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힘들라 칠때 떠오르는 얼굴.
그것은 다름아닌 돌아가신 우리 어머님 얼굴이다.
언제나 인자하신 모습으로 대해주시고,,,
말단 공무원이라도 국가의 녹을 먹는놈이라고 흐믓해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
때는 바야흐르 우리가 첫 휴가를 나올때 였단 말씀이다.
83년도 6월 초순에 우리는 벽돌짝 하나를 더 쌓고는 자랑스럽게 진급휴가(저 ~ 기 포항에서
박박 기던넘들 하고, 저 ~ 어기 섬나라에서 근무한 넘들은 잘 모른다, 오직 서부전선을 지키던 우리만 안다)를 나오던 때의 야그다....
자랑스레 검은 바탕에 두개가 된 노오란 벽돌짝을 붙이고, 청룡버스를 타고 영등포 역전에 내린 우리는 그대로 소주집에 들어가서는 왕대포 한잔씩을 하고는 헤어진다.
(일부는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부근을 어슬렁 거렸음)
그리고 나는 전철을 타고는 꿈에 그리던 고향땅 부천으로 간다...
아! 어머님...(휴가 얼마전에도 면회를 하였는데도 그리 보고 싶은지)
하정복을 입고, 우체부 모자(우리 엄니 표현)를 쓰고 부모님께 "필 ~~~~ 승"
그 이후로는 대개의 기합빠진 어디 넘들의 경우와 같음(생략)
면회시 꼬부쳐 보낸 작업복을 멋있게 입고 다는것은 좋기는 하였는데...
아 글씨 팔각모를 쓰지 않고 다니는 불상사가 일어났는데...(미쳐 챙기지 못하였음)
그 모습을 우리 엄니가 보셨는지 우리 엄니께서 하시는 말씀 "아 그넘의 개병대가 모자도 안쓰고 다니냐?"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없는것을 어찌 합니까.
휴가중 반을 보낸시점에서(보름휴가 였음)술에 꼴아서 집에 새벽에 들어가서 자고 일어났더니만 글씨 내앞에 그 팔각모가 놓여져 있더란 말씀입니다. 그려....
그것도 자랑스런 팔각모에 벽돌이 석장 붙어서리... (써보니 딱맞기도 하구요)
우리 엄니 께서 아들이 맨머리에 돌아다니는것을 보고는 김포 마송에 직접 가셔서리 팔각모를 사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계급장을 붙여서리...
아! 우리 보고싶은 엄니...
다시는 개병대에 아들을 보내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던 우리 엄니(실제로 83년 초 오리정 예비대에서 면회중에 구타사고로 467기가 사망하였음)
그덕에 내 동생넘은 2주 받고 민방위가 되었지마는...
지금도 팔각모를 멋있게 쓰고 다니는 해병을 보면 문득 우리 엄니가 생각이 남니다...
살아계실때 좀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아직 어머니가 계신 동기들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해병이 되길 바란다...
돌아가심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