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시절로 돌아가...

[봉샘]

내가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은 38선 이북 경기도 연천의 백의초등학교였다.

부푼 교사의 꿈을 안고 광명의 집을 떠나 3시간을 지하철타고 기차타고 버스타고 가니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는지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6학급의 조그마한 학교. 6학년 담임을 맡았다. 28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들과 지낼 시간이 아득하기만 하였다.

며칠 지나고 나니 전곡읍내의 장날, 출장을 가야한다고 해서 읍내로 나오니 우리반 박**의 어머님이 아는 척을 하신다.

무언갈 주머니속에 쑥 넣어주신다.

보니 만원짜리 돈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저녁에 대학시절부터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걸 촌지라고 해야 하는지.. 그 어머닌 차비하라고 하시던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벌벌 떨며 이야기했다.

" 니가 학교다니며 고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봐라. 나는 내 친구가 참교사로 고민했던 그 시절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한달도 채 되지않아 고민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네 신념이 이것으로 무너질 정도였느냐."

이렇게 말하면서 네가 결정해서 하라고 했었다.

네 양심이 네 신념이 이 돈으로 바꿔질 것이라면 난 집을 열채를 주면 바꾸라고 하고 싶다. 이렇게 말이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통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교사들은 아이들의 저금을 받아 은행에 대신 넣어주곤 했었고 난 만원을 그 통장에 다시 넣어주었다.

어머님께는 따로 연락을 드렸다.  이후로 지금껏 촌지가 들어오는 경우(? 지난 시절에는 있었다)에 아주 단호했었다.

체벌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아이들은 너무도 날 잘 따랐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느날 내게 무언갈 가지고 왔다.

선생님이 때려주지 않으니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우스운데 그 땐 그랬다. 몽둥이였다. 때려주어야 애들이 말을 듣는 다는 것인데 참 난감했다. 때려서 말을 듣는것은 짐승이나 하는 거지 사람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야길 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맞아야 한다 했다. 그래서 매를 들었다. 매는 한번 들기가 어려운 것이었지 두번이 세번되고 반복될 수록 더 강하고 잦아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몇대를 맞을 것이냐 맞으면 고칠 수 있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주로 엉덩이를 때렸는데 엉덩이는 맞으면 멍이 잘 들었다. 힘도 좋았던 젊은 시절이라 있는 힘껏 때리면 엉덩이에 퍼런 줄이 쫙 그려졌다. 물파스를 사서 발라주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이야기도 하고.......

어느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에게 진지하게 몽둥이 화형식을 하자고 했다. 난 몽둥이를 불태우고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을 자제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매를 대고 싶을 때가 있지만 참을 수 있다. 다행이다. 내 아이들을 키우며 매를 대는 것이 결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때문에 지금도 그 때의 화형식이 의미있었다.

내 첫 스승의 날엔 선물이 많았다. 그 땐 그것이 관례였다.

28명의 아이들 중 거의 대부분이 무언갈 가지고 왔었다. 시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군부대가 있었던 곳이라 군인자녀들이 많아서 더 그런 문화가 익숙했었던 것 같다.

주로 속옷 종류였는데 젊은 여교사여서인지 레이스가 달린 이쁜 것, 스타킹, 손수건과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다. 지금은 차가 있어서 집으로 올 때 빈손으로 올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쇼핑가방을 들고 오는 것이 너무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풀어보지도 못하고 어색해하며 교실 한 켠 서랍에 넣어두고 집으로 왔다.

다음날 아침 학교로 가서 기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교실 문을 열어보니(그때도 나는 제일 일찍 출근을 했었다.) 책상위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속옷이 모두 나와 널부러져 있었다. 팬티, 런닝, 속치마...스타킹....... 헉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학교에 부모가 없는 삼남매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그게 무척 궁금했었나보다. 그 안에 돈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 다 털었던 것이었다. 교실 마다 가보니 우리 교실 한 켠에서 선물더미가 나온 것이었다.

얼마나 난감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 이후 나는 선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내 초임시절은 이랬다. 지금의 나는 지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즐겁고 좋았던 기억도, 행복했던 기억도 있었다.

3년전 담임이었던 아이가 지금 5학년이 되었다. 스승의 날이 되면 항상 메일을 보낸다. 3학년 때, 4학년 때, 그리고 어제..

편지를 보면 자라는 것이 보인다. 서투른 편지에서 이젠 제법 멋진 글을 써서 보낸다. 기특하고 기쁘다.

오늘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돌침대도 받고, 이뻐지는 볼터치도 받고 보석도 받고, 치마도 받고(바지만 입어서.).. 이쁘다고도 하고 단정하고 친절하다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주신다고도 하고.. 상장도 받았다. 감사하고 행복했다.

나와 함게 했던 지난 아이들에게 가끔 한봉순 표라고 하곤 했다. 한봉순이 명품이니 너희들도 명품 브랜드라고 자화자찬을 한다. 너희들은 명품으로 자라야 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한 해를 마치곤 했었다.

오늘도 명품브랜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신나고 즐겁게 노래하고 공부하고 노는 아이들...

모두가 이쁘다.

[윤지원맘]

선생님! 선생님의 초임시절, 백의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추억해주시듯이 후에 우리 하안북초등학교 1학년 1반 아이들 한 아이, 한 아이 빠짐없이 모두 명품 아이들로 꼬옥~ 기억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ㅎㅎ

[호정맘★]

읽을수록 빠져드는거 같애요~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