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서
철산과 헤어진 순애는 두 명의 남자들과 함께 9인승 승합차에 올라 어디론가 떠났다. 살결이 희고 멀끔한 그 남자들은 복조선 남자들보다 키도 크고 훨씬 멋져 보였다. '남조선 남자들은 다 저렇게 잘생겼나? 하긴 북조선 중앙당이나 국가보위부 기관들에 있는 남자들도 얼마나 잘생기고 키가 큰데….’
순애는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 눈을 의심했다. ‘꿈을 꾸는 것은 아니겠지.’ 현실이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다. 북조선에서 게딱지같은 건물만 보아오던 순애는 남조선의 건물들이 이렇게 크고 멋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평양도 여러 번 다녀왔고 청진이나 회령시에서 제일 큰 건물인 당위원회며 사적관, 김일성혁명 력사 연구실, 시 병원 같은 몇 안 되는 건물들을 보아왔지만,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남조선 거리와 건물들은 정장 차림의 신사와 번쩍거리는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 달린 원피스를 입은 숙녀와 같은데, 북조선의 거리와 건물들은 오물을 뒤집어쓴 거지 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여서 그런가? 농촌 마을까지 이런 건 아니겠지. 남조선이 발전했다고 하더니 정말 맞구나.’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주변 경관들과 드넓은 포장도로를 꽉 메우고 달리는 승용차들, 고급스러운 버스며 대형 자동차들을 보는 순애의 눈은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산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저 나무들 좀 봐. 남조선은 이렇게 나라가 발전했는데 북조선은 도로포장은 고사하고 온전한 차 몇 대 없으니….’ 순애는 불쑥 화가 치밀었다. 자신이 나서 살아왔던 나라 북조선이 너무도 초라하고 창피스러울 정도로 부끄러웠다. ‘생각하지 말자.’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마음을 진정시켜 보았다. 차가 멈춰 설 때까지는 영혼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여인이 되었다.
어딘지 모를 높고 웅장한 커다란 건물 안으로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순애는 큰 출입문 현관으로 들어섰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1개월간 조사를 받을 겁니다. 저쪽 의자에 조금 앉아 있어요.”
“선생님, 여기가 어딥니까?”
순애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선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한 마디 던지고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한참 후,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머리가 희끗한 남성이 나타났다.
“정순애 씨, 따라오세요.’
어느 한 방으로 순애를 안내했다.
“순애 씨, 몸에 칼이나 사람 몸에 닿으면 다칠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은 없어요?”
“그런 물건들은 없습니다.”
그 중년 남성은 순애에게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테이블 위에 내놓으라고 했다. 잠시 어떻게 할지 몰라 망설였다. 다시 말소리가 들렸다.
“잠깐,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여기는 대성공사라는 곳입니다. 북한에서 온 모든 분들이 여기서 조사를 받고 하나원으로 이관돼요. 우리가 순애 씨의 몸에 있는 물건들을 보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고 혹시나 모를 만약의 일을 생각해서입니다. 한국에 온 다른 북한 분들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쳐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순애 씨가 북한에서 뭘 하다 왔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지 않습니까? 미연에 사고를 방지하려는 목적에서 하는 일이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제야 순애는 이철산이 말하던 국정원 대성공사라는 곳에 자신이 들어왔음을 알았다. 순애는 철산이 태국에서 사 준 황토색 가죽 가방에 있는 화장품과 다른 소지품들을 모두 꺼내 놓았다.
“몸에는 다른 것이 없어요?”
“손수건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에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쉬세요. 방으로 안내해 줄겁니다.”
그 선생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문이 열렸다. 머리를 틀어 올린 어려 보이는 여성이 들어와서 손으로 가리키며 가자고 했다. 순애가 안내받아 들어간 곳은 4명의 여인들이 들어있는 옷장과 이불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방이었다. 12평 남짓하고 아담해 보였다. 안내해 준 여성이 돌아간 다음, 순애는 방에 있던 여성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북한에 고향을 둔 여성들이라고 했다. 한 여성은 중국에 남편이 있는 갓난아기 엄마였다.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요?”
순애의 말에 대답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들 1개월 가까이 됐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대성공사는 서울 도시 한가운데 있음을 알게 되었다.
3일 후, 오전 10시가 되어 순애를 데려다주었던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5평 정도의 방에 한 남성과 작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순애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순애 씨가 조사에 어떻게 응하는지에 따라서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그 이상 걸릴 수도 있어요.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하시면 됩니다.”
조용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위압감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였다.
“순애 씨의 말을 녹음합니다. 묻는 말에 답변을 해주세요.”
고향이 어디며, 생년월일은 언제, 무슨 학교를 나왔고, 사회생활 근무지는 어디서 했는가, 가족과 친척 등, 회령시의 거리와 골목, 시 당이나 인민위원회와 보안서 등 주요 인물들에 대한 이름이나 인상 특징 같은 것들을 물었다. 철산이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던 생각이 떠올라서 순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대로 대답했다.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됐어요?”
“제가 아는 언니 딸이 중국에 가는 일을 오빠와 함께 도와준 것이 발각되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오빠논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회령 시 보안서 국토과 과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직업이 뭐냐 말이에요.”
“지금은 중국에 넘어와 있습니다.”
“순애 씨가 한국에 넘어오게 된 동기를 자세히 말해 주세요. 잠깐, 먼저 오빠의 경력부터 말해 주세요.”
마주 앉은 사람은 오빠의 이력에 대해 자세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오빠 이름이 뭐예요?”
“정순성입니다.”
“나이는 몇 살이지요?”
“1961년도 생입니다.”
“오빠 가족이 몇 명이 됩니까?,
“형님하고 조카 1명, 어머니 함께 모두 4명입니다.”
“집은 어디에 있었어요?”
“회령 시 남문동 00인민반에 있었습니다.”
“오빠 경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순애는 오빠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15세에 중앙당 5과(대남연락소 소속 아동훈련소)로 선발되어 갔다는 것과, 그 후 중앙당 연락소에서 근무하였다는 이력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중앙당 연락소에서 무슨 일을 했어요?”
“전투원 생활을 했습니다.”
“전투원? 그건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남조선에 파견되어 간첩활동을 하는 직업입니다.”
순애를 힐끗 쳐다본 조사관은 얼굴 표정이 사뭇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요? 오빠 경력이 간단치 않네요.”
순애는 한숨 돌리고 오빠는 중앙당 연락소에서 제대하고 조선인민군 773부대에서 상좌의 계급장을 달고 훈련교관으로 복무했다는 것을 말했다.
“순애 씨 오빠가 중앙당 훈련소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는 대로 말하세요.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네, 오빠는 1980년 5월 남조선 전라남도 광주폭동 때 남조선에 파견되었습니다. 오빠네 부대에서 광주시에 침투하여 먼저 파견되었던 북한 특수부대 전투원들의 교란작전을 지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누가 그래요.”
“제가 오빠에게서 직접 들었습니다.”
잠시 숨소리만 들릴 뿐 아무 소리도 없다.
“그 말이 사실이오? 순애 씨는 오빠가 한 말을 정말 믿고 있어요?”
“네, 오빠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순애 씨는 그 말을 책임질 수 있어요?”
오빠가 남조선에 왔었다는 말에 마주 앉아 있던 사람은 고압적인 말투로 물어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오빠가 광주시에 파견되었을 때 임무 수행 중 공로를 세워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영웅 증서, 메달은 오빠네 집에 있는데 영웅증서에는 1980년 6월 15일 김일성 이름까지 씌어 있었습니다.
아마 회령시에서 한국에 온 사람들이라면 제 오빠에 대해 아는 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순애를 조사하던 조사관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한동안 무엇인가 컴퓨터 키보드 건반을 때리며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순애 씨. 1980년 5월 광주시 민주화운동 사건 때 북한 특수부대가 왔었다는 것은 죄다 북한 당국이 꾸며낸 것입니다. 알겠어요?”
“네? 북조선에서 꾸며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오빠는 광주 폭동에 참가해서 공로를 세운 대가로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방안에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저는 당사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언니 남편도 함경북도 청진시당 조직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오빠랑 함께 남조선에 파견되었다고 했어요. 북한에서 꾸며낸 이야기 같지는 않습니다. 몇 명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빠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200명은 넘는다고 했습니다.”
“순애 씨, 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요? 다시 말하지만 그건 완전히 북한 당국에서 만들어 낸 날조극이에요. 그러니 사회에 나가서 쓸데없이 광주시 사건에 순애 씨의 오빠가 남파되어 전투를 했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그러면 김일성이 거짓으로 오빠에게 공화국영옹 칭호를 수여했다는 소립 니까?”
지금껏 조사관이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했다. 어딘가 자신에게 위협에 가까운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그러면 김일성이 있지도 않은 사건을 날조해서 저의 오빠와 다른 군인들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했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나는 선생님 이 북한에서 있은 일을 속이지 말고 그대로 말하라고 해서 말했을 뿐입니다.”
순애는 조사관이 무엇인가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는 남조선 관련 자료라든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훈장도 주고 국가 표창 같은 국가적 대우를 잘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오히려 말을 못하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애 씨, 알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한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안 됩니다. 특히 조사를 받고 밖에 나가서 오빠가 1980년 5월 광주 시에서 일어났던 민주화운동 사건에 북조선 군인으로 남파되어 교란작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말하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어요.”
“아니,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데 왜 처벌받아야 합니까?”
순애는 조사관의 태도가 불쾌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거니와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누가 인정해 주질 않아요. 오히려 순애 씨가 오빠의 사실을 말하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 있어요. 그러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순애는 몹시 기분이 나빴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듣던 대로 악명 높은 안기부에서 어떤 구실을 만들어내어 자신을 해칠까봐 겁이 덜컥 났다.
“순애 씨 말고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어요?”
“제 나이 또래거나 윗사람들은 대부분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니, 한국에 온 북한 사람들 중에서 말이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조사는 4시간 넘게 진행됐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7일째 되는 날 오전이었다. 종이 몇 장을 가지고 들어온 조사관은 순애에게 이런 말을 했다.
“순애 씨, 지금껏 대성공사에서의 조사 과정에서 오갔던 이야기를 사회에 나가서는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이 종잇장에 씌어 있는 글들이 순애 씨가 조사 과정에서 한 이야깁니다. 읽어보고 그 아래에 손도장을 찍으세요.”
조사관이 건네주는 종잇장 위 부분에는 ‘진술서’라고 쓴 글이 보였다. 순애는 자신이 했다는 진술서 이야기가 어떻게 씌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첫 글자부터 마지막까지 읽고 난 순애는 조사관을 바라보았다. 조사관은 컴퓨터를 마주 보고 있었다.
“선생님, 저의 오빠가 남조선 광주시에 파견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 읽었어요? 그런 말은 여기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아요.”
조사관은 순애를 지긋한 눈길로 응시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순애 씨, 설사 오빠가 한국에 왔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순애 씨 말 대로 오빠가 대한민국에 와서 사람을 죽이고 폭동을 선동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순애 씨에게 엄청 많은 화가 돌아올 수 있어요. 그러니 저희가 순애 씨를 생각해서 진술 내용을 그대로 올리지 않은 거예요. 알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에 저런 고마운 사람도 다 있구나.’ 자신의 신변까지 걱정해주는 조사관에게 속으로 연이어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다.
조사관은 검은 먹 즙이 담긴, 크기와 두께가 어른 손만큼 한 검은 플라스틱 통 뚜껑을 열어 순애 앞에 정중히 밀어놓는다.
“순애 씨, 엄지손가락부터 검지, 약지, 새끼손가락까지 오른손, 왼손 모두 차례로 먹 즙을 묻혀 찍으세요.”
손 지장을 처음 찍어보는 순애는 머뭇거렸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선생님은 자상한 손길로 순애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올 잡았다. 아무도 없는 둘뿐인 방에서 낯모를 남자에게 손을 맞긴 순애의 심장은 절구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 남자는 차례로 진술서 종잇장 갈피를 접어 지그시 누르고 다음 손가락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열 손가락 지장을 찍고 나서 손을 닦으라며 물티슈를 건네주고는 일어섰다.
“순애 씨, 이것으로 순애 씨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마쳤어요. 수고했습니다.”
조사가 끝났다는 말에 순애는 그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듯 했다. ‘오빠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