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행사 후기는 제 자신의 안목으로 적은 것 입니다.
같은 사실도 보는 시각과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읍니다.
불 만족 하시거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댓글을 올려 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부끄럽게도 몇몇 동기들의 이름을 몰라 아깝게 기술치 못한 부분이 많았음을 알림니다.
1.출발
*2008년 8월 15일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50분이다.
얼른 일어나 바깥을 보니 지금은 가랑비가 조금씩 내린다.
일기 예보 방송을 보니 진해지역 강우량이 146mm고 오후 늦게 부터 20~60mm 더 내린다네!
우리 동기들이 얼마나 맘 설레며 기다리던 날이던가?
샤워를 하고 4시반에 학교에 가니 교문이 닫혀있다. 이시간에 프린트 할곳이 여기밖에 없다.
숙직자를 깨워 세콤 해제후 4층 내자리에 앉아 오늘 행사에 쓸 안내문을 작성하고 인쇄를 했다.
인쇄 완료하고 갑진이 한테 전화하니 야탑에 거의 다와 간단다.
그런데 인천서 참석한 동기가 몇명 안된다며 말하는데 안스러움이 느껴진다.
개인 사정으로 참석 못하는걸 어쩌나? 할수없지 뭐~
8시 30분에 선임수병 모시고 경주를 출발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구름이 잔뜩 끼었다.
천자봉 오르기는 이런 날씨가 오히려 더 좋을것 같다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어제 진해 이용호가 전화로 날씨가 더워서 각시들이 산에 오르기가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을 하던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부산 쪽으로 달리며 음악을 틀었더니 각시가 모처럼 같이한 여행에 즐거운지 손가락 장단으로 흥얼거리며 따라 하기에 "고향 친정가니 좋으냐?" 고 물었더니 "이젠 친정도 없는데 뭐~" 한다. 하기야 장인 장모님이 안계시고 발걸음도 뜸하니.....
점차 날씨가 좋아지더니 언양 쯤에 오니 더문 더문 햇살이 비친다.
이 상태 날씨로 낼 까지만 참아주면 좋은데.
김해 대동 톨게이트를 지나는데 영률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해주랑 진해에 도착 했다네! 책임감과 사명 의식이 참 강한 동기들이다.
일찍 도착해 이인호 소령 동상 참배에 쓸 꽃바구니 준비와 오늘 이벤트인 시루봉 정상에 기념식수할 나무도 사야되고 ....기타 필요 물품도 준비 해야되니 일찍 출발 했을꺼다.
2. 만남
*8월 15일 오전 10시 40분
진해역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영률이 한테 전화하니 해주하고 마트에 생수와 초클렛 등 필요 물품을 사고 지금 출발 한단다.
진해 역앞에서 영률이, 해주랑 만나 함께 행사 협의 하고 있는데 진해 이용호와 추진위원장 정광천이가 왔다.
그런데 기념식수 때 함께 놓을 기념석을 광천이가 가져왔는데, 30kg 정도로 너무 무겁다.
돌이야 클수록 좋지만 해발 653m인 해병혼 정상에 누가 옮기나!
내 한몸 올라 가는것도 장담 못하는데.....
여러 의견이 나왔다.
*힘들어도 조금씩 나눠 들고 가자. 는 의견
*진해 해병대 전우회 회장 한테 맡기자. 는 의견
*눈물고개(안민고개) 적당 위치에 자리잡아 심자. 는 의견
*덕산 사격장 위 해병혼 시루봉 아래 등산로 옆 쉼터 적당 위치에 심자. 는 의견
참 많은 의견이 나왔는데 문제는 기념석에 쓰인 문장이 "해병혼 탐방 기념" 이라서 해병혼 정상에 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에는 모두들 할말이 없다.
백번 물어도 맞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옮기느냐? 인데... 동기들이 많이 모이면 의견을 모으기로 하고 우선 행사 현수막을 치는데 "해사사" 진해 지역 후배가 환영 현수막을 가져와 고맙게도 한손 거든다.
서산 윤병한 동기 부부가 99기 이광우 선배님 부부를 모시고 도착했다.
서울서 승용차로 김종호와 홍의관, 여주 권영철 부부가 도착하고 부산 박문필 각시가 새벽 까지 마셔 홍시 냄새가 진동하는 신랑을 싣고 도착하고 이어서 전날 부산 내려온 일산 고낙찬 부부, 강원도 양구 전익수 부부와 유성 손영도 부부가 새벽 3시까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소주와 놀다가 도착했다.
이 인간들이 오후에 천자봉 등정은 할려는지 몰라!
고낙찬 부부는 고맙게도 집에서 상황버섯 추출액을 넣은 팩을 참가 동기들께 돌린다.
차에 얼마를 실고 왔는지 시루봉 정상과 찜질방 식전에 일어나서도 동기들께 돌리고 다니더라.
창원 박찬현 동기가 도착하고 인천서 새벽일찍 출발해 성남 야탑을 거쳐서 동기생 13명과 각자 하늘같은 선임 수병 각시들을 모시고 20명 정도 도착했다.
분당 이종희 수석 부회장 부부와 성남 한창선 부부가 얼룩무늬 해병 복장으로 통일해 모범성을 보이며 내렸고, 뒤 이어 박상철 회계와 박준도 부부, 양갑진 인천 동기 회장이 보물 1호인 귀염둥이 아들과 함께 참석해 능력 없는 사내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았다.
인천 임태평이가 평창 갔다가 새벽에 도착해 뻐스타고 참석하여 성의없는 동기들? 에게 경종을 울리며 열성을 더했고 한도희, 원성연, 박길훈 동기들과 얼굴은 익은데 이름이 아물한 그외 몇몇동기들.... 참으로 반갑고 고맙다.
마지막으로 대구 윤종극 승용차로 강은중 회장과 권오경 총무, 오상선 동기 등 4명이 도착 해 행사 참가자 접수가 완료 되었다.
행사 추진위에서 찬조와 회비로 준비한 붉은색 티셔츠와 얼룩무늬 수색대 모자, 붉은색 긴수건을 목에 두러니 역앞 일대가 온통 붉은색 일색이다.
붉은색과 노란색이 해병대 고유 색상으로 누가 말 안해도 해병대 출신 모임임을 알겠다.
서로들 오랫만에 만나 반가운 정을 나누느라 식사 식당 안내 통제가 안된다.
*몇 중대 출신이고?
*지금 어디서 살고 있나?
*어디서 근무했나?
*누구 누구 어디 있는줄 아나?
30년 이산 전우들 만남의 광장 이구나!
오늘 행사의 목적과 뜻이 옛 흔적들을 찾아보고 지난날을 회상하고 그리웠던 옛 전우들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것이 궁금하고 또한 지난 세월 바쁘게 살아오며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함이 아니든가?
자리를 옮겨 근처 토속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5월과 7월 답사때 2번과 이번 까지 3번째 인데 올때마다 식사 손님들이 붐빈다.
오늘은 40여명이 넘게 붉은 옷으로 식당 반이상을 차지해 놓으니 더욱 시끌벅적 시끄럽다.
말 끝마다 욕설에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크노! 그래도 탓하는 사람없이 분위기를 이해해 주신다.
해병대 출신 2명만 모여도 같은 말투 같은 분위기 이니...어쩌라고...
식당 밥값이 답사 왔을 때 보다 천원 올라 6천원 이라며 해주가 걱정을 한다.
3. 훈련소 방문
*8월 15일 오후 1시 00분
점심을 먹고 승용차로 참가한 동기들은 근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인천서 대절한 관광뻐스에 좌석 여유가 있어서 앉고 서고 꽉 채워서 탓다.
영률이가 작업차에 해주를 태우고 앞장 서 에스코드 하여 훈련소로 향했다.
34년전 우리 동기들이 입대 하던 6정문은 폐쇄 되었고 바닷가에 해안 도로를 내고 작은 공원을 조성해 놨다. 그쪽으로 교육사 정문을 만들었다.
방문 예정시간이 1시 30분으로 여유가 좀 있어 공원에서 바다쪽 섬과 동쪽 천자봉 해병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과 개인별, 그룹별, 옆에 얼쩡거리면 아무나 불러 함께 사진을 박았다.
공원에 지은 현대식 화장실에서 볼일들을 보면서 옛날 훈련소 앞바다 섬 바라보며 모자 쥐고 크고 작은 볼일보던 지붕없던 그 노천 화장실이 저기 쯤 어디 라며 기억을 더듬어 손으로 가르킨다.
*8월 15일 오후 1시 30분
정문에서 위병 통제를 받고 해군장교의 안내로 6정문 쪽으로 뻐스를 타고 이동했다.
정문 근무자 헌병 복장이 해병헌병 복장과 같은데 명찰만 흰색이더라.
뻐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훈련소 내부 전경은 옛건물은 하나도 없고 우리 훈련병사 자리에 적벽돌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앉아 있네~
30년이 훨신 지난 지금까지 옛건물이 남아 있는게 더 이상하지....
그래도 섭섭한건 같이온 동기들 모두의 맘 일것이다.
넓은 빈 연병장만 우릴 반기네!
훈련 연병장!!
제식훈련 총검술에 꼬라박아 기압 받으며 잠깐잠깐 졸던 곳!
빤쯔바람 병사떠나 연병장 집합 하던 곳!
겨울밤 자정 넘어 펜티만 입은체 바가지로 찬물 끼얹히던 곳!
어~ 이빨 갈며 독기를 품으면서 해병되어 가던 그 곳!
그곳은 있는데.... 왕자식당은 안보이네~
왕자식당!!
첨 일주일은 쿰쿠한 찐밥 내음에 반도 못 먹고 숫갈 놓더니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가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겨울밤 동초 서다가 배 곱파 무우, 된장 뚱쳐먹고 배 아파 문필이가 고생했던 곳!
식사 줄지어 들어 가다보면 멀건 무우조각 띄운 된장 국물에 굵은 멸치 보이면 그자리가 자기자리 되길 맘속으로 얼마나 소원했던가!
요행히 그자리 앞에서서 흐뭇하게 있는데 뒷쪽에서 한자리씩 밀리면 그리도 아쉬워 하던 곳!
세탁 세면대가 저쯤인데... 그 뒷쪽이 PX인데...
서로들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느라 난리들이다.
6정문!!
1974년 1월 7일!
머리 빡빡깍고 허럼한 사제복에 낡은 운동화 신고 입대하던 그 곳!
정문에 들자 말자 정면에 바로 보이는 출전 준비탑!
콘크리트 기단위에 청동으로 주조한 크다란 해병대 마크!
그 아래 세로로 황동판에 주조된 빤짝 빤짝 빛나던 글씨 "出戰 準備"!
20대 초반 철없는 망아지 처럼 날뛰다가 그것을 보는 순간 뭔가 달라지는 묵직한 사명감!
해병대 첫걸음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곳에서 기념 촬영들을 하고 걸어서 이인호 소령 동상으로 이동해 준비한 헌화 꽃바구니를 놓고 김영률 동기 사회로 삼열 횡대로 줄지어 서서 잠시 추모의 묵념을 하고 교회 수련회 행사로 참석못한 추은호 회장을 대신하여 이종희 수석 부회장의 행사 인사말로 마무리 지었다.
훈련소 입대하여 훈련중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
그때 중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이인호 소령의 부하 전우를 위한 해병대 희생정신을 배웠던 곳!
이곳에서도 사진들을 찍고 대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이 연병장은 우리들이 8주간 훈련한 훈련소 수료식을 하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예행 연습을 하던곳이다.
감개 무량한 곳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 인지는 몰라도 담날 수료식 때는 강당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수료했다.
그 수료식 때 내가 키가 커서 동기들 대표로 참모 총장상을 받았다.
분명히 아버지가 면회 온걸 봤는데 명단을 안불러 애태우던 생각이 나네~
집이 멀어 면회 못온 강릉 촌놈 정의준을 함께 면회소로 데리고 달려갔던 생각이난다.
사열대 그늘에서 교육사령관이 방문을 환영하며 준비한 음료수를 마시며 훈련중대 막사가 서로 자신의 기억이 맞다고 주장을 한다.
특히 한창선이가 자신의 생각에 고집을 피운다.
엣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
그래도 대연병장과 6정문 출전준비 상징탑, 이인호 소령 동상을 기준점으로 하여 기억들을 살리느라 정신들이 없다.
자리를 이동하여 우리들보다 1주일 먼저 입대해 훈련 말기에 이순신 장군 위패를 모신 한산도 제승당을 참배하고 오다가 배 침몰 사고로 사망한 159명의 아까운 생명을 기린 위령탑에 묵념하고 정광천 추진위원장의 인사말과 김종호 동기의 해군 159기와 우리동기들과의 훈련소 때의 빵 뺏어 먹기등의 에피소드를 들어며 옛일들을 회상했다.
교육사 본부 건물에서 정문쪽으로 쭉 뻗은 큰길 중앙에 설치한 전광판에 "예비역 해병대 266기 동기생 일행 부대 방문 환영" 이란 문장이 붉은색, 노란색, 녹색 글씨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해병 혼 탐방은 너무 긴 글이라서 (2)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