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성도의 거룩한 교제(2)
에베소서 4:11-16; 요한일서 1:1-4
우리는 지난 두 주일 동안 사도신경의 아홉 번째 문장인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가운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commuio sanctorum)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사도신경의 아홉 번째 문장은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데, 특별히 “거룩한 공회”와 그리고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등가(等價) 시킴으로써 아홉 번째 문장은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동등한 위치에다가 놓고 고백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교회의 속성”이 ‘교회의 본질’이듯이 “성도의 교통”도 ‘교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교통”은 교회를 이룸에 있어서 있으면 더없이 좋고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의 본질로서 교회를 이룰 때 반드시 있어야 하고 풍성히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성도의 교통이 없는 교회라면 그 교회를 참 교회라고 할 수 없고, 성도의 교통이 풍성하지 않은 교회라면 그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지만 좋은 교회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사귐의 순서
우리는 지난 주일 아침에 성도의 사귐에는 순서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신자는 성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죄인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죄인인 우리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을 적용하여 주심으로 구원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당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서로 교제할 수 있는 근거이며 기초입니다. 그리고 이 기초에 근거하여 나와 동일한 방식으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사람들과의 교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1:1-3). 이것이 성도의 사귐의 순서입니다.
교회가 세워져 가는 원리들
우리는 이 사실에서 교회가 세워져 가는 두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몸인 교회로 부르시고 모아주시고 계속해서 교회로서 그리고 교회의 지체로서 살아가게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바른 교회를 세워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단체나 모임이 아니라 성령님의 공동체이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고 교회를 세워간다면, 우리는 분명히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 수 있고, 그 결과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이며 거룩한 사회인 교회는 더욱더 성숙한 사회가 되고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교회를 지체들이 주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 제자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라고 하심으로 모두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위 “황금률”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마태복음 7:12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눅 6:31)라고 말씀하시고, 또 “잔칫집에서나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앉으려고 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마 23:6; 막 12:39; 눅 20:46, 11:43; 14:7-8). 따라서 먼저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한 분도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두가 다 서로를 잘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대접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낮은 자리에 앉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놀랍고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 섬기는 자가 되고, 우리가 모두 다 대접하는 자가 되고, 우리가 모두 다 낮은 자리에 앉으려는 겸손을 보일 때 또 우리는 모두 다 섬김을 받는 자가 되고, 대접을 받는 자가 되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극도의 이기주의로 팽배한 이 세상과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도무지 이룰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하나도 없고 모두 다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이며 거룩한 사회인 교회가 세워져 가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이상(理想)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섬김과 대접과 낮아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바보’라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이며 거룩한 사회인 교회가 세워져 가는 원리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섬기면 내가 섬김을 받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성도들을 대접하면 내가 대접을 받는 것이 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낮은 자의 삶을 살게 되면 주님께서는 나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마음으로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을 세워주면 내가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어서 내 영적인 삶이 부유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성도의 교제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인 교회가 세워져 가는 원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고 있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으로 구성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는 많은 성도가 있습니다. 이 땅의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에 두신 본상(本相)의 교회를 구현하는 구현체(具現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에서 교회를 세우실 계획을 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교회이고, 이 교회가 창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본상의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의 진짜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눈이 보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잘 갖추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천국의 거룩한 기관이며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embodiment)이며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거룩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모임이기에 거룩한 사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로서, 거룩한 사회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려고 하면 성도 간의 교제가 풍성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일이 없이 “네 떡은 네가 먹고 내 떡은 내가 먹는다”라는 정신과 삶은 교회를 이루는 정신이 아니고, 그 결과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신앙의 모든 행위가 형식적인 행위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성경은 신비한 하나님의 교회를 설명할 때 사람의 몸이라는 표상(表象)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고, 이 지체들이 서로 합력해야만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많은 성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려고 하면, 즉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신 본상의 교회의 모습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교회 안에 많은 지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지체들 각자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체들 각자가 자기의 신앙의 인격과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라는 사실을 드러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3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했습니다. 이미 하나가 되었으니까 하나가 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은 하나가 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성경의 가르침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에 접붙임을 당한 지체이므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의식과 함께 하나됨을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강력하게 나타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역동적(Dynamic)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건강한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 즉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서 세워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도록 내어주심으로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의 생각과 이론과 판단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워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를 세워갈 때 세상의 심리학(心理學)을 이용하고 기업의 마케팅 기법(Marketing Techniques)을 도입하여서 교회를 세워가려고 하고, 그렇게 할 때 실제적으로 상당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여서 상당한 결과를 내기도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교회를 세워가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풍부하고,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해서 그것을 교회의 부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셔서 세우신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항상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느냐 거절하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당신이 내신 방식으로만 행해지고 세워져 갈 때만 영광을 받으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세워가야 합니다. 교회를 이룬 지체들은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서 시작하고 은혜로서 마쳐져야 합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써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심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선지서들을 통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의로우신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으로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하여 먼저 우리 각자에게 은사(恩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다른 말은 하나님의 선물(gift)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당신의 선물, 하나님 나라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은사를 받지 않은 신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을 믿음의 분량대로, 재능을 따라서 은혜를 주셨습니다(엡 4:7). 그리고 주인이 열 명의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을 나누어 주었듯이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신 은사도 있습니다(눅 19:13-27). 따라서 장애가 있어서 누워서 지내야 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는 다른 것을 할 수는 없어도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묵상하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반은총 가운데 재능(才能)도 주셨습니다. 재능과 은사는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도 하고, 이 사회의 질서와 복리(福利)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하여 재능을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교회의 지체들에게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인 교회를 세워가라고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사로서 교회 안에 직분(職分)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말씀 사역자의 은사를 받은 목사들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목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교회 회원들의 가정을 심방하고 영적인 삶을 감독하고 신령하게 살아가게 함으로써 교회를 비진리와 이단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방과 감독의 직무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장로들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우들을 심방하여서 교우들의 생활을 살피고,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교우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자비의 직분자들인 집사들입니다. 이 세 직분이 성경이 말하는 직분이므로 ‘성경적 직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그 직분을 ‘헌법적 직분’이라고 합니다. 헌법적 직분 가운데 권사의 직분이 있는데 권사들은 교우들을 심방하여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병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고난을 겪고 있는 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또 당회에 보고하여서 교회가 함께 기도하도록 하는 직무를 맡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 안에 있는 직분들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직분을 맡지 않은 신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일을 해야 합니다. 신자로서의 사명도 있지만 직분자로서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의 직무를 맡은 은사자들을 보내어 주고 계십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들 외에도 교회 헌법에서 말하는 직분자들이 있어서 교회 안에는 여러 직분을 맡은 은사자들이 있습니다(엡 4:11 참조).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직분(職分)과 관련하여 대표적인 직분인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권사가 맡은 일을 직무(職務)라고 합니다. 직분자들이 자기의 직분과 관련된 직무를 잘 감당한다면 정말로 아름다운 교회공동체가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원리는 결코 어떤 특별한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에 의해 세워져 가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직분자만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교회를 이룬 모든 지체들이 합력해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지 않는 분들도 교회를 이룬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히 은사로서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할 때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져 가고, 하나님의 나라는 구현되어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교회에 가담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거기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복음으로 역사하실 때 사람들은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성장이고 진정한 부흥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목사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직분자들의 책임이고, 교회를 이룬 지체들 모두의 책임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이 사실을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방금 읽은 오늘 본문 12절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 안에 여러 은사를 주시되 은사(恩賜)로서 직분자들을 보내주시고 세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함께 교회를 이룬 성도들 온전하게 하여서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기 위해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당한 사람들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가지고 다른 지체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은사로서의 직분은 직분자들의 명예와 교회 안에서 신분의 상승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을 섬기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잘 세워가라고 주신 직분입니다. 말씀을 드린 것처럼 직분자들에게는 자신이 맡은 직무가 있습니다. 직분자들은 자신이 맡은 직무를 신실하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신실함의 다른 이름은 충성이므로 직분자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고전 4:2; 계 2:10). 자신의 직무를 신실하게 잘 감당하면, 주님께서는 직분자들의 봉사를 사용하셔서 당신의 지혜로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방식으로 당신의 교회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워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성도들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은사와 또 남이 갖지 못한 은사와 재능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작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알아서 하나님의 은사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자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걸맞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具現體)인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고, 이 죄악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신자들이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자기의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천국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강력한 권세는 복음과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달란트)를 통하여 세워져 가고, 하나님께서 은사로서 주신 직분을 통하여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 그것이 건강이든지, 지혜이든지, 돈이든지, 시간이든지, 사랑이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만 있는 특별한 기능이든지 간에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우리에게는 자랑할 권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이처럼 자랑하고 싶은 욕망은 죄악입니다.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 순간마다 솟구쳐 올라와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쭐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罪性)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사와 달란트(재능)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믿는다”라는 고백의 의미
여러분,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 즉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습니다”, “성도가 서로 사귀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통하여 나를 당신의 몸에 접붙임 당하게 하여서 한 몸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셔서 나에게 있는 모든 보화와 은사와 달란트(재능)를 가지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음을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보화와 은사와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데 사용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것을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보화와 은사와 달란트를 내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성도를 섬기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것을 믿는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려 하심이라”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우리의 교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존재와 은사와 달란트를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내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다른 지체들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막 10:4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교회를 이룬 다른 지체들의 복지(福祉,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와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용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세상은 극도의 이기주의로 팽배(澎湃)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지체들인 성도들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구원하여주신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함께 교회를 이룬 지체들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감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섬김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친밀한 사귐은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므로 자기를 부인하고 성령님을 의지해서 살므로 성령으로 충만할 때 더 풍성해지는 아주 놀랍고 신비한 일입니다.
성도의 사귐이야말로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하는 교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야말로 ‘교회의 존재 양태(樣態)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할 때 성도가 서로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교제는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속성이 교회의 본질이듯이 성도의 사귐도 교회의 본질이므로 성도의 사귐이 없이는 아름다운 교회를 세워갈 수 없고, 하나님의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사귐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누리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다면 더 풍성한 삶이 가능하게 됩니다. 성도가 서로 사귀는 것, 즉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 성도가 서로 사귀는 일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모습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돕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은 일을 솔선수범하여 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고(禱告, intercession), 즉 이웃을 위한 기도와 함께 예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것도 성도의 거룩한 교제 가운데 아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교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배하며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헌상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강복 선언을 통하여 함께 복을 받는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예배하는 일에 힘쓰지 않으면,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에서처럼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느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의 속성 가운데 하나라는 의식이 강렬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습니다. 하나라는 강렬한 의식이 없이 각자 모래알처럼 되어 버린다면, 각자도생(各自圖生)한다면, 거기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가 아니라 종교적인 집단일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함께 예배하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교제 가운데 하나이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건강한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위하여 예배하는 일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일, 성도가 성도답게 되는 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일어나는 일 가운데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성도의 교제의 구체적인 면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지체가 모임에 출석하지 않았다면, 출석하지 않은 지체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는 사랑의 행위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사정을 알았다면, 기도하고 때로는 찾아가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가정이 되었든지 사업장이 되었든지 병원이 되었든지 그 어떤 곳이든지 간에 찾아가서 함께 기도하고 또 교회에 알려서 심방하게 하고 교회가 함께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이런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와 성도가 서로 교제를 나누는 교제는 교회의 본질로서 우리를 더욱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멘.
(2024. 3. 10 주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