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야 섀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로 이어지는 우리 민요같은
트릇트형 노래다
뜨거운 여름철이면 이웃집 콩밭 메는 어머니의 구슬픈
노래가락인지 어머니에게 어릴적부터 청승스럽게 들었다
처음 시작하면 그 노래가 어느새 신세 한타조가 되어 일이 끝날때까지 호미로 땅을 다지면서 어머니의 삶을 노래하섰다
나는 그때부터 녹두꽃이 덜어지면 큰일 나는줄 알았다
햬가 뉘에 뉘에 지는 석양에도 녹두꽃이 떨어 질까봐
나는 조마 조마 했다
난 어릴적부터 녹두꽃처럼 우리 큰아버지도 지지 않길을 바랬다
식구들 먹기 살기도 힘든 시절 큰아버지는 어릴적 부터 나를 데려다가 공부 시키고 키워 주셨다
아버지는 일만 죽어라 열심히 했지 식구들 하나 건사하지 못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일만 한다고 큰집에 가시면
매번 큰아버지에게 호통을 당하셨다
아버지는 가족 부양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참 욕심도 없었다 나를 큰집에 보냈으니 가난한 우리집은 입하나 덜었다
큰아버지는 나를 먹여 살리고 중고등학교를 큰집에서 살어서 큰집이 나에게는 우리집이 되었다
큰집은 구박이 아니라 부모님보다 더 좋아 해주셨고 큰어머니는 어머니가 못채워준 지극한 사랑으로 그때 참 많이도
고마웠다
그시절 어느집이나 삶이 다들 팍팍했다
자기 자식도 헐벗어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남의 자식 데려다가 학교 보내기가 쇱지는 않았는데 조카 자식 데리다 공부시킨다는게 세상 천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인자하고 엄하신 우리 큰아버지는 전형적인 선비같은 꼿꼿한 분이라서 아버지에게 배우지 못한 예의 범절을 어릴적부터 배우고 따르고 익헜다
큰집 사정도 여의치는 않았다
형님들 가르치기에도 뼈가 빠지고 나 뗘문에 사촌 동생 하나는 공부도 못시키고 식구들이 많아서 늘 허덕였지만 자기 자식보다 살뜰하게 챙기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시고 참 기가
막혔다
누가 이토록 조카 자식을 챙길수 있을까
나 때문에 피해를 본 사촌들에게 고개를 들수 없을 정도로
참 지극 정성으로 키우셨다
그때 시골에 갈때마다 명절때마다 나를 키워주신 큰집부터
갔다 큰집에 먼저 가는게 편하고 그렿게 큰집부터 가고 싶었다
그렇게 곱게 키워주셨지만
난 단 한번도 그분들을에게 보답은 커녕 근심과 걱정만
되었다
좀 빨리 기반을 잡아 그분들을 평안하게 한번 모시는게 평생 소원이었다
그때도 녹두꽂이 떨어질까 조마 조마 했다
녹두꽃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는 늘상 그렇게 시작
되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는 언제까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큰어버지 돌아가신날 숨도 없는 큰아버지를 붙잡고
밤새 새벽녁까지 나는 통곡을 했다
밤새 끌어 안고 용서를 빌었다 세상이 허망했다
큰아버지는 조카 자식을 평생 챙기셨다
고결한 인품은 청옥 두타 보다 더 큰 울림으로 깊었다
흐트리지 않은 삶은 태백의 주목보다 더 뱐듯하고 강했다
내가 살아 가는데 큰 길을 열어 주셨다
세상이 참 밉고 어이가 없었다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녹두꽃은 그렇게 떨어젔다
녹두꽃은 하염없이 구술프게 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구슬픈 노래 가락이 들려 왔다
황토벌 힌옷으로 목놓아 부른 그 노래가
녹두꽃이 피어 오르면 한맺친 서러움도
함께 피어 오른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