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도 예술이라면 빼 놓을 수 없을 만큼 세계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라입니다. 경제력으로 치자면 우리나라 바로 앞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제낄 수 있을 것 같은데 결코 만만치 않은 나라입니다. 로마를 가본 사람은 수긍할 수밖에 없겠지만 오래된 건축물이나 멋진 조각품들만으로도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화려하고도 단단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댄스스포츠에서도 세계 랭커들이 즐비해서 댄스의 본고장이라는 영국을 위협하는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집 온 메디시스가 프랑스 궁정을 춤으로 유럽의 문화 중심지를 만든 이후 정말 발레는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불리게 한 그 중추적인 수단이 된 것입니다. 춤의 역사로 바로 보면 파리가 왜 예술의 도시로 불리게 되었는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파리의 예술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발레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큽니다.
프랑스에서는 세계최초로 왕궁에 발레 학교가 생기고 루이 14세는 직접 발레에 출연할 정도로 발레는 프랑스에서 전성기를 맞았으나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은 루이 16세를 목 자르고 공포정치가 행해질 때 무용가들도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발레는 엄청난 돈이 드는 예술입니다. 프랑스 왕정이 무너지고 유럽에 남은 전제군주는 러시아뿐이었습니다. 유럽의 발레 스타들, 안무가들, 발레마스터들이 러시아로 몰려 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러시아가 클래식 발레의 메카가 된 것입니다.
아길레프가 영도한 러시아의 발레뤼스가 1909년 파리에 입성하면서 전 유럽에 발레 러시아의 명성을 떨쳤으나 결국 디아길레프가 1929년 57세의 나이로 운명함으로써 발레의 중심지는 유럽 각국으로 분산되어 버렸습니다.
러시아도 1917년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전제군주가 무너졌으나 발레는 묘하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발레란 원래 왕실의 후원으로 자란 귀족들의 예술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평등한 시대를 부르짖은 소비에트 연방과는 맞지 않았지만 살아남아 1927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 ‘붉은 양귀비’가 올려집니다. 주제를 공산주의에 맞춰 오히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오면서 볼쇼이 시대를 맞게 됩니다.
1905년 이사도라 덩컨이 러시아에 나타나 발레를 부정하고 모던댄스를 주창하고 나서면서 춤은 모던댄스라는 새로운 장르로 갈라져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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