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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산중산담 山中山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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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 정맥, 기맥, 지맥 기타 스크랩 대간 5차 5구간 : 백운산구간 : 지리산과 덕유산의 큰 보살핌을 받다
최병의 5기(초보산꾼) 추천 0 조회 46 14.07.14 20: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450온누리 산악회  백두대간 5기 5차 (5구간) 중재에서 육십령까지

 

언제 : 갑오년(14년) 견우직녀달  열하루 쇠날 밤  ~ 열이틀 흙날 (무박2일) 
누구랑 : 대간5기 산우님들         

어딜 :  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깃대봉 ~ 육십령  19.1km (상황봉 대장님 공지내용)

                                  (산행시간은 사진속에 있습니다)

 

너구리가 라면은 몰고 안오고 태풍을 몰고 올라오다가 살짝 비켜가는 것 까지는 좋은데

난데 없는 폭염을 몰고 오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더운 견우직녀달 더욱 잠못드는 밤을 만들어 주는데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고 매마른 대지에 오지 않는  비이기에

태풍에 기대를 거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오라는 비는 안오고 폭염만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백두대간 산우님들과 함께 걷는 대간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더위를 잊고자 길을 떠나 본다    

 

백운산 구간 등로

 

이번 구간은 지리산군의 종착지로 알려진 백두대간 출발의 마지막 날머리였던 중치에서 시작하여

덕유산과 지리산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힘을 비축했던 완충역활을 했던 구간을 지나 덕유산의 시작점인 육십령에서 마치게 된다

말이 완충지역이지 속을 들여다 보면 결코 지리산이나 덕유산에 부럽지 않은 구간임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낙동강, 섬진강, 금강을 만들어 준 영취산이 있고 가을 억세의 최고인 장안산이

용이 춤추듯이 올라오는 모습으로 무룡고개를 넘어 금남호남정맥을 분기하고

곳곳에 논개의 유적들이 대간길을 더욱 값지게 하는 구간이다.

이제 덕유산으로 오르기 위한 힘의 균형을 느낄 수 있는 백운산 구간으로 대간길을 떠나본다

 

이번 구간의 접속장소인 지지리의 지지계곡에 있는 지지터널도로에 도착하고 - 보름달과 함께하고 있는 지지터널 방향

음력으로 6월은 양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달이다. 음기가 성하면 모든 농사가 어려워 진다는 얘기이다

가장 더운 음력 6월의 햇볕으로 만물을 무성하게 자라게 할 수도 있지만 장마도 함께 하는 계절이니 만물이 썩을 수도 있다. 

그래서 농사에서 중요한 보름달 중에 6월에 뜨는 보름달을 유두(流頭)라 하여 신라때 부터 중요하게 지켜온 명절이라고 한다

물로 몸과 마음을 통해 정화하는 날이 流頭이다

 

지지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6월의 보름달의 의미를 더해 준다

 

봉화산을 지나 지리산구간을 돌아 오는 바람에 훌쩍 자라버린 잡풀들이 키재기 하는 바람에 힘들게 도착한 중치

중치   지리산군의 종착지

중재는 중치(中峙)라고도 부른다. 동쪽아래의 중기(中基)마을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중재 마을은 항촌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나무의자가 나오면서 중재방향으로 탈출로도 있다

 

유래를 알 수 없는 중고개재 - 이정표의 생명을 다한 중에도 누군가 매직으로 755봉 중고개재라고 써 놓았다

 

백운산에 오르다 우측으로 ?이는 전망봉에서 본 지나온 월경산과 봉화산이 보이고 속금산도 뽀족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시작한 지지리 계곡과 터널도 보인다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이 멀리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산 방향에서 바라보는 장안산의 모습이 장수의 진산답게 참으로 넉넉하게 보인다

장안산(1,237m)

198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으로 덕산용소와 방화동, 지지계곡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산 아래 계남면 장안리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長安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는데

長安하면 "장안에 떠들썩 했던..." 그 장안이 서울이니 장안사에서 유래 된 것이 더 호감이 간다

전북에서는 억새하면 단연코 ‘장안산’을 말한다

 

백운산 직전 서래봉 갈림봉

 

하산길이라 되어 있는 이정표 방향으로 보이는 서래봉

서래봉(西來峰1,117m)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서래봉(西來峰)하면 전라북도 정읍 내장산의 봉우리가 떠오른다.

높이 내장산 9봉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난 봉우리로, 약 1km에 걸쳐 이어지는 바위 절벽이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고 높이는 624m다.

서역(西域)에서 온 달마대사가 내장산에서 입산 수도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와 ‘서래봉(西來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같은 이름과 유래를 가진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에 위치한 백운산 가는 중간에 만나는 서래봉(西來峰1,117m)은

특별한 유래도 전설도 없고, 지형도에 그나마 이름을 얻고 있는 산이다.

 

조금 오르면 헬기장이 있는 오늘의 가장 높은 산 백운산에 도착한다

백운산 [1278.6m]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 경남 함양군 서상·백전면

백운산의 북쪽 계곡에서는 진주 남강의 상류인 남계천의 지류가 발원하고, 남쪽 계곡에서는 위천이 발원하여 함양읍 남계천에서 합류한다.

또 서쪽 장안산과의 사이에 있는 계곡을 섬진강의 지류인 백운천이 남쪽으로 흐른다.

우리나라의 높은 산봉우리 중에서 백운산이란 이름이 붙여진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운산(白雲山1,279m)이다. 

 

서래봉 방향 그리고 멀리 지리산의 주능선이 모두 보이는 방향으로 지리산을  병풍삼아 백운산에서의 단체사진 - 칠갑산님의 작품

 

헬기장 지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정석

 

이제 산죽지대의 시작을 알리는 산죽의 크기가 작아  고도가 높은 만큼 걸을만 하다

 

우리가 서로 말(言)을 하는 것은 말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서로 마주보고 말을 하는 행위를 對話라고 한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 악수를 하고 첫마디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만나는 동안 끝없이 참새가 재잘대듯 계속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대화가 아니고 잡담이 된다

 

멀리 아침을 열고 있는 지리산 방향으로 자연의 조화가 만들어낸 그림을 지리산의 마지막을 담아본다. 잘있거라 지리산아...

 

우리가 오랜동안 만남을 한 친구들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할 때가 자주 있다

서로 말이라는 행위를 안했다고 대화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까닭이다

서로 눈을 마주 보고 잠시 침묵의 시간에 오고가는 마음의 대화가

어쩌면 더 소중하고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오랜만남에 마음의 문까지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산에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自然과의 對話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걷고 떠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자연과의 대화이다

우리가 단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산에 가면 눈인사부터 하지 않던가

 

조금 내려오면 암벽 날등선에 올라서면 보이지 않던 덕유산의 모습과 가야할 마루금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상대방과의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해답을 찾는다

대화가 되었든 잡담이 되었든 침묵속의 대화가 되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보고 있고 또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산에 올라야 자연과의 자연스런 대화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다

 

백운산과 영취산 가운데 지점 이정표를 지나 부전고개 갈림봉에서 식휴경을 즐기고

 

산속에 있는 나무들은 나와 대화할 수 없지만 나는 얼마든지 나무와 대화 할 수 있다

오랜동안 만났던 친구와는 말이라는 무기가 없어도 서로 대화가 이루어지듯

산에 오를 때마다 눈에 마주하는 나무가 나에게 대화를 청하는 착가을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부전계곡 방향

부전계곡은 조선 후기의 학자 부계 전병순(1816~1890)이 은거하고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하다. 부계정사라는 옛 집이 그대로 있다. 

노론 성리학자인 전병순은 평생을 함양에서 지낸 재야학자이다. 

그는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여,

훗날을 도모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고 한다.

 

선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무룡고개로 바로 갈 수 있는 선바위고개

무룡(舞龍)고개

'무룡’을 잘못 듣고 ‘무령’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며, 무룡(舞龍)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이다.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번 구간에서 영취산에서 무룡고개로 넘어 오면서 장안산의 산세를 유심히 바라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듯

 

삼강(낙동강, 섬진강,금강)의 분기봉 영취산에 오른다

금남호남정맥 : 전북 장수의 장안산(長安山, 1237m)에서 서북으로 뻗어 무주의 주화산(珠華山, 600m)까지 약 65km에 이르는 옛 산줄기의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다. 

또 이 산줄기의 팔공산 서사면(西斜面)에서 발원하는 천천(天川)이 북류하여 금강을 이루고, 남사면(南斜面)에서 발원하는 오원천(烏院川)이 섬진강을 이룬다.

우리가 지금까지 낙동강과 섬진강의 마루금을 따라 걸어 왔는데 이제 대간길은 금강과 낙동강의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게 되는  것이다

섬진강과의 이별의 아쉬움을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에 넘기고 북으로 뻗어가는 가장 기상이 넘치는 금강을 따라 걷게 된다

 

영취산 이정석

영취산((靈鷲山)[1075.6m]

'신령 령(靈)' 자에 '독수리 취(鷲)' 자를 쓰는 영취산은 이름 그대로 풀면 '신령한 독수리의 산'이란 의미이다.

산의 영험함, 빼어남, 신묘함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 하늘의 영물인 독수리를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옛 지도상에는 영취산의 이름이 없었다. 혹자들은 장안산을 영취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장안산이 주변의 산줄기 중에서 주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점인 영취산,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내려가는 방향

영취산 내려오는 길에 무너진 성벽 영취산성을 만날 수 있는데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삼국시대 신라 6대 지마왕(祗摩王, 재위 112∼134년) 때 신라의 침범을 막기 위해 가야에서 축성했다고 알려진 성이고

또한 임진왜란 때는 왜적과 접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바로 논개생가터를 만나게 되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을 듯 하다

 

논개생가터 갈림길도 지나고

논개 생가 이정표

그녀의 이름을 높여준 논개의 충절은 아마도 백두대간으로부터 청청하고 장대한 기운을 받아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다.

그녀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나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에 묻혔으니

대간에서 태어나고 대간의 청청한 기운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대간에 묻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논개의 무덤은 진주도 장수도 아닌 함양군 서상면에 있다.

학계에서는 논개의 문중에서 왜군의 추격을 두려워했거나 논개의 신분을 천하게 여겼기 때문으로 보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논개의 묘가 발견된 것도 그가 순절한 지 382년 만인 1975년의 일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논개의 생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영남지방의 향토 사학자 중에는 논개의 삶이 역사적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일축하는 사람까지 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998.html

 

전망이 조흔 덕운봉으로 내려가는 바위가 있는 덕운봉 갈림봉

 

나무를 친구 대하듯 애정어린 눈길로 한번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의 대화가 시작되고

거기에 새소리를 살짝 끼워놓으면 음악이 되고

구구절절이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는 소설이 되고

원근법을 사용하여 보일 듯 말 듯 산줄기 하나 얹어놓으면 그림이 된다

 

부전계곡을 감싸고 있는 서래봉, 백운산 영취산이 차례로 줄지어 있다

 

힘들게 이어가는 대간길 잠시 자연과 대화속에 쉬어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마음의 여유, 그것은 결국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와 있으니 놓치지 마시기를...

그것이 우리가 대간길은 걷는 이유이며 산을 찾는 이유이다

한번 더  숲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가장 큰 선물이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에 있는 덕운봉을 잠시 들러 본다

 

다시 되돌아와 만나게 되는 대곡저수지 위에 있는 논개 생가터가 보이고

 

우회길이 있는 전망봉에 올라 벌써 멀어진 덕운봉 갈림봉을 담아 본다

 

이제 고도를 낮춘 만큼 훌쩍 커버린 산죽이 나름대로 정리가 돼 있어도 진행에 어려움을 선사한다

 

북바위 이정표가 있는 북바위에서 잠시 휴식 - 아직 대간길을 오지 못하고 있는 산우님들에게 북을 울리시지요, 총무님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민령

민령

민령은 바로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대간의 고갯길이다.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 이름인데, 소리에 따라 '岷'이라는 한자를 음차하였다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 또한 만만치 않다. 왜 7월인지를 알게 해준 구간이다

 

민령아래를 통과하는 대전통영고속도처럼 대간팀의 끝없는 질주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이총무님을 담아본다

 

깃대봉의 상징인 깃대봉이 있는 깃대봉

옛날 임금님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아는 서울의 도봉산에 있는 사패산도 선조(宣祖)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貞徽翁主)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해서 사패산이라 불려지고 있다

깃대봉은 특히 가을의 억새와 구절초 향으로 유명하다.

 

몇년전에 들렸을 때까지 유일하게 깃대봉이라는 표시가 있었는데 이것마저 지워져 버렸다

깃대봉은 덕유산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

두 나라 영토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번갈아 기를 꽂았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깃대봉 동쪽 물은 추상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서쪽 물은 장계천을 따라 금강으로 향한다

2006년 깃대봉이란 지명은 구시봉으로 바뀌었다. 어떤 풍수가가 이곳에 올라 산세를 짚어보니 구시형이라서 그리 변경했다는 게 비석에 새겨진 설명이다.

구시가 말구유를 뜻한다면, 아마도 이 지명은 깃대봉과 그 아래쪽의 제2 깃대봉을 잇는 안부를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998.html

 

산림청이 이렇게 유래가 많은 역사적인 깃대봉을 굳이 구시봉으로 바꾼 연유가 적혀 있다

장수군의 깃대봉은 일제가 깃대를 꽂아 우리 국토를 측량한 데서 ‘깃대봉’으로 바뀌었다는 예기도 전하고

깃대봉에는 봉수대가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 깃대봉 봉수대가 장수 가야의 중심 봉수일 것이다.

군산대학교 사학과 곽장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깃대봉 봉수대를 중심으로 전북, 충남 일원까지 봉수가 방사선으로 모양으로 뻗어 나갔다고 한다.  

대가야 자료 : http://blog.daum.net/cielfoi/6605136

 

구시봉 이정석에서의 단체사진 - 칠갑산 운영위원님의 작품

어찌 됐던지 이렇게 많은 유래를 가지고 있는 깃대봉이라는 이름은 원래 주인인 깃대봉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고

산림청에서 이해 할 수 없는 한 풍수가의 말을 근거로 아까운 국민의 세금을 들여 이렇게 이정석을 세웠고

우리는 울며 겨자 먹듯이 이렇게 인증사진으로 남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유일하게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이정표에 남겨저 있던 깃대봉 표시는 어떤놈이 없엔거야?

원래 주인인 깃대봉임을 알릴 수 있는 이정표 하나 쯤 요구된다. 지도에 나와 있는 깃대봉이 사라지기 전에...

 

이제 막바지 깃대봉 샘터에서 잠시 휴식

 

오늘의 날머리 육십령 휴게소 방향으로

 

전에 없던 육십령 생태통로가 가설 되어 있다

육십령 734M    경남 함양군 서상면(西上面)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長溪面)의 경계에 있는 고개. 26번 국도

백두대간 중 덕유산과 지리산 구간에서 고대 동서 교통로는 운봉고원 일원의 고개와 육십령 정도이다. 

산이 험하여 인간의 역사 활동을 위해 백두대간이 내 줄 고개가 많지 않았다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하는데, 오늘날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26번 국도가 지나간다.

 

낙동길에서도 감기로 고생하더니 오늘은 더 심한 듯 한데도 끈기로 완주하신 삼수령님 수고했습니다.

육십령의 유래는 첫째, 함양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의 거리가 60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도 60리(24km)라고 하여 육십령.
둘째, 이 고개를 넘으려면 크고 작은 60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어 육십령.
셋째, 옛날엔 이 고개에 산적들이 많아서 60명이 모였다가 올랐다는 이야기인데,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양쪽 산 아래 마을에서 며칠씩 묵어가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밑에는 장정들이 모여 있던 주막이라 해서 장군동(壯群洞)이 있고, 

산적을 피해서 살다가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해서 피적래(避賊來)라는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외 또다른 설도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있어 세 번째 이야기가 신빙성이 높다.

4. 박정희 정부는 군장동 사람들에게 산 속 군장동에 살지 말고 길가에 나와서 살라고 흙벽돌 집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고갯마루 연립주택식으로 지어진 하얀색 집들이 그때 지어진 집들이다. 군장동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것이 그때부터.

육십령 마을이 군장동 사람들에게 새 삶의 터전이 된 것도, 고개 이름이 육십령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때부터라고 한다.

 

덕유산 구간의 시작을 알리는 다음에 올라야할 들머리이며 오늘의 날머리

호남(湖南)과 호서(湖西) 

호수의 남쪽과 서쪽에 위치한다는 것에서 연유된 명칭이다.

호수는 여러 설이 있는데,  ‘김제(金堤) 벽골제(碧骨堤)의 남쪽을 호남 지방, 서쪽을 호서 지방이라 부른다’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충청북도(忠淸北道) 제천(堤川)의 의림지(義林池)를 일종의 호(湖)로 보고 거기를 표준으로 해서 

충청도를 호중(湖中), 혹은 호서(湖西), 그 남쪽인 전라도를 보통 호남(湖南)이라 했다’고도 한다. 

또한 ‘금강 이남을 강남도(江南道)라 부른 데에서 호수는 금강을 가리키므로

금강의 남쪽 땅을 호남(湖南)이라 하고, 서쪽 땅을 호서(湖西)라고 하였다’는 지명의 유래가 있기도 하다.

 

영남(嶺南)영서(嶺西)
영남(嶺南):경상남북도.  영남에서 영(嶺)은 태백준령을 말하는 것으로 영의 아래인 경상남북도 지방을 말합니다.
영서(관서)지방(嶺西地方) : 강원도 태백준령의 서쪽지역을 칭하며, 춘천, 원주, 홍천이 영서지역에 속하게 되며, 

    관서지방(關西地方)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위의 경우는 대관령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동(관동)지방(嶺東地方) : 강원도 태백준령의 동쪽지역을 칭하며, 주요 도시로는 강릉, 속초, 동해, 삼척 정도가 있습니다. 

    따로 관동지방(關東地方)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위의 명칭은 대관령을 기준점으로 잡아서 동쪽에 위치하기에 관동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자료 : 네이버 지식

 

오늘의 뒷풀이 장소인 옛터(고기) 초례청과 음식점이 있는 곳

 

음식점 구조

 

전통혼례식장인 고기(옛터)초례청이 바로 옆에 있다 

 

고기초례청에서 전통예식을 하고 이 음식점에서 피로연을 하는 듯 하다.  우리도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상황봉 대장님의 목욕탕 봉사로 하루의 묵은 때를 밀고

울랄라 대간 산우님의 맛있는 삼계탕 봉사로 이렇게 하루의 피로를 정리한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지리산 구간을 마치며서 대간길에 대한 약간의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1대간 9정맥은 산길이 아니라 강의 근원을 이루는 분수계로서의 의미가 크다

지리산에 시작된 대간길을 낙동강섬진강의 분수계를 이루며 계속 이어오다

이번 구간에서 만난 영취산에서 섬직강과의 이별을 하고 낙동강과 금강이 함께 북진을 하게 된다

금강과 낙동강의 밀월 관계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금강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남한강과의 만남을 준비하게 된다

남한강과 낙동강과의 인연도 오대산 두로봉에서 북한강에 넘겨주고 삼수령까지 북진하다

지리산에서 부터 함께 하던 낙동강과의 긴 만남도 이별을 하게 된다.

대간길 산경표에서의 분수계는 가장 기본이 되는 근간이기에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참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홀로 호남정맥 중 수분치에서 영취산까지 걸었던 룡이 꿈틀대듯 산줄기가 그려내는 용트림을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 걸으면서 확인하려 했지만 조망이 허락치 않아 담을 수 없음이 아쉽지만

칠월에 어울리지 않은 선선한 날씨에 조망도 나쁘지 않은 대간길에 그저 감사하고

서서히 대간길에 참여하는 산우님들이 서로 한가족처럼 서서히 녹아드는 모습에서

앞으로 진행될 마지막 대간 구간까지 걱정없는

즐거운 산행만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이제 덕유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리산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더 느꺼볼 수 있는 대간길 다음 구간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주는 낙동정맥 영남 알프스구간입니다. 낙동정맥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초보산꾼    도    덕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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