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21> 제2편 제2장 불심인의 진리 ⑤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실행론」 제2편 제2장 제5절 ‘심인진리의 실천’을 독송한다. 가항에서 회당대종사께서는 심인진리의 실천성과 묘득성을 역력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묘득성에 관해서는 “사람의 제일 목적은 심인을 깨쳐서 생멸 없이 삼세와 시방세계에 자유자재하는 것이다(실행론 2-2-5-가)”라 하셨고, 실천성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계신다.
“심인진리는 깨달아서 실천해야 되는 진리이지 의뢰적인 진리가 아니다. (…) 오직 부처님의 법으로 진실하게 배워서 깨닫고 실천해야 진리의 묘득을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심인진리는 아는 마음과 구하는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고 진리를 깨닫는 교이므로 실천교라 한다(실행론 2-2-5-가).”
나항에서는 심인진리의 실천의 방법론으로, 역시 법계법신과 자성법신이 하나임을 깨달을 것(실행론 2-2-4, 제20회 참조)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곧 “우주에 충만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려면 자리를 청정히 해야 한다. 먼저 내 마음 속에 있는 자성을 알아 공경하여 그 자리를 밝혀야 한다(실행론 2-2-5-나)”가 그것이다. 이어서 이런 극명한 말씀을 하신다.
“기적이 고마운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자성이 밝혀진 것을 고마워해야 한다. 주위가 고마운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의 실상인 자성이 밝아져서 광체(光體)가 일어난 것이 고마운 것이다. 내가 광체이므로 평범도 기적도 광선(光線)으로 나타난다(실행론 2-2-5-나).”
자성을 자신의 생명의 실상으로 명확하게 말씀하셨으며, 이 자성이 밝아져서 자신이 광체(깨달음의 당체)가 됨을 분명하게 일러주고 계신다. 우주(공간과 시간, 시방과 삼세)에 충만한 법계법신을 자신의 마음 속에 모신 자성법신을 공경하는 것이 깨달은 이의 생활(광체의 광선)인 것이다. 심인행자의 신행은 법신불을 상불(像佛)로 숭상하는 신행이 아니라 법신불을 자성(自性)으로 공경하는 신행이다. 상불 숭상은 방편이고 자성 공경은 진실이다. 근기가 낮은 이에게는 방편의 상불이 필요하나 근기가 높은 이에게는 진실의 자성이 직면된다.
다항에서는 심인진리의 실천의 삼보론을 말씀하셨다. “법신부처님[佛]을 머리에 이고 자성[法]을 심장으로 삼고 진리[僧]를 수족으로 하며, 법신부처님을 손님같이 자성을 주인같이 진리를 사용하는 데 그 복덕성이 일어난다(실행론 2-2-5-다)”라 하셨는 바, 대종사의 이 고구정녕한 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행자는 ‘생멸 없이 삼세와 시방세계에 자유자재하는’ 해탈과 대자유의 삶, 열반과 깨달음의 삶을 살리라.
‘법신불을 손님같이 자성을 주인같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모든 부처님의 근본불인 법신불조차 상불로 숭상할 것이 아니라 자성으로 공경할 것을, 삼보사불이 아니라 삼신의 근본인 법신을 자성법신으로 공경함으로써 보신과 화신까지 자성불로 공경하는 삼신이불을 해야 됨을 극적으로 표현하신 말씀이다. 이 복덕성은 곧 공덕성이다. 유상과 무상의 구분까지 없어지는 것이다.
법계법신을 자성법신으로 심장(마음)에 모시어 생활(수족) 가운데 진리를 구현하는 삶은, 삼보사불(三寶事佛, 불법승 삼보를 섬기는 불교)을 넘어서 삼신이불(三身理佛, 법보화 삼신을 깨닫는 불교)을 신행하는 진실도가 되는 것이다. 이를 대종사께서는 실행론의 서문인 <대한불교진각종을 세우는 뜻>에서 이렇게 표현하신 바 있다.
“사찰은 상(像)을 보고 불법승 삼보를 숭상하여 정화하고, 진각종은 상을 떠나서 법보화(法報化) 삼신이불(三身理佛)을 믿고 육행을 실천하며 인과를 내증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데, 이원이 되어 상호 침투되고 영향을 주고받아 반영하므로 평등교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
불교에서는 삼보사불(三寶事佛)을 주로 하는 사찰과 삼신이불(三身理佛)을 주로 하는 진각종 등 종파가 분교가 되어 그 이원의 근본이 바로 서는 데, 오백년 동안 일원주의의 전제(專制) 하에서 병든 불교가 바르게 서게 될 것이다(실행론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