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001년 4월 10일 도용 종정 예하, 당시 총무원장 운덕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원흥사 종합회관 낙성 및 삼존불 봉안 대법회가 봉행됐다. 내빈들이 테이프를 절단하고 있다. |
역대 주지 스님 1994.01.29 1대 유정 스님 1997.01.19 2대 유정 스님 2001.01.05 3대 유정 스님 2005.01.13 4대 명구 스님 2009.01.04 5대 문덕 스님 2013.01.02 6대 도웅 스님 역대 신도회장 1989.06 1대 배성대 1992.01 2대 배성대 1995.01 3대 신용석 1997.01 4대 안승철 2001.01~2006.12 이영휘 부회장 5~6대 회장 대행 2007.01. 7대 박효원 2013.03. 8대 김무철 원흥사 略史 1980.08.20 창원시 토월동 배성대 씨 집에서 5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첫 법회 및 기도 1981.04.10 본산에 창원지회로 등록 1989.03.11 신도회 창립법회 봉행(신도 150여명 모임) 1989.07.20 창원시 상남동 미도상가 4층 58평을 분양받아 이전 법회 1989.11.28 관세음보살 봉안식 1996.11.02 청년회 창립법회 1997.08.27 창원시 도계동에 사찰 부지 598평 매입 1998.03.12 도용 종정예하, 사찰명을 원흥사(圓興寺)로 명명. 1998.03.20 원흥사 건축허가 받음 1998.04.23 자비봉사회 창립법회 1998.04.24 원흥사 기공식 1999.09.03 원흥사 불사 원만성취 기원법회 1999.12.06 원흥사 법당 및 종합회관 상량식 2000.03.25 임시법당 조성 및 관음보살상 이운 2000.04.03 임시법당에서 이전법회 봉행 2000.12.20 유성유치원 설립인가 2001.02.15 연화 꽃꽂이회 창립법회 2001.03.06 유성 유치원 개원 및 제1회 입학식 2001.04.10 종합회관 낙성 및 삼존불 봉안 대법회 2001.05.29 처사불자회 창립법회 2002.11.29 불음합창단 창단법회 2004.04.08 도계동 사찰 부지 매입 2004.05.30 제1회 원흥사 경로잔치 2005.10.23 제1회 가을 운동회 2006.06.24 다도회 창립법회 2008.10.03 람사르 총회 성공개최 기원법회 2009.07.03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0주년 기념 관음정진 백만독 불사 결제식 2010.02.04 아이티 지진참사 구호 성금 기부 2010.05.03 십선실천운동 대법회 2010.11.11 어르신 초청 위안 잔치 2011.05.01 천태종 경남지역 합창대회 참가 2011.06.06 창원금강불교대학 설립회의 및 허가 신청 2012.03.08 창원금강불교대학 개교 및 제1기 입학식 2013.03.08 창원금강불교대학 개교 및 제2기 입학식 불사금 없어 이웃 사찰서 빌려 불사 꽃꽃이회․청년회 등 신행단체 활발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든지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끝마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창원 원흥사의 사례에 이 속담을 빗대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듯하다. 처음엔 기도 모임을 만들어 놓더니, 이를 바탕으로 결국 지역에서 으뜸가는 전법도량으로 가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1980년, 마산 성광사(현 삼학사)에 다니던 창원지역 불자들이 기도처가 없어 고심한 끝에 50여명이 창원시 토월동 소재 배성대(원흥사 1~2대 신도회장) 불자 집에 모여 법회를 갖고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성광사의 기도처로 첫 발을 내디뎠지만, ‘창원지역 포교도량 건립’의 염원을 담아 발족한 모임이었다.
이듬해인 1981년 배성대 씨 집 인근에 집을 한 채 사서 법당으로 만든 뒤 본산(구인사)에 창원지회로 등록하고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구인사에서 스님이 파견돼 법문도 하면서 신도수를 점차 늘려갔다. 그리고 신도회 형태의 조직을 정비한다. 홍신표(73) 원흥사 고문은 “1985년경 배성대 씨를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해 법회 등을 조직적으로 진행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1989년 150여명이 모여 신도회를 창립, 도량 건립에 박차를 가한다. 같은해 7월 창원 상남동에 건립 중이던 미도상가 4층을 분양받아 법당 이전법회를 봉행하고 11월 관세음보살을 봉안, 도량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미도상가 분양금은 법당으로 사용하던 집을 판(정부에 매각) 금액과 신도들이 모은 불사금으로 충당했다.
이후 1996년 청년회를 창립했다. 1997년 본산의 지원을 받아 현 원흥사 부지(도계동)를 매입, 도량 건립 불사 계획을 세웠다. 1998년 3월 도용 종정예하는 사찰명을 원흥사(圓興寺)로 정했다. 사찰명과 관련해 홍순표 고문을 비롯해 당시 청년회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충대종사가 배구대회에서 창원지회의 사찰명을 ‘원광사(圓光寺)’로 정해줬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같은달 원흥사 건축허가를 받아 4월 기공식을 봉행한 후, 1999년 9월 불사 원만성취 기원법회, 12월 상량식, 2000년 3월 임시법당 조성 및 관음보살상 이운, 2001년 원흥사 종합회관 낙성 및 삼존불 봉안 대법회를 봉행, 전법도량으로서의 사격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도량이 낙성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홍순표 고문은 “부지 매입 과정이나 건물 설계 등의 문제로 내부 갈등이 생겨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불사를 시작하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 불사를 원만히 회향했다. 감동스러웠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회고했다.
당시 화주 소임을 맡았던 최채연(72, 여) 원흥사 화주는 “가장 힘들었던 건 불사금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돈이 없어 삼광사, 해장사 등 종단 사찰을 다니며 돈을 빌려 불사를 했고, 빚을 갚았다. 고생한만큼 보람도 컸다”고 회고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원흥사는 도량 낙성 전후로 2001년 유성유치원 개원, 연화꽃꽂이회 창립, 처사불자회 창립, 2002년 불음합창단 창립, 2006년 다도회 창립, 2012년 창원금강불교대학 창립 등을 통해 교육ㆍ문화ㆍ포교 도량으로 재도약했다.
창원금강불교대학은 2012년 1기 입학식에 이어 올해 3월 2기 입학생을 받아 불교교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원흥사 다도반은 2005년 5월 23일 창단, 다도과정을 개설했으며 현재 6기가 과정을 밟고 있다. 2011년 천태차문화대회 들차회부문 은상과 다화부문 금상 수상, 2012년 10월 천태차문화대회 다화부문 은상을 수상하는 등 차문화 선양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꽃꽂이 단체인 연화회는 2001년 2월 15일 창립한 이후 법회와 부처님오신날 등 사찰 행사에서 꽃공양을 올리고 있다. 유성유치원은 2000년 12월 5학급 인가를 받은 후 2001년 1회 입학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2회 졸업생을 배출, 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또 상월원각대조사 탄신 100주년 기념 일심청정 관음정진 백만독 불사와 십선실천운동에 동참, 불자들의 신심함양에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04년부터 경로잔치, 2008년 람사르 총회 성공개최 기원법회, 2010년 아이티 지진 참사 구호 성금 기부 등 대사회적 활동에도 적극 참여, 지역내에서의 입지도 다져가고 있다
| | | ▲ 2001년 낙성된 대웅보전 삼존불 봉안 대법회. |
| | | ▲ 1999년 12월 6일 봉행한 법당 및 종합회관 상량식. |
| | | ▲ 종합회관 낙성식에서 대웅보전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 |
| | | ▲ 1999년 봉행한 원흥사 건립불사 원만성취 기원법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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