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인 시각으로 자위대 분석 | |
그러나 이 날 일본은 인도양으로 함정을 처음 보낸 것이 아니다. 11월7일 이미 해자대는 사세보항에서 호위함 구라마(5200t)와 기리사메, 보급함 하마나를 ‘사전 조사’ 명목으로 인도양으로 출항시켰다. 그러니까 11월7일 출항한 것은 선발대고, 11월25일 떠난 것은 본대가 되는 셈이다. 애초 일본은 7250t의 공고(金剛)급 이지스함도 인도양으로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에서 반대 의견이 나와, 파견을 취소했다. 이지스함마저 파견했다면,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의 재무장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크게 터져나왔을 것이다. |
육자대의 전신, 경찰예비대 | |
먼저 일본의 육상자위대(육자대)부터 살펴보자. 육자대는 5개 방면대(군단과 비슷)-11개 사단-2여단(2개 혼성단 포함하면 4개 여단이 된다)으로 편성돼 있고, 총병력은 16만 4000여 명이다. 과거 육자대는 1부터 13까지의 13개 사단으로 편성돼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미 육군이 안보위협 요인이 줄어들었다며 12개 사단을 10개 사단으로 줄이자 육자대 역시 12·13사단을 여단으로 개편했다. |
최강의 7사단과 北部方面隊 | |
자위대에는 원스타(준장)가 없고 장성은 별 두 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육자대의 여단장(혼성단장도 마찬가지)은 소장이고, 사단장은 방면대 사령관과 같은 중장이다. 육자대의 투 스타는 ‘육장보(陸將補)’로 불린다(해자대에서는 ‘해장보’, 항자대에서는 공장보’로 불린다). 육자대의 스리스타와 포스타는 전부 ‘육장(陸將)’으로 불린다(해자대와 항자대에서는 ‘해장’ ‘공장’으로 불린다). 자위대는 참모총장을 ‘막료장(幕僚長)’으로 부르는데 별 넷을 단 육장·해장·공장은 각각 육상막료장·해상막료장·항공막료장을 맡는다. 합참본부는 ‘통합막료회의’라고 하고 합참의장은 ‘통막의장’이라고 한다. |
러일전쟁과 2차 대전 | |
1905년 5월27일부터 28일 사이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대장이 이끄는 일본 해군의 연합함대가 쓰시마와 울릉도 사이의 동해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다. 그리고 로제스트벤스키 제독까지 생포해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러일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세계 강국으로 등장하는 계기였다.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섬 남쪽을 양도받았다. |
북방영토를 놓고 러시아와 갈등 | |
이로써 러시아는 러일전쟁에 진 빚을 갚게 되었다. 불과 5일간 참전한 전쟁이 승리로 귀결됨으로써, 소련은 남사할린을 되찾고 지금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쿠릴 열도의 4개 섬도 점령하게 되었다. 이 4개 섬의 일본 이름은 하보마이(齒舞)·시코탄(色丹)·구나시리(國後)·에토로후(擇捉)인데, 일본은 이 섬을 ‘북방영토’로 부르고 있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일본의 북방영토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 이 지역(동북아)은 여전히 불안정하다’고 밝히고 있다. 북방영토의 회복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보통국가화 하는 것 만큼이나 일본이 학수고대하는 최대의 국가 과제다. |
5700명의 즉응예비자위관 | ||
예비자위관은 1954년 육자대가 창설될 때 함께 생겨났다. 예비자위관은 자위관 전역자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선발·채용한다. 한국군은 예비군에게 봉급을 지급하지 않으나 일본은 예비자위관에게 소정의 급료를 지불한다(월 4000엔, 훈련소집시는 8100엔의 일당 추가 지급). 예비자위관은 매년 한 차례씩 ‘방위소집’을 받아, 5일간 군사훈련을 받는다. 예비자위관의 규모는 약 4만3000여 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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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등히 큰 海自隊의 군함 | ||
한국 해군은 3000t 이상의 전투함을 구축함, 3000∼1500t 사이의 전투함은 호위함, 1500∼1000t 사이의 전투함은 초계함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해자대는 1000t 이상의 전투함을 전부 호위함으로 부르고 있다. 해자대는 1000t 이상의 전투함을 53척 갖고 있으나, 한국 해군은 40척 보유하고 있다(약 1.33대1). 이렇게 보면 양국의 해군력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으나, 세분해서 살펴보면 엄청난 차이가 발견된다. 한국과 일본이 보유한 1000t급 이상의 전투함 척수를 비교해 보면, 일본은 4000∼3000t급이 가장 많아 24척 보유하고 있으나, 한국은 2000∼1000t 사이의 전투함을 37척 갖고 있다. 일본은 배가 크고 한국은 작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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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의 掃海隊 | ||
2001년 11월 아프간전쟁에 참전하려고 인도양으로 간 일본 함대를 가리켜 한국 언론이 ‘2차대전 패전 후 최초로 일본이 전투수역에 함대를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 오보다. 1950년 해자대의 전신인 해상보안청(해상보안청에서 해자대가 갈라져 나왔다) 소속의 소해함정 21척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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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잠수함에는 신경써 | ||
평화헌법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위력을 갖춰 일본을 지키려는 일본 지도층의 노력은 대단하다. 1970년, 훗날 총리가 되는 나카소네(中曾根) 방위청장관은 “일본은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방위력을 보유하되, 상대로부터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만 이 방위력을 행사한다”며 그 유명한 ‘전수방위(專守防衛)’론을 주창했다. 섬나라인 만큼 전수방위의 선봉은 해자대가 맡는다. 처음 해자대는 전수방위의 범위를 일본 영해 기선으로부터 1000해리(1852㎞)까지로 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범위를 2000해리(3704㎞)로 넓혔다. 일본을 위협하는 세력이 2000해리 안쪽으로 들어오면 쫓아가서 박살내는 것이 일본의 2000해리 전수방위 전략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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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艦8機의 호위대군 | ||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해자대의 편성이다. 한국은 동·서·남해에 한 개씩 3개의 해역 함대를 두고 있다. 반면 일본은 방어할 바다가 더 넓은 섬나라이므로 요코스카(橫須賀)·구레(吳)·사세보(佐世保)·마이쓰루(舞鶴)·오미나토(大湊, 오미나토는 무쓰시 안에 있어 ‘무쓰’로 불리기도 한다)를 사령부로 한 다섯 함대를 두고 있다. 해자대는 이러한 함대를 ‘지방대(地方隊)’로 부르는데, 5개 지방대는 육자대의 5개 방면대처럼 일본 주변 바다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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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기함 16DDH | ||
이러한 호위대군의 기함 중의 하나가 2001년 11월7일 선발대로 인도양으로 떠난 구라마(5200t)다. 나머지 호위대군의 기함은 구라마 동급인 ‘시라네’와 5000t급인 ‘하루나’와 ‘히에이’다. 2004년 호위대군은 새로운 도약에 들어간다. 순양함급인 1만3500t급의 호위함 2척을 2004년과 2005년 진수시켜, 30년이 넘은 하루나와 히에이를 교체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04년은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平成) 16년’이라, 이 배는 ‘16DDH’로 불리고 있다. 16DDH는 잠수함을 추적하는 초계 헬기 3대와 수송 헬기 1대 등 4대의 헬기를 탑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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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보안청이 상대하는 한국 해군 | ||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해자대와 해상보안청을 혼동하곤 한다. 이유는 일본과 면한 동해에서는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 주로 남북한 함정과 대치하기 때문이다. 해상보안청은 해양경찰(해경)에 유사한 조직인데, 일본은 남북한을 포함한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동해의 먼바다로는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주로 내보내고 있다. 동해에서 일본 영해를 침범한 한국 어선을 나포하는 것은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고, 1999년 3월 일본으로 접근하던 북한의 공작선을 발견하고 추적했던 것도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이었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은 독도 주변 수역으로 자주 해상보안청 순시선을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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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전 분야는 한국이 우세 | ||
삼봉함은 조선시대 독도를 ‘삼봉’으로 불렸다는 기록에서 따온 이름인데, 2002년 2월부터는 해군 초계함 대신 이 배가 독도 경계에 투입된다. 해군으로서는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이고, 일본과 비슷한 크기의 해경 경비함을 투입하게 된 한국으로서는, 국가 체면을 세우게 된 것이다. 독도 경계에 해군 함정 대신 해경의 경비함이 투입되면, 독도는 군대가 출동하지 않아도 되는 영유권 다툼이 없는 수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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量 위주의 한국, 質 중심의 일본 | ||
육군에서는 한국 우세, 해군에서는 일본 우세, 그렇다면 공군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병력으로 비교하면 항공자위대(항자대)는 4만5000여 명이고, 한국 공군은 6만3000여 명이다. 병력은 한국이 1.4대1로 많다. 해자대의 핵심전력이 자위함대에 모여 있다면, 항자대의 주전력은 항공총대에 몰려 있다. 한국 공군도 주전력을 공군작전사령부(공작사)에 모아 놓고 있으므로, 항공총대와 공작사는 상당히 유사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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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대의 F-15J 보유 | ||
항자대가 그 다음으로 많이 갖고 있는 F-4(팬텀·104대)는 F-15와 크기가 비슷한, 탑재무장이 매우 큰 전폭기다. 이 전투기도 맥도널 더글러스에서 개발한 것인데 역시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면허생산했다. 미쓰비시는 일본 방위산업의 중추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쓰비시는 전투함과 잠수함 등 첨단 대형 무기도 생산하고 있다. 1970년대 초 미쓰비시는 T-2라는 고등훈련기를 독자 개발한 후, 이를 개량해 F-1이라고 하는 전투기를 만들었다. F-1은 1975년부터 항자대에 공급되었다. 그후 F-15J가 도입되자 항자대는 F-1은 F-15J를 지원하는 데 쓴다는 뜻으로 ‘지원 전투기’로 이름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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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眼通’ 조기경보기 보유 | ||
오랜 노력 끝에 2000년 10월 미쓰비시는 F-2 지원전투기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F-2는 록히드마틴사가 개발한 세계적인 걸작 F-16C/D(파이팅 팰컨)와 외관이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길이가 길고 날개도 약간 더 넓다. 미쓰비시는 이 전투기에 일본 기업체가 독자개발한 항법장치를 탑재했다. 따라서 외관만 F-16C/D와 비슷하지 내용(항법장치)은 완전히 다른 전투기가 되었다. 미쓰비시는 최소한 130대의 F-2를 생산할 예정인데, 이 전투기는 북부항공방면대 예하의 제3항공단과 서부항공방면대 예하의 제8항공단부터 배치돼 구식의 F-1 지원전투기를 대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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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로 방공망 구축 | ||
공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대공미사일 전력이다. 미국이 개발한 F-15는 다른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는 단 한번도 격추되지 않았으나, 대공포에 걸려 2대가 격추된 적이 있다. 현존 대공 전력 중에서 최고는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THAAD(전구고고도공역방어) 미사일 시스템이다. 이 미사일은 미국이 구축하려는 MD(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무기로 대기권으로 재돌입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는데 쓰인다. 따라서 전투기 요격에는 부적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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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군사협력 모색해야 | ||
36년 동안 일본에 완패를 당했다는 열패감 때문에 한국은 일본 자위대 움직임에 대해 히스테릭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열패감의 장막에 숨어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으로 계속 몰리고 있다. 뚜벅뚜벅 다가오는 통일의 기운이 한국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통일을 하려면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의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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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 주한 일본 해군 무관 | ||
주한 일본대사관의 해군무관 다카야마 다다시(高山忠·44) 1등해좌(해군 대령)는 자위함대 항공집단에서 SH-60J 헬기를 몰았던 헬기 조종사 출신이다. 2001년 12월13일 그를 만나 자위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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