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뽁뽁이로 자신감을 찾으세요!' 'A컵을 D까지 믿으세요'... 스물 네살 여자의 자취방에는 이런 문구가 정힌 상자들이 여럿 널려 있다. 그 주변에는 양말, 쓰레기, 종이 쪼가리 등이 널려있고 그 한가운데 에는 상체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스물 다섯 여자가 거울을 통해서 뚫어져라 자신의 유방을 심각하게 쳐다보고있다. 두손으로 가슴을 감싸 올려 보기도 한다. 그리고 곧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야 나 어제 걔랑 했는데 완전 절벽이더라 솔직히 좀 놀랬어. 무슨 여자애가 완전 남자 가슴을 갖고 있어. 진짜 황당해서'
나쁜놈... 대학 매점에서 우연히 듣게 된 남자친구의 말이 내 머리를 맴돈다. 그 뒤로 가슴에 대한 컴플렉스 또한 심해져서 속옷을 살 때 뽕 없는 브라자는 아예 취급도 안한다. 생각 없이 내 뱉은 남자친구의 말이 계속 떠올라, 점점 열이 받는다.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을 컵에 따르지도 않고 벌컥 벌컥 들이 킨다. 냉장고 한켠에 붙어있는 쪽지가 눈에 들어온다.
'티 안나고 자신있는 가슴을 가지세요! 자연스러운 가슴 성형! 00-000-0000 상담 무료.' 머리 좀 다듬으러 간 미용실 잡지 속에 서 발견한 광고지. 가격만 물어볼까.... 하고 수화기에 광고지에 써있는 번호를 직는다.
"저..가슴 때문에..아예, 그럼 상담만 받아 볼게요...네.." 얼떨결에 가슴 성형 상담 날짜까지 잡혀버렸다. 그냥 상담만 받아보는 건데 뭐..하며 컴퓨터를 키고 인터넷에 '가....슴...성....형...' 한자씩 또박 또박 타이핑 한다.
'쳐진가슴, 유두축소, 자연스런 뽕긋 유방, 티안나는 유방성형...'많기도 하다. 내가 왜 이런 단어를 인터넷 검색창에 타이핑하고 있어야하지?하는 마음과 다르게 네이버 지식인에 가슴성형 가격 질문을 클릭한다.
대체적으로...500에서700? 이제 대학 졸업반이지만 학교 등록금하고, 한달에 주인 아줌마한테 삼십만원 꼬박 꼬박 내는 것도 벅찬 나에게 그 돈은 가질 수도 없는 돈이고, 쓸 수도 없는 돈이다...
유방 확대 수술.. 무섭기도 하지만 돈도 없다. 체념하자.
체념도 잠시. 술 고래 미진이에게 전화가 온다. 분명히 오늘도 한잔하자는 소리일거다.
역시. 그놈의 술타령이다. 바로 집앞 호프집에서 혼자 술을 마신다는 친구년을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겠는가. 대충 옷을 걸치고 집을 나와 호프집안으로 들어갔다.
호프집 안은, 손님이 이렇게 없을 수 있나..하는 정도로 썰렁하다.
"여어~~이소영~왔냐?"
"무슨 초저녁부터 술이냐.."
"그러게 말이다.."
"야 실내에서 무슨 썬그라스야 연예인이냐 니가?"
"야..놀라지마..."
얼굴이 가려진 미진이가 썬그라스를 벗는다. 그녀의 두 눈이 벌건 색인지 고동색인지 모르게 부어있다.두눈에 그어진 칼자국. 미진이가 쌍커플 수술을 한것이다.
"야! 너 눈했어!!!? 왜 말한마디 없이!"
"아 그렇게 됐어. 요즘 쌍꺼풀은 점심시간에도 나가서 한대잖아."
자기 자신에게 자신없는 애들이나 한다던 성형에 부정적이던 미진이가 내 앞에 두둔이 바늘로 꼬메진채 앉아있다.
신기한듯 걱정하는듯 미진이의 눈을 바라보던 날 의식했는지 서둘러 썬그라스를 쓴다.
"얼마주고 했냐?"
"쌍꺼풀은 얼마 안나가 근데 난 공짜로 했다. 우리 외삼촌이 성형외과 하잖아 예전부터 나 쌍커풀 해준다고 그랬는데 내가 안하고 있었거든, 근데 요즘 남자들이 눈 작은 여자를 여자라고 쳐주냐? 그래서 그냥 해버렸지."
그녀의 외삼촌이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인건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다. 미진이의 말로는 연예인들도 하루에 몇명이나 왔다가는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라고 귀가 따갑게 들었다. 하지만 미진이는 외삼촌의 수술을 받은 모든 이들을 경멸했다. 남들과 똑같이 이뻐지려고 자신에 몸에 칼을대는 여자들이 불쌍하다고. 그런 미진이 역시 눈에 칼을 댄 모습을 보니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절차구나 라는 속상한 생각이 든다.
나는 몇일 뒤 미진이와 함께 그녀의 외삼촌이 하는 성형외과에 찾는다. 모던하고 깔끔하게 되어있는 인테리어가 티비에서 본 성형외과랑 다르지 않다. 미진이 덕분에 예약도 하지 않고, 바로 상담에 들어갔다.
상담은 의외로 친숙하게 이루어졌다. 왜 성형을 하고 싶은지. 성형에 따르는 고통, 부작용, 하지만 성공시에 따르는 자신감..
아는 사람 으로 온 만큼 가격은 역시 절반의 가격에 해준다는 말을 듣고 덜컥 수술날짜를 잡아 버렸다. 내가 정말 성형을 하는건가..남자들 때문에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고민 속에서도 수술 날짜를 핸드폰 D-day에 입력을 하는 나 였다.
d-day .
악세사리를 빼고 옷을 벗는다. 수술대에 눕고,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수술실로 들어간다. 낯선 곳. 낯선 내가 탄생할 곳. 두근.두근. 무섭고 긴장된다. 하지만 가슴 뽑뽑이와 뽕 그라를 사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고, 남자 친구와 잠자리에서 당당한 나늘 떠올린다. 깊은 잠에.. 날카롭게 깍인 칼이 의사의 손에 들려있다. 그 칼은 점점 내 유방에 다가온다. 그리고.. 그어버린다.
나의 낡은 가슴을. 새것으로,당당한 것으로 교체시켜 주기위해 나의 살덩이에 칼을 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