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산우회, 2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2003.10.26-2013.10.19)
2003년 10월 26일, 재경 춘천고 35회 동문들이 건강과 우정을 다지기 위하여 북한산에서 ‘35산우회’ 등반을 시작하였다.
김은식 회장을 비롯하여 이기황 총무, 김승제, 송영근, 용환섭, 최창순 부회장들이 임원진을 구성하였으며, 특별히 남경우, 김수홍 산악대장의 적극적인 참여로 대망의 ‘35산우회’가 출범하였다.
2004년 1월 삼각산(비봉코스) 산행에는 29명이 참여하여 회원들의 연중 안전산행을 위하여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시산제 준비물은 최창순 부회장 부부가 준비하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20년 동안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를 제외하고는 눈이 내리고 비가와도 매달 친구들이 만나서 서울 근교 산행을 꾸준히 하였다.
나는 2004년 4월 춘천친구들과 만나는 삼악산(632m)산행에 처음으로 참석하여 의암댐에서 출발하여 상원사, 흥국사를 거쳐 등선폭포로 하산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2004년 6월 도봉산 산행 날은 인천 사무실 여직원의 결혼 주례를 서는 관계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친구들이 도봉산 산행을 마치고 아우가 경영하는 상계동 추억의 라이브 까페에서 뒷풀이 시간을 가졌는데, 그날이 내 생일(회갑)이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즐겁게 보냈다.
2004년 10월에는 원주 치악산(1288m)의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을 즐기면서 상원사, 남대봉, 향로봉을 거쳐 보문사 쪽으로 하산하였다.
2005년 6월에는 이광웅 회원의 고향인 가평 북면 제령리푸름 유원지로 제1회 야유회를 갔는데 44명이 참석하여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2007년 11월에는 제50차 산행으로 강화도 마니산(정주사 코스)을 특별산행 하였는데 마니산 입구에서 참성단, 함허동천을 거쳐 하산하면서 친구들 모두 보람찬 시간을 가졌다.
2008년 9월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울릉도, 독도여행을 32명이 다녀왔다. 당초에는 금강산 특별산행을 1박2일로 계획하였으나 총격사건으로 인하여 금강산 여행이 전면 중단되는 바람에 울릉도, 독도여행을 가게 되었다. 9월24일 묵호항을 출발하는 쾌속선을 타고 도동항에 도착하여 행남 산책로 및 울릉도 해상 유람선 관광을 하였다. 이튿날은 향토 사료관을 관광한 다음, 독도관광을 위하여 유람선을 타고 독도까지 갔으나 바람이 많이 불어 접안을 못하고 독도 주위만 한 바퀴 돌고 울릉도로 돌아왔다.
셋째 날은 섬 일주 관광과 성인봉(986m)을 등반하였다. 파고가 높아서 울릉도에 배가 들어올 수 없으므로 1박을 더하고 9월 27일 오전에는 봉래폭포를 관광하고 날씨가 좋아져서 오후에 입항하는 쾌속선을 타고 도동항을 출발하여 묵호항에 무사히 돌아와 고속버스 편으로 귀가하였다.
2003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35산우회 산행실적을 점검해보니 월 평균 27명이 참가하였고, 최다 참여회원은 김수홍 산악대장이 97회를 기록하였다. 이기황 총무는 부인과 동반하여 63회를 참여하여 1위를 차지했으며, 산행지는 99회중 북한산이 32회로 제일 많이 등반하였다.
그동안 ‘멋진 친구상’으로 선정된 친구들은 남 경우, 유 영상, 이 기황, 윤 철중, 김 종성, 송 운영, 신 정일, 최 창순, 김 수홍, 전 대석 친구들이다.
35산우회 100회 기념 산행은 2012년 1월 청계산 산행을 한 후, 옛골 산장별관에서 기념식 및 푸짐한 오찬을 하였다. 특별히 박흥수 선배(강원정보 문화진흥원장)가 참석하여 축하시를 낭송해 주셨다. 참석한 회원들에게는 100회 산행기념품으로 등산배낭을 나누어주었다.
2013년 6월에는 10주년 특별산행으로 2박3일 제주도 한라산등반여행을 하였다. 6월2일 47명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제주 올레7코스(외돌개-법한포구)를 걸었다. 6월3일에는 28명이 성판악에서 윗샘 오름 휴게소를 거쳐 한라산 정상(백록담)에 올랐다. 6월4일에는 유람선을 타고 우도 선상에서 돌고래도 보고 오후에 김포공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2012년 3월, 친구들 세 명과 함께 남한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1947m) 백록담을 등반하였다. 그러데 지난봄에 다른 친구와 둘이 지리산 노고단에서 하룻밤 자고 천왕봉을 오르다가 토끼봉에서 쓰러져 헬기를 타고 남원의료원에 내려온 적이 있어 제주도 여행을 신청했다가 취소하는 바람에 참석을 못하여 매우 섭섭하였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나는 20년간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다정한 친구들과 세계 76개국을 여행하고 국내는 도보여행으로 둘레길 1600km를 걸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여행기 ‘스무 해 동안 바깥나들이’를 써보았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글을 친구들이 보고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면서 35산우회에서 격려금과 꽃다발을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우리 친구들 대부분이 팔순을 맞이하는 2013년을 맞이하여 35산우회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의미에서 일본 큐슈 3박4일 여행은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10월 16일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모인 20명의 친구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가 수확여행을 떠나는 가슴 설레는 모습이었다. 제주도에 가는 기분으로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니 날씨도 따뜻하고 소형승용차가 많이 다니는 거리는 복잡하지 않았다.
이튿날 큐슈 올레길 ‘가라쓰 코스’ 11km걷기는 소나무 숲과 바닷가를 걷는 평범한 길로 쉬엄쉬엄 걷기에 편한 길이었다. 첫날과 같이 오늘 저녁도 온천호텔로 친구들 모두 가벼운 옷차림으로 온천욕을 즐기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김은식 회장을 비롯한 고형곤 총무 등 임원들이 깜짝 쇼로 ‘팔순 만세연’잔치를 베풀어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두 아들 내외가 동생들과 함께 지난 단옷날 노원 라이브까페에서 마련한 팔순잔치를 가족들과 조촐하게 보냈는데, 외국에서 친구들과 같이 20년 35회산우회를 마무리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별히 황석희, 김상규 친구가 준비한 하모니카 연주는 친구들 모두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매우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남은여생을 ‘Well Aging! Well Being! Well Dying!’ 하면서 살자고 제의하였다.
다음날은 일본에서 가장 온천이 많은 벳부로 이동하여 지옥순례 중 하나인 가마도 지옥을 돌아보고 저녁에는 히타 미쿠마 온천 호텔에서 여독을 풀었다.
귀국하는 날은 다지이후로 이동하여 오모데산도 거리를 걸은 후, 후쿠오가로 가서 100년이 넘는 카와바타 상점가를 거닐었다. 오후 5시 반에 후쿠오카 공항을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에 일행 20명은 무사히 도착하여 아쉬운 작별을 나누면서 귀가하였다. 이번 35산우회 졸업 여행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고 수고를 많이 한 임원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집에 와서 조용히 생각하니 초창기에 35산우회의 정착과 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한 고 이기황 총무가 생각났다. 내가 2017년 세관 친구와 발칸반도를 여행할 때 부음을 접하였는데, 일산 한 동네에 살면서 가끔 친구내외와 만났으므로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문상을 다녀오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이기황 친구 부인 최 여사와 만나서 정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업무관계로 자주 만났던 용환섭 친구, 몸은 좀 불편하였지만 열심히 산행에 참여하였던 김문웅 친구와 이종국 친구가 생각난다. 2013년 춘천친구들과 미국, 멕시코 칠순여행을 할 때 부음을 접한 목동에 살던 장경국 친구는 재밌는 농담도 잘하는 친구였는데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서울에서 살다가 춘천으로 이사를 가서도 산행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석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송운영 친구가 최근에 유명을 달리한 것은 너무 애석하였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영혼이 천국에서 평안을 누리시길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후반기 35산우회의 발전을 위하여 수고를 많이 하여 준 신성일 총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건강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2015년 재경 춘천고 동창회장을 민원홍 총무의 적극적인 협조로 2년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활성화되고 있는 35산우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014년부터 북한산 둘레길 걷기를 시작으로 8년간 전국 둘레길 3000km를 a걸은 것도 35산우회에 참여하여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인생의 후반기인 2003년 육순에서 2013년 팔순까지 20년간 정든 고향 춘천 친구들의 건강과 우정을 돈독하게 다듬어 준 ‘35산우회’를 나는 영원히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