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닮은 개망초가 좋아
素晶 하선옥
오월이 무르익은 계절이다. 오늘 아침도 마을 길을 산책하다 버려진 척박한 땅에서 무리 지어 얄밉게 피어난 노란색 금계국을 만난다. 노란색이 품어내는 청량함에 이끌려 다가서니 내 빈 마음속으로 노란색 물결이 가져다준 기쁨으로 찰랑거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세히 바라보니 금계국 사이사이에 피어난 개망초가 눈에 띈다. 화려한 금계국 사이에서도 개망초는 기죽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특유의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5월의 신록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꽃이든지 다른 꽃과 비교하는 것이 잘못 생각이다. 꽃은 그냥 타고난 제 색깔로 피고 지고, 꽃송이를 보듬어 안고 키우는 잎 또한 각자의 생긴 대로 피고 진다. 생긴 대로 피고 진다고 해도 꽃은 꽃의 역할을 다하며 하늘이 내어 준 생명에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계절 속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타고난 형질 그대로 꾸밈없이 피고 지는 것이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식물 아닌가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못생긴 자기 얼굴을 성형으로 더 예뻐지고 싶은 사람이 허다하다. 성형에 맛 들인 어떤 여성들은 자기도취에 빠져 결국은 성형 괴물이 되기도 한단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듬고 가꾸고 뽐내기 일쑤인 사람들은 꾸밈없이 피고 지는 꽃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배워야 한다. 꽃은 주변 환경에 따라서 소담스럽게 피기도, 아주 작게 가냘픈 꽃으로 피기도 한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길을 받으면 더 예쁜 꽃을 피우며 자라나게 된다. 사람도 타고난 얼굴을 부지런한 자기 손길로 가꾸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급한 마음에 며칠 전 미루고 미루던 일 하나를 말끔히 정리했다. 「생명 연장 치료 거부 신청」하고 상담받는 내내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밀린 숙제하나 가뿐히 끝낸 마음이라 할까. 사실 급작스럽게 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 생명 연장에 미련 없이 그냥 곱게 조용히 가고 싶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형제와 조카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선택의 짐을 그들에게 지우고 싶지 않았다. 생명 연장 치료 기구에 내 몸을 맡겨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병상에 있는 나의 모습을 용납하고 싶지도 않았다. 신청서가 접수되고 즉시 내 휴대전화기로 신청접수 되었다는 알림이 뜨고 한 달 후쯤엔 증명서가 배달된단다. 이렇게 가뿐하고 마음 편한 것을 이걸 진즉에 하지 못해서 안달복달했으니 말이다. 내친김에 집으로 돌아와 옷장을 열고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련을 두고 못 버리든 옷들은 봉투에 담고 조금 미련이 남는 옷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한쪽으로 밀쳐 놓았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꽃에 비유하자면 금계국 속에 핀 개망초였지 않을까?
망초(亡草)는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로, 주로 들이나 길가, 묵정밭에서 자란다. 망초의 이름은 구한말 개항(1876년) 이후 이 땅에 유입되어 국권피탈(1910년)을 전후하여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상한 풀이 전국에 퍼지면서 ‘나라가 망할 때 돋아난 풀’이라는 의미에서 ‘망국 초’ 또는 ‘망초’라고 불리게 되었단다. 이렇게 망초(亡草)는 그 태생이 불행하지만, 누가 지었는지 꽃말은 긍정적이고 아름답다. 서러움 받고 자라는 망초가 가여워 꽃말을 ‘화해’로 지어주었나 보다. 개망초의 은은한 향기는 ‘가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은 가까이 오게 만들어 준다’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단다.
계절의 여왕 5월도 끝나가고 초여름의 신록이 여름철을 앞당기고 있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어느 집 정원에 핀 빨간 장미가 길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뭘 두고 온 것 같아 마음이 허전하다. 지나온 길 언덕 아래 버려진 땅에서 화려한 금계국 사이의 개망초가 자꾸만 내 눈에 밟혀 뒤돌아보게 한다. 아주 작은 꽃송이로 바람에 흔들거리며 다가서면 상큼한 향기를 내뿜어 주던 소박한 모습의 개망초가 어쩌면 칠순 넘은 여인 나를 닮은 것 같아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더욱 애잔해진다.
2024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