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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를 말한다”
광고, 쉽게 보지 말란 말이야
"광고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끔 메일로 이런 난감한 질문을 받곤 한다. 막연하게 광고라...
광고의 분야가 매우 다양한 건 웬만한 사람이면 알고 있는 사실. 진정 광고를 하고 싶다면 위와 같이 무책임한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광고에 어떤 분야가 있고 각각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는 최소한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광고계는 흔히들 알고있듯 AE, 디자이너, 카피라이터, 프로듀서, 촬영감독, 콘티작성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 담당하는 업무가 천차만별인 이들이 모여 광고라는 하나의 작품을 탄생케 하는 것이다. 몇 초간의 TV를 통해, 또는 보여주기만 하는 인쇄물을 통해 사람을 울게도 웃게도 하는 광고는 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만들어낸 예술적 산물이다.
인간은 다양한 인종과 계층, 연령층으로 형성돼 있다. 또 서로의 생각, 사상, 관념 등도 다르다. 광고는 이런 인간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그에 맞는 적절하고 적합한 여러가지 기법을 만들어 냈다. 광고계에 다양한 여러 분야가 있듯이 광고 하나에도 사람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주 많은 수법(?)이 숨어있다.
따라서 이런 기법이 사용돼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곤 했던 국내 광고를 연재로써 다뤄보도록 하겠다.
이번호에서는 최근 한창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패러디 광고를 살펴보자.
국어사전에 패러디는 문학 작품의 한 형식을 말하며 어떤 저명 작가의 시구나 문체를 모방해 풍자적으로 꾸민 익살스러운 시문(詩文)이라 정의돼 있다. 그 정의야 어찌됐든 즐거움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드라마나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 이를 패러디한 아류작이나 코믹물이 쏟아진다. 이에 질세라 광고 역시 이런 성공물을 활용하기 위해 패러디로써 발빠르게 대처한다.
패러디의 홍수
오래전부터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는 속속 있었다. 대부분 영화 속 장면을 따온 것이었는데, 차츰 광고의 줄거리에 맞춰 영화 주인공의 캐릭터를 패러디한 형태도 선보였다.
그 예로 영화 '화산고'를 패러디한 핫브레이크 초코바 광고(제일기획)를 보면 극중 주인공들이 영화 속 세트에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장혁에게 정면으로 날아오는 물체는 분필이 아니라 초코바다. 이 광고는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먼저 등장한, 상당히 이례적인 광고였다.
신용카드 부작용으로 인해 강력사건이 잇따랐던 2002년 중반에는 카드사를 비꼬는 네티즌의 패러디 광고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지기도 했다.
H사 광고가 '고리에 복리로 빌려 드림(dream), 못 갚을 땐 장기로 갚게 해드림, 신체포기각서 쓰게 해드림'으로 패러디 됐는가 하면 L사 광고는 '누군가 내게 말했지. 이번만은 연체료를 갚을 수 있도록. 내게 겁을 주는 나의 XX카드야'로, S사 광고는 '내 남편이에요. 능력 없는 놈이죠.(남편이 뭔가를 펼쳐 보인다. 카드연체 경고장이다.) 여자를 놀랠 줄도 아는 남자죠'로, B사 광고는 '빚으로 사세요' 등으로 패러디 되기도 했다.
유명 영화 주인공과 쏙 빼닮은 모델을 등장시켰던 하나로통신의 '00766' 광고(웰커뮤니케이션)는 영화 '007'을 패러디 했다. 등장한 모델은 미국과 영국의 '룩스 어라이크(looks alike)'라는 모델에이전스를 통해 찾은 인물들로 이들의 모델료는 총 1억원이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를 직접 출연시킨 '대장금' 패러디 광고(금강기획)도 이목을 끌었다. 크라운 쌀과자를 선전했던 이 광고는 인기 드라마 '여인천하' 패러디의 후속으로 '대장금'의 설정을 이채롭게 패러디해 보는 이에게 친근함과 잔잔한 미소를 안겼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란 유행어를 탄생시켰던 롯데리아 '크랩버거' 광고(대홍기획)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 했다. 원작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노인이 사투를 벌이는 대상이 참치가 아니라 게라는 점이다. 코믹하고 익살맞은 설정으로, 보는 이의 눈길과 배꼽을 잡았다. 아직도 광고카피에서 아류된 유행어가 떠돌 정도로 기억속에 확실히 각인된 광고다.
'할리우드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간다고'란 카피의 KT '001블루' 광고(제일기획)는 마지막 장면에 영화 'ET'에 등장하는 보름달을 패러디 하기도 했다.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
이미 방영돼 히트 친 광고를 그대로 패러디한 이색적인 광고는 신선한 웃음을 준다. 그 대표적 예로 SK텔레텍 스카이 뮤직폰 광고(TBWA)를 절묘하게 패러디한 야쿠르트 용기라면 '왕뚜껑' 광고(코마코)를 들 수 있다.
이 광고는 음악부터 심상치 않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메리 제이 블리지의 '패밀리 어패어'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지만 도입부의 '왕' 등 가사를 한국어로 바꿨다. 코믹한 이미지의 남자모델은 휴대폰 대신 왕뚜껑을 들고 있다. 춤을 추는 배경 모델들의 손에도 역시 왕뚜껑이 들려 있다.
벽에 기대 선 여자 모델은 입맛을 다시며 유혹의 눈길을 보내는 등 엽기적인 모습에 가깝다. 리듬을 타며 여자에게 다가간 남자 모델은 "같이 들을까?" 대신 "같이 뚜껑 열까?"라는 대사를 날린다. 이어폰을 통해 청춘남녀가 감정을 나누는 원작과 달리 이들은 서로 라면을 먹으며 감정을 나눈다.
'이츠 디퍼런트(It’s different)'라는 카피가 '이츠 딜리셔스(It’s delicious)'로 변형된 대목까지 와서도 웃음을 참았다면 대단한 인내의 소유자다. 안경 낀 남자가 면발을 입에 물고 있는 벽화의 그림(원작의 그림은 존레논), 그 벽화 앞에 세워진 대형 보온물통, 야쿠르트 캐릭터 '라면보이'가 새겨진 여자 모델의 배꼽티 등은 '애교'의 극치다.
어정쩡한 패러디 같았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했을 수도 있었지만 원작에 가까운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왕뚜껑만큼 폭발적 반응을 얻진 못했지만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는 롯데제과의 '맛있구마'(대홍기획)가 먼저 시작했다. 이 광고는 89년 '따봉'이란 신조어를 낳은 델몬트 주스 광고 '따봉'편(대홍기획)을 패러디 했다.
최고 오렌지를 위해 브라질의 농장을 찾았던 원작처럼 이 광고 역시 고구마의 명산지인 전남 해남에서 촬영됐다.
재미있는 점은 델몬트 주스 광고와 마찬가지로 스태프들이 직접 광고에 출연했다는 것. 특히 조연급인 농부만큼은 원래 일반인 모델을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모델에게 직접 시범을 보였던 한 스태프(대행사 팀장)가 수준급의 연기력을 과시해 즉석 모델로 캐스팅 됐었다.
제품 어필보다 유행어만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은 원작에 비해 제품명과 카피가 동일해 효과적인 광고 패러디였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패러디 광고는 보는 이에게 신선한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만 주는 데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내복만 입고 출근해도 시선을 끌기엔 충분하다. 그러나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행동을 하는 천재라 여기지 않는다. 튀고싶어 안달난 정신 이상자로만 치부할 뿐이다.
광고에 있어서도 단순히 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이미지로 남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의 시선을 잡는 것과 동시에 기억 속에 좋은 이미지로 남게 만드는 것이 광고인의 최대 과제인 셈이다.
이런 복잡한 명제를 풀어나가는 그들의 끊임없는 고민이 있기에 우리 광고의 내일은 밝다.
<200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