풀려난 뒤에는 청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 사로잡힌거지.
그래서 북벌운동을 추진함. 군대를 양성하고 성곽을 수리해서 복수심에 활활활!
근데 효종이 또 얼마 안가서 죽어버리고 말음.
그래서 왕이 죽고 나니까 북벌운동은 점점 사그라들고
그러지말고 북(청)을 배우자~해서 북학운동으로 발전을 하게 됨.
그러다가 현종이 왕위에 오르게 됨. 이때 예송논쟁이 발발하게 됨.
그게 모냐. 진짜 지겹게도 싸우는 이것들 ㅡㅡ 서인과 남인이 엄청나게 또 싸우는거임.
둘다 사림임. 사림분열→동인(남인,북인)vs서인 즉 분당 아니고 붕당이라고 했잖음.
근데 기초는 사림임. 사림은 뭐임?
16c를 장악했으며 정통 성리학, 원리원칙을 따지는 보수적인 지방 양반들이란 말임.
허나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이념은 정통적인 것이라도 그 본질이 다를 수 있는거임.
왜 싸웠냐. 남인은 효종은 왕으로서의 대접으로 상(죽은 다음에 치루는 것)을 치뤄야 한다고 하고,
서인은 효종이 인조의 차남이니 차남으로서의 상을 치뤄야된다고 하는거임.
그니까 그 상을 치루는 기간에 대해서 지들의 이론대로 대립이 일어난거임묘.. 완전 어이없음ㅋ..
근데 사림, 즉 남인과 서인의 생각은 지네 각자가 여기는 것이 정통이고 원리 원칙이라고 생각했기에
전혀 전혀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니었음.
왕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왕! 이건 아니옵니다!! 효종은 왕으로서의~ 이러고
서인이 그 앞을 막아서고 효종은 인조의 차남이오니 차남으로서의~ 이러니까
왕이 엄청 혼란 스러웠음. 이때 왕은 현종^^;;
현종은 서인말을 들어보면 또 그렇고 남인 말을 들어보면 또 그렇고 그래서 귀가 되게 얇음.
그래서 이때 왕권이 약화됨.
현종이 조금만 더 현명하게 너네 다 닥치고 이렇게 해! 했으면 왕권 강화였을것을..
아무튼 현종은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숙종의 왕위가 옴.
숙종때는 진짜 이거야 말로 개난장판임.
이름하야 환국(나라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진짜 정신이 없는 상태를 뜻함)
이때 남인을 등에 업은 장희빈이 나타남. 장희빈 아들이 경종이었는데 그건 둘째치고
인현황후를 모욕하고 막 난리를 치고 하고 그러다가 결국 사약먹고 죽게 되는데,
장희빈이 이 난리를 치고 또 서인과 남인이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으니 그것들 통틀어 환국임.
이쪽을 가도 사약먹는다 어쩐다 하고 저쪽가면
또 예송논쟁이니 뭐니 원리원칙이니 뭐니 이러고 있으니
숙종은 정신이 없음.. 그래서 이때도 왕권약화. 붕당정치의 변질이 오는것도 이때임.
(참고로 경신환국이라는 것이 환국의 일종?이라고 할수 있는데,
결국 서인정권이 몰락하고 남인이 집권하게 됨. 이때는 숙종이 즉위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임.
but 사림 얘네 진짜 지저분한게 남인이 집권하고도 또 온건파랑 강경파로 나뉨. 진짜 나뉘기 드럽게 좋아함.
아무튼 그래서 또 난리가 나고 엄청 대립하고 그렇게 정신없는 틈을 타 서인이 다시 일어남.
결국 서인이 이겨서 남인을 숙청해버리고 정권을 장악함ㅋ 서인 진짜 끈질긴 냔들)
경종은 한거 없음 pass
드디어 영조가 왕위에 오르게 됨. 얼마 안남았다 아자!
영조는 앞서 광해군 중립외교, 인조반정, 북벌론, 예송논쟁,
붕당변질을 계속 겪어오며 이렇게 가다간 안되겠다고 느낌.
그래서 대개혁을 실시함. 왕권강화! 멋있어요 영조!
영조때 서인들은 남인이 나뉜것과 마찬가지고
소론(소수 남인)과 노론으로 나뉨 ㅡㅡ
아나 진짜 얘네 그만좀 대립했으면 제발 좋겠음.
왕권 강화에 팔 걷어부치고 나선 영조는 탕평책을 실시함.
숙종때도 탕평책을 제시하려는 기미가 있긴 했는데
이건 거의 무시당함. 왕권이 약하니 별수 있나.
탕평책은 왕이 치우침 없이 아주 공평하게 인재를 고루 등용하겠다는 정책임.
또 왕권 강화를 위해서 소론(남인)을 등용함.
그리고 붕당이 자꾸 변질을 겪고 자시고 하니까
사림의 기본이 되었던 서원을 정리해버림. 붕당의 뿌리를 뽑아버림!
(서원-지방의 교육기관. 기억나지? 서원과 향약을 중심으로 했었음!)
이때 붕당(사림)의 정치적인 의미는 얇아짐.
정국이 조금씩 안정되는 기미가 보이는거임.
그리고 탕평비를 세움.
또! 균역법을 실시함. 이건 나중에 수취제도 할때 하긴 할건데
조선 전기때는 16~60세의 양인 남자에게 1년 군포 2필이었음.
그니까 군포는 군대 면제가능한 천인데, 군포를 두개씩 내야 군대가 면제 되는거임.
근데 영조는 1년에 군포 1필로 줄여준거임. 참 고마운게 아닐 수 없음.
또 결작(토지 부가세)을 양반 지주들에게만 징수함.
농민은 땅이 없으니 징수 안해도 됨ㅋ
균역법은 여기까지만 알면 됨.
허나 현대에 와서는 영조의 탕평책이 붕당 폐단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또 해소가 아니라 그냥 억누른것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옴.
영조가 죽고 영조의 손자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게 됨.
잠깐! 영조의 아들은 사도세자였음.
여기서 중요한것은 영조때 탕평책을 써서 당을 결성하지 않고 아무데도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영조는 지 마음속에서 노론 쪽이었음.
근데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는 소론쪽이었음.
근데 지 아들이 정책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안해주니
이건 뭐.. 짜증나는 아들이 아닐 수 없음. 그래서 뒤주에 아들을 가둬 죽임. 그래서 사도세자가 죽음.
그렇게 세월만 보내다가 정조가 왕위에 오름.
정조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빠를 그렇게 죽여버린 것에 대해서 당연히 앙심을 품고 있었음.
그래서 왕권을 또 강화해버림. 아주 정권을 잡아 먹을 기세로!
영조보다 손색없는 적극적인 탕평책을 또 다시 추진하게 됨. 이는 붕당 소멸을 목적으로 하는거임.
참 근데 붕당은 진짜 너무 끈질김.. 끝까지 안 없어지다니 참나.
정조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음. 의리나 명분에 합치되고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하기에 앞섬.
노론,소론의 일부와 남인을 고루 등용하여 왕권을 강화함.
그리고 집현전과 유사한 규장각을 설치하여 붕당의 비대화를 막고,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게끔 육성함.
또 병권을 장악하고 자신을 노리는 수많은 이들을 배척해내기위해 왕의 호위부대인 장용영을 육성함.
뿐만 아니라 수원화성을 설치함. 이때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가 화성건립에 아주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됨~
또 수령이라는 직위를 만들어 향약을 주관하게 만들음.
사림은 본래가 지방 양반들 단체라고 했음. 근데 정조가 수령을 만들어서 향약을 확 주관해버리니까
지방 사림이 영향력을 제대로 못 펴게 만들음. 그리고 향촌 지배력을 억제하니까
백성에 대한 국가의 통치력이 아주 좋은거임! 정조 진짜 완전 smart함.
그리고 금난전권을 폐지하는데 이건 나중에 근세 산업할때 다시 다루도록 하겠음.
그런데, 정조가 엄청난 공을 세우면 뭐함.. 정조가 죽고 난 뒤에
순종, 헌종, 철종은 모두 바보같이 세도정치의 손아귀에 놀림당하고 말음.
세도정치는 특정가문이 세력을 독점해버리는 것임.
정조는 진짜 빨리 죽었음. 원래 위대한 사람은 하느님이 먼저 데려가버리잖음.
어쨌든 정조가 죽고 순조, 헌종은 되게 어렸음. 그러니까 세도가문이 잘 먹을 수 있어뜸.
정조가 붕당을 억제하다가 정조가 확 죽어버리고 나니까
집권을 꾀하던 노론의 수장이 순조를 이래라 저래라 하기 시작함.
그건 헌종도 마찬가지였음.
<세도정치>
매관매직-관직을 사고팔고. 게다가 양반들은 세금을 안내도 되는 대신에
노비들은 뼈빠지게 일해야 했던 것임..아 진짜 불쌍.
그리고 탐관 오리들이 수탈을 시작함.
이때는 탐관오리를 비판하는 문학이나 시조가 많이 나오기도 했죠?
어쨌든 탐관오리의 수탈로는 삼정의 문란을 들수 있음. 이건 나중에도 하겠지만
전정(밭 전을 써서 田세 부과)/ 환곡(공납-고리대금)/ 군정(역-군대)를 통틀어 삼정의 문란이라고 함.
but 이건 나중에 다룰 터이니 나중에 보도록 하고.
이래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함. 어이쿠.. 탐관오리들은 난리, 매관매직, 농민 반란에.
왕은 왕대로 어리고 세도 가문들은 아주 난리를 땡기니 당연히 왕권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음.
이때 중요한것이 나타남!
세도 정치를 하는 특정 가문들은 왕들이 죽어갈때마다 다음 왕을 절대적으로 약한 사람만을 꾀함.
약한 사람들이 왕위에 올라야 자신들이 잘 휘두를 수 있고,
그러면 좋은 권리를 누리게 되고. 지네맘대로 할수 있으니까.
그래서 왕족 중에서 부모의 힘도 없고, 나이도 어리고,
힘이 없는 왕족들을 선별하기에 앞섬.
그러다가 보이는 것이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이었음.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나라 전체를 확 뒤집어버리기 위해서 미친짓을 함.
세도 가문들 앞에서 미친놈인척 헿헿 거리기도 하고 치매 인척, 약한척을 온갖 다하면서도
슬슬 눈치를 봐가며 아들을 왕위에 올릴 모략을 세운 아주 똑똑한 사람임.
세도 가문들은 이 사람이 진짜 미친놈;;인줄 알고,
또 그의 아들이 어리기 때문에 이번엔 얘네를 내세워서 우리가 잘 먹고 살아봐야겠다 하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림.
그러자마자 흥선대원군은 미친연기를 그만 두고 정책을 모두 완전 뒤 엎어버립니다. 대단한 싸람ㅠㅠ
왕권을 강화하는것을 선두로 국가의 재정을 확충하고,
수교통상(무역?)을 모두 차단해버림. 또 양반한테도 세금을 걷기 시작함.
이때 양반들이 흥선대원군에게 뭐라고 막 하기 시작하지만
멈추지 않고 사창제를 실시함. 사창제는 개인 창고를 두는건데,
이건 나중에 신분제 할때 나올거임.
또 비변사(국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고위 관료들만 모여서 하는 회의기구)를 축소해버림.
이러면 왕권이 강화되니까!
왜냐하면 비변사에는 왕이 참가하지 않고, 관료들만 딱 모여서 지네끼리 얘기하면 끝이였음.
왕으로서는 그게 매우 안 좋은거임. 그래서 비변사를 폐지하고 왕권을 강화시킴.
그치만 안좋은점은 또 있음. 경복궁을 만드느라고 국가의 사정이 조금 어려워 지기도 하고,
또 다른 나라들이랑 수교를 아예 폐지해버리니까 우리 나라의 근대화가 조금 늦어졌다는 사실이 있기도 함.
그리고 에효.. 이때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게됨.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화 된것과 다름없는데,
이때 외교권이 박탈되는 등 나라가 점점.. 일본에게..흘...흘.ㄱ...
그러다가 순종때는 한일합방이 일어남. 이때는 우리나라가 국권을 박탈하게 됨.
이게 바로 일제강점기의 시작이자 조선왕조의 끝임.
을사조약과 한일합방 이후, 1910년대에 들어가면서 일제강점기가 점점 본격화 되고
항일 독립운동으로 신민회나 신간회의 활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건 나중에 또 따로 하기로 함.
출처 - 나(다른 출처일 경우 수정해주세요!)
말투가 좀 거슬리실 수는 있는데 친구한테 국사공부하라고 써준걸 그대로 배낀거니 이해좀 해주세요.ㅎㅎㅎ
친구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좀 과장되고 헛말이 나왔을 수 있슴다..
중간에 헷갈린거 있는 부분은 댓글에 달아주세요 수정할게요!
스크랩해갈게!!!!!!!
나도스크랩!!메일로가져갈게
와 진짜 정리 잘해놨다 두고두고 봐야지ㅠㅠㅠ 나도 스크랩!!!!
우왕 멜로 스크랩 해갈게여~
언니 대박이당!! 고마워!!
대박이다! 멜로 스크랩 해갈게! 뽑아놓고 잘 보는 곳에 붙여둘테다!
우왕 국사 공부 해야하는데 멜로 스크랩해갈게 땡큐!
나도 스꾸랩
와 뭐 이런 강같은 정보가 다있담? 정말 좋은 여시다ㅠㅠㅠㅠㅠㅠ고마워ㅠㅠㅠㅠ
멜로스크랩할께 언니야! 나 국사 똥망이었는데 ㅠㅠ 고마워 ㅠㅠㅠ
스크랩해갈게!!!ㅋㅋㅋㅋ
언니멜로스크렙할겤ㅋㅋ나한국사볼껀뎈ㅋㅋ이거도움이 많이될듯ㅋㅋㅋㅋㅋㅋㅋ
[조선사] 이해하기도 쉽고 좋다ㅠㅠㅠㅠ
꺄감사합미다 ㅜㅜ
고마웡~ 메일로 스크랩할게~
우왕
여시야 고마워 복받을거야ㅠㅠㅠㅠ 메일로스크랩해가꼥
여시고마워!!!흥미롭따*_*
또보러왔땋ㅎㅎㅎㅎㅎㅎㅎ
연어했어요!! 국사흐름잡는데 도움 많이될듯!! 고마워~~
와 조광조검색하다 봤는데 엄청 재밌다ㅋㅋㅋ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