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8일 토요일
[(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모 신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으로 점점 보편화되어,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게 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냈는데, 1996년 경신성사성 교령에 따라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애타게 찾은 부모에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9-11
내 백성의 9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교회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의 성심이 우리의 죄로 상처 입으신 마음과 인간에 대한 무한하신 사랑을 뜻한다면, 성모님의 성심은 하느님을 향한 순명과 인간을 향한 깊은 사랑을 뜻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온전히 일치하시고, 그리스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시면서, 인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십니다.
성모님의 성심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닮은 사랑은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일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서 조건 없이 무엇이든 다 내주는 그 마음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온 삶을 아드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바치셨고, 지금은 그 사랑으로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을 보살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 풍부한 은총을 청하여 얻어 주시기에 우리는 삶의 어려움이 닥칠 때, 성모님의 모성에 호소하며 전구를 청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육체적, 심리적, 정서적, 지적인 면에서 제대로 잘 성장하려면 아버지와 더불어 어머니의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신앙 안에서도 모든 인간은 모성적인 사랑과 돌봄이 필요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아버지요 어머니이신 하느님의 부성적이고 모성적인 사랑에 자신을 맡기지만, 성모님의 모성적 돌봄을 통한 전구도 청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랑의 체험이 우리 신앙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성모님의 돌봄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성모님의 인류를 향한 거룩한 마음을 닮아 갈 것입니다. 세상을, 특히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전구하시는 성모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모님과 예수님 사이에 이루어진 특별한 소통 방식!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파스카 축제는 다른 그 어떤 축제나 명절보다 의미가 큰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파라오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세세대대로 축제를 거행했습니다.
따라서 파스카 축제가 다가오면 운신이 가능한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축제를 지내러 이스라엘로 올라갔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축제 전후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그날이 오면 가정마다 파스카 음식을 차리고 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전통과 율법에 충실했던 모범적인 유다교 신앙인이었던 요셉과 마리아도 파스카 축제가 다가오면 매년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소년 예수님께서 12살되던 해 파스카 축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해도 성가정 구성원들은 어김없이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순례 기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작지만 꽤 난감한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소년 예수님이나 마리아 요셉이나 양측 다 실수랄까 과실을 저질렀습니다.
12살 소년 예수님께서 축제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홀로 남아버린 것입니다.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의 책임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습니다. 부모로서 귀가길에 인원 점검을 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소년 예수님께서 또래들과 어울려 잘 돌아오겠지, 하고 나자렛을 향한 하룻길을 걸어와 버린 것입니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인지한 마리아와 요셉은 당혹해하며 사흘내내 아들 예수님을 찾아 사방팔방을 헤매다닌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갖은 걱정과 후회와 탄식 끝에 사흘만에 아들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아냈습니다. 놀랍게도 소년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율법학자들 사이에 앉아 너무나도 태연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놀라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했던 마리아는 애써 분노를 내리누르며 아들 예수님께 말을 건네고, 소년 예수님도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시는데, 이 부분이 오늘날 우리 가정의 대화와 소통 방식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소년 예수님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무럭무럭 성장한 예수님께서 12살 정도 되니, 슬슬 메시아성이 드러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님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도 늘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의 양육자로서 책임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차피 메시아시니, 알아서 하시겠지? 당신이 뭐라고 말씀을 하시든, 다 맞는 말일테니,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가 있겠어?’라고 단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년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그의 영적 인간적 메시아적 성장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애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 4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정말이지 특별한 한마디 말씀을 던지십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 49)
보십시오. 소년 예수님은 슬슬 자신의 메시아성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도 넌지시, 이제 제가 부여받은 인류 구원이라는 사명 수행을 위해 떠나갈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반응에 마리아께서 보인 태도를 보십시오.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였습니다. 침묵과 기도 속에 말씀에 담긴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정말이지 억울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든 소년 예수님 12살 체험이었지만, 예수님의 태도를 또 한번 보십시오. 하실 말씀을 하셨지만, 더 이상 과하게 어머니를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소년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또 다시 20년 세월을 침묵과 기도 속에 살아가셨습니다.
마리아와 소년 예수님 사이에 오간 대화와 소통 방식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얼마나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지 모릅니다. 때로 분노가 일기도 했겠지만, 결코 분노하지 않으면서 편안하게 하고픈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상호 동반자로서, 상호 교육자로서 두 분 사이에 언제나 넉넉한 완충 지대를 건설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아버지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심을 확신하며, 매사에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했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 비슷한 말씀으로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 밀을 심었는데 밀밭에 누군가 가라지를 심었다고 합니다. 농부는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않고 키운다고 합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밀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수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버려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은 분명 좋은 나무입니다.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은 분명 알곡을 맺는 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좋은 나무인 하느님의 숨을 나쁜 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밀인 하느님의 숨을 가라지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반도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은총의 불이 켜집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총의 불이 꺼집니다.
아직은 그 실체가 잘 규명되지 않지만, 미래의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학문 중의 하나가 ‘양자역학’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물질은 어느 한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물질이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관찰자가 바라보면 물질이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시선을 돌리면 물질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만나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를 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질로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무게를 잴 수도 없고, 부피를 알 수도 없고, 크기를 측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좋은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나쁜 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알곡을 맺는 밀이 되기도 하고, 쭉정이로 버려지는 가라지가 되기도 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긍정의 마음을 가지면 극한의 환경에서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의 마음을 가지면 풍족한 환경에서도 근심의 어둠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제 마음을 잘 드러내는 말이 있습니다. ‘잘했네! 잘될 거야!’ 저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 그렇게 하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이 어려운 문제들이 해소되곤 했습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 3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혼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을까요?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셨을까요? 예전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했고, 데모하는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수배자가 되었고, 감옥에도 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적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은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많은 학생은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의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건강, 성공, 출세, 결혼을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은 세상 것들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일,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하였던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억울하게 비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의 마음을 티 없으신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여!’
<지금은 마음으로 당신을 품습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기에
마음으로만
당신을
품습니다
언젠가
이 마음이 곧
내가 되리라 믿기에
마음으로만
품을 수밖에 없음에
슬퍼하지 않고
마음으로나마
품을 수 있음에
고마움과 기쁨으로
살며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지금은
마음으로 당신을
품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메다르도 (Medard)
활동년도 : 545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누아용(Noyon)
같은 이름 : 메다르두스, 메따르도, 메따르두스, 메타르도, 메타르두스
성 메다르두스(Medardus, 또는 메다르도)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의 살랑시(Salency) 태생으로 그의 부친은 프랑크 귀족인 듯하다. 부모는 아들을 교육시킬 목적으로 지금의 생캉탱(Saint-Quentin) 수도원으로 보냈는데, 그는 이곳에서 공부하고 보통사람으로 지내다가 33세 때에야 사제가 되었다. 그는 설교와 선교 활동으로 너무나 유명하고 또 뛰어났기 때문에, 그의 주교가 운명한 즉시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옥수수 추수와 포도 수확의 수호성인이다. 사람들은 그의 축일에 비가 오면 40일 간의 날씨는 축축하다고 믿고 있다. 그는 메타르두스(Metardus)로도 불린다.
성녀 칼리오파 (Calliopa)
활동년도 : +250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갈리오파, 갈리오페, 칼리오페
동방교회의 순교자인 성녀 칼리오파는 비록 그녀의 순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고 행전 또한 신뢰할만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칼리오페(Calliope)로도 불린다
복자 파치피코(Pacific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체라노(Cerano)
활동연도 : 1424-1482년
같은이름 : 빠치피꼬, 빠치피꾸스, 파치피쿠스, 파키피코, 파키피쿠스
이탈리아 노바라(Novara)의 파치피쿠스로도 불리는 체라노의 파치피쿠스 라모타(Pacificus Ramota, 또는 파치피코)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노바라 교구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었다.
그는 노바라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21세 되던 해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이탈리아 내에서 설교자로서 활동했는데,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선교사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그는 윤리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1475년에는 이를 발간하였다.
1480년에 그는 체라노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지역의 선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갔을 때 중병을 얻어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체라노에 안장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45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