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진짜 김태희가 밭을 갈고 있나?
(답)
우즈베키스탄에는 김태희 급이 밭을 갈고 있고 전지현 급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며 거리엔 수많은 샤라포바가 활보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인가?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미수다 (미녀들의 수다)에 등장한 자밀라와 구잘 만이 전부가 아니고 현지에 가 보니 정말 그런 미녀분들이 많더라. 여행하는 사람들에 따라서는 운 나쁘게 마주치지 못할 경우도 있으나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그런 사람을 볼 기회가 많았고, plastic surgery (성형수술)이 발달된 곳도 전혀 아니니 자연미인들이 많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무려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즈베크인 (80%), 러시아인 (5.5%), 타지키스탄인 (5%), 카자흐인 (3%), 카라칼팍인 (2.5%), 타타르인 (1.5%), 몽골, 중국, 한족 등 다수의 인종들의 유전인자가 섞이니 자연히 미인들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옛 소련시대에 스탈린이 통치를 하기 위하여 같은 종족들이 한 지역에서 계속 모여 있게 되면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강제로 종족들을 이주시켜 섞어 놓았다고 한다.
질문 2. 옛 소련에서 독립하였다는데 공산주의 국가인가?
(답)
1992년 12월 8일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의 정체는 대통령중심의 민주공화제이다.
그러니까 공산주의 국가인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여 공화제로 간 것이 약 8년 밖에 안된 나라이다.
대통령이 있고, 양원제 (상원, 하원)의 입법부가 있으며 사법부가 독립되어 있으나, 구 공산당의 당 조직이나
관료기구가 거의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며 구 공산당인 인민민주당은 여전히 가장 큰 정치세력인 나라이다.
현지에 가 보면 거리의 곳곳에 제복 입은 군인 같은 경찰들이 서 있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의 출입 경비도 군인 복장을 한 경찰들이 호텔 경비를 서고 있었다.
출입국 심사 시에는 공산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며 위압적이며,
소지한 현금을 출입국신고서에 반드시 기재하여야 하는데 실제 조사를 하여 금액에 차이가 나면
압수하여 뺏어 버린다고 한다 --;; . 관공서 일처리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하게 느리다고 하니..(어디까지나 들은 말!)
질문 3. 맛 있는 음식이 있는가?
(답)
내 경우는, 솔직히.. 음식은 별로이고, 과일은 환상적이었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엿보면 말은 안 하지만 나와 비슷하지 않나 생각된다.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려는 것 같기는 한데..
이 나라 사람들은 말고기와 양을 잡아 먹고(?) 산다.
중앙아시아라 해산물이 전혀 없고 (생선회, 랍스터, 새우, 전복, 멍게, 해삼, 거루퍼 등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
유제품인 치즈,
그리고 플롭 (plov, 양고기 넣고 기름에 볶은 느끼한 볶음밥), 샤실릭 (shashilk, 양꼬치 구이),
뺄메니 (작은 크기의 만두), 리뾰쉬까 (빵의 일종), 말고기 순대 등등이 대표적이다.
(플롭, Plov)
(샤실릭, Shashilk)
(뺄메니, Pelmeni)
그런데, 반면 과일은 매우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기후 일교차가 매우 큰 사막성 기후를 가진 대표적인 농업국가로서 과일 면에서는 매우 먹을 것이 많다.
그 나라의 대표적인 과일인 딩야 (메론의 일종, 매우 당도가 높고 수박보다 크다),
봄에는 당도 높은 살구와 체리가 대량 생산되고, 여름에는 수박 (훌륭하다), 복숭아, 포도 등이 많이 난다.
특히, 현지에서 맛 본 것 중에 오디 (뽕나무 열매)는 매우 환상적이었으며, 벌집과 함께 나온 자연산 토종꿀 (여기는 가짜를 만드는 것이 더 비싸다고 한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음식이다.
(딩야)
(오디)
(Dragon fruit)
현지에 있는 동안 조선족이 운영하는 한식점에 갔었는데,
국수 (우리나라 잔치국수와 같은 것), 당(?!) 고기 (무엇인지 아시죠?),
찌개는 현지음식은 아니었지만 마치 북한에 와서 음식을 맛 보는 느낌이었다.
질문 4. 사람들은 어떠한가, 친절하고 괜찮은가?
(답)
우즈베키스탄을 두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울고 갔다가 울고 오는 나라”. 즉, 이 곳에 올 때는 열악한 사회 인프라와 공산주의 국가 분위기 때문에 오기
싫어서 울고 왔다가 갈 때는 이 나라 사람들과 자연환경에 정이 들어 떠나기 싫어 울고 간다는 뜻이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에 그 나라 사람들을 알 수는 없으나
우리가 만난 그 나라 사람들은 친절하고 붙임성도 있었고 외국인에 대해 잘 대해 주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왔다.
특히, 현지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타쉬켄트 시내를 보고 싶다는 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안내를 자처하였고,
그네들 덕분에 도시 거리와 현지 시장 구경, 그리고 지하철 체험까지 할 수 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지하철에 대하여 자부심이 매우 컸다.
타쉬켄트에 있는 이 지하철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통되었다고 한다, 1977년)
질문 5. 차는 무엇을 타고 다니는가?
(답)
여기 와서 또 한가지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거리에서 보이는 차였다.
정말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이 한국 차이며 대우차 전시장과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있었던 타쉬켄트 거리 어디를 가나 대우의 마티즈 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대우차 마크 또는 시보레 마크를 달고 있었음)
좀더 중형의 대우차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택시의 경우는 좀 독특한데,
현지에서는 택시 이외에도 일반 차들이 택시 영업을 하고 있으며, 택시요금은 미터기로 계산하는 것이 드물고
보통 택시 기사에게 미리 목적지를 이야기 한 후 가격을 흥정하여야 한다고 한다.
치안상태는 여타 주변국가에 비해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나,
최근 경제상황 악화로 인해 외국인에 대한 강도, 절도가 증가 추세에 있어
현지에 갈 때는 이미 예약된 일정과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질문 6. 한국사람들도 거기서 활동하고 있는가?
(답)
한국은 1991년 12월 우즈베키스탄을 국가로 승인 후, 1992년 1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3년 12월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993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방문하여 양국간 경제교류와 기술협력을 협의하였고, 2005년에는 노무현대통령이 공식 방문하였다.
한국의 민간기업이 진출해 있고, 양국 합작 가전제품 및 자동차공장이 건설되었다. 양국간 무역은 독립 후 급속히 신장하여 한국은 러시아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 되었다.
2006년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은 자동차 부품, 엔진, 편직물, 합성 필라멘트 등으로 수입액은 6억 4900만 달러, 수출 품목은 면, 면직물, 인쇄물 등으로 수출액은 4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1937년 스탈린 통치하에 극동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고려인은 현재 20만 명 이상이며, 타슈켄트와 그 주위지역에 5만 명 이상 거주한다. 고려인은 다른 민족에 비하여 교육수준이 높으며 국가 경제발전, 특히 농업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과는 2006년 이후 유무상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으며 2006년 기준 약 130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미수다 방송 이후 우즈베키스탄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 ‘코리안드림’을 안고 한국으로 돈을 벌러 오거나 국제결혼을 하여 한국에 이주해 오는 사람들도 많아 지고 있다고 한다.
질문 7.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이 있던가?
(답)
사실에 그 곳에 가기 전에는 몰랐는데,
아미르 티무르라는 중앙아시아에서 대제국을 건설한 황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지금은 비록 타 선진국들에 비하여 잘 사는 나라가 아니나
과거 중앙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티무르 제국)
그 나라 사람들의 과거 뿌리를 알고 싶으면
타쉬켄트의 티무리 광장에 있는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을 꼭 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시된 건축물의 아키텍처나 그림들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워
유럽의 중세 건축물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이슬람 건축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너희들이 우리의 힘을 확인하고 싶거든, 우리의 건축물을 봐라”
아미르 티무르의 이 말은 그의 고향인 샤흐리 삽스의 악사라이 궁전의 정문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박물관은 타슈켄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색 지붕이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 하고 박물관 건물은 은빛 분수와 화려한 꽃들로 둘러싸여 있어,
현대와 고대의 건축술을 융합한 매우 특이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박물관은 아미르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맞이하여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1996년 9월 개관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화려함과 아름다운 문양에 넋이 나간다.
그리고 대리석 기둥, 대리석 계단 등으로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10미터의 벽에는 ‘탄생, 성장, 영광(업적)’등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는 이슬람 양식의 그림이 있으며, 1층에는 대리석의 주춧대 위에 거대한 코란이 놓여있다.
이 코란은 7세기 칼리프 오스만 자이트의 개인 비서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커다란 노란색 종이 위의 아랍글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2층에는 은과 구리로 만든 13-14세기의 동전, 15세기 히바의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 기둥, 19세기 부하라 통치자가 입었던 금으로 수놓은 관복, 갑옷,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천문대의 모형, 비비하님 모스크의 모형, 타지마할 묘의 모형 등 찬란했던 티무르 제국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짧은 일정 상 불행하게도 우리는 가 보지 못하였으나 그 유명한 사마르칸트가 있다.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가 나오면 반드시 따라 나오는 도시 '사마르칸트’로서,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인 사마르칸트를 말한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낙원, 중앙아시아의 로마, 황금의 도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마르칸트는 현재 사마르칸트 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인구 약 36만 명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이다.
주민의 대부분은 타직민족으로, 이들은 집에서는 타직어를, 학교에선 우즈벡어를, 그리고 길거리에선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3개 언어를 구사를 한다는 말이다.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중심으로서 고대 호레즘시대 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1220년 징기스칸에 의해 패망되기까지는 실크로드의 교역기지로 번창하였다.
도시의 주요 건물인 모스크와 메드레세들이 대부분 유약을 발라 구워내 푸른색 벽돌로 장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마르칸트를 흔히 '푸른도시’라 부른다. 이처럼 사마르칸트가 푸른도시로 된 까닭은 티무르가 유독 푸른색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타쉬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는 자동차로 4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며, 항공편으로는 약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우리 민족과 관련하여 꼭 한번 들러야 할 곳은
‘김병화 꼴호즈’이다. 운 좋게도 우리는 이 곳을 잠시 들릴 기회가 있었다.
김병화 꼴호즈는 한국 관광객의 방문 제1순위의 장소로서, 고려인의 자랑이자 한민족의 자랑이라고 하는 곳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당시 방문 시 이곳을 들렀다고 한다.
꼴호즈란 집단농장을 의미하는 말로서,
한국인의 근면성을 우즈벡 현지인들에게 입증해 준 사람이 바로 김병화(1905-1974)란 분이다.
우즈벡 공화국에서 노력훈장을 탄 650명중 139명이 고려인이며,
김병화 꼴호즈에서만 24명이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금별 훈장을 두 번 탄 이중영웅 4명중 한 명이 고려인,
즉 김병화 였다. 그의 동상에는 ‘이중 사회주의 로력영웅’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는 강제이주 직후 3백만 평의 황무지를 사방에 물길을 놓고, 밀, 옥수수, 벼농사 등으로 황금 들녘을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중 후방에서 대대적인 식량지원을 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었다.
지금은 집단농장이 아닌 협동농장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약 7800여명의 주민 중 고려인 수는 약 1,500여명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질문 8. 여행갈 만한 곳인가?
(답)
중앙아시아의 또 오르는 이머지 국가로서 카자흐스탄과 함께 관심이 되고 있는 나라로서
여행이건, 비즈니스 건, 또는 교육 체험 여행이건 간에 꼭 한번 가 볼만한 곳인 것 같다.
질문 9. 우리가 거기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우즈베키스탄의 1인당 GDP는 2000달러 수준이며, 산업별 구성 비율을 보면 농업 27.6%, 광공업 29.4%,
서비스업 43% 이다.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섬유 및 식품가공업이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산혁명 이전까지는 광물자원의 채광을 제외하고는 산업화가 미진하였고, 1988년 이후 구 소련 공화국간 경제협력체제 붕괴로 교역량이 급속히 감소하였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이 부진하였다.
그러나 가격의 자유화, 민영화 법안 채택 등 계속된 경제조치로 1996년에는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이 플러스로 변했다.
우크베키스탄의 경제는 낙후되어 있지만 금과 천연가스의 부존량은 세계적이다.
그 외에도석탄, 구리광, 철광, 망간 등이 집중 매장되어 있으며, 유황·암염·은·납·아연·텅스텐 등이 중 동부지역에 다량 매장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시스템 구축사업과 같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 나라의 개별 금융기관들을 각개전투 형식으로 접근해서는 큰 진전이 없을 것 같다.
아직도 공산주의 식 관치주의가 모든 경제를 지배하고 있고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큰 바, 사업 접근의 방식은 그 나라의 정부나 금융감독원과 같은 공적 기관들을 먼저 접촉하여 제공 서비스에 대한 신뢰감과 인적 관계 너트워크를 형성한 후에 개별 금융기관들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치 97년 말 이후 한국의 외환 위기 때에 미국의 유수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한국의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들을 대상으로 먼저 프로젝트를 한 후 이를 표준으로 하여 국내 모든 금융기관들에게 서비스 커버리지의 범위를 확대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일 것이다.
질문 10. 뭘 느꼈나?
(답)
포화상태에 도달한 국내 시장의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해외진출, 특히, 이머징 마켓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마켓에 대한 동경은 크나 실제 그 곳에 가 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아직 너무도 많고 머리 속 생각과 현실과의 갭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우즈베키스탄도 단지 한번의 여행이라는 개념을 떠나 그러한 냉정한 현실을 또 한번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지역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