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줄무늬 우산
박무형
며칠 전 그걸 잃어버렸다. 20여년 고락을 함께한 것이어서 마음이 꽤 허전했다.
그것은 우연히 내게로 왔다. 90년대 초반, 광화문 부근 직장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늦은 퇴근길에, 보도에 떨어져 있는 우산을 발견했다. 그것을 주워 근처 어느 가게에 맡겼었는데 열흘이 지나도 임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가게주인이 돌려주기에 집으로 가져오게 되었다.
약간 낡아 보였으나 브라운 바탕에 원단에 중간과 아랫부분에 주홍빛 줄무늬 테두리가 있어 제법 세련되어 보였고, 외제상표에다 신소재 제품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었다. 아내는 디자인이 고상하고 가벼워서 여자들 양산으로 겸용해도 좋겠다고 했다.
그 때부터 그것은 다른 우산들과 나란히 한 식구가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족들이 서로 가져가려고 할 만큼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나도 가끔 그걸 쓰고 다녔다. 3단 우산이라 서류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편했다.
살대 끝에 붙은 원단이 떨어져 실과 바늘로 얽어맨 자국이 있는가 하면 원단이 안 떨어진 살 끝에도 모두 한 번씩 덧 꿰맨 자리가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살대와 원단을 고정하는 실매듭을 중간에 한 번씩 더 시침하여 놓았다. 옛 주인이 얼마나 그 우산을 애지중지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그것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아쉬워했을까, 마치 주인인 것처럼 쓰고 다니는 나 자신이 꽤나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도 그처럼 아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염치를 덜었다.
그 우산은 10여 년이 지나도 반듯한 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천이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해서 다른 가족들의 애용이 뜸해지면서 나만의 우산이 되어버렸다. 지방으로 발령받아 가족을 떠나있을 때도 그것은 나와 함께 있었고, 출장이나 여행, 특히 주말 등산을 갈 때도 어김없이 동행했다.
몇 차례인가 그것을 잃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용케도 되돌아오곤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두고 내렸다가 되찾은 일도 있고, 사무실 여직원이 빌려 갔다가 가져오지 않기에 재촉하여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스위스로 여행을 갔을 때는 알프스의 ‘융프라우 요흐’라는 높은 설원에서 사진을 찍다가 바람에 날려버릴 뻔하기도 했다. 요행이 울타리 줄에 걸려 통제구역으로 막 넘어 갈려는 것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다른 우산은 잃어버려도 예사였는데 그것은 왜 그리 애착이 갔던지 모를 일이었다.
행정 연수로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안개가 낀 런던 거리의 궂은비를 막아 준 것도 그 우산이었다. 한동안은 영국 남부 해안에 있는 ‘워딩’이라는 조그마한 휴양도시에 머문 적이 있었다. 퇴락했으나 고풍스럽던 저택들, 그 사이로 길게 늘어진 쓸쓸한 거리들, 숙소에 이르는 긴 모래 밭길, 나는 비가 올 때나 햇빛이 부실 때나 그 주홍빛 줄무늬 우산을 쓰고 다녔다. 그 때 나는 그 퇴색 된 우산이 그 도시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이 어느 작품에서 이런 도시의 낡은 고택들을 가리켜 ‘초라하나마 퇴락한 가문의 긍지를 잃지 않으려는 옛 귀부인의 풍모와 같아서 오히려 보기 좋다’고 표현했던 것을 떠올리곤 했다.
어느새 나도 우산처럼 늙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등산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 우산을 주로 등산용으로 썼다, 나중에는 아예 등산배낭 속에 들여앉혔다. 그동안 험한 산길을 헤치고 다녀선지 몇 번이나 살대 끝이 삐져나오고 살대가 휘어졌다, 그때마다 바로 잡아 주었다. 손잡이가 깨져 비슷한 것으로 바꿔 끼기도 했다. 그래도 그 형체와 뼈대는 크게 흐트러짐이 없어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산행에서 소낙비를 만나 그 우산을 쓴 것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비가 그쳐 우산을 접어 든 채 친구들과 내려오던 중에 내 왼쪽 다리가 쥐나는 바람에 잠시법석을 떨다가 그만 그것을 잃고 말았다. 나중에야 알아채고 황급히 되돌아가 봤지만 이미 거기엔 우산이 없었다. 오가던 길을 다시 살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우산을 그토록 오래 붙잡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 어둡고 좁은 배낭 속에 평소에 내버려 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10여 년 전 알프스의 만년설 위에서 그것을 놓쳐 날렸을 때 애써 가져오지 말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노스페이스’ 빙벽이 바라보이는 그곳에서 그 나름대로의 한살이를 산뜻하게 마감했을 것이 아닌가.
주홍빛 줄무늬가 은은히 내비치던 그 우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