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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푸켓을 떠나 몰디브로
2010년 1월14일,
드디어 몰디브를 향해 출발하는 날이다. “요트해븐”에 머무러면서
원드라스(전동 닻 올림 장치)를 구입하여 설치하였다. 이제부터
닻주기에 대한 염려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2.5마력 선외기 엔진도
하나 구입하였다. 이것들은 원래 출발 전에 준비하여야 했을 것들이었지만
그냥 없이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결국은 구입하게 되었다. 특히 윈드라스의
경우 싱글핸드 항해자인 나에게 늘 좌초의 위험이 안고 있는 것 같아서
구입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선외기 엔진도 육지로 왕래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했지만 바람이
일어나자 곧 떠밀려 가버리고 말았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되면서 닻주기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하지만 구입했으면 했던 sailmail시스템과 여분의
오토파일럿은 준비하지 못했다. sailmail 시스템은 항해 중 아마추어무선기와
연계하여 메일을 주고받거나 기상을 받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장비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오토파일럿역시 바람이 자주 변하거나 좁은 지역에서는 필수 장비인
것이다. 두 가지의 구입에 드는 예산 또한 적지 않아서 최대한 버티어 보기로
하였다. sailmail시스템은 이번처럼 장거리 항해기간동안에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어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물론 적지 않은 위안이 될 것이라서 꼭
구입하였으면 하는 장비이다. 그러나 푸켓에서 구입하지 못하였다. 오만의
살라라에서 이 장비를 꼭 구입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푸켓에서 많은 시간동안 뭘 했는지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사소한 수리보수를
하였고 인도양항해에 관한 정보도 모았다. 어디서건 인도양으로 가는 배를 쉽게
만날 수 없었는데 출국수속을 하다 보니 이미 몰디브를 향해 이삼 십 척 정도가
떠난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출발하는 배가 있는 것을 보니 꽤 많은
요트들이 인도양을 향해서 떠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식료품을 준비하였다. 닭고기 조금, 고등어 한 마리, 음료수, 라면2개,
바나나2손(저장성 아주 낮음), 파인애플2개(저장성 낮음), 배3개, 사과15개,
감자6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팔이 긴 셔츠도 3장 구입하였다. 강렬한
태양빛에 옷이 빨리 변색되고 떨어졌다. 더위에도 긴팔셔츠를 입어야 하는
것은 팔뚝에 있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이다. 목 귀 뒷부분도 그러한데 이는
군대시절 발랐던 바르는 모기약 때문이 아닌지 실로 의심하고 있다. 예전에
약을 발랐던 곳만 딱 그러하니 말이다.
11시경. 모든 출발준비를 마치고 엔진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친구가 된
일본인 토니씨 그리고 요트하버 마스터(Woman), 마리나 스텝들이 나와서
출발을 도와주었다. 이곳 하버는 방파제 같은 시설이 없이 그냥 개방되어
있는 곳으로 폰툰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폰툰에서도 조류가 그대로
흘렀다. 출발할 때가 조류가 빠른 시각이었다. 불행히도 내가 내려가야
하는 반대방향인 북류였다. 고무보트가 와서 앞을 좌측으로 밀고 뒤에서는
계류 줄로 당기로 하면서 배 사이에 있던 인트레피드를 폰툰에서 떼어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폰툰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툭 터인 곳으로 나와 주 돛을 올리려고 하는데 엔진알람이 울렸다.
냉각수 과열 알람이었다. 일단은 배를 조금 항로에서 벗어나게 한 다음
닻을 내렸다. 뒤쪽에 엔진냉각수가 나오는 곳을 확인했지만 냉각수량이
적어 보이진 않았다. 손으로 갖다대어보니 온도가 뜨거웠다. 일단은 냉각수
양이 적은 것으로 생각했다. 제일먼저 떠 오른 것이 냉각수가 올라오는
중간에 설치된 필터였다. 엔진룸에 들어가 필터를 분해해서 확인했다. 약간의
찌꺼기가 있긴 하지만 깨끗했고 냉각수도 잘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철망을
들어내어 깔끔하게 닦았다.
그런 다음 시동을 걸었는데 잘하면 될 것도 같았다. 원드라스(전동앵커윈치)가
있으니 닻을 끌어올리는데 부담이 전혀 없었다. 스위치를 누르자
“갈갈갈갈갈갈갈갈갈갈...................”
부드럽지만 힘차게 앵커체인을 감아올렸다.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앞뒤로 닻주기를 하고 있는 배가 있었고 조류도 흐르고 있었지만
문제없이 민첩하고 깔끔하게 작업을 끝내었다.
다시 출발하여 10분쯤 갔을까 다시 알람이 울렸다. 장거리를 가야 하는데
고민거리를 안고 갈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리나가 멀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단 제대로 수리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다시 배를 항로 옆으로 옮겨가
닻을 내렸다. 혹시나 싶어 물속으로 뛰어들어 냉각수 유입구를 확인했지만
막혀있지 않았다.
“이제 남은 곳은 해수펌프인데 그 속에 해수를 퍼 올리는 인펠러(고무풍차처럼
되어 돌면서 해수를 퍼 올림)가 마모되었다는 것인가?”
막상 펌퍼를 분해하려고 하니 쉬운 작업이 아닐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일단 뜯고 보는 것이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 조립이 제대로 되겠나 싶어 쉽사리
볼트를 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확실히 인펠러의 트러블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겠고 해서 더 그랬다. 하지만 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일단은
분해해서 확인하기로 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엔진커버를 벗겨 내고 필요한
공구들을 모두 부근으로 갔다두었다. 냉각수 벨트를 벗겨내고 펌프주변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런데 펌프와 연결된 냉각수관이 손을 못 될 정도로
뜨거웠다. 또 하나의 냉각시스템인 청수 쿨러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냉각수가 없었다. 신형엔진들은 해수와 청수 두 가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한쪽만 생각하다 빗어진 패착이었다.
2리터들이 주전자로 두어 번 물을 넣어주었더니 그 이후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기본적인 것을 점검하지 않고 예전에 트러블이 있었던 곳만 지레짐작하여
간단히 끝낼 일을 고생만 진탕했다. 출발부터 힘을 빼고 나니 아무래도 1600마일
항해가 시작부터 엉망이 되었다.
엔진을 수리하였고 이왕 닻주기를 한 김에 그곳에서 오토파일럿도 세밀하게 손을
좀 보아두었다. 그리고 닻을 내려둔 채로 돛을 올렸다. 조류도 어느새 순 조류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15시였다. 서풍에 순 조류를 받으며 남으로 내려갔다. 왔던
길로 다시 가기는 처음이었다. 푸켓 섬을 중간쯤 내려 왔을 때 해가 저물었다.
바람도 거칠어졌다. 이대로 장거리로 나서기가 왠지 꺼림칙했다. 배를 샤롱베이로
몰아갔다.
21시경. 샤롱베이에 도착하여 닻을 내렸다. 하루에만 3번을 닻을 내렸다.
예전 같으면 닻에 치여서 벌써 파김치가 되었을 것이다. 윈드라스가 있으니
정말 좋다. 자꾸만 닻을 내리고 싶다. 닻주기를 마치고 편안하게 하늘을 보았다.
하루 더 쉬었다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켓에서 인도양의 외딴섬 몰디브로
1월15일.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배들이 이쪽저쪽으로 저마다 갈 길을 가고 있다.
지난밤에는 돌풍이 불어대는 통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야 했다. 8시경, 돛을
미리 올린다음(닻주기를 한 상태에서 돛을 올리면 배가 풍상으로 향해있어 편하다)
닻을 끌어올렸다.
“인도양을 향해 출발이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도 좋았다. 7노트의 속도가 거뜬히 나왔다.
“굿바이 푸켓! 씨유 어게인!”
뒤바람(5시 방향에서 불어옴)을 받고 몰디브를 향해 나아갔다. 푸켓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었다. 조금은 지루했던 그 시간들은 어느새 훌쩍
지나가고 또다시 바다위에 홀로가 되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항해를
준비하느라 바빴고 10월11일 부산을 출발했다.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을
거쳐 말레이시아, 태국을 지나왔다. 모두가 한때 항해 목표가 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어느새 인가 지나온 곳이 되었다. 그와 함께 시간도 흘렀다. 지나온
항적과 함께 세월의 흐름도 같이 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몰디브까지는
지금까지 항해 중 가장 먼 거리이다. 1600마일. 이 먼 항해 길도 곧 기억속의
항해로 바뀔 것이다.
정오를 넘어섰다. 옅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배는 편안히 잘 나아갔다.
몇 노트로 가는지 코스는 정확한지 그러한 것들이 지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몰디브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면 좋았다. 쉬었다 떠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힘들게 하지만 금방적응이 되었다. 처음 같지는 않았다.
14시경. 한 무리의 돌 고래떼가 나타났다. 얼마간 같이 달렸는데 내가 돌고래를
더 불러 모으기 위해 휘파람을 불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오후에는 바람이
약해져 세일이 펄럭거리고 삭구들이 찌거덕 거렸다가 해질 무렵 시원한 바람이
배를 밀어 4노트정도 속도가 나왔다.
야간에는 레이더 경보를 4마일로 맞추어 놓았다. 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끔
알람이 울릴 정도였다. 자정이 되어 갈 무렵 잠시 졸다가 경보음을 듣고 잠이
깨어보니 인트레피드가 말라카해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이 바뀐 것이었다.
윈드베인은 바람이 어디서불건 그 바람에 대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므로 바람이
바뀌어 다른 방향으로 배가 가더라도 계기판을 보지 않으면 눈치 챌 수 없다.
반면에 오토파일럿은 일정한 각도를 보고 가기 때문에 바람이 바뀌면 돛에 바람을
받지 못해 펄럭이거나 많이 받아 오버 힐이 되기 때문에 선실에 있어도 금방 낌새를
알 수가 있다. 배를 바로 잡았다. 바람이 약간 강해져 배의 속도가 5노트를 넘어섰다.
몰디브를 가는 도중에 목표지점이 두 군데가 있다. 푸켓에서 서쪽으로 300마일지점에
인도령 니코브섬(안다만 군도의 남섬)이 있고 그 섬에서 약800마일을 더 가면
스리랑카가 남단이다. 그곳을 돌아서 약간 코스를 위로 잡아 450마일쯤 더 가면
몰디브이다.
레이더에 가끔 낮은 구름이 잡혔는데 비는 없었다. 그러나 밤 동안에 나타난
구름은 부슬비를 뿌렸다. 레이더에 나타난 비구름은 아주 작았는데 바람을 타고
우리와 함께 갔기 때문에 꽤 오래 비가 내렸다.
1월16일.
인도양을 나서서 하룻밤을 보냈다. 바람이 조금 약하고 방향이 정확히 뒤쪽에서
불어오는 것이 약간 힘들게 했다. 아침에는 엥커 체인로커에 있는 체인을 꺼내 씻었다.
뻘 밭에 닻을 내렸다 올려보면 닻은 물론 앵커체인에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서
올라왔다. 바닷물에 씻겨나가길 기다리며 올리자니 배가 흘러갈 것 같고 해서
그냥 끌어올려 넣어둔 것이었다. 뒤뚱뒤뚱 흔들리며 가고 있는 배위에서 물을
퍼 올려 체인을 씻는 일이 쉽지 않았다. 약간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어서 더욱
작업이 더디어 무려 1시간을 바우데크(앞 갑판)에서 보냈다.
9시경. 라면을 끓였다. 이번에 공급받은 떡국거리를 여나무개 던져 넣고 파,
양파 ,마늘, 김치, 계란을 넣어서 맛있게 끓인다고 끓였는데 그다지 맛이 없었다.
‘갖은 양념을 다 넣는다고 다 맛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 이때 알았다. 바람을
피해 약간 북쪽으로 항로를 수정했다. 오후3시를 넘어서면서 미풍으로 변해 끊임없이
돛이 펄럭이고 삭구(요트에 사용된 샤클이나 피팅등 금속연결부분들)들이 찌그덕
거렸다. 밤 10시가 되면서 좋은 바람이 불어 4노트정도 속도가 나왔다.
1월17일. 새벽3시경 비구름들이 잠깐 레이더에 보이는가 싶더니 바람이
세어져서 잠시 속도가 7노트까지 올라갔다. 그 이후로 오 육 노트를 계속
유지했고 돛의 펄럭임도 거의 없었다. 바람이 강해지면 정확히 뒤바람을
받고 있을 때 배가 파도에 좌우로 흔들리는 상태에서도 돛이 펄럭이지 않고
탄력을 유지하여 달릴 수 있다. 돛의 펄럭임이 없고 삭구가 찌그덕 대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마음이 가벼웠다.
16시경 선실입구에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푸켓에서 무임승차한
파리한마리가 주위를 맴돌려 성가시게 굴었다. 팔에 앉았다가는 얼굴에
잠시 붙었다가 밥그릇에 턱 퍼질고 앉기도 하였다.
“거.. 많이 축 안 낼테니! 나도 좀 거듭시다.”
녀석이 염치없게 그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쭈 이 것 봐라!”
녀석은 앉았다가는 날아가고 또 다시 다른 곳에 앉았다 를 반복했다.
나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튕겨버리기로 했다. 녀석이 앉는 곳마다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눈치 빠르게도 잠시도 그대로 앉아있지 않았다.
그래도 참고 끈기 있게 녀석을 따라다녔다. 잠시 후 저도 힘이든지
해치위에 앉아서 손이 다가오는걸 보고 있었다. 나는 정확히 녀석의
등에서 1센티 위쪽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녀석은 손가락이 다가오는 것은
보고 급히 날아올랐다.
“.......”
손가락 끝은 아무 느낌이 없었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이 외롭고 먼 항해에 이 배속에 그래도 나 말고 한 생명체가 더 있었는데
조금 귀찮게 군다고 죽여 버렸다. 조금 참았어야했다. 식사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와서 같이 먹자고 했던 녀석이었다. 몰디브까지는 앞으로
10여일이 더 남았는데 그동안 친구가 될뻔한 녀석이었다. 살을
포동포동하게 찌워서 몰디브에 내려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배에는 파리 말고도 나를 귀찮게 하는 생명체가 또 있었지!”
이놈들도 푸켓에서 공짜로 탄 녀석들인데 밤만 되면 나타나 피만 뽑아먹고
가 버린다. 파리와는 차원이 다른 녀석들이다. 만약 파리가 어디 떨어져
기절해 있다가 다시 나타나면 잘 해줄 것이다. 밥을 먹을 때 그릇에 앉아도
쫒아내지 않을 것이다. 얼굴이나 팔에 앉아도 근육만 살짝 움직여서 놀라지
않게 할 것이다. 오후 늦게부터는 다시 바람이 약해졌다.
12월18일.
태국과 버어마 서부해안과 인도 사이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안다만군도가 았다. 새벽1시경 안다만 군도의 남쪽섬인 니코바섬사이를
통과하여 스리랑카 북단을 향해 나아갔다. 스리랑카 북단까지는
약 800마일이다. 그곳에서 또 몰디브 최 북부 지역의 섬인 울라가무까지
450마일이다. 푸켓에서 300마일을 항해해왔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거리는 1250마일이다. 이번 항해의 총거리는 1550마일이다. 이는 내가
요트로 쉬지 않고 가는 거리 중 가장 긴 거리이다. 물론 이 거리는 항해를
이어가면서 계속 갱신될 것이지만 참고로 1550마일의 거리는 부산에서
괌까지 또는 부산에서 필리핀 팔라완까지의 직선거리와 맞먹는다.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떠있는데 옅은 긴 구름대가 지나갈 때 그 모습은
설탕을 잔뜩 머금은 막대사탕같이 빛났다.
1월19일.
늦은 아침을 먹는데 파리가 돌아왔다. 녀석의 기억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밥그릇 근처에 오지를 않았다. 실내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못
본척했다.
오후2시경. 정말 많은 돌고래떼가 배와 함께 10여분간 유영했다. 물속에서
배와 같은 속도로 달리다 숨을 쉬기 위해 등을 가끔씩 내밀었다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멋진 장면을 놓칠새라 디카를 꺼내 촬영했다. 니코버섬을
지나서 부터는 바람이 약간 바뀌었다. 4시 방향에서 불어왔다. 돛 달리기
좋은 각도여서 배가 아주 편안해했다.
배에 설치된 태양열 발전기로는 지피에스와 레이더 냉장고까지 아무래도
발전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선실 밖에 나와 있을 때는 지피에스 이외의
항해장비는 꺼두었다. 김치가 잔뜩 들어있는 냉장고만은 그래도 켜두어야 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살짝 깔렸을 무렵이었다. 선실 내에서 식사를 하려고 레이더를
세팅했다. 그랬더니 바로 왼쪽 2마일 부근에 배가 한척 화면에 잡혔다. 혹시
요트인가 싶어 배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더니 대형 선박이었다.
거리가 가깝고 또 우리배의 선수방향으로 다가 오길래 무전으로 상대를 호출했다.
“내가 이대로 코스를 유지해도 좋겠냐?”
범선이 일반선박에 대해 권리정임을 제쳐두고 라도 오른쪽에 있는 내 배가
유지선이고 저쪽이 회피선이다. 그러나 외양에서 덩치들을 만나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양보만이 살길이다.’
배는 내가 방향을 그대로 유지해도 전혀 문제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넓은
바다에서 남의 배 앞으로 100미터도 안되게 지나갈건 없지 않은가?
1월19일.
5일째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푸켓으로부터 480마일 멀어져서 몰디브까지는
1070마일 남았다. 바람도 좋고 방향도 좋아서 6노트 전후로 달릴 수 있었다.
9시경. 앞쪽에 뭔가가 물을 튀기고 있었다. 무엇인가 했더니 60센티쯤 되는
나무토막을 점거하고 있는 혹돔이었다. 놈은 배가 다가가자 위협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물을 튀기고 있었다.
“아니 저놈을!”
‘잡아다가 ...’
배위에는 간밤에 어둠속에 천적의 공격을 받아서 날아오르다 요트위로
떨어진 10여 마리의 날치가 누워있었다. 말려서 국 끓일때 사용해 보려고
한다. 그냥 가만히 두면 해풍과 해수가 적당히 말려주고 간을 해주고 할
것 같았다. 필시 맛이 좋을 것이다.
싱크대 물 펌프(발로 밟는 수동식)에 물이 새서 분해하여 수리했다.
1월20.
바람이 약해져서 제네커(스핀네커와 제노아 짚의 중간쯤 되는 크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돛)을 올렸다. 혼자서 큰 돛을 다루기가 힘들었지만
자꾸 해봐야 늘기 때문에 사용하기로 했다. 미풍인데도 속도가 7노트 정도
나왔다. 배도 조용하게 잘 나갔다. 세일의 면적이 크다보니 좌우도 롤링도
없었다.
“왜 진작 제네커를 올리지 않았지!”
낮 동안에는 2척의 어선을 만났다. 2척 다 야간조업을 하려는지 쉬고 있는
듯 했다. 어디를 가도 400마일은 더 가야 육지가 있는데 작은 어선들이
이 먼 곳까지 나오다니 신기했다. 여기는 주변의 나라라야 인도 스리랑카
라오스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이다. 어선과 몇 마일쯤 거리를 두고
지나가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들 어선이 다가와 배를 부딪치면서
고기를 사라고 윽박지르면 혼자 있는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육지에서 4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내가 그들을 대적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녁 무렵 제네커를 철수하는데 커버가 내려오지 않아 결국
헬려드(돛을 끌어올리는줄)늦추어서 돛을 물에 빠뜨려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제네커가 자꾸만 배 밑바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온몸으로
세일을 감아 끌어올리다 휩쓸려 딸려 들어갈 뻔하였다. 얼른 몸을 비틀어
세일을 던져버리고 빠져나왔지만 식은땀이 흘렀다. 하네스를 하고 있긴
해도 제네커와 함께 휩쓸려 빨려 들어가 배와 돛 사이에 끼였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제네커를 철수하는데 30분정도 걸렸고 엉망인체
세일가방에 넣어두었다. 확실히 체크를 하여 사용하여야 같은 낭패를
두 번 당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서의 항해는 트러블이 생기면 금방 천국이었던
바다가 지옥으로 바뀐다. 난리(세일이 펄럭이고 시트도 같이 채찍처럼 휘 젖기
때문에 생지옥이 따로 없다.)치고 있던 제네커를 내리고 다시 주 돛과 제노아를
펼쳤다. 다시 안정이 찾아왔다. 야간 항해에 돌입하였다. 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3시간정도 희미한 빛이나마 항해에 도움이 되었다.
1월21일.
7일째항해다. 바람이 강해져서 돛을 줄였다. 속도가 7노트이상 나왔다.
데크에 누워있는 십 센티가 조금 넘는 오징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벌써
꽤 되었는지 오징어가 마르는 냄새가 구수했다. 노끈으로 묶어 라이프라인에
메달아 좀 더 말려서 구워먹기로 했다. 잘 말린 동해안오징어가 생각났다.
무료할 때 오징어라도 씹고 있으면 좋으련만! 한두 축 챙겨오려 했는데 빠뜨렸다.
21시경. 전기량이 부족하여 경보가 울렸다. 엔진을 걸어 충전을 했다.
인트레피드에는 태양열발전 패널이 75와트짜리 두 개 35와트짜리 1개가
설치되어있는데 그것으로는 충전 양이 부족해 하루에 한 두 시간 엔진을
걸어 부족량을 채워야 한다. 냉장고와 레이더(잘 때만 사용), 항해등,
지피에스만을 사용하며 불필요한 전력사용을 최대한 줄이는데도 늘
전력량이 부족하였다. 아마도 김치가 잔뜩 들어있는 냉장고가 주범일
것이다. 윈드 제네레더(풍력발전기)가 있다면 모든 것은 해결될 것이지만
문제는 늘 자금이다. 오키나와에서 한 차례 설치를 고려하다 포기하였다.
풍력 발전기 값도 값이지만 설치하기 위한 스텐 구조물을 만드는데도 비용이
만만찮았다.
밤 동안에는 바람이 약해져 5노트대로 속도가 떨어졌다. 속도는 느리지만
그 만큼 선실 안은 편안했다.
1월22일.
8일째 항해이다. 계속되는 화창한 날씨였다. 잘 마른 오징어를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렇지만 지루했다. 혼자서 묻고 답하고 낄낄거리고 하는
것도 지쳐간다. 아무리 항해하는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해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학생이 방학을 기다리고 군인이 제대를
기다리고 신입사원이 고참사원 되기를 기다리는 그런 심정과 같은 마음이다.
항해든 학창시절이든 군대생활이든 신입시절이든 공통점이라면 지난 후에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해의 순간들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 나에게 바다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바다!”일 것이다. 편안한 바다가 좋지만 무서운 바다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안전한 육지를 서둘러 도착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거리 항해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마음과 한없는 인내심이라고 하였다. 8일을
달려왔지만 5일을 더 가야 한다. 한없는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밤이 되어 스리랑카 전관수역(육지로부터24해리)으로 들어서자 불을 밝힌
오징어 배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1시간 전에 앞질러간 유조선은 이 전관수역을
완전히 벗어나 가는 코스였는데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 조금은 염려되었다.
하지만 영해(12해리)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1월23일.
9일째 항해다. 스리랑카 남단을 지나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형선박들이
몰려들었다. 중동지역과 말라카해협의 최단거리는 스리랑카를 가까이 거쳐서
가야하기 때문이다. 낮 동안에는 바람이 거의 없다가 저녁 무렵부터 바람이
서남서풍으로 바뀌었다.
‘차가운 생굴이 먹고 싶다. 기억속의 굴 향이 향기롭다. 신선하고 차갑고
향기로운 생굴은 어디에서 먹을 수 있나? 같이 먹던 동무들도 그립구나!’
1월24일
10일째 항해다. 지난밤 강한 바람으로 주 돛을 2단 축범하여 달렸는데
7노트이상 속도가 나왔다. 인도남단을 지나 몰디브로 나아갔다. 바람이
계속 이렇게 불어주면 2일 밤만 지나면 몰디브에 도착할 것이다.
1월25일
11일째이다. 막 정오를 지났다. 15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항해초기부터
배에서 생활하면서 내 머리와 팔꿈치, 발 특히 발가락, 무릎에 많은 타박상을
입었다. 그 중에 무릎은 정말 오래까지 뱃생활에 길들여 지지 않고 틈만 나면
부딪혔다. 이미 타박상을 입은 곳에 다시 살짝이라도 부딪히면 입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최근 무릎이 배의 계단이나 모서리를 저절로
잘 피해 다니는 것은 느꼈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참 신기해서
웃음이 나왔다.
조리대에서 음식을 만들고 난 찌꺼기들을 처리하러 선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냉장고 모서리, 엔진룸 뚜껑, 계단, 선실입구문턱등 각지고 무쇠처럼 단단한
아비동나무들을 지나가야한다. 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평소감각으로
다리를 옮겨 다니다가 단단한 나무의 모서리에 무릎을 스치기 일쑤이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잘 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무릎부상이
뜸하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이제 발견한 것이다. 오늘 무심코 선실 밖으로
나가다 보니 무릎이 충돌체들과 일정한 거리이상을 유지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이 흔들리는 배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었다.
노란날치(?)한 마리를 보았다. 녀석은 크기가 20센티쯤 되어 보였는데 날개가
노란색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노란날개에 둥글고 커다란 검은 점이 있는 것
같아보였는데 보통 날치와는 다르게 2미터쯤 날았다. 그리고 서 너 번 반복해서
날기를 시도했다.
출발 전 몰디브에 대해 얻은 정보로는 섬의 고도가 2미터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목표지점인 울리가무에는 생필품을 살수도 있고 인터넷도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오면서 내내 울라가무의 지형을 보면서 정말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울리가무의 크기가 밑변600미터에
높이 1500미터의 삼각형모양의 작은 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산호초로
둘러싸여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밤이 깊어갈 무렵 6마일쯤 앞에 배가 한 대 포착되었는데 그 배는 5노트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속도로 보아서 요트인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그 배의 선명이
STRESSRESS였다. 요트가 아닌 배가 가질 수 없는 이름이었다. 우리배의 속력이
7노트였기 때문에 3시간이면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속도를
높이며 달아나 버렸다.
1월26일
12일째 항해가 시작되었다. 자정 무렵부터 바람이 미풍으로 변하여 펄럭거리는
주 돛을 내려버리고 제네커 하나로 밤을 새웠다. 배는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조용히 나아갔다. 속도는 내내 5노트 이상을 유지했다. 선실 안은 정박되어있는
배처럼 편안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 하늘의 모든 별들이 나와 반짝이고 있었던
멋진 밤이었다.
14시경 몰디브 최북단섬인 울리가무(ULIGAMU)에 접근했다. 우거진 숲
중간중간에 키가 큰 야자수 나무가 솟아나와 남국의 정취을 한껏 느끼게
하는 그런 섬이었다. 오랜세월 북동무역풍을 받아 서쪽 해안은 백사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섬이 높이가 2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그 만큼 지대가 낮다는 얘기로 알아들어서야 했다. 울리가무섬을
남쪽으로 돌아 서쪽 지역으로 올라갔더니 이미 20척 가까운 요트들이
닻을 내리고 있었다. 요트들 사이로 한 바퀴 돌며 닻주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닻을 내렸다. 잠시 후 모터보터가 다가왔다. 군인 두 사람 과 세관,
출입국 직원 등 모두 6명이었다. 입항수속을 하러 오긴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일을 그만큼 빨리
끝났다. 출항신고는 울리가무 섬에 있는 사무소로 직접 가서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울리가무섬에는 모두 480명의 사람이 살고 있으며 작은 가게하나와
열대과일을 살수 있다고 한다. 섬 관리 사무소에 가면 인터넷이 되긴 하나
용량이 큰 사진은 보낼 수 없을 만큼 느리다고 하였다.
저녁에는 원주민과 이곳에 정박한 요트맨들이 함께 마련한 파티가 열렸다.
섬의 남쪽에 위치한 롱비치(길이가 200미터쯤되는 백사장인데 섬의 길이가
1500미터인것을 생각하면 적당한 이름이다.)에서 각 요트에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과 원주민들이 준비한 바비큐로 그럴싸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식사 후에는
장작을 모아 캠프파이어를 만들어 놓았다. 달빛이 하얀 백사장을 비추어주었다.
원주민들은 캠프파이어주변에 앉아 집단가무를 시작했다. 장구처럼 양쪽에서
칠 수 있는 북을 두 사람이 치며 선창을 하면 다른 사람이 따라 부르면서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졌다. 나중에는 마치 신들린듯 노래를 합창하기 시작했고 그중에
몇몇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일부 요티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흥을 감추지 못하고
춤판으로 뛰어들었다. 조명도 음향기기도 전혀 없는 순수 자연그대로의 공연이었다.
몇백년전 미 발견시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정글 속에서
‘알루알루알루루루루루’하며 원주민 전사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인도양상의
작은 섬 몰디브의 이색적인 밤이 이렇게 깊어갔다.
1월27일
6시경 프랑스 요트 카리메라호와 이곳에서 18마일 떨어진 북 섬 군도의
소재지가 있는 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식료품을 구입하였다. 은행이 있어서
카리메라호의 크루는 그곳을 이용했다. 몰디브는 달러도 같이 통용되어서
나는 특별히 환전할 필요가 없었다. 점심을 사먹고 인터넷을 시도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3시간가량 지루한 싸움 끝에 오직 한 가지 일을 마무리했다.
항해기를 올리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메일을 잘 들 점검하는데
항해기를 올리는 홈피가 속도가 느린 곳에서는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항해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꾹 참고 해낼 수 있었다.
1월28일
스킨다이빙을 했다. 물속의 아름다운 열대어들과 산호초를 보았다.
방수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녹화했다. 저녁에 그것들을
다운받으려 했으나 카메라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이제 방수카메라는
없고 일반 디지털카메라 1대뿐이다. 카메라라 한 대 뿐이어서 불안하다.
1월29일
금요일이었다. 수속을 하고 토요일쯤 출발하려했으나 이곳은 금요일이
휴무다. 서류만 에이전트(이곳에는 72시간이상 머무르면 의무적으로
에이전트를 통해야함 함)에 건네주고 돌아왔다. 오후에는 물속으로 들어가
배 밑바닥을 확인했다. 벌써 따개비가 붙기 시작했다. 프로펠라에 붙은
작은 따개비 몇 마리를 제거하고 배가 물에 닿는 부분에도 드문드문
붙어있는 것을 떼어냈다. 물때가 앉았고 작은 물풀 같은 것도 들어붙기
시작했다. 대강 장갑으로 밀어 내었다. 아직은 속도를 내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1월30일(토)
오후3시경 출국 스템프가 찍힌 여권과 포터 클리런스(출항허가증 :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 서류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를 받았다. 출발할 수도 있었지만
스위스선주의 배에서 저녁식사에 초대받아서 겸사겸사 하룻밤을 더 보내기로 했다.
몰디브 출입항을 위한 팁
몰디브에 일단 입항하여 묘박을 하면 보트를 타고 수속을 하러 온다.
(오지 않으면 무전(ch16)으로 부르면 된다.) 그리고 출항할 때에는 섬으로
직접 가서 하면 되는데 72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에이전트를 통해서만 수속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에이전트 비용 30달러와 앵커링 비용으로 4달러를 받아
모두 34달러가 든다. 대부분의 요트는 몰디브 중에서도 북부지역 끝단에 있는
이곳 울리가무에 들리는데 그것은 이곳이 홍해 쪽으로 연결되는 가장
최단코스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연료와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다. 인터넷이 되긴 했지만 아주 느렸다. 세삼 대한민국이
인터넷 왕국이라는 별명이 그냥 부쳐지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조그만 섬에 축구장이 있을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데 언제가 몰디브가 한국과
경기를 해서 비긴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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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생각지 못했던 상황(?)을 알수 있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빠 무리 하지 말구 안전하게 항해 하세요~ ^^ (사랑해요) 막내 건호 올림
기나긴 항해를 하셨군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항해할것이니 준비도 잘하시고 오직 전진 또 전진 하여 무사항 귀환을 기원합니다 항해기 잘읽었읍니다 ^^^^^^^^^^☆
오랜 항해로 지친 몸 충분히 쉬고 또 시작하시길....
오~ 너무 멋집니다. 힘내십시요, 윤선장님
정말 긴 항해를 끝내셨네요!
한동안 항해일기가 올라오지 않아서 많이 궁금했는데 무사하게 몰디브까지 항해하셔서 다행입니다. 다음 항해를 위하여 충분한 휴식과 함께 건강도 꼭 챙기시길....
소식을 무척기다렸습니다. 기나긴 항해를 건강하게 순항하시는 선장님힘내십시요. 좋은 경험 많이 담으시고 큰 힘 듬푹삼아 드립니다.
오랜만의 소식반갑습니다. 몰디브 무사 도착 축하드립니다. 윤선장님 눈을 통해 내가 보는 듯합니다. 함께 항해하는 즐거움 감사합니다. 푹 쉬시고 다음 안전항해 준비하세요.
아빠 몰디브에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대학은 좀 기다리면 좋은소식이 갈 꺼같아요. 아빠 사랑해요♡(둘째)
윤선장님 몰디브에 잘도착했군요. 산호초로 둘러쌓인 열대섬과 산호모래로 펼쳐진 해변에 언제가볼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먼저 입성하신걸 축하합니다. 몸건강하시고 많은 경험덤 부탁합니다.
너무 멋진 얘기 감사 합니다 읽는 저희에게는 낭만 이겠지만,멏날 몇일을 혼자서 항해해야 한다면, 로빈손 크루소처럼 고독하시기도 하겠네요. 새나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라도 하나 태우고 다니시면 어떨지요? 항상 건강 하십시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해양 스포츠의 대국이 될 즈음 윤선장님이 거처간 저 물길을 따라 우리의 많은 사람들이 따라갈 해양 실크 로드가 되겠습니다. 우리나라 해양의 개척자 이십니다.
생생한 이야기..상상이 됩니다 맘이 설레이고 심장이 울렁거립니다 건강 챙기시고 담번엔 파리칭구도 반가이^^;
몰디브 도착의 노고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푹 쉬시고 다음의 긴 항해를 준비하시라 말씀 드릴려구 했는데 현재 위치를 확인 해 보니 벌써 수에즈쪽으로 올라가고 계시더군요. 몰디브까지의 긴 항해기 잘 봤고요 안전 항해기원합니다.
음.. 무릎이 지능을 갖기 시작했군요.. 진화라.. 길고 힘든 항해에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요.
언제봐도 늘 대단하시다는 생각뿐.......안전 잘챙기셔서 즐거운 항해 되기를 빕니다~!
윤선장님 항해기를 읽을때 항상 Google Earth 를 같이 봅니다. 마치 제가 그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받을려고요.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항해 되시길 바랍니다. V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