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불교현황과 역사
불교가 최초로 서양에 전해진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18세기 초엽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부처님은 인도의 숱한 신(神)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었을 뿐이다.
서양에 불교가 알려진 것은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부터다. 영국의 인도에 대한 관심은 16세기경부터 시작되지만, 지배권 확립은 18세기 이후부터였다. 18세기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 토지를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이 무렵 인도에 파견되었던 영국인들에 의해 불교의 존재가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은 종교적이었다기 보다는 고고학 또는 미술사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19세기 말엽까지도 불교는 다만 동양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관심사였을 뿐이다.
영국에서의 불교에 관한 최초의 모임은 1885년 D. 라이즈 박사에 의해서 발족된 팔리경전학회(巴利經典學會:The Pali Text Society)다. 이 학회의 역경사업은 서구인들에게 불교를 전해 주는 가교(架橋)역할을 했다. 영문판 남방불교 성전과 이에 따른 각종 석론(釋論)은 보다 육화(肉化)된 부처님의 말씀과 그 전후사정을 서방세계에 서서히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퍼뜨렸다.
영국에 최초로 불교도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1905년경이다. 미얀마에서 군대생활을 하고 전역(轉役)한 J. R.페인과 R. J.잭슨이라는 사람이 레전트 공원에서 가두연설로 불교에 대한 설법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베리가(街)에서 불교서적을 판매하기 위한 서점을 열었으며, 1906년에는 영국불교협회를 창설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인으로 최초의 승려가 된 사람은 1902년 미얀마에서 수계(受戒)한 아난다 메테야라는 스님이다. 이 스님은 역시 영국인으로서 승려가 된 실라카라스님과 함께 양곤에서 《불교(Buddhism)》라는 잡지를 내기 시작했고, 이 책은 영국불교협회를 통해 서구에 보급됐다.
영국불교협회는 영국스님들의 귀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영제국 및 아일랜드불교협회로 확대됐고, 리스 데이비드 교수는 회장으로 취임했다. 1909년 아난다 메테야스님은 최초의 불교 서방포교단의 책임자로 영국에 왔다.
그는 협회의 기관지인 《불교형폰(Buddhist Review)》을 발간하여 불교가 단순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종교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난다 메테야스님은 귀국한 뒤 6년간 정력적으로 영국의 여러 섬들에서 불법을 전파했다. 이로 인해 영국인들은 박물관의 표본으로만 생각해 온 불교를 새로운 눈으로 주시하게 됐다.
1923년 아난다 메테야가 죽자 J. R.페인에 의해 불교로 개종한 프랜시스 페인이라는 사람에 의해 불교전파사업은 계속됐다. 그는 놀라운 정력으로 스트랜드의 에쎅스 하우스에서 36차례의 기념할 만한 강연회를 열어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 영향으로 영국 도처에는 불교협회가 탄생되었고, 1946년에는 세계 곳곳에 지부를 가진 런던불교도협회를 결성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925년에는 스리랑카의 사다티샤스님이 영국으로 건너왔다. 사다티샤스님은 1891년 다르마팔라에 의해 창설된 대각회(大覺會:Maha Bodhi Society)의 영국지부 책임자 자격으로 와서, 영국불교협회의 도움으로 런던 비하라(절)를 세웠다. 이어 기관지인 《법륜(法輪:The Wheel)》을 창간하고,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14년 동안 전법활동을 폈다. 사다티샤스님은 한때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에서 불교학을 강의했으며, 현재도 런던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유명한 학승(學僧)이다.
1926년 영국불교협회는 《영국불교(Buddhism in England)》라는 협회지를 내기 시작했으며, 1943년에는 《중도(中道:The Middle Way)》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후 불교는 계속 전법(傳法)활동을 강화하여, 하이드파크 북쪽의 랭커스터 게이트에는 불교사원이 문을 열었고, 불교도서관도 설립되었다. 법회는 처음에는 일반 가정집에서 가졌으나, 나중에는 대영박물관 근처에 확보한 단독건물을 이용하고 있다.
영국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은 미미한 것이지만, 날이 갈수록 교세는 확장일로에 있다. 처음에는 미얀마와 스리랑카, 태국 등 주로 남방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영국은 스즈끼(鈴木) 박사의 선(禪)에 관한 저술이 소개된 이후 대승불교와 선(禪)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영국에는 일본의 불교종파가 전도를 위해 사찰을 짓고 포교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티베트불교 역시 무시 못 할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티베트불교는 1976년 영국의 호수지방 남쪽에 만쥬슈리 인스티튜트를 세워 불교전파에 나서고 있다. 티베트승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1160년 오거스틴수도원으로 지어진 것인데, 대승불교 홍포에 힘쓰고 있는 티베트불교재단(FPMT)이 1979년에 인수했다.
기독교수도원을 불교가 인수했다는 것은 영국의 종교적 상황을 말해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FPMT는 이탈리아에 본부를 두고 프랑스ㆍ호주ㆍ독일ㆍ스페인ㆍ네덜란드 등 세계 각국에 30여 개의 수련원을 가지고 있는 단체다.
현재 영국의 만쥬슈리 인스티튜트 책임자는 유명한 학승 송링포세스님이다. 이 스님은 이곳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면서 젊은 학승들을 양성하고 있다. 만쥬슈리의 하계수련코스는 많은 영국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련코스는 하계단기수련과정, 알렉산다테크닉(정신요법의 일종), 다이치(심신요법의 일종) 등 3가지가 있는데, 아침 6시부터 밤 8시까지 입문수련은 2주, 알렉산다테크닉은 3개월, 다이치는 수시로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불교도는 동양의 승려들과 항상 모든 견해가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엄격한 계율문제에 대해 그들은 가치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것만을 최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서구적인 요구에 맞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불교수행을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금전을 소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유럽에 파견된 동양의 전도승들은 어느 정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불교협회의 명예강사로 일하는 미얀마의 티틸라스님은 승복의 권위를 추락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어느 정도 서구 환경에 적응한 생활을 인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국에서 불교도의 최대행사는 ‘5월의 축제’이다.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행사에는 모든 런던불교도들이 참가한다. 영국불교에서도 종파 간의 차이점은 불가피하게 드러나지만,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는 협회 측에서 이 멋진 축제를 위한 공동무대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이 기회를 통해 영국불교가 어느 정도 발전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1954년 5월 런던 서남부 오빙턴 가든에는 스리랑카 불교도에 의한 새로운 사원이 문을 열었다. 또 1956년에는 성(聖) 존스 우드의 알렉산더가(街)에 최초의 영국사원이 건립됐으며, 영국 땅에서 영국인에 대한 최초의 득도식도 베풀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머지않아 영국에서도 불교의 상징인 노란색 가사(袈裟)를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동양의 불교국에서는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