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2(목) 환상적으로 맑은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씨가 환상이다. 태양이 맘껏 햇살을 뽐내고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4~5일 만에 처음 만나는 쨍한 날이다. 사천으로 가기 위해선 곤양파크를 나서자마자 좌회전해서 짧은 고개를 올라야 하는데 그 내리막길에서 사단이 생겼다. 아, 글쎄 맞은 편 하늘이 너무나 청청하고 좌우의 숲들은 한껏 자신의 푸르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빨리 가는게 능사는 아니잖아? 이런 축복을 구경하고 즐기고 싶은게 이번 여행의 큰 목적 중 하나 아니었어?" 라고 내면에서 마구 용솟음치는 소리가 들린다.
결국 두번째 작은 고개인 '돌담고개'(정말 예쁜 고개이름이죠?)를 넘어서면서 나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 청한 하늘과 싱그런 신록의 제전을 외면하고서 무슨 여행의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우선, 마스크와 검은 고글부터 벗고 언덕과 싸우는 대신 내려서 걸었다. 시간에 구애됨없이 길이 이끄는 대로 경치가 좋으면 그 경치를 실컷 구경하고 가거나 잠시 자전차를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떠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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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대교를 건너고 나서 우회전. 3번 국도로 삼천포항까지 약 9km를 가는데 길이 아주 엉망이다. 옛 삼천포시가 오래된 도시라서 그런지 자전거를 위한 배려가 거의 없다. 갓길은 30~40센티미터 정도. 그래도 그 낡은 도시가 보고싶어 어려운 길을 탄다.
시내 부둣가에 <노산공원>이 서있다. 아주 야트막한 동산 위에 자리잡아 삼천포항의 좌우편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명승지다. 앞바다가 시원하게 열린 전망좋은 곳에 육각형의 정자가 서있다. 무명의 정자라 이름은 없고 동네 사람들은 생긴 모양대로 '옥각정'이라 부른단다. 어쨋든, 나는 이런 따위의 소재를 무기로 정자 안의 8순 노인들과 쉬 말을 텄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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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공룡박물관> 표지를 보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2.8km든가, 길 나쁘면 돌아나오면 돼지 하고 들어갔던 길이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롤러코스트일 줄이야. 초입부터 가파른 고개길이 나와 '하얀집카페' 앞에서부터 내려 끌었다. 이런 식으로 오늘은 자란만과 성만을 휘감아 도는 열댓 개의 고개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순응하며 즐겼다. 덕분에 시간은 50%는 더 들었지만 후회없는 즐거운 라이딩이었다.
고성군 하이면의 공룡박물관은 나처럼 나이먹은 관객의 관심을 끌만한 시설은 아니었으나 거기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는 정말 일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 초입의 안내소에서 혼자 일하던 오은겸씨는 너무나 친절해서, 진이 다 빠져 거기를 오른(정말 산꼭대기에 있다) 내게 시원한 매실쥬스와 물 몇 잔을 권하고 본부에 전화해 내가 찾는 관광지도까지 갖고오래서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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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삼산면 지나 14번 국도를 만날 때까지 이 77번 국도 혹은 1010번 지방도로로 이어지는 고성바닷길은 초보 자전거여행자로는 참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되지만 않는다면 이 길은 또한 환상의 자전거길이기도 했다. 우선 언덕 위에서 내려보는 바다의 풍경이 너무나 멋있다. 또한 그 조망을 두 배의 기쁨으로 만들어주는 언덕 위의 멋진 쌈지공원들이 있었다.
주로 자동차 운전자들이 이용하겠으나 기실 가장 큰 효용을 맛보는 사람은 나같은 자전거 여행자일 것이다. 숨이 차서 쉬어야겠다 싶은 언덕 위 길목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작은 휴식공간, 비록 약간의 조경과 정자 하나 정도로 이루어진 작은 공원이지만 땀흘려 고개를 넘어온 여행자에게 그 존재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능가하는 기쁨을 주었다. 더우기 그 쌈지공원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천하일품인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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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자연과 그 풍광을 더욱 빛내는 좋은 날씨를 핑계삼아 유유자적 가다보니 목적지인 통영에는 저녁 8시에나 도착했다. 통영은 내 외가다. 그래서 진작 외삼촌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늦게 와서 시내의 그 댁까지 가지 못하고 숙소도 통영 초입의 죽림신시가지 모텔에 따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불하지 않아 얼만지는 모르나 새로 지어 깨끗하고 인터넷도 쓸 수 있어 나로서는 더 좋은 선택이 되었다.
시내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외삼촌 내외분들과 함께 이 철에만 잡힌다는 '하모회'를 곁들어 먹고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명주가 왔다. (김)명주는 여기 통영-고성 지역구에서 지난 17대 국회의원을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냈는데 작년 대선 경선때 그 당에서는 유일하게 원희룡후보를 공개지지하는 바람에 올 봄 공천에서 물먹고 낙선한 변호사이다. 내게는 외가로 10촌 동생이다. 외가집 동네에 온 기분으로 늦게까지, 또 제법 취기가 오르게 술을 먹었다. 일지를 쓰는데 애를 먹을 정도로...
* 오늘의 주행거리 : 81km
내일의 여정 : 통영~거제(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들과 저녁 약속이 되어 부득불 잘 수밖에 없다)
부산은 모레(토요일) 장승포에서 배로 건너가서 송정 쯤까지 가서 숙박하기로 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