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간의 기양지맥(2007년 10월 8일 ~ 13일까지)
기양지맥이란 ?
백두대간의 용문산(710m)에서 분기하며 기양산(706m)을 主山으로 동쪽으로 뻗은 도상거리 46km의 작은 산줄기로서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선산읍 원리에서 끝을 맺는 비교적 짧은 산줄기를 말한다.
종주 첫날(2007년 10월 8일,맑음)
구 간: 용문산 새벌산 기도원 -말랑재 - 3번국도 - 원상리재
未知의 세계이고 침묵의 세상이기도 한 기양지맥의 문을 두드리는 날이다. 가로수길 같은 마루금은 오곡 내음 가득한 풍성한 가을바람이 불어주고 사과밭을 지날 때는 진한 사과 향기가 먹어본들 그 향을 다 느끼겠는 가만은 핼쑥한 햇살더미가 땅거미를 만들 때쯤이면 우리 종주꾼은 자연적으로 마음부터 바빠지는 것이다.
경북 상주시 공성면 옥산리 치안센터에서 11:00시 만나기로 했다 約束 시간 전에 만난 우리는 옆 식당에서 좀 이른 점심을 먹고 간식을 준비하여 3번 국도상의 두원역 있는 곳에서 옥계리, 능치리를 거쳐 새벌산 기도원으로 갔다.
다른 곳에 비해 교회건물이 많고 기도원 안내판이 많이 있는 곳을 계속 올라가자 이제는 獨立門 같은 특별한 단체의 아지터 같은 곳을 통과하여 포장된길을 계속 오르자 더 이상 갈수 없는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 용문산을 향해 계곡길을 오르는데 사사봉과 웅북리 가는 이정표가 나무에 걸려있다.
15분 정도 오르니 백두대간 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국수봉(790m)쪽으로 1km정도 운행하자 4차 종주때 걸어둔 나의 시그널이 나를 반긴다. 오후 1시 2분 기양지맥 분기점을 출발하여 설레이는 미지의 지맥길을 가는데 길의 상태도 좋고 날씨 마져 맑고 좋으니 기분조차 좋다.
아래 기도원에서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전망이 있어 보이는 곳에는 바위 제단이 있고 나무로 만든 어설픈 십자가가 2개나 있었으며 磨砂로 된길이 잘 다듬어진 마을 안길과도 같았으며 중간 중간 기도처가 여러 곳 보이며 상수리나무가 가득하고 영오리와 능치리를 잇는 도로를 통과하니 이곳부터는 길도 희미하고 332.4봉 까지 오르는 데는 간벌로 인한 등로가 아주 힘들었고 4시경 도로를 확장하는 여남재를 내려오는 절개지는 미끄럽기도 하지만 공사의 규모도 대단함을 느꼈다.
5시 41분 상주시 공성면 이화리 쪽은 2차선 포장이 되어있고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쪽은 아직 비포장 옛길 그대로 였으나 소형차량 통행은 가능할 것 같았다.
확실치 않는 등산로이지만 무덤 덕으로 편안한 길 많이 이용했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키고 곪은 대추가 3년 간다고 하더니 만은 남의 무덤 남의 산소가 이렇게 우리에게 도움 줄 줄이야 정말 몰랐다.
그래서 나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느끼지 못 하는 최선은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걱정 하는 것도 정신건강은 물론 육체건강에도 좋지 않을 것이란 걸 생각 하며 종주 첫날을 장식했다.
종주 2일째(2007년 10월 9일. 맑음)
즐거운 휴식
구 간 : 원상리-백운산(629.8m)-68번도로-기양산(706.8m)- 수선산(683,6m)-밖이실마을
백두대간 종주시 세 번이나 묵었던 이화장모텔(공성면 옥산리 3번국도옆)에 들었다. 물은 生命의 根源으로서 우리 인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必需不可缺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라 본다. 전문지식은 없으나 중금속이 물에 녹아 있을 땐 끓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쓰레기나 오염물질을 함부로 버리거나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산에 다니면서도 계곡수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없으니 한심한 노릇 아닌가.!
쓰레기나 오물이 깊은 산속에서도 있는 것을 볼 때는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습관이란 생리적 본능이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해 주며 정신적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잘못된 습관은 고치도록 노력 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며 후손을 위한 財産增殖과도 같은 것이라 본다.
걷는다는 것은 신체 활동 중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이며 원초적인 욕구이기도 한 것이다.
백운산 정상에 오르니 9시 20분이다. 약 2시간 거리다.
육산임에도 造林한 흔적이 전혀 없는 버려진 땅 같았다. 뚜렷한 길은 없지만 산에 지천인 밤을 주어 먹으면서 정상에 오르니 울산의 락락장송, 오상오 김영오씨등 의 시그널이 보인다. 정상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으나 스프링 올가미 2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먼저 다녀간 시그널 주인공들이 높이 평가되기도 하는 瞬間이다. 그 후 3개의 봉우리를 더 넘으니 사방 眺望이 잘 되는 바위봉에 오르니 공성면 옥산리 (면 소재지)가 잘 보이며 그 뒤 백두대간이 뻗어있는 국수봉과 그 능선이 힘차게 꿈틀 거리는 것 같았다.
358.2봉의 삼각점은 딸기나무 숲속에 깊이 숨어 있었다.
11시 25분 68번 도로를 통과한다. 오른쪽은 구미시 무을면이고 왼쪽은 상주시 공성면이다. 논두렁길을 타고 오르니 대봉 감 과수원이다. 그 위엔 저수지가 있는데 왼쪽 뚝길로 오르다 무덤에서 점심을 먹고 오르니 정원수 묘목장이 나오는데 주변 울타리 철사줄에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아무런 까닭을 모르겠다. 그 위 논가에선 8순이 넘어 보이는 老夫婦가 농사일을 하다 참을 들고 계셨다. 경사가 아주 심한 곳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니 드디어 이번 지맥의 主山인 기양산에 올랐다. 공성면 청리면과 구미시 무을면의 경계를 이룬 산이다. 황악산(1111.4m)을 오르고 내려 다시 추풍령을 건넌 백두대간이 용문산을 지나 해발 763m의 국수봉에 이르러 서쪽으론 백운산을 이루고 다시 북으로 방향을 바꾼 산줄기는 백두대간과 평행을 이루는 기양산, 수선산. 갑장산(806m)을 솟구치고 병풍산을 마지막으로 낙동강에 잠기는 맞은편의 대간보다 더 높은 산줄기를 빚어 놓았다. 기양산이 자리한 상주시는 예로부터 삼백(쌀, 고치, 곳감)의 고장으로 낙양으로도 불리었다 칠백리 물길을 자랑하는 낙동강이란 이름도 낙양(상주)의 동녘을 흐르는 강이란 의미로 명명되었으며 경상도의 지명도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어졌으며 옛날부터 영남땅에서 매우 중요한 고을 이었다. 이 지역에선 조양산(朝陽山)으로 더 알려진 진산이다. 이 산의 특징은 산세가 부드러우며 아기자기한 백두대간을 조망할 수 있어 좋고 아래 마공리일대는 지명유래와 걸맞게 한진중공업에서 (1995~2001) 2,000억원의 事業費를 투자하여 40만평의 청리지방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곳 사과는 1927년부터 식재되었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사과 밭이다, 봄철엔 사과꽃향기, 가을엔 사과 향기가 그윽하고 진달래 산행도 겸할 수 있는 산이 기양산이다, 수선산은 이름 그대로 정수리의 산세가 너무 순해서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바위 슬랩을 지나 약간의 기대를 가졌으나 아무런 표지도 없어 서운 했으나 그래도 많은 산꾼이 찾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짙은 수림으로 視界를 가질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산을 통해서 보이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실이 새로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할 때도 있지만 간혹 꿈같은 자유로움과 幸福을 느낄 때도 있는 법이다,
산을 간다는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 철학적인사고를 키울 줄도 알고 새로운 시야를 갖는다는 그 자체가 또 다른 한 분야의 개척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일찍이 퇴계 이황은 산을 오른다는 것은 글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산은 하늘과 가까워 하늘의 소리를 듣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찾은 산이 수선산 이다, 풀숲에 꼭꼭 숨어 있는 삼각점(304 재설 78,10 건설부)을 찾아보고 밖이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엔 밤이 많이도 떨어져 있어 저녁에 삶아 먹기도 했으며 즐거운 산행을 마쳤다.
종주 3일째 (2007년 10월 10일 맑음)
한포기의 구절초
낙동강 건너 지나온 지맥능선
합수지점
구간 : 밖이실 마을 -916도로 _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 터널 -주아현-형제봉 -보현사
들깨를 수확하고 있는 밭가에 차를 주차하고 어두운 골목길같은 숲을 찾아 이슬을 털어가며 운행 1시간 만에 포장도로 끝인 낙동면 골마 뒷등6거리에 도착 간식을 먹고 쉬어 갔다.
지맥길 바로 옆에 농로가 나 있으나 원칙을 고수하는 박성태님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억지로 가시 잡목을 헤치며 20여분 가니 916 도로다, 다시 급경사 절개지를 어프로치 하여 올랐다. 이번엔 10여분 운행하니 다시 도로다. 바로 고속도로 터널 위를 지나고 있었다. 주변엔 감나무가 지천이고 열리기도 많이 열려 가지가 부러 질듯 한 나무가 대부분이다.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이고 감 또한 너무 많다.
409봉에 9시 40분통과 했다. 아래 수원 백씨 무덤 부터는 길이 아주 험하고 딸기나무 및 산초나무가 어찌나 많은지 사람 다닌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젖소 放牧場으로 들어가 한참을 돌아 나왔다. 비닐 하우스인줄 알았더니 그곳이 전부 畜舍였다, 상당히 큰 규모다.
11시 20분 주아현을 통과 했다 직전 큰 건물이 있었는데 (옥성 감 영농조합법인 곶감생산단지) 준공한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 뒤 산언덕엔 산수유를 많이 심었는데 작황이 별로였다, 길 가엔 효성가든(오리 전문점)이 있었고 차량 통행은 많지 않았다,
도로를 건너니 무덤 옆에 당산나무 인 덧 한 상수리나무가 아주 크고 오래 동안 보살핌을 받아온 나무 같았다.
10여분 오르니 깬 자갈이 잘 깔려있는 상태 좋은 임도가 있어 그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올랐다. 11시 46분이다. 1시간 정도 더 가니 형제봉(531.7m)이다. 대 삼각점을 보고 건너다보이는 문수지맥과 보현지맥의 망경산과 청화산 비봉산 앞의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갈등고개엔 1시 33분 통과 하며 비포장 임도이며 이정표가 있었다. 437봉 직전엔 통나무 의자 및 평상과 간단한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조금 지나 길의 흔적은 있으나 사람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곳을 내려가니 개 사육장과 몇 마리의 소와 오리들을 키우는 농장 안으로 들어가 보현사 뒷문으로 해서 오늘의 산행을 마쳤다.
우리 산을 좋아하는 산꾼 부터라도 우리의 生命을 지켜주는 산과 나무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에겐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고산 등반이나 수백m의 지하 막장 같은 데를 들어 가본적은 없지만 산소 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거나 사경을 헤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공기의 중요성은 간접적으로 많이 느껴본 사실이다.
평소 우리는 조국의 고마움이나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니 국가 차원에서 교육을 통하여 국가관을 확실히 심어 줘야 할 것이고 산에는 나무를 잘 기꾸어 지구의 온난화를 최대한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빈번한 폭우와 빙산의 붕괴로 우리 지구에 대 재앙의 위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 하면서도 물 한바가지 아낄 줄 모르고 나무 한그루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질 줄 모르니 어떨땐 답답하기도 하거니와 정부의 산림행정에 대한 불만도 많다.
백두대간 종주길을 보호란 명목하에 무조건 막는 것도 불합리하다 할 수 있다, 차라리 대국민 교육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법과 물 같은 자연을 아끼며 보호하는 법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산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황홀한 선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보석은 귀중품으로 여기지만 공기는 무진장 하여서 귀중품에 안 들어간다. 그러나 보석은 없어도 살지만 공기는 10분만 없어도 우리는 못 산다, 우리가 언제 물을 돈을 주고사서 마시리라 생각 했던가. 지금은 시골에 가서도 돈을 안주면 물도 못 가져가게 한다.
어떠한 산행이라 할지라도 산에 오른다는 것은 땀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 다음에 즐거움이 따라 오는 것이다.
산의 초록을 오랫동안 지켜보기 위해서는 산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할 수 있다
요사이의 바汰?에어컨 바람도 있고 인스턴트 바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두고 산의 맛을 느낄 줄 아는 척도가 될 것이라 본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다, 에베레스트(8848m)의 정상을 향해 하루에 100여 명씩 시도한다는데 과연 몇%나 성공을 하는지 모르지만 이세상의 모든 제품이 유통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결정지어야 한다고 한 다 그래서 나는 80세까지로 보는데 그리하면 아직 17년은 남은 셈이니 열심히 살아 보련다.
종주 4일째(2007년 10월 11일 맑음)
보현산 보현사
선산의 낙남루
구간 : 밖이실마을 - 안이실마을 - 수선산 - 돌티(912도로)- 갑장산(805.7m) -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굴티(916도로)
안이실 마을에서 무덤가는 길로 바로치고 오르니 수선산 정상이다, 안이실 마을은 생긴지 400년이 넘는다고 하나 몇 가구 되지는 않지만 뭘 어떻게 하여 생계를 꾸려 가는지 의문 서럽다. 옛날에는 많은 농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 묵은 전답이 상당히 많았다. 8시 37분 돌티고개를 통과 청리면과 낙동면 계를 따라 올랐다.484.6봉이며 420 재설 78.9 건설부 삼각점이 있는 곳은 멧돼지의 아지터 인거 같다.
다른 지역엔 많은 造林地가 있었지만 이곳은 전혀 조림을 한 흔적이 없다. 이렇게 좋은 토질과 좋은 조건임에도 그동안 산이 헐벗지 않았기에 그 필요성을 못 느껴 그런 모양이다. 밤이 너무 많아 그냥 지나치지 못 하겠다. 배낭을 내리고 잠깐 주은것이 잡낭에 가득하다, 그 운반은 김태영씨가 맡았다. 마주보고 있는 석문 2개를 지나니 평지길이 나오고 정산도 토산이며 굵은 나무가 많았고 좌우사방 전망이 아주 좋다.
11시 47분 갑장산 정상에 도착 산불감시초소와 안테나 및 작은 돌탑(케론)이 있으며 태양열 발전 시설과 상주 22 1981 복구 삼각점이 있으며 상주의 영봉 갑장산이란 정상석이 있었다. 甲長山은 일명 淵岳이라 부르는 상주의 安山이다.
상주의 남쪽에 의연히 솟아 서쪽의 노음산(露岳)
북쪽의 천봉산(石岳)과 더불어 상주의 삼악을 이룬다. 산의 높이는 805.7m로 三岳중에 제일 높다. 정상은 상주사람의 순후한 인심을 대변하듯 뾰족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둥글다.
문필봉과 백길바위, 나옹바위등 기암 절벽과 용지(龍池)터는 저마다의 전설을 간직하고 상주 四長寺중 갑장사가 있고 승장사는 廢寺되었다.갑장이란 산 이름은 고려 충렬왕이 붙인거라전하고 연악은 구룡연이란 샘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가뭄 때 祈雨祭를 지내면 비가오고 부정한 埋葬을 하면 가뭄이 들었다는 영산이요 상주 문학의 요람(搖籃)이다.
폐타이어가 많이 쌓여있는 곳으로 내려오니 고속도로 공사 현장이며 왼쪽으로 100여m내려가니 지하 통로가 있었다. 맞은편엔 주식회사 거산(석산)이 푸른 사과를 한입 베어먹은것 같은 산이 아픔을 호소하는듯 했다.
단체로 산행을 하게 되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산에서는 언제나 외로운 것이다. 결국 모든 행위를 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산쟁이는 항상 외로운 몸이다, 별 유명하지도 않는 산을 야영장비까지 묵직하게 짊어지고 들어가는 그 모습이 바로 외로움의 무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정면으로 맛서기 위해 혹독하게 산으로 밀어 넣는 것이 나의 산행방식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지맥이랍시고 길도 없는 산줄기를 비집고 들어 갈려니 빽빽한 원시림과 잡목은 마지못해 틈을 내어 주는듯하지만 곧 큰나무 하나가 가로누워 길을 막고 있을 떼 억지로 넘으려 하지말고 쉬어가기라도 해보라.
진행하려면 장애물이지만 쉬어 갈려고 든다면 쉼터가 될것이니라.
이런 경우를 두고 역적도 아군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인가 본다.
종주 5일째(2007년 10월 12일 맑음)
갑장산
갑장산에오른 진짜 갑장
구간 : 보현사- 보현산(신산) - 59번도로-원리 (서원)-(감천과 낙동강의 합수지점)
이제우리의 산악 문화도 산재되어 있는 정복과 개발 성장도 좋지만 지구의 溫暖化를 걱정하고 해결책을 찾는 자연의 무한한 신비를 섬기고 조화를 이루는 생태적 전환의 山岳文化가 절실한 때이다.
산정에서의 깨끗한 바람은 세속에서 얼룩진 모든 악습을 청정샤워기로 깨끗이 씻어낸 느낌이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숨을 내쉴 때는 몸속의 모든 세포의 구멍이 활짝 열려 맑은 기운이 충만해 진다고 보아진다.
산에서의 땀은 바로 補藥이다.
산에 있으면 마음도 안정되고 그리하다 보면 우리 인간도 자연 친화적인 동물로 바뀌어 질 것이다.
보현사 뒤뜰에 있는 감나무에 홍시가 많이 달려 있어 한개 씩 따먹으며 개 사육장으로 들어가니 짖어대는 개 소리에 정신이 없지만 악취가 대단하여 숨쉬기가 곤란하다.
主人의 양해로 올라가는데 모싯대와 칡넝쿨및 가시잡목을 30여분 헤치고 오르는 그것은 巡禮者의 苦痛 그것이었다.
딸기나무 및 찔레나무 넝쿨터널을 몇 번이고 기어서 통과하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구부려서 가기를 수차례 435.9봉을 오르니 글자를 알아볼 수없는 소삼각점을 찾아내고 7시 50분 통과했다. 지도에는 신산으로 되어있고 아래 절에서는 보현산이라고 부르고 있다..이제 소나무 길이라 길이 아주 좋다.
왼쪽으로 낙동강의 푸른물과 하얀 백사장이 보이고 우측엔 보현사가 계곡사이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9시 59분 도로에 내려왔다. 우측 아래엔 청솔가든이 있고 그위엔 상수도 외각배수지지가 있으며 왼쪽엔 축사가 마루금을 지키고 있었다 길 건너엔 국도 확장공사가 한창이며 절개지가 대단하여 낙동정맥 종주시 애매랑재를 연상케 한다, 비록 작은 줄기지만 절개지를 오를려니 우측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무덤 있는 곳을 바로 치고 오르는데 그야말로 힘이 드는 최악의 코스였다 딸기나무하며 산초나무가 숲을 이루니 그 고통이야말로 표현키 어렵다. 오르막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내리막은 소나무 숲길이라 길이 좋아 쉬어가기도 했다.
청색 휀스망에다 그물까지 이중으로 된 울타리를 따라 한동
안 따라 간다(오리나 닭 방목장 같다) 211봉엔 지적 삼각점이 개
인호 옆에 가끼스로 묻혀 있다. 내려오는길엔 X평X씨 무덤이 망주
석과 석물로 무덤까지 잘 해 놓았으나 이젠 찾아 보지도 않는지 풀
이 우수수 해 보기가 민망스럽다.
흰터고개로 내려오면 아래엔 축사가 있었고 건너 오르는곳엔 一善
김씨 무덤이 있었으며 무덤들이 연이어 있어 길이 좋다.
원님덕에 나팔분다고 무덤때문에 우리 종주자가 큰 덕을 보게된다.
봉화터인 169.1봉 정상엔 구미 302 2003 복구의 삼각점이 있으며
경주 노씨 무덤바로 뒤에 별도로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직
경 50여m로 토석혼합성이었다.
소나무 사이로 낙동강물이 보이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감천줄기도
보이기 시작한다. 1시 30분 사실상 기양지맥의 산줄기종주는 끝내
고 내려오는 끝지점 우측엔 트랙터가 풀숲에 버려져 있었다.
가을 김장 농사가 한창이고 잔디재배지를 지나니 갈아 놓은 밭이
기계화가 아니면 도저히 경작 할수 없을것 같았다.
합수점엔 갈대때문에 갈수가 없어 옆에서 눈으로 훑어 보았다.
감천물이 빠르게 흐르는것이 상당히 맑아 보인다.돌아 오는길에 독
동의 반송(천연 기념물357호)도 보고왔다.
종주 6일째 (2007년 10월 13일 맑음)
구간 :굴티고개-523.7봉-여주,구미 고속도로-25번국도-성골고개-
병풍산-승천원
작은 산줄기들이 여인네의 옷자락 마냥 너울 거리는거 같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두둥실 떠있는 그 아래 푸
른 낙동강과 은빛 모래가 청 하늘을 바쳐 주지만 視界는 별로다.
100번을 따라하는 등산 보다는 1번이라도 나의 산을 만들어가는 등
산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준비 없이 가는 산행은 아무것도 남는것
이 없지만 사전계획에 지도 공부와 史料를 찾아 미리 공부를 해 두
면 일석 이조요 금상첨화라 할수있는산행이 될것이며 다녀온 후에
도 많은 정리가 될것이다.
산에 대한 욕망과 갈구가 관심을 배가시키고 그 힘에의해 공부도
하게 되며 그 이론을 바탕으로불 필요한 위험도 줄이고 좀더 높은
차원의 등산을 하게됨과 아울러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어떠한 사
명감 마져 들게하는 그런 나를 가끔식 발견하게 되어진다.
일손을 놓고 백수의 길에 접어들자 삶의 둘레에 두꺼운 커텐이라도
내린듯 밖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자꾸만 멀어진다.
事業을 정리한 나는 내 인생의 行路에서 잠시 쉬어 간다고 생각 했
었지만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쉬는것이 아니고 자꾸만 뒷 걸음질
하고 있는 느낌이다,
희망의 充電이 되길 바라는 나는 자꾸만 좌절을 느끼는게 사실이
다. 희망을 갖고 행복을 느끼면서 어느 한곳을 바라보고 질주 해야
했는데 그 한곳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으며 찾고자하는 힘도
줄어드니 능력의 한계와 하고져하는 의욕이 자꾸만 상실해 자포자
기하려는 나 자신이 보여질때 스스로 놀래기도 했다.
아직 늙지 않았는데 , 아직 힘이 있는데 하면서도 나자신을 의식
하면서 몸부림 쳐 보기도 한다.
상산김씨 문중 묘원을 지난다. 하나같이 비석이 서 있는 대단한 묘
지다. 523,7봉은 백원산이라 소개되어있다.한시간 거리다.
삼각점은 솟아있는 기둥 삼각점이다. 496봉인 바위봉은 상주시의
북쪽부분이 조금 보이고 넓은 들판의 황금 물결이 눈을 부시게 한
다. 뒤 돌아본 甲長山은 가스에 덮여 신기루처럼 어렴풋이 보인다.
9시경 상수리나무 밀림지대를 지난다. 굵기도 하고 높게 잘 자라
고 있다. 유달스레 많은 산초나무와 칡 넝쿨이 가는길을 방해 한다.
온 몸이 가시에 찔려 쓰라린다. 가시 잡목을 헤치면서 이쪽 저쪽을
살펴가며 낮은 안부를 지나니 순천 김씨 무덤에 잔디가 너무 좋아
쉬어 가기로 했다.10시 50분 조그마한 봉우리를 오르자 고속도로와
국도의 차소리가 요란하다,왼쪽으로 내려가니 기와 공장이고 도로
를 따라지하 차도를 건너 성골고개성동리 마을 입구 대밭길을 오른
다. 병풍산 오르는 무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11시 55분 출발, 아
주 힘겹게 어려운길을 만들어가며 오른다.
정상은 무덤이 자리하고 그뒤 1980 복구 상주 21의 삼각점이 있으
며 12시 30분 도착 했다. 합수점이 다 되어 가는곳엔 경주이씨와
달성 서씨의 무덤이 있는 길이 좋은곳으로 안전 운행한다. 승천원
추모시설이 있는 병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2시 20분
기양 갑장지맥을 무사히 마쳤다.
대원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강산.
ㅆ
첫댓글 기양지맥 잘 봤습니다. 길도 없을텐데 .... 늦잠잘때 한번씩 가봐야겠습니다.
중간 중간 힘드는곳이 있긴 해도 좋았습니다, 원래 지맥이란 그런 재미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