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기
1. 여행가기까지
2010년 9월에 차마고도 트래킹을 한 14차팀은 금년 2월에 중국곤명-징홍-라오스-곤명을 10일간 여행하고, 5월에는 중국 노산․태산트래킹을 했다.
중국에서 인천으로 오는 배안에서 차마고도트래킹 1주년 기념으로 어덴가는 가자고 결정하고 여행 후보지로 “캼차카” 등을 이야기했다.
그 후 6월 중순경에 몽골행을 결정하고 나는 북유럽여행이 있어 몽골여행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요르의 경관의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역마살이 도져 항공권을 구매해버리고 만다. “인생은 뭐 계획대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한 순간의 충동과 우연을 가장한 마음에서 움직이기도 한다”고 나불대던 평소의 넋두리가 현실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 때 출사표(ㅎㅎ)를 카페에 올리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카피에 나는 부합된다. 그래서 다리 떨릴 때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가슴 떨릴 때 떠나고자 한다. 몽골은 한 때 아시아 유럽을 호령했던 칭키스한이 태어난 땅, 인간이 살기 힘든 자연환경에서 살아가는 유목민 생활을 보고 싶었고 사막에서 쏟아지는 별, 몽골반점을 가진 우리와 같은 혈통의 사람들을 보기 위해 가야만 한다” 는 게 줄거리였다.
2. 여행개요
- 일시 : 2011년 8월 27일(토) ~ 9월 5일(월) <<9박10일>>
- 일정 : 울란바토르-볼강-무릉-홉스골호수-무릉-차강노르-칭케르-하르허린-울란바토르
- 일행 : 7명, 차마고도 14차팀
- 이동수단 : 델리카 2대 // 일본 미쓰비시회사차량
- 경비 : ① 몽골현지여행사(www.birgatour.com)를 통하여 차량 2대 렌트와 가이드 및 차량기사2명을 고용하고, 숙박비와 아침저녁식사대금을 포함하여 1인당 ???달러 지불
② 가이드와 기사팁, 점심매식 및 취사비 등 공통경비로 1인당 약 100달러 사용
③ 항공료 81만원, 비자발급비 48,000원, 여행자보험료로 2만원 소요
- 준비물 : 점심은 우리가 해결해야 했으므로 한국에서 라면, 밑반찬, 술을 각자 준비하였고, 현지에서 김치, 술, 유제품, 생수를 추가로 구입했음
- 환전 : 몽골화폐는 투그릭인데, 여행기간중에 은행에서 환전할 시간이 없어 가이드를 통해서만 1달러에 1.1투그릭으로 환전
한국에서 투그릭으로 환전이 안되므로, 달러화를 지참하여 환전하여야 하는데 환전시 100달러짜리로 환전하는 게 유리하고, 울란바토르의 백화점이나 큰 식당에서만 달러화가 통용됨
- 통신 : 울란바토르, 무릉, 하르허린지역에서는 한국과 핸드폰통화가 가능하나 이외의 지역에서는 통화가 상당히 어려움
- 시차 : 중국과 같이 1시간
<TIP>
인천-몽골노선은 대한항공과 몽골의 미야트항공만 취항 운행한다. 양 항공사간에 얼라이언스계약이 체결되어 사실상 독점노선이나 마찬가지로 비행거리에 비해 항공요금이 비싸고 비수기라 하더라도 할인항공권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빠른 시일내에 또 다른 항공사의 취항을 기대한다.
3. 8.27 인천공항출발, 8.28 울란바토르-다르항-에르데네트-볼강
인천공항에서 저녁 7시40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이다. 출국심사를 하는 줄에 10여명이 대기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자동출국심사대에는 대기하는 사람이 없다. 양 손의 두 번째 손가락의 첫째마디 지문을 전자입력 등록하니 출국이 된다. 앞으로도 출국할 때 줄을 서지 않고 몇 분이라도 빨리 면세장으로 나갈 수 있어 편리할 것이다.
몽골 “칭기스한”국제공항에서 내 배낭이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상당수의 화물이 이삿짐수준의 큰 부피의 캐리어나 짐꾸러미다. 현지시각으로 밤 11시에 공항을 빠져 나오다. 하루 앞서 간 2명의 일행이 마중나와 있다. 호텔까지 가는 도로상태가 좋지 않아 텁텁한 마른 흙먼지가 찻속으로 스며든다.
호텔에서 내가 잔 방은 3개의 침대가 있는 스탠다드형으로 정상요금은 80$이고 2명이 취침하다.
“울란바토르”의 아침을 보기 위해 산책을 나서다. 정처없이 도로를 따라 걷다. 남양주거리 표지판이 있다. 가라오케, 레스토랑, 바, 슈퍼등이 연이어 있고 허름한 아파트가 있다. 가게들의 간판은 무질서하고 도로는 잡다한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흙먼지더미와 뒤엉켜있다. 시 외곽지역으로 여겨진다. 지나가는 행인은 우리와 닮아서 이질감은 없다.
아침식사는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하다. 렌트한 델리카 1호차에는 3명이 타고 2호차에는 4명과 가이드가 타고 출발하다. 현지여행사에 들러 여행사의 사장과 최종 가격을 네고하고 전체 요금의 약 80%를 지불하다. 7박8일에 필요한 코펠,버너,물,부식,침낭 등 많은 짐을 1호차에 실고서 출발한 시각 9시 20분이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현대식 빌딩과 오래 된 러시아식 건물이 섞여 있다. 길에는 여러 나라 국적의 차량과 행인들이 뒤엉키기도 하고, 무질서한 노점상, 건물의 간판이 제각각으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한껏 멋을 낸 날씬한 몸매의 아가씨와 단정한 콤비차림의 젊은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빛바랜 후줄그레한 옷을 입은 중년 아저씨와 아줌마들과 어린이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띈다.
철도가 보인다. 중국 북경에서 외몽골을 거쳐 온 철도는 러시아의 울란우데까지 가면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된다. 일주일전에 이명박대통령은 울란바토르를 자원외교차 방문했고, 북한의 김정일은 울란우데에서 러시아대통령과 비밀회담을 하였다. 울란바토르와 울란우데는 약 450Km 떨어져 있고 울란은 “붉은” 이라는 뜻이다. 바토르는 “1924년 몽골이 독립할 때의 영웅인 수흐바토르장군을 기리기 위한 것”이고, 우데는 “우데강(江)”을 뜻한다.
도심지역을 벗어나니 나무울타리 속에 있는 게르가 보인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개딱지 같은 판자집들과 게르들이 섞여 있다.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는 몽골 전체인구 270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130만명이 살고 있다.
오늘은 450여Km를 포장도로로 간다. 그런데 외곽지역이 도로공사중이라 초장부터 오프로드의 맛을 보여 주려는지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마구 내달린다. 공사구간을 지나 포장도로로 들어와 초원같은 곳을 달린다. 앞으로 8일동안 덜컹거릴 차에서 내 궁둥이가 배겨 낼지 걱정이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광활한 초원의 모습을 원없이 보는 것이다.
차가 쉬어 노상방뇨를 하다. 이번 여행내내 차만 쉬면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는 건 거리낄게 없는 자연인이 자연스레 되어 버렸다. 차가 또 쉰 곳에서 아일락, 즉 마유주(馬乳酒)를 마시다. 아일락은 큰 금속통속에 말젖을 넣고 3천여번 막대기로 저어서 만든 것으로 약간의 알콜도수가 있다. 유목민들이 허기질 때 마시는 것으로 우리의 농주 막걸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점심은 휴게실에서 사 먹다. 첫날은 통행차량이 비교적 많은 고속도로지역이므로 사 먹고 내일부터는 우리가 취사해서 먹기로 하다. 요리는 먼저 야채샐러드가 나오고, 메인으로 스파게티와 4개의 양고기덩어리가 나오는데 2개를 먹으니 양이 찬다. 그리고 군만두 같은 호쇼르를 두 개 먹다.
식당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진다. 이 지역은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란다. 1시간 가량 빗속을 뚫고 시원스레 차가 달린다. 차가 좌회전을 하는데 만약 곧장 간다면 “다르항” 이라는 도시이고 “다르항”을 지나 계속 가면 러시아국경이 나온단다. “다르항”은 몽골의 제2의 도시다.
누런 색깔의 식물군락지대가 일직선으로 지평선까지 쭈욱 펼쳐진다. 누런 색깔의 식물이 밀이라고 한다. 여행내내 다른 농작물을 보지 못했지만 종종 밀밭은 보게 된다. 몽골은 강수량이 너무 적고 토질이 푸석푸석하여 농사짓기에 부적합한 땅이다. 그래서 채소류나 과일은 대부분 중국이나 러시아로부터 수입해서 먹는다.
“다르항”을 우회하여 2시간여 가니 “에르디넨트”라는 큰 도시가 나타난다. 몽골 제3의 도시이다. 구리광산이 있고 러시아자본이 개발했다. 지분비율은 몽골정부가 51%고, 러시아가 49%란다. 생산된 구리광석을 실어내기 위한 철도도 보인다.
몽골은 부러운 자원부국이다. 석탄, 구리 뿐만 아니라 초원과 사막지대에 상당량의 석유와 희귀광석이 제법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되어 자원개발붐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원을 제대로만 개발하면 자원개발수입만으로도 경제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나라이다. 비록 지금은 소득수준이 3천불 정도이지만, 훌륭한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 개발도상국에 만연되어 있는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고 인플레와 빈부격차를 해소하는데 자원개발수입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면 다음 세대에는 경제강국이 될 걸로 나름 예상한다.
명색이 고속도로인데도 나무로 길을 가로막아 놓고 통행료를 받는다. 차가 올 때마다 통행료를 받은 다음에 사람이 일일이 수동으로 나무를 들어올려 차를 통과시켜준다. 6시경 “볼강” 이라는 도시를 통과한다. “볼강”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오늘 밤을 머물 수도 있는데 70여Km 더 가면 초원속에 멋진 숙소가 있다 하여 더 진행하기로 한다.
7시에 숙소에 도착하다. 숙소에는 본부와 같은 통나무로 된 2층집과 단층의 통나무집 2채, 그리고 게르가 10여채 있다. 우리 일행은 통나무집에 각각 4명, 3명씩 나누어 짐을 풀다. 내가 잔 통나무집에는 4개의 침대가 있고, 가운데에 테이블, 입구에 난로가 있다. 가이드가 난로에 불을 피워 준다. 금새 공기가 훈훈해져서 주류들의 입담을 자장가삼아 꿈나라로 들어가다.
4. 8.29 볼강-무릉
새벽 1시경 밖에 나오니 별이 쏟아진다. 북두칠성이 산마루금에 거의 붙어 있고 그 밝기가 여타 별을 압도한다. 하얀 깨를 점점이 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 미리내가 꿈틀꿈틀 흘러만 간다.
새벽녘에 쌀쌀한 기운을 느끼자말자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책에 나서다. 가 봐야 초원을 걷는 것 뿐이다. 동쪽으로 30여분 가다가 자유로이 방목되어 있는 말무리를 만나다. 차마고도의 28밴드에서 관광객을 싣고서 힘들게 산에 오르던 말에 비해서 여기의 말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니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행복한 말들이구나 라고 생각하다.
아메리칸스타일로 빵과 햄,소세지와 달걀후라이를 먹고 출발한 시각 8시 30분이다. 어제는 포장도로를 약 450Km달렸지만, 오늘은 비포장도로를 약 300Km 달려 무릉까지 가야 한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가는 데 찻길이 따로 없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바퀴자국이 있는 곳이 길이고 여러 개 길이 있을 때는 덜 패인 곳을 선택해서 가고 개울을 건널 때는 비스듬히 건넌다. 내 몸덩어리는 덜컹거리는 차의 움직임에 맡겨버린다.
광활한 초원에 햇살이 비치니 따스함이 전해진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하늘캔버스에 하얀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푸른 빛의 초원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대로 윈도우 배경화면이다. 여기를 한달 전에 왔더라면 지천으로 깔려 있을 야생화를 보았을 터인데, 지금은 풀잎이 시들시들해져가는 초가을이다.
11시경 “하그뉴강”을 나무다리를 통해 건넌다. 협곡같은 지형이고 다리아래에 마을이 있는데 몸에 좋은 온천지대라고 한다. 온천에 들를 시간여유가 없는지 차는 질주를 계속한다.
1호차가 펑크가 났다. 1호차 기사는 차 아래에 자리를 깔고 들어가 잭크로 차를 들어 올리고 스페어타이어를 갈아 끼우는데 10분도 채 안 걸린다. 10여분 차를 달려 “라쌍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가이드와 기사는 현지식을 먹고 우리들은 라면과 햇반으로 점심을 해결하다.
언덕마루에 “어워”가 있는 곳에서 차가 쉬다.
“어워”는 돌무더기를 쌓아 그 가운데에 기둥나무를 꽂고 돌무더기와 기둥나무를 푸른색 천 “하닥”으로 덕지덕지 둘러 싼 형상이다. “하닥”의 푸른 빛깔에서 귀기(鬼氣)가 느껴진다. “어워”는 초원에서 길 안내역할을 하며, 무사함을 비는 샤마니즘의 흔적이기도 한다. 차량기사가 “어워”를 시계방향으로 3바퀴 돌며 소원을 빌어라는 제스쳐를 한다. 이런 의미는 티벳의 타르쵸와 닮은 꼴이다.
오후 4시경에 “셀렝게강”을 건넌다. 나무다리인데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나무다리아래에 부교(浮橋)역할을 하는 철판이 있고 그 철판을 강너머에서 여러개의 쇠체인으로 연결하여 강물살에 따라 움직이는 다리다. 물빛이 검푸르고 물살이 상당히 센 큰 강이다. 다리를 건너니 차 1대당 3천투그릭의 통행료를 받는다.
통행료를 받는 현지인들을 요령있게 사진찍다. 현지인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면 어떤 사람이 흔쾌해 하겠는가? 불쾌해 하거나 돈을 요구할 것이므로 표지판이나 경치를 배경으로 현지인을 슬쩍 넣고 찍으면 그네들도 자신이 찍히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을 것이므로 무방할 것이다.
다시 초원지대를 털거덩거리며 가다가 오후 5시경이 되어 “토손헹걸”이라는 도시를 지나간다. 여기는 “볼강”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고 “무릉”까지는 포장도로다. 오늘 우리가 종일 온 길은 비포장 초원길인데 지도를 살펴보니 또 다른 길이 뚜렷한 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포장도로라 해도 먼지나기는 초원지대나 마찬가지이고 이정표는 전혀 없다. 염소, 양, 소, 말, 야크떼를 몰고 가는 유목민의 모습, 종종 말을 타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축들을 끌고가는 유목민의 모습들, 먼지를 날리며 오토바이타고 질주하는 유목민의 모습들이 차창을 스쳐간다.
오늘의 숙박지 “무릉”에 도착한 시각 저녁 7시다. 여행자숙소가 귀곡산장(鬼哭山莊) 같다. 태양열을 이용해 난방과 온수공급을 하고 우리만이 손님이라서 숙소가 을씨년스럽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려면 태양열로 모아 둔 전기로 물을 데워야 하므로 저녁밥 먹은 다음에 샤워하라고 한다.
“무릉”은 홉스골아이막의 수도다. 몽골의 행정구역체계는 아이막-솜-바야트이다. 몽골땅은 한반도의 7배인데, 아이막은 21개가 있고 우리나라같으면 도 단위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자치시가 3개 있는데 어제 지나 온 울란바토르. 다르항, 에르디넨트이다. 어제 지나온 아이막은 셀렝그아이막과 볼강아이막이고, 앞으로 갈 아이막은 아르항가이아이막이다.
저녁식사 후 주류들만의 주님 모시는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비주류인 나는 슬그머니 산보를 나서다. 가로등이 아예 없다. 시청사광장에는 사회주의를 겪은 나라에 항용 있는 동상이 덩그라니 서 있다.
일행들의 심부름을 나온 가이드를 만나다. 내일 홉스골호수에 들어가서 먹을 양고기를 사야 한단다. 슈퍼에 가니 유제품, 생고기, 과자류, 음료수 등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 양고기는 Kg당 3,200투그릭이고 쇠고기는 4,000투그릭이다. 한국에 비해 고기값이 엄청나게 싸다.
5. 8.30 무릉-하트칼-홉스골호수
아침에 일어나 무릉시내 산책을 나서다. 어젯밤에 본 시청사앞의 동상을 나름 해독해 보니 1920년경 몽골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독립하던 때 이 지역에서 태어난 영웅의 동상으로 밝혀진다. 거리는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는홉스골호수의 관문이어서인지 은행이 10여개나 되고 호텔이 제법 많다. 실내체육관앞에는 씨름선수 이미지를 한 3명의 동상이 아침햇살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소도시에 온 듯 하다. 내가 5년 전 갔던 바이칼호수곁의 이르쿠츠크의 외곽 도시모습과 흡사하다.
빵과 달걀후라이,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홉스골호수로 출발한 시각 8시45분이다. 시내를 벗어나니 조그마한 무릉공항이 보인다. 울란바토르에서 1시간이면 온단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올 곳을 2일에 걸쳐 약 700Km를 달려 오면서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을 원없이 보았고, 오프로드의 체험을 맘껏 했다.
엄청나게 흙먼지가 나는 공사판 길을 벗어나 초원을 내달리니 “에르헬노르”가 나타난다. “에르헬노르”는 소금기가 있는 호수이다. 말,소,야크,염소,양 등에게 소금은 필수 영양분이기에 유목민들이 가축을 끌고 일정주기로 이 호수를 온다고 한다. 호수주변에는 하얀색의 몽실몽실한 소금덩어리가 보인다. 주변에는 너른 초원이 있다.
사슴돌유적지다. 사슴돌에 새겨진 조각은 맨 위에 해와 달, 가운데 사슴문양, 아래부분에는 새겨진 사람이 남자라면 남자를 상징하는 성기나 관복 혁대모습이 있고, 여자라면 여자를 연상케하는 상징물로 조각되어 있다. 사슴돌 대여섯개가 군락으로 있고, 그 주변에 돌무덤이 있다. 사슴돌의 위치는 뒤에 언덕이 있고 앞으로는 넓은 초원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사슴은 과거에 가축으로 길렀지만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 동물이라고 한다. 사슴돌은 알타이산맥에서 시작된 암각화가 사슴돌로 발전하여 몽골평원으로 퍼져 나갔다가 가장 늦게 홉스골호수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사슴돌유적지를 벗어나 초원길을 달리다가 흙먼지투성이인 공사판길 옆을 내달린다. 무릉에서 홉스골호수까지 도로공사중으로 2년후에는 공사를 마친다고 한다. 공사가 끝나면 1시간30분이면 무릉에서 홉스골호수를 갈 수 있다고 한다. 공사전에는 3시간30분정도면 다녔는데 현재는 공사중이라 5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한다.
홉스골호수 입구에 요금을 받는 곳이 있다. 외국인은 3,000투그릭, 내국인은 300투그릭이다. 요금소에서 조금 가다가 내가 탄 2호차 바퀴가 펑크가 난다. 2호차에는 펑크를 수리할 만한 부품이 없다. 가이드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워서 앞에 가 버린 1호차 기사를 부르러 간다. 1호차 기사가 와서야 펑크를 임시로 때우고 “하트칼” 마을로 들어가다. 1호차를 타고 먼저 도착한 일행이 준비해 놓은 라면과 햇반을 먹다.
차량 수리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홉스골박물관을 견학하다. 안내원 여자분이 친절하다. 하나라도 더 설명해 줄려고 하는 노력이 가상하다. 이 지역의 토착민인 차탕족이 신을 부를 때 쓴다는 북이나 의상들이 이채로웠다. 안내원여자가 창녕의 우포늪에서 개최된 람사르축제 안내장을 보여주며 여기를 자기가 다녀 왔다고 한다.
“홉스골호수”는 길이 140Km에 폭이 넓은 곳은 50Km로 내륙속의 바다같은 호수이다. 199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몽골에서 2번째로 넓은 호수이고 세계에서 14번째로 넓은 호수이다. 호수는 99개의 강에서 물이 모이지만 나가는 곳은 단 1개뿐이고 그 물길은 1,500Km를 흘러 러시아의 바이칼호수로 유입된다. “홉스골호수”와 “바이칼호수”는 직선거리로는 400Km에 불과하다. 호수의 북쪽은 러시아와 국경이다.
“하트칼”을 떠나 우측에 펼쳐지는 홉스골호수를 보면서 가다가 또 펑크가 났지만 금새 수리하고 숙소에 도착한 시각 오후 4시다. 숙소는 “Blue Pearl"이다. 숙소에는 게르 20여채와 본부격인 통나무집이 있고, 호수의 물 철석거림이 들릴 정도로 호수 가까이에 있고 숙소 뒤로는 침엽수 산림이 가득한 아늑한 곳에 위치해 있다. 가이드 말로는 호수지역에서 여기가 가장 좋은 게르라고 한다. 서양인 트래커 2팀이 보인다. 통나무집 2층방을 2-2-3명씩 쓸려다가 여의치 않아 2-2-1명만 쓰기로 하고 나머지 2명은 게르에서 자기로 하다.
통나무집 2층방에 짐을 풀고 나서 저녁밥먹는 8시까지 자유시간이다. 호숫가를 거닐다. 물이 찰삭거리고 하얀 포말이 일어난다. 몽골사람들은 물이 곧 생명이기 때문에 물을 신성시한다. 물에 오물을 버리거나 씻는 행위조차 금기시한단다.
침엽수림으로 우거진 산을 오르니 호수의 전망이 장관이다. 바다같은 호수라는 말이 실감이 나게끔 해안선과 백사장 같은 뜰이 펼쳐진다. 해안선 옆에 게르가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다. “어워”가 있고 제단에는 죽은 동물의 뼈가 모셔져 있다.
저녁식사는 어제 사 온 양고기를 허르헉 형태로 요리를 해 먹다. 쇠고기는 로스로 구어 달라고 하였으나 이미 양고기와 게르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배가 부른 탓인지 쇠고기 로스구이는 별 인기가 없다.
배불리 먹은 허르헉 양고기를 소화시킬 겸 겨울복장으로 무장하고 호숫가로 나가 하늘의 별을 보다. 밤 하늘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지금껏 본 밤하늘은 산에 가로막혔었는데, 바다같은 공간에서 하늘을 보니 넓기도 넓다. 완전 360도다. 내가 별 속에 묻힌 듯, 별이 내 가슴에 가득 찬 듯.....
잠을 잘려는데 외풍이 세서 살펴보니 유리창이 깨져 있다. 어쩔 수 없이 겨울복장 그대로 잠자리에 들다. 청정지역에서 헤아려 본 별들을 가슴에 묻고잠에 빠져 들다.
6. 8.31 홉스골호수-무릉
새벽 4시경 소변을 보러 나갈려는데 1층 문이 잠겨 있다. 새벽녘의 별을 볼 수 없어 서운하기 이를데 없다. 6시 15분에 일어나 6시 34분에 일출을 보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안개와 붉그스레한 호수면를 뚫고 불끈 올라온 해.....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을 앞으로 볼 수 있을까????
말을 탈 11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침엽수림으로 된 구릉을 다시 오르다. 안부에 올라가서 “어워” 있는데로 갔다가 원시림속을 방향만 잡고 헤매보기로 하다. 여기 침엽수에서 나오는 것도 피톤치트일까? 라고 생각하며 수백년 되는 침엽수림을 30여분 헤매고 다니다가 호숫가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니 예상한 거리만큼 게르에서 떨어진 곳이다. 다른 일행들이 호숫가에서 나름대로 폼을 잡고 사진찍고 있다.
호수물이 하도 맑아 바닥에 있는 조약돌이 환히 보인다. 홉스골의 물이 흘러 바이칼호수로 가는데 홉스골호수의 물이 바이칼호수의 물보다 훨씬 깨끗하고 순수할 것이다. 바이칼호수 갔을 때 바이칼호수의 심층수가 여러 가지 최고급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 비싼 가격으로 외국으로 팔려나간다고 들었는데, 만약 홉스골 물을 생수로 만든다면 아마 바이칼호수의 생수보다 좋은 생수가 될 것 같다.
말을 타다. 관광비수기에 접어 든 시기라 훈련된 말을 모으기가 힘들어 3명의 유목민의 말을 모아서 겨우 8마리를 채운다. 말은 왼쪽에서 타고 왼쪽으로 내린다. 오른손으로 고삐를 팽팡히 잡고 오른쪽으로 가고자하면 고삐를 오른쪽으로 잡아 끌어야 하고, 신발은 깊숙이 끼우지 말고 1/3정도만 끼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말을 타다.
디카로 일행들의 말 탄 모습을 찍다보니 일행들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180도 회전해야 하는데 잘 되질 않아 허둥대다가 겨우 방향을 돌려서 가다. 디카를 찍지 말라는 명령이다. 말이 힘겨워하며 호수에 가서 물을 먹을려고 하는데 가이드가 물을 먹이질 말라고 한다. 물 먹이다가 파도가 다가오면 앞발을 쳐 들고 날뛰면 낙마하는 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1시간 30분간 말을 타다. 말을 타고 초원을 질주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다.
점심에 바삭하게 구운 물고기요리가 구수하다. 요리를 기다리는 긴 시간동안 식당창을 뚫고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일행들과 정담을 나누다.
오후 2시 50분에 호수를 출발하다. 1시간후에 “하트칼”마을에서 원시적인 카센타에 들려 펑크난 타이어를 때우다. 펑크난 타이어 튜브를 때우면서 담배를 잘근거리며 피는 현지인 수리공인 할아버지는 50년전 내가 살던 고향의 ***아버지 모습과 같았다.
흙먼지투성이길을 계속 간다. 머프를 해서 입과 코는 막았지만 눈알에 먼지가 들어가 뻑뻑하다. 1호차가 쉬어 있다. 라지에타에서 김이 모락모락난다. 앞 본넷트를 열어 열을 식히고 본드같은 걸로 임시방편으로 때우드만 생수를 들이 붓고 출발한다.
1호차가 고장나고 해가 지니 쌀쌀해진다. 주류들은 한국에서 가져 온 소주를 서로 꺼내 놓으라지만 이미 마셔 버린 소주가 나올 리가 없다. 햄과 수박, 과자를 먹고 허기를 달래다. 몽골평원에서 차가 고장나면 어떻게든 스스로 수리해서 가야만 한다.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차는 굴러 가고, 이 현상은 내일 모레 더욱 심화되어 일행들의 어리둥절함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가 되어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밤 8시20분에야 “무릉”숙소에 도착하다. 이틀전에 머물었던 곳이다. 도착하자말자 저녁식사를 하다. 다진 쇠고기 가루를 스파게티위에 뿌려 놓은 요리가 맛있다. 뜨거운 홍차와 커피는 텁텁한 목구멍을 청소해 주고 블루베리잼은 싱싱하고 달콤하다. 나는 해외여행때마다 현지음식만 먹으려고 하는데, 몽골음식중 거부감이 있는 음식은 아직 없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밑반찬에 일체 손을 안 대니 일행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주류들은 주님을 모시라 하고 나는 부족한 술과 부식을 사러 슈퍼에 가다. 그런데 오늘은 술을 팔지 않는 날이다. 내일이 2학기 개학날이어서 어른들이 술을 마시면 안되기 때문이란다. 몽골에는 종종 술을 팔지 않는 날이 있는데, 아마 술주정뱅이나 알콜중독자로 인한 사회문제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중반을 지난다. 시계밧데리가 떨어져 손목시계가 멈춰섰다. 스킨로션, 샴푸가 떨어지고 여행내내 신은 양말을 쓰레기통에 버리다. 아이막의 수도여서인지 핸드폰이 잘 터진다. 집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음식조심하세요” 라는 짤막한 답장을 받고서 잠에 빠져 들다.
7. 9.1 무릉-자르갈랑트온천-차강노르
눅눅한 침구를 걷고 일어나 산보에 나서다. 숙소를 나서자말자 큰 개가 바지주머니를 핥아대며 킁킁댄다. 무서워 숙소로 들어와 버리다. 오늘은 개 때문에 일진이 안 좋을 것 같다. 상태가 좋지 않은 비포장길을 300Km나 가야 하므로 다른 날보다 1시간 빠른 7시50분에 출발하다.
무릉시내를 벗어나 폭이 넓은 강을 건너고 초원길을 내달린다. 윈도우 배경화면에 방목된 가축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는 모습은 차의 덜컹거림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남쪽방향으로 가는 길이라 초원의 풀빛이 어제보다 훨씬 푸른 모습이다.
산같은 오르막이 나온다. 산 속을 헤매는 사람이 보이는데 금맥을 찾는 사람들, 일명 “닌자”라고 부른단다. 고개마루에 오르니 어워가 있고 휴게실이 있다. 휴게실에서 홍차를 먹는데 사골국물맛이 나는 요상한 홍차다.
점심은 “아르솜가이” 라는 마을에서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다. 마을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과 흡사하다. 마을 입구에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서는 차, 나무판자 울타리안에 먼지를 둘러쓴 집,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몸에 두르고 있는 쇼올같은 옷차림이 서부영화의 한 장면 그대로다.
이젠 산악지대가 계속된다. 몽골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항가이산맥을 넘나든다. 항가이산맥의 마루금중 상당히 높은 곳에서 쉬어 가다. 글자가 써진 이정표가 높이 서 있다. 이정표 아래에는 선녀가 구름속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약간의 비가 내리드만 10여분만에 그친다. 산악지대를 내려오니 강이 나오고 마을이 보이는데 “자르갈란트”라는 마을이다. 강가에서 아이들이 수영하고 있다. 강을 건너는 나무다리앞에서 모두 내리란다. 중간이 무너진 위험한 다리인데 이 다리가 아니면 강을 건널 수 없는지 위험을 무릎쓰고 차는 다리를 건너 간다. 우리들은 걸어서 다리를 건너다.
위험한 다리를 건너 “자르갈란트” 마을에 들어서면서 1호차가 펑크가 난다. 마을이 상당히 크다. 오늘이 개학날이라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여학생들은 머리에 빨간색 또는 하얀색 헝겊으로 만든 탐스런 꽃송이를 머리에 꽂고 다닌다. 마을 곁에는 상당히 큰 강이 흐르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온천과 숙박시설이 있다고 한다.
마을외곽에는 벌목된 침엽수림과 늪지대가 있고 초원길을 지나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 지역은 비가 약간만 와도 차가 갈 수 없어 며칠이고 쉬어 가야만 하는 곳이란다. 특히 여름에 이 지역을 지날 때 낭패를 본 적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초가을에 와서 다행이란다.
산악지대를 지나니 평원이 나오고 1호차가 고장나서 멈춰 있다. 두명의 더벅머리 여자아이가 다가와 자기들이 야생에서 블루베리를 땄다는 제스쳐를 하면서 사라고 한다. 한 통을 2,000투그릭에 사서 먹는데 당도가 높고 싱싱하다.
1호차 바퀴가 연달아 펑크나고 라지에타에서 심심하면 김이 솟아 오른다. 오늘의 목적지 "차강노르"가 얼마나 남았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나 답변이 애매하다. 이 때 일행중 한명이 “쩌 산 너머에 차강노르가 있고 저 멀리 보이는 게르에 처자가 입고 있는 옷은 노란색이네....”라면서 몽골에 와서 시력이 좋아졌다며 썰렁한 농담을 한다.
1호차의 라지에타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는지 한 5번을 쉬다보니 주변은 칠흙같은 어둠에 휩싸여버린다. "차강노르" 호숫가를 지나는 길은 숫제 바위길이다. 바위를 요리조리 넘어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떨어지면 바로 차강노르행, 호숫물로 황천길이다. 바위지역을 지나니 물길이 있는 자갈밭지대인데 물깊이가 낮은 곳을 찾아서 용케도 넘어간다.
천신만고 끝에 9시30분에 게르에 도착하다. 도착하자말자 "허르헉"요리를 게걸스레 먹다. “허르헉”은 양을 잡아 고기를 크게 잘라서 금속통속에 불에 달군 돌과 감자 양파를 함께 넣고 뚜껑을 닫고 푹 익힌 것이다.
5인실 게르를 2명이 사용하는 걸로 배당받고 난생 처음으로 게르에서 자다. 주인아저씨가 불을 때주는데 금새 게르안이 훈훈해진다. 몽골의 전통게르는 중앙에 난로가 있고 가장자리로 침대가 있는데 왼쪽은 여성용, 오른쪽은 남성용이란다. 칸막이가 전혀 없는 구조라 일가족이 살아가면서 부부간의 성관계는 그냥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했다고 한다. 초원에 나가면 지천으로 깔린 게 동물이고 이 들 동물들도 부끄러움없이 교미를 하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8. 9.2 차강노르-허르그터거-촐로트강-타이하르촐로-체체를렉-쳉헤르온천
어제 무려 15시간이나 차를 탄 탓인지 피곤하다. 어제 밤에 오느라 보지 못한 "차강노르"의 호수모습을 일찍 일어나 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6시30분까지 잠을 자고 7시에 아침식사를 하다. 어젯밤에 먹다 남긴 “허르헉”의 감자와 식은 밥을 누룽지로 끓여 아침식사를 하다. 한국에서 가져 온 장아찌, 젓갈류를 반찬으로 하여 누룽지를 배불리 먹다.
화장실은 게르와 멀리 떨어져 있는 수세식이고, 세수는 나무에 걸어 놓은 물통에서 찔끔찔끔 나오는 따뜻한 물로 하다. 주인아저씨가 새벽에 추워질 무렵 불을 때 주었고, 주인아줌마 역시 인상이 참 좋다. 게르의 고객만족도를 평가하라면 만점을 주었을 것이다.
7시40분에 차강노르게르를 출발하다. 마루턱을 하나 넘으니 지형이 달라진다. 화산지대다. 기묘한 바위벽이 보이고 그 바위벽 사이로 길이 나 있다. 30여분 차로 간 후 “허르거터거 분화구”를 보기 위해 걸어서 올라가다. 화산지역이라 돌들에 구멍이 뚫려 있다. 10여분 오르니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난다. 한라산 백록담보다 깊이와 둘레가 2배 남짓 될 듯하다. 초원지대에 호수가 있고 화산이 있고 자연의 조화는 신들만의 뜻이련가.....
분화구를 보고서 15분가량 가다가 “테랏트”라는 마을에서 차에 기름을 넣다. 이태리에서 온 젊은 남녀 트래커 2명이 “무릉”까지 가는 차를 얻어 탈려고 우리 가이드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1시간여 초원지대를 달리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차가 쉰 곳은 “촐로트강”이라는 아찔한 협곡인데 깊이가 50미터 이상은 될 듯하다. 서양인 트래킹팀이 푸르공차 3대에 타고 와서 사진을 찍고 있다.
공포(?)의 오프로드길이 끝난 듯 하여 안심이 된다. 점심은 초원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가이드와 기사에게는 컵라면을 끓여주다. 몽골사람들은 음식을 같은 그릇에 먹지 않는다고 하여 컵라면을 별도로 현지 구매한 것이다. 지나가는 유목민에게도 컵라면을 주니 자기 집을 방문해 달라고 한다.
유목민이 초대한 게르를 가다. 유목민 부부는 5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데, 게르 중앙에 있는 사진첩에 여러 자식과 손자들의 가족사진이 있다. 유목민이 “아일락”을 각자에게 따라 주고 “아롤”을 먹으라고 권한다. "아롤"은 우유를 발효하여 만든 요플레를 끓여서 말린 것으로 치아에 좋고 전쟁터에서 식량으로 쓴다고 한다. 유목민의 친절함을 뿌리칠 수 없어 알콜기가 있는 “아일락”을 3잔 마시고 “아롤”은 3개를 먹었다.
“타이하르촐로”를 보려고 포장도로에서 초원길로 10여분 들어 가다. “타이하르촐로”는 초원지대에 외롭게 솟아 있는 20미터 높이정도의 바위덩어리로 유목민들이 무사안녕을 비는 장소로 이용한 신성한 곳이란다. 바위에는 몽골지역을 지배했던 민족인 티벳, 위구르족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푸른 색 “하닥”천이 걸쳐져 있는 곳에는 돌무더기에 지폐가 꽂혀 있다. “체체를렉”에서 북쪽으로 28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체체를렉”은 “아르항가이”아이막의 수도다. “아르항가이”아이막은 몽골의 한 복판, 배꼽같은 위치에 있다. 돈또고비 등 고비사막투어나 몽골서부에서부터 투어하고 오는 트래킹팀들이 경유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아이막의 수도답게 도시가 상당히 크다. “체체를렉” 입구에서 약수물을 한잔 먹고 통행료를 내고 도시에 들어가다.
재래시장에 들러 오랜만에 많은 사람구경을 하다. 슈퍼에서 보드카와 맥주를 사고, 과일을 사다. 차에 기름을 넣고 오늘의 숙소 “칭케르온천”을 향해 초원으로 나가다.
역시 도시주위에는 강이 흐른다. 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 초원지대를 가는데 소와 야크가 서로 뿔을 마주대고 씨름을 하고 있다. 뒷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면서 뿔을 마주대고 밀어내기하는 싸움인데 쉽사리 결판이 나지 않는다. 염소가 양보다 더 영리하단다. 이동할 때 염소가 앞장서고 양은 뒤따라간다. 염소와 양의 귀나 어깨부위에 칠해 진 페인트는 유목민이 자기 가축을 식별하기 위해 표시한 것이란다.
유목민들은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하다가 겨울에만 한 곳에 머문다. 물과 풀이 많은 지역에 살기 편하다고 계속 머문러 가축들이 풀뿌리까지 먹어버릴 경우 황무지가 될 것이므로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게 자연을 보존하는 지혜인 것이다. 마굿간 같이 보이는 나무집이 겨울에 가축들이 머무는 장소고 그 옆에 게르를 설치한단다. 겨울을 나기 위해 목초를 모아 둔 것도 보인다. 종종 보이는 1톤크기의 트럭은 게르를 세울 때 쓰는 나무기둥이나 천, 그리고 살림살이를 나를 때 쓰는 차량이다.
1호차가 두번 고장나고 그때마다 쉬어가다. 말 타는 일정이 있는데 숙소 근방에 가서 말을 탄단다. 비수기라 말을 모으기가 어려워 우리 일행이 한꺼번에 탈 말을 모을 수가 없는 형편이다. 나는 말타기를 포기하고 우리 일행중 원하는 2명만 타기로 하다. 숙소 “칭케르온천”에 오후 6시20분에 도착하다.
그동안 제대로 씻지 못한 몸에 먼지를 벗겨내기 위해 비눗칠을 하였으나 물이 센 탓에 비누가 지지를 않는다. 종업원이 노천탕에 따뜻한 물을 틀어준다. 따뜻한 물에 20여분간 몸을 담그고 주변 침엽수림에서 나오는 삼림욕을 하니 여행에 쌓였던 피로가 확 풀린다.
목욕을 하고 개운한 상태여서 저녁식사와 함께 “칭기스” 보드카를 제법 마시다. 오늘은 주류에 합류했다. 말 타고 온 일행이 말타기가 재미있었던지 연신 “추!! 추! 추! 말 달리자~~~” 를 외치는 소리와 함께 게르의 밤은 깊어만 가다.
9. 9.3 쳉헤르온천-허르허린-에르덴 조 하드 사원-거북바위,남근석-엘슨 타사르 하이
새벽녘에 추워서 잠이 깨다. 난로에 불을 붙일려고 하는데 종이가 없고 불쏘시개가 적절하지 않은 탓인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종업원을 불러 불을 붙였으나 가고 나니 또 꺼져 있다. 종업원이 아르바이트생이어서 그런 것 같다.
9시에 출발하다. 지금까지 타고 온 2호차에서 1호차로 바꿔 타다. 1호차 기사 이름은 “바짜”이다. 만 62세로 온갖 세상풍상을 겪은 주름살이 얼굴에 가득하나 인생을 달관한 듯한 미소와 우리에게 정성을 다해 서비스하려는 정신이 투철한 인자한 분이다. 2호차 기사는 중년의 멋쟁이 신사다. 날마다 면도를 하고 청바지를 입는 등 옷맵시가 뛰어나고 니콘카메라로 우리들 모습과 풍경을 수시로 찍는다. 1호차 기사가 휴머니스트라면 2호차 기사는 로맨티스트다.
가이드는 자칭 “정우성”이란다. 대학에서 영문학, 한국어, 무역학 등 4개학부를 전공하고, 숭실대대학원 국제무역학과를 3년간 유학하여 한국말의 어려운 표현을 모두 알아 듣고 표현할 줄 아는 33세 청년이다. 한국관광객 가이드 뿐만 아니라 서양인을 위한 가이드(영어, 러시아어도 잘 함), 겨울에는 스키강사, 한국어를 몽골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는 등 다재다능한 엘리트다.
1호차로 바꿔타니 초원길 운전솜씨를 잘 볼 수 있다. 늪지대에 물이 상당하면 슬쩍 살펴보고는 기아변속하고 과감히 물에 들어갔다가 거뜬히 물을 통과한다. 물을 건너기 어려운 곳을 지나고 나서는 2호차가 따라 오는지 백밀러로 확인한 다음에 속력을 내서 나간다.
몽골의 옛 수도 “하르허린”에 12시경 들어가다. “하르허린”은 몽골의 2대 황제인 오쿠타이칸이 어르헝강 상류에 사원을 비롯한 대대적인 건축공사와 토목공사를 해서 몽골제국의 중앙기능을 집중시켰다. 여기를 깃점으로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너른 영토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조공을 받아 들인 것이다. 그러다가 4대 “후빌라이칸”황제가 중국을 정복하여 원나라를 세우고 현재의 중국 북경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하르허린”의 시설을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 이후 역사속에 묻힌 도시가 되어버렸다가 19세기 후반에 유적이 발견되면서 복원된 도시다.
복원한 유적중 “에르덴조 사원”을 관람하다. 사방이 굳건한 성곽같이 벽돌로 쌓은 모습이 옛 영화를 재현해 놓고 있다. 사원의 문을 들어가자 왼편에 몇 개의 사원이 보인다. 사원관람료는 3,500투그릭이다. 사원은 3개의 전각이 있는데 석가모니의 젊은 시절, 득도한 중년시절, 노년의 모습을 새긴 불상이 각각 있다. 불상이 중국불교,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한국절에서 보아 왔던 불상과 그리 다른 모습은 아니다.
유료 사원을 나와 옆 사원에 들어가니 라마승 20여명정도가 책상에 불경을 펴 놓고 읽고 있다 그 사이를 참배객들이 지나 다니는데 스님들이 진지하게 공부한다기 보다는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있는 듯하다. 그러나 참배객 현지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벽면에 있는 갖가지 형상의 불상이나 촛대에 불전을 놓으며 소원을 빈다. 전각 밖에는 오체투지를 할 수 있는 큰 돌 받침대가 놓여 있다.
“에르덴조 사원”은 복원공사가 진행중이다. 넓은 부지위에 곳곳이 사각형 칸막이가 있고 뭔가 발굴하는 건지 공사할려는 축대쌓는 것인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원을 나와 200미터정도 가니 거북바위가 있다. 관광객들이 코를 많이 만져 검정색 기름끼로 반질반질하다.
점심식사는 허름한 식당에서 라면으로 끓여 때우고 현지식을 시켰는데 국수에 뿌린 쏘스가 느끼해서 절반도 먹지 못했다. 비포장길을 달리다가 포장도로로 접어들어 오늘의 숙소 “엘슨타사르하이”에 오후 4시30분에 도착하다. 숙소는 “몽골알타이하우스”이고 “한몽리조트”란 표기도 보인다. 90년대 중반 한국 사업가가 세운 숙소로 게르가 20여채 있고 관리시스템이 상당히 잘 되어 있다.
낙타타기 체험을 하다. 쌍봉낙타를 타고 마부가 이끄는대로 초원을 가다가 모래언덕을 오르고 약 1시간정도 타다. 낙타가 무기력해서인지 낙타 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다.
사막을 맛배기만 체험하는 곳이다. 사실상 마지막 밤이어서 배낭정리를 하다. 목베게, 깔판, 신었던 양말, 접이우산, 목장갑 등 수명이 다한 물건을 게르에 놓고 가기로 정리해두다.
저녁식사때 20여명의 단체 한국관광객이 옆에 있다. 밤 10시경 비가 내린다. 게르 천장에 후두둑 소리내며 내리는 빗소리가 마음을 흔들고 게르밖에서 사막의 밤을 즐기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들다.
10. 9.4 울란바토르
6시 15분 일어나 6시33분에 일출을 보다. 지평선에서 해가 불끈 솟아 오른다. 아침식사를 아메리칸스타일로 하고 8시에 울란바토르를 향해 출발하다.울란바토르까지는 약 300킬로 포장도로다.
12시30분에 울란바토르시내에 들어가다. 지금까지 자연, 초원속에서 시간이 정지된 곳에서 머물다 왔는데 도시에 들어오니 차클랙션소리가 현재를 느끼게 한다. 점심은 이화정이라는 한식당에서 7천~만투그릭짜리 김치찌개, 도가니탕, 육게장 등을 먹다. 여행사 사장을 만나 나머지 여행경비를 정산해 주다.
한나절에 울란바토르를 관광해야 한다. 바삐 움직여 자이승기념탑, 이태준열사공원, 캐시미어공장, 백화점, 역사박물관, 수흐바타르 광장, 민속공연을 보다. 저녁식사는 몽골바베큐 특식으로 하다.
23시40분 출국 비행기라 저녁 9시에 공항으로 가다. 몇분 예약이 불투명 했는데 다행히도 일행 7명이 한꺼번에 갈 수 있게 됐다. 여행 내내 유머와 위트로 우리 일행을 계속 즐겁게 해 준 가이드 “정우성”에게 몽골을 잘 소개한 “몽골 인 몽골리아”책을 선물하고 뜨거운 안녕을 하며 탑승구를 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