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천성산 홍룡사
홍룡사는 내원사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은 산길을 한참이나 구불거리며
올라가서야 홍룡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에 속하는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661~681) 원효(元曉)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경내 위쪽 협곡에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듯 신비롭게 느껴지는 홍룡폭포가 숨어 있다.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폭포는 삼층 비류가 흘러내리는데 상층은 높이가 80척이요, 중층은 46척, 하층은 33척으로 되어 있다.
홍룡사 아래쪽은 수량이 풍부한 골짜기 다섯 가닥이 모여 물도 넉넉하고, 곳곳에 너럭바위가 널려 있을 뿐 아니라
숲도 적당히 우거져 있는 등 계곡 풍광 또한 뛰어나 여름철이면 물놀이 피서객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명(寺名)에서 터에 이르기까지 물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홍룡사는, 그래서 관음도량이다. 폭포 옆으로 백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이 있고, 선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홍룡사의 관음보살 중에는 폭포에 현현(顯現)한다는 낭견관음보살도 있다고 하는데, 1천여년 동안 감로수를 쏟아낸
폭포와 인접한 곳에 관음도량이 들어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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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올라가며 만나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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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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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신라 문무왕 때 창건된 후 임란으로 전소된 홍룡사가 중창된 것은 1910년 경이다. 그러나 홍룡사의 금당 격인 대웅전은 79년에 중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익공계 구조로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대웅전은 현재 개축중이라 내부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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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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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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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산사의 새벽 종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고요와 안정을 찾을수 있다.
옷깃 여미게 하는 영혼의 소리 범종은 108번뇌를 타파하기 위해 치는 것이며, 무간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치는 것이다. 지옥이 땅밑에 있다 해서 대개의 종은 밑이 트여 소리가 밑으로 퍼져 내려가게 만들어 졌다.
홍룡사 범종은 종각과 함께 전형적인 신라 종의 형태로 1981년 만들어졌다. 지붕의 형태는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오르면서 지붕 중앙의 한점에서 합쳐지는 양식을 하고 있는 육모지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없고 추녀마루만 있다.
종각내부에는 법종과 법고가 있으며 범종의 형태는 밑이 넓은 중국 종과 다르게 밑 부분이 오므라든 모양을 하고 있다. 종 몸통의
위와 아래에는 당초문 띠를 아름답게 둘렀고, 연꽃 모양의 당좌(撞座:종을 치는 곳)는 가장 타종에 적합한 위치이다.
법고는 여러 가지 불교행사 때 쓰는데, 주로 아침 저녁에 올리는 예불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며 중생의 번뇌를 모조리 격파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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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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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전 내부
1984년 조성된 무설전은 출가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예절과 계율을 익히고 석가모니의 설법 중에서 가려 뽑은 경전을
일정 기간에 걸쳐 배우는 곳인데, 일반 불교 신도들을 대사으로 설법을 하기도 하며 또 참선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익공계 구조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관음성지로서의 홍룡사를 보여주 듯 금동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천수천안관음보살 앞에는 대웅전에 모셨던 주불인 석가여래불(79년 봉안)년과 좌우보처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살
(79년 개금)을 옮겨 모시고 있었다. 정면 5칸의 어칸에 무설전이라는 편액이 큼지막하게 걸려있고 각 기둥을 따라 6개의 주련이 있다.
어칸을 바라보아 좌측 3칸은 감로당(甘露堂)이라는 편액을 따로 두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부처님 법의 무궁무진함을 의미하고 있다.
감로당 기둥 역시 4개의 주련을 걸어 법을 전하고 있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普薩)의 ‘천’은 무량.원만의 뜻이고 ‘천수’는 자비의 광대함을, ‘천안’은 지혜의 원만.자재함을
나타낸다.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은 27개의 얼굴과 천의 손, 천의 눈을 가진 관세음 보살로서 '대비 관세음 보살'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조각이나 그림에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모두 만들기란 어려우므로 줄여서 얼굴을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20개씩 40개의
손을 묘사하고 그 손바닥에 눈을 그리고 이 40개의 손과 눈은 각각 25종류의 중생을 제도하므로 25*40=1,000이 된다,
이것은 꼭 1,000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일체 중생을 제도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또한 상호에는 11면(面) 관세음 보살을
표현, 머리 부분에 11개의 얼굴을 가진 11면 관음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본얼굴은 진실과 불변의 지혜를 상징한다.
천개의 손바닥 하나하나에 눈이 있어, 모든 사람의 괴로움을 그 눈으로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하고 있으며
관음신앙의 유포와 함께 민간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무설전 중앙에 위치한 천수천안관음보살상 상단으로 비천상과 용, 연꽃 등의 화려한 장식을 한 닫집이 숭고한 천상세계로서
불국정토를 표현하고 있고 천의를 날리는 비천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장식, 불전을 장엄하고 있다.
무설전에는 이 외에 동쪽으로 신중탱 하나만을 두어 넓직한 공간에 설법장소로서 손색이 없게 배치하였다.
무설전 주련은 다음과 같다.
만리백운일륜홍일 (萬里白雲一輪紅日)
일념망기태허무점 (一念忘機太虛無玷)
아위법왕어법자재 (我爲法王於法自在)
선풍대진법우편림 (禪風大振法雨偏林)
설탄범천구포사해 (舌呑梵天口包四海)
모탄거해다납수미 (毛呑巨海茶納須彌)
무설전(감로당) 주련은 다음과 같다.
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적적료료본자연 (寂寂廖廖本自然)
하사서풍동림야 (何事西風動林野)
일성한안려장천 (一聲寒鴈唳長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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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문
수정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과 홍룡폭포에 이르며 홍룡폭포 옆에는 관음전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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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과 내부
홍룡폭포와 관음전으로 향하는 계단 왼편으로 위치한 산신각은 1969년 조성되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익공계 구조에 맞배지붕,
민흘림 기둥을 하고 있다. 산신각은 산신령을 봉안한 당우로 우리나라 사찰에만 존재한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착 신앙이었으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하면서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
홍룡폭포와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 왼쪽에 위치한 산신각에는 오른쪽에 백발 노인으로 표현된 산신과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서 호랑이를 배치하고 있으며 백발의 수염, 벗어진 머리, 긴 눈썹이 휘날리는 신선의 모습을 하고 손에는 진한 초록색의
부채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왼쪽에는 나한(羅漢)중의 한 사람으로 스승없이 자기 힘만으로 모든 진리를 깨친 성자(聖者)인
나반 존자(那畔尊者)를 배치하고 있는데 각각의 후 탱화로 산신탱과 나반존자탱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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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불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행복을 빼앗아 가는 병에서 자신을 지키고 자유로워지려고 약을 찾게 되고, 약에 의지해서 잃었던
건강을 다시 찾고 병을 물리치려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욕망이, 중생의 질병을 치료해주고 재앙을 소멸시켜 주는
'약왕(藥王)'신앙을 낳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의 병, 정신적인 병을 치료해 주는 명의는 신앙이요, 종교요,
바로 약사여래(藥師如來)일 것이다,
약사 여래는 약왕(藥王), 약사유리광 여래(藥師琉璃光 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 부른다.
홍룡폭포의 게센 물줄기는 이내 소를 이루고 바로 그 아래 노천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이 석상은 대좌와 광배를 구비한 완전한 상으로서 신체각부의 윤곽은 굵고 뚜렷하다. 두발은 나발이고 존용(尊容)은 풍만하며
방형(方形)에 가깝고 근엄 단정한 분위기가 감돈다. 목은 짧으나 삼도(三途)가 분명하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이나 오른쪽
어깨에서는 옷깃이 수직으로 내려와 무릎을 거쳐서 늘어졌다. 가슴 앞에서는 의문(衣紋)이 밀집 되었으며 오른손은 무릎 위에
얹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약호(藥壺)를 받들고 있다.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형태를 한 이 약사여래블은 눈·코·입을 세련되게 표현하여 풍만한 얼굴과 잘 조화되어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굵고 곧은 목에 삼도(三道)가 있다. 어깨는 넓고 반듯하며 가슴도 발달되어 풍만하고,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에 다리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다. 대좌는 전형적인 팔각대좌인데 하대석과 상대석은 연화조각을
팔각중대석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이 단순하다.
특징적인 것은 머리 위에 방형의 돌갓을 얹었는데 88년 조성 당시 보물 93호 파주용미리석불입상(坡州龍尾里石佛立像)과
보물 제431호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을 본떠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또하나 눈여겨 볼 점은 석가모니의 성도 순간을 상징하는, 석가모니불 고유의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석가모니 고유의 수인인 촉지인이 약사불에 채용된 것은 통일신라 후기 조각사의
새로운 경향으로 보이다.
항마촉지인 좌상은 석가불이 분명하지만 하나의 보편적인 여래좌상의 한 형식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아미타불이나 약사불로도
표현될 수 있다고 해석한 이래로, 석가불이 깨달았을 때 마군(魔軍)을 항복 받는 것이나 약사불이 병마(病魔)를 항복 받는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석가불이 짓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약사불에게도 짓게 하였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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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폭포와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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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내부
1970년 조성된 관음전은 홍룡폭포의 물줄기 허리부분에 위치한다. 주심포 구조로 맞배형태를 띠고 있으며 정면 3칸과
측면 2칸으로 전각위치에 비해 비교적 규모있게 지어졌다. 정면 어간에 여닫이문, 양 협간에 외여닫이문을 달았고,
측면과 후면은 모두 벽을 쳤다. 내부는 통간으로 一자형의 긴 불단을 조성했다.
지붕은 풍판널을 양쪽에 댄 맞배로 꾸몄고, 창호는 빗살 여닫이 형식이다.
천성산 중턱, 홍룡사 경내의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전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특이한 것은 백의관음으로 표현된 해수관음보살과 폭포속에서 화현하신다는 낭견관음을
함께 모시고 있어 관음성지로서의 그 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후불 탱화 역시 관음탱과 천수천안관음탱을
조성하고 있다.
기둥 네곳에 다음의 주련이 걸려 있다.
일엽홍련재해중(壹葉紅蓮在海中)
벽파심허현신통(碧波深處現神通)
작야보타관자재(昨夜寶陀觀自在)
금일강부도장중(今日降赴道場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