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한의원을 지나는 길에 벽에 붙어 있는 <색각검사표>
아내는 잘 읽는데, 나는 두 개를 겨우 맞히고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색깔 하나하나를 구별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초록과 파랑이 섞여 있는 것은 잘 구별하기 어렵다.
적녹색약!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일부러 섞어놓은 글자를 구별하는 일 외에는
그다지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는 터였다.
집 가까이 있는 한의원이라서 자주 침과 뜸 치료를 받으러 오던 중에,
원장님의 권유로 검사를 받게 되었다.
총 70개의 항목 중 11개 만 구별할 수 있었다.
나이도 있고(마흔인데...) 직업에 따른 별다른 불편함이 없는 터라
20개 정도만 볼수 있도록 치료해 보자고 권유하셨다.
그냥 빛만 쬐는 것 뿐인데,
유전이상이라는 이런 병(?)^^ 도 치료될 수 있을까?...
치료되면 좋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속에
일주일 쯤 지났을 까?
문득, 밤에 운전을 하면서
앞 차의 브레이크 등이 심하게 자극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차는 새로 나온 차 인가? 무슨 차가 이렇게 브레이크 등이 밝지??"
하면서 살펴봤더니
그냥 '쏘나타' 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보고, 매일 매일 여기저기서 보던 '쏘나타'의 브레이크 등이
오늘만 밝아졌을리는 없고.....
그 옆에 차도, 그 옆의 앞에 차도, 그 앞의 앞에 차도.....
붉은 신호등을 선두로 줄 지어선 여러 대의 차들이
단체로 붉은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뭐야..... 일 주일 치료 받았다고 벌써 효과가 나는 걸까?? 설마 ....!! "
며칠이 지나고..
매우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외출하는 아내가 화장을 한다.
오늘 따라 유난히 립스틱 색이 짙다.
"당신 어디가? 립스틱이 왜 이렇게 붉어?? "
"붉어?? 어제도 바르고 그제도 바르고 매일매일 바르던 그 건데... 왜 갑자기 그래??"
"아니야..... 저번에 그거 아니잖아?"
"당신이 바르라고 사 준 그거 맞는데?"
"내가 사 준거?? 내가 사 준게 이거라고??
진짜??? 내가 이렇게 빨간걸 사 줬어?? ^^;; "
"ㅡㅡ;; "
언제 부터인가 내 눈의 세상에서는
붉은 색을 셀 수 있는 단위가 훨씬 많아진 것 같다.
아니..... 심하게 붉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다.
자동차 브레이크 등도,, 빨간 신호등도,, 밤거리의 수많은 네온 싸인,, 아내의 립스틱,,
내가 사 준 빨간 코트,,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콜라에 까지도........
이렇게 자극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그렇게 자극적인 붉은 립스틱도
내가 선물했다고 끝까지 발라준 아내가 너무 고맙고.... 또 미안해서
새 립스틱을 선물했다.
물론 자극적이지 않는 연한 색이다.
아내는 이런 색을 내심 좋아하면서도 의심에 찬 눈빛으로 묻는다.
"이렇게 연한데 괜찮아? ㅎㅎ"
"ㅎㅎ"
연한 립스틱을 바르면 늘 아파보이는 것 같아서,
기어이 우겨서 바르라고 사 준 빨간 립스틱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열심히 발라 준 아내에게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어서 기쁘다.
또 다른 선택의 기회가 더 많이 열려질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