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남시계종주(오리역 원점회귀 산행) ★
1. 언제 : 2008년 3월 8일(토) ~9(일)(토요무박)
2. 어디를 : 성남시계 종주(바라산~우담산~인릉산~남한산~검단산~영장산~불곡산)
3. 누구와 : 서선주님, 신은희님, 어울림
4. 산행코스 및 거리 오리역→성심원공원→271봉→바라산→우담산→하오고개→청계산→옛골→인릉산→새말→복정역→육군행정학교→창말→ 남문→→검단산→영장산→태재→불곡산→오리역 GPS 약 68KM
5. 소요시간 : 23시간 20분(3월 8일(토) 13:15 ~ 3월 9일(일) 12:35))
6. 날씨 : 맑음
7. 산행흔적(구글)
◎ 성남시계 정보
1. 성남시계란? 성남시는 서울시, 광주시, 하남시, 용인시, 의왕시, 과천시 등 수도권 6개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성남시계는 이러한 시경계를 산행함을 의미한다. 시계 산행이라고 해서 단순히 시경계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 시경계를 약간 벗어나더라도 주변 산줄기를 이어서 산행을 하면 좀더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산행코스 및 도상거리
* 도상거리표(맵센드 기준)
* GPS 거리 : 약 68KM
3. 참조 지형도
수원(도엽번호 NJ52-9-19)
4. 지도
1) 구글어스
2) 맵센드
5. 고도표
◎ 산행후기
성남시계 종주, 이번이 두번째이다. 왜 서울시계가 아니고 성남시계일까? 이왕이면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시계를 하면 더 좋을 터인데....
그렇다. 서울시계를 하려고 날을 잡아놓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산행을 하지 못하였다. 서울시계는 거리가 약 200km 정도 되기 때문에 날짜 선정 문제(무박 80시간 예상), 체력단련 문제 등 많은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머지 않아 산행을 할 예정이지만 그리 만만한 코스는 결코 아니다.
며칠 전까지 쌀쌀했던 날씨가 봄기운을 가득 안고 주변에서 서성인다. 부푼 마음 안고 성남시계 만남의 장소인 오리역으로 향한다.
* 梧里역 유래
원래는 세분이 산행을 신청하였는데 정경용님이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산행을 취소하여 서선주님, 신은희님과 더불어 셋이서 오붓한 산행을 즐겨야 할 것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배를 채우고 나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분당의 터�대감인 서선주님의 안내로 오리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생태탕 집으로 들어선다.
<생태탕과 라면사리>
냄비에 가득한 생태탕을 보니 맛은 그렇다 치고 넘 많은 양에 화들짝 놀랜다. 이걸 어케 다먹어~~~
그러나 그것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냄비의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더해 라면사리에 소주 1병까지 .... 요즈음에는 뒷풀이를 먼저하고 산행을 하는지 원???
아무튼 고프지 않은 배를 억지로 채우고 나서 오후 1시 15분에 밖으로 나오니 따뜻한 봄 햇살이 멀리서 아지랑이를 피우며 우리를 유혹한다.
<낙생교>
우리는 낙생교 밑으로 내려가서 동막천을 따라 에쓰오일까지 진행한 후 에쓰오일에서 다시 도로로 올라와 동천과 동막천이 갈린 지점에서 동천 방향으로 약 500미터 정도 더 진행하니 성심원 초등학교가 보인다. 대충 산줄기 모양을 보아하니 초등학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성남시계 왼쪽 산줄기와 만날 것 같다.
이전 성남시계 산행시는 시경계를 그대로 따라서 산행을 했기에 오리역에서 바라고개까지 약 10km를 아스발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진행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경계를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주변 산줄기를 이어보기로 작정하였고, 그래서 성남시계에서 왼쪽(서남쪽) 산줄기를 따라서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성심원 초등학교를 지나니 잘 단장된 성심원공원이 우리를 반긴다.
<성심원 공원>
봄을 맞느라 여념이 없는 공원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공원 왼쪽 산줄기를 따라서 진행한다.
고도가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봄의 따사로운 햇살은 우리의 이마에 연신 땀방울을 선물로 안긴다.
<낙생저수지>
271봉에 도달하자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서 낙생저수지가 푸른 빛을 선사한다.
초행길이지만 별 어려움 없이 대장동 마을 삼거리에 도착한다.
대장동 마을 삼거리에서 다시 왼쪽 산줄기를 따라서 바라산까지 가기로 한다.
이전 산줄기보다는 약간 경사도가 있지만 산들산들 불어주는 봄바람과 함께 데이트를 하다보니
어느덧 바라산 정상이다.
<바라산 정상표지판>
바라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바라고개로 급경사길을 내려선다.
바라고개를 지나 오후 4시 10분 경에 우담산에 도착한다.
우담산!
우담산은 5만 지형도에는 없는 명칭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담산'이라는 표지판을 설치해 놓았다.
그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다.
우담산 전 봉우리가 바라산(428)이고, 우담산의 고도는 424미터로 바라산과 거의 비슷하다.
이 두산의 명칭을 합하면 불가에서 3천년마다 핀다는 전설의 꽃인 우담바라(優曇婆羅)로
통칭될 수 있고, 두산의 전체적인 모양이 우담바라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붙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담산에서 잠시 휴식후 하오고개로 향한다.
하오고개로 내려가는 길 중 이번에는 367.1봉에서 오른쪽으로 5미터 전방에 있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구도로에서 바라본 하오고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서녁하늘의 햇님을 바라보며 성남시계중 가장 힘든 코스인
청계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국사봉>
평상시 오가는 산행객으로 붐비던 국사봉이 오늘은 약간 늦은시각이어서인지 몰라도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 후 쓸쓸함이 묻어나는 국사봉을 뒤로 하고 이수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돌린다.
맑은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서녘 하늘은 짙은 안개로 인하여 해넘이가 두루뭉실 넘어가고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이수봉에 도착한다.
이수봉의 유래는
조선시대 연산군때 유학자인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예견하고 이 산에 은거하여
생명의 위기를 두번이나 넘겼다 하여 二壽峰이라 하였단다.
어두움과 적막은 우리를 이 산에 가두려고 하고
우리는 이러한 우리를 벗어나기 위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금까지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는 주로 왼쪽으로 우회하였는데 오늘은 오른쪽으로 우회해 보기로 한다.
항시 모험은 우리에 스릴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고, 미지의 세계는 우리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달콤한 선물 이면에는 어려움 극복이라는 고난이 뒤따른다.
어둠의 적막을 깨고 군부대 철문을 통과하여 등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는데 길이 없어지고 만다.
이곳저곳 면밀히 찾아보지만 길을 찾을 수 없다. 길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개구멍을 찾아야 한다.
이중으로 된 철조망을 조심스럽게 통과하지만 철조망이 그냥 보낼 리 없다.
베낭과 옷 이곳저곳을 붙잡은 채로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철조망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본다 한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군부대 철조망을 지나 오후 7시 25분 경에 매봉에 도착한다.
<매봉>
"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위에 항시 푸른하늘 우러렀으메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 유치환님의 시 행복중에서 -
<매봉에서 바라본 과천시 야경>
서선주님은 매봉 정상석의 넘 좋은 글귀에 넋을 잃고
과천의 현란한 야경은 시심에 운치를 더해준다.
<귀래원>
1구간의 여정을 뒤로 하고 오후 8시 20분 경에 옛골에 도착한다.
이전 답사때, 그리고 수달사 '동그랑땡' 산행시 들렀던 '귀래원'이라는 음식점에 들어선다.
귀래원은 말 그대로 '다시 돌아오는 집'이리라.
작년 1월달 수달사 '동그랑땡' 산행때 들른 이후 무려 1년 2개월만에
다시 귀래원에 들른 것이다.
귀래원에서는 화사하게 핀 두개의 철쭉꽃다발이 우리를 반긴다.
여기서 무려 1시간 40분간 노닥거리다가 오후 10시 경에 인릉산을 향해 출발한다.
순조(純祖:재위 1800∼1834)와 그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 김씨(金氏)의 능이 있다하여
인릉산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인릉은 실질적으로 대모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다.
인릉산에서 23번 지방도까지는 고도차가 별로 없어 등로보다는 주변 주민들의 산책로로 많이
활용된다. 그러나 23번 지방도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곳에서 길이 희미하여 대충 방향만 잡고 진행한다.
멀리 있는 불빛을 보고 찾아가니 마을 약수터이다.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후 23번 지방도 방향을 잡고
진행하지만 몇번 왔다리갔다리 한 후 겨우 23번 지방도를 찾아낸다.
지루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복정역, 육군행정학교, 창말을 지나 남한산성 들머리에 들어선다.
짧지만 가파른 사면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르니 오전 2시 20분 경에 297.2봉 능선에 도달한다.
저 멀리서 차량 불빛이 보이고, 등로는 완만한 사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감기로 인하여 온몸에 힘이 빠지고 감기약으로 인하여 잠이 스르르 몰려온다.
비몽사몽간으로 길 양쪽을 누비며 걷고 또 걷는다.
다행히 한계에 이를 때쯤에 노점상을 만난다.
라면 한그릇을 뚝딱 헤치우고 나니 다시금 힘이 �는다.
또 맘좋은 아저씨는 우리에게 커피와 온수까지 제공해 주어서 든든한 마음을 안고
산성을 향하여 출발한다.
<남한산성 남문 톨게이트>
이른 새벽이라 찾는이 없는 남한산성 남문 톨게이트를 지나 오전 3시 10분 경에 남문에 도달한다.
항시 많은 인파들로 북적이는 남문이지만 지금은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민족의 자긍심, 치욕과 굴욕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남한산성의 외성곽을 따라
성남검단산으로 향한다.
<성남 검단산>
검단산 정상(538)을 군부대에 내준채 그 밑 헬기장을 성남검단산 정상인양 가장하고 있는
검단산 정상석......
그러나 양심이 꺼려서인지 글자를 희미하게 새겨놓았다.
그리고 양심을 지키려고 헬기장 한가운데가 아닌 검단산 정상인 군부대 철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넓은 헬기장을 두루 살피고 있다.
검단산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오전 5시 경에 왕기봉에 도착한다.
검단산과 이배재 중간에 있는 왕기봉은 서쪽으로는 성남시 상대원동을, 동쪽으로는
광주시 불당리를 품고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등로를 따라 이배재, 갈마치고개를 지나 326봉을 오르자
서서히 어둠의 적막이 깨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침 안개로 인하여 어제 해넘이와 마찬가지로 해돋이 또한 두루뭉실하다.
젠장!
밤새도록 잠을 참으면서 걷는 고통도 황홀한 해돋이로 인하여
말끔이 사라지는데......
오전 8시 경에 영장산에 도착하니 오늘 처음으로 산객을 만난다.
아마도 동네 사람인가 보다. 배낭도 없이 운동복 차림으로 왔다리갔다리 하는 것을 보니...
<정자에서 바라본 영장산>
영장산을 내려서서 태재를 향하여 가는 길은 거의 평탄한 길에 가까우니 빠른 걸음으로 진행한다.
세사람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없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새벽에 출발한 줄 알고
'빨리 다녀온다' 라는 인사를 건넨다.
하기야 밤새도록 지금까지 약 50km 이상 산행을 하고 있는지 누가 알랴.
그렇다고 얼굴에 써 붙일 수도 없고....
태재에 도착하여 막걸리 한잔으로 피로를 잠시 잊는다.
11시 경에 불곡산 정상에 도착하니 주변 주민들은 각기 운동기구를 붙잡고 운동에 여념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길,
그러나 군대에서의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머리가 깨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라는
말을 되새기면 조심스럽게 하산길을 진행한다.
12시 10분 경에 불곡산 날머리인 용인과 성남의 시경계육교에 도착한다.
산줄기 산행은 모두 끝났지만 오리역 원점회귀산행이기에 오리역까지 가야 한다.
지겨운 시내 아스팔트 도로와 신호등 기다림을 반복한 끝에
오후 12시 35분 경에 오리역 3번 출구에 도착한다.
어제 정오 12시에 만나서 오리역 4번 출구로 나선 이후 무려 24시간 35분만에(실제 산행 시간은 23시간 20분) 다시 오리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주일 전에 걸린 감기가 채 낫지 않은 상태에서 산행을 강행한 것에 대한 후회스러움, 옛골에서의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보낸 이바구 시간, 몸의 밧데리가 다 소모되어 에너지가 바닥나기 일보 직전에 만난 노점상 등등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밤을 세우면서 원을 그렸고, 그 원은 타인을 배려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진정한 하나가 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 조금은 밑지면서 모자란 듯이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