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최대 휴양지 발라톤 호수와
크로아티아 심장 자그레브를 찾아서(2011. 8.16-17)
<다뉴브강 아침 산책>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한적한 교외에 있는 호텔은 다뉴브강 근처다. 아침에 잠깐 다뉴브강을 산책한다.
강변에 길게 난 둑을 따라 걸었는데 주변의 경관이 좋고, 공기가 맑아 상쾌했다. 여행에서는 아침에 부지런해야 남이 볼 수 없는 귀한 보물들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한 부다페스트의 교외에서 이처럼 한적하게 다뉴브강의 정취를 맛 볼 수 있음은 숨은 보석 찾기보다 감사한 일이다.
아침 일찍 강둑을 따라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몇 만나기도 했고, 근처 모래를 싣는 현장도 본다.
강을 따라 오가는 화물선과 수량 많은 다뉴브강을 따라 오가는 새들을 보기도 한다.
<부다페스트를 벗어 나며 발라톤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들판에 해바라기가 피어 아름답다>
<발전소>
<해바라기 농장>
<목가적이고 고풍스런 전원 모습>
<수도원과 마을 모습이 정겹다>
<수도원 - 발라톤 호수 가는 중 주유소에서 우연히 마주 친 풍경을 찍는 행운을 맞았다>
<헝가리 시골 풍경>
<헝가리 시골의 수도원 모습>
<발라톤 호수(Lake Balaton)>
부다페스트를 뒤로 한 버스는 헝가리 최고의 휴양지 발라톤 호수를 찾아 떠난다.
두 개의 독일로 나뉘어 가족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서 깊던 호수라는데 가는 도중 무척 정겨운 유럽 풍경들을 만난다.
동유럽 특유의 전원적 목가 풍경과 길을 따라 이동하는 자전거 하이킹족, 수많은 차량들의 홍수는 국민 소득이 높지 않은 동유럽에서도 휴가를 즐기는 풍경은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호수에 가까워지면서 푸르고 울창한 숲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발라톤 호수>
면적 596제곱키로미터. 길이 80km. 너비 10km. 평균깊이 4m.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로,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의 바다’라고 일컫는다.
북서쪽에는 사적과 지하자원이 풍부한 버코니 고원이 솟아 있으며, 여러 곳에 삼림으로 덮인 낭떠러지를 이룬다.
그 일부는 티하니 반도가 되어 호수로 돌출해 있다. 남동쪽은 해발고도 300m 안팎의 낮은 고원을 이루며, 그 사이를 몇 개의 하천이 호수로 흘러든다.
그 중의 하나인 시오강은 도나우강의 지류인 커포시강과 운하로 연결된다.
남쪽 기슭은 ‘유럽에서 가장 긴 모래톱’을 이루며, 휴양지의 중심지인 시오포크가 자리 잡고 있다.
<호수에서의 백조들>
<발라톤 호수>
<발라톤 호수 주변>
「헝가리의 바다」라고 불리는 발라톤 호수는, 동서로 77km, 남북으로 14km의 길쭉한 모양의 호수이다.
중부유럽 최대의 호수로, 주변 국가의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피서지이다.
수심이 낮고 수온도 높기에, 수영을 즐기는 것은 물론 요트나 윈드서핑과 같은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어 휴양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비옥한 포도재배 지역으로, 발라톤 지방의 와인은 유명하다. 호수 서쪽 편에 있는 케스트 헤이가 유명하며, 장엄한 페슈테티치 궁전을 볼 수 있다.
이 호화로운 궁전은 방의 개수만 100개가 넘으며, 바로크시대의 도서관 까지 설치되어 있다. 냉전시대 동안 헝가리는 서쪽의 사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했던 유일한 나라였다.
동서로 갈라져 떨어져 살아야 했던 독일인 가족들은 이 발라톤 호수 주변에서 비밀리에 재회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고 한다.
<발라톤 호수 Annabella 호텔 6층 조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Annabella 호텔>
<호숫가를 하이킹하는 가족들 모습>
<그림 같은 호숫가 주택 모습>
<호숫가에는 경비행기도 보인다>
<호수 옆 골프장 모습>
<원형 로타리 안내도 - 동유럽에는 사거리 교차로가 드물다>
<순례객 모습>
<동유럽 여행 약도 - 파란색 선이 다녀온 일정이다>
<헝가리-크로아티아 국경>
<국경의 헝가리 국기와 크로아티아 국기>
<자그레브를 알리는 교통 표지판>
<크로아티아 목장 모습>
<멀리 알프스 자락이 보인다>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소>
<통행료 안내판>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는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1991년 독립한 나라이다. 반도 국가여서 고난이 많았는데 초대 왕인 토미 솔라브가 서기 925년 크로아티아를 건국한 이래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자그레브 시는 성벽이 두터워지고 감시탑을 세우는 등 요새화되었다. 그후 1500년경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 남아 있는 유럽풍 건물들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산이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괴뢰 정권이 통치하기도 했는데 전후 유고연방에 편입되었다.
이후 공교롭게도 한국전쟁 발발인 1951년 6월 25일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포하였지만 유고연방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1995년까지 긴 내전을 치렀다.
유고 연방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는 소수 민족인 세르비아인들을 크로아티아인들이 학대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크로아티아 극우 단체 우스타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세르비아인들을 50만 명이나 학살한 전력이 있다.
크로아티아에 살던 세르비아인들은 크라이너라는 내부 국가를 만들어 유고연방군과 함께 크로아티아에 맞서 전쟁을 벌이다가 1995년 12월 파리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3개국 대통령이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바니,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등 6개국으로 갈라진 과거의 유고는 여전히 민족과 종교의 갈등으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산다.
경제는 주로 관광에 의존하며 원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산유국이다. 언어는 크로아티아어와 영어, 불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90% 정도가 카톨릭을 믿으며 그밖에 세르비아 정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섞여 있다.
실제로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에는 모스크가 있다.
화폐 단위는 쿠나이며 1쿠나는 우리 돈 200원 정도인데 물가가 비싼 편이다.
유로 가입국은 아니지만 유로화를 받기도 한다.
<자그레브 시내>
<합스부르크 왕가식 건축물 자그레브 국립극장>
자그레브[Zagreb]
크로아티아의 수도이며 도나우강의 지류 사바강에 면한 하항이다.
기계·섬유·전기·목재가공·제지·피혁·담배 등 공업이 발달했으며, 빈·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 방면과 연결되는 철도의 요지이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게르만적 문화를 계승했다.
언덕 위의 구시가에는 고딕 양식·바로크 양식의 성당·수도원·궁전 등 13∼15C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벤 젤라치크 광장 근처 휴식 공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는 사실 관광지로 이름이 나 있는 도시는 아니다. 사바 강변에 자리한 자그레브는 항공ㆍ철도ㆍ도로 등 교통의 요충지이자 발칸반도의 관문으로 큰 활약을 해 왔다.
애석하게도 크로아티아를 찾은 사람들은 이 도시를 그냥 지나쳐 곧장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있는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릿으로 향한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인구의 1/4이 모여 사는 자그레브는 이 나라의 수도로서 꼭 한번 들러봄직한 도시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제일가는 박물관과 레스토랑, 그리고 쇼핑센터에서 값진 시간을 보내 발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중세의 고풍스러운 이미지로 한껏 멋을 부린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는 1094년 로마 가톨릭의 주교구로서 유럽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13세기 중엽에는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도시는 점차 요새화되었고, 지금도 그 당시 몽골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성벽과 여러 개의 탑들이 현존한다.
그 후에도 자그레브는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침략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강한 저항으로 도시를 지켜내 크로아티아의 역사에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다.
20세기 이후 크로아티아는 `국가 재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모든 유대 관계를 정리하고 독립국이 됐는데 그 중심에 바로 자그레브가 있다.
중세시대 그 어떤 도시보다 혹독한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성장한 자그레브이기에 시민들의 가슴에는 조국과 자유에 대한 생각이 아주 남다르다.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인 깊은 신앙심을 토대로 근면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시민들의 정신은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그레브는 두 개의 지역에서 사바 강 건너편까지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어 지금은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벤 젤라치크 광장>
<반 요셉 옐라치치 장군 동상,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친 인물>
<벤 젤라치크 광장>
오늘날 자그레브는 마치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세 개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몇 개의 굽이치는 언덕 위에 자리한 구시가지, 고르니그라드는 과거 크로아티아의 영화로움이 아주 매혹적인 곳으로 중세풍의 대성당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여러 개의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언덕 아래에 있는 도니 그라드는 유럽의 거대 상업도시에 비길 만큼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다.
또한 새롭게 건설된 신 자그레브라고 불리는 신도시는 현대 건축과 도시화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현대와 과거의 모습이 동시에 공존하는 자그레브의 풍경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옐라치치`라는 광장에서 서로 만난다.
중앙광장이라고 불리는 옐라치치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여행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광장 앞으로 덜컹거리는 전차와 자동차가 흐르고, 길을 따라 들어선 건물들은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처럼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꽉 채워져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다양한 상가들이 밀집된 구시가지 거리는 한마디로 낭만적이다.
<마가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
중앙광장을 우측으로 끼고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중세의 기품이 스며 있는 상부 도시, 고르니그라드에 이른다.
S자로 휘어진 길이 끝날 즈음 구시가지를 상징하는 높다란 두 개의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성모 마리아의 사랑이 1년 내내 머무는 대성당과 첨탑은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구시가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대성당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가톨릭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높이 100m가 넘는 두 개의 첨탑을 가진 대성당은 슈테판성당이 서 있던 자리에 `축복받은 성모 승천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워졌다.
원래의 성당은 13세기 타르타르족이 침입했을 때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3세기 후반에 지어진 후 수많은 개보수 공사를 거친 것으로 옛 모습은 거의 없어지고 돔 지붕과 종탑 같은 부속물이 추가되었다.
<자그레브 시내>
<마가 성당 - 왼편 붉은 지붕이 대통령 궁>
마가 성당
마치 장난감을 연상하는 명물 마가 성당은 타일로 만든 지붕이 유명하다. 크로아티아 국가 문양과 자그레브 시 문장을 수놓았다. 1200년대에 지은 이 교회는 이반 파를러가 디자인한 고닥식 출입구와 이반 메스트로비치(ivan Mestrovic)가 만든 내부 조각들이 유명하다. 요조 클리야고비치(Jozo Kljakovic)의 프레스코화도 유명하다. 왼편에 보이는 붉은 지붕이 대통령 궁이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지붕은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사보니아, 자그레브 시의 문장이 그려진 지붕 타일을 밝은 색깔로 수놓아 멀리서도 쉽게 보인다.
아주 이색적인 교회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가교회도 자그레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성 마가교회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사보니아, 자그레브 시의 문장이 그려진 지붕 타일의 독특한 이미지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교회다.
이 지붕은 1800년대 후반에 제작되었다. 성 마가교회는 1200년대에 이미 문헌에 언급되어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때부터 교회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으나 로마네스크식 창문과 이반 파를러가 디자인한 고딕식 출입구만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정문에 있는 벽감들에는 예수, 마리아, 성 마가를 비롯한 열두 제자의 조각상이 들어있다. 내부에는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조각가 이반 메스트로비치가 제작한 동상들이 서 있다.
요조 클리야고비치의 프레스코화도 남아있다.
<도둑의 종에서 본 자그레브 대성당>
<그라테츠 남쪽 - 도둑의 종(로트르슈치크) - 전망대>
로트르슈차크 탑 [Lotrscak Tower]
중세시대에 도시를 방어하던 탑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수도 자그레브 그라데츠(Gradec ; 도시라는 의미) 타운의 남쪽 문에 있으며 13C에 건축되었다. 외형은 사면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서로 모양이 다른 돌과 벽돌을 혼합하여 만들었고 성벽의 두께는 1.95m이다. 탑에 있는 종은 매일 저녁 도시로 진입하는 문을 닫기 전에 울렸는데, 종(Bell)이 없어졌기 때문에 ‘도둑의 종’이라는 뜻의 '로트르슈차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19C에 4층으로 증축되었고 창문도 덧대었으며 맨 위에 대포를 들여놓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일 정오에 종 대신 대포를 발사한다. 이러한 대포 발사는 자그레브의 역사적 전통을 알리는 조그만 행사이면서 사람들에게 기준시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는 전시관으로 사용되며 근처에는 선물가게와 갤러리들이 있다. 높은 전망대에서는 자그레브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
<조망탑에 있는 대포>
<도둑의 종탑에서 본 마가성당>
<종탑 내부>
<그라테츠 남쪽 전망대에서 본 자그레브 시내>
<자그레브 조망>
<자그레브 시내>
<도둑의 종에서 본 마가 성당>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홍보 이정표>
<자그레브 대성당>
자그레브 대성당[Zagreb Cathedral]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 있는 대성당. 1093년에 헝가리 왕인 라디슬라스(Ladislas)가 건설을 시작하여 1102년에 완공했고 1217년에 성모마리아에게 헌정되었다.
성당 높이가 77m, 폭이 46.2m이며 두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한데 북쪽 탑이 105m, 남쪽 탑이 104m이다.
성당 내부의 면적은 1,671㎡로 최대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큰 규모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바로크 양식의 제단, 신고딕 양식의 제단 등이 있고 성당에만 보물급 유물이 10개 이상이 되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 부른다.
외관은 로마네스크의 과도기적인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1242년 타타르족의 침공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1264년부터 20년에 걸쳐 고딕 양식으로 복구했고, 15C 중반에서 16C 초까지 성당 주위에 성벽을 쌓아 또 다른 침입에 대비코자 했다.
그러나 17C에 발생한 2번의 커다란 화재로 인해 성당은 손상을 입게 되었고 이후 17C 중반까지 복구했으며 육중한 종탑을 남쪽에 세워 감시대로도 활용했다.
성 스테필 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자그레브 대성당>
지진 이후에 철저한 고증을 거쳐 진행된 복원공사로 성당은 중세시대의 모습을 되찾았다. 성당 앞에는 금빛 찬란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다.
수십 m 족히 되는 기둥 위에 금색으로 칠해진 마리아상은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조각상이다.
그래서 이 성당을 `축복받은 성모 승천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내부는 5000여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무엇보다 대성당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바로크 양식과 신고딕 양식의 제단 등이 있고, 보물급 유물 10개 이상을 소유하고 있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고 부른다.
종교적, 비종교적 기념물과 거리, 광장, 공원들의 디자인에서 역사의 매 시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정신문화와 예술의 도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 문화와 과학, 경제, 정치에 걸쳐 크로아티아의 중심을 차지하는 자그레브가 이제 세계의 방문객과 여행자들에게 그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여행 칼럼니스트 이태훈 글>
<자그레브 성당 내부>
<광장 근처>
<과거 공산주의 시절 칙칙하고 어두운 모습을 활짝 벗은 자그레브 시내 모습>
<원형 박물관>
<자그레브 시내를 달리는 프롬>
<숙소 바라진을 향하여>
<해가 기울며 기온은 낮아진다>
<자그레브 저녁 노을>
<숙소 바라진 근처 박물관 아침 모습>
<바라진의 멋진 건물 모습>
<박물관 근처에 아직 달이 떠 있다>
<바라진>
<바라진 일출>
<동유럽 자그레브 근처 바라진에서의 화려한 일출 모습>
<아침 일출에 박물관 건물이 단아하고 곱다>
<바라진 시내 성당 첨탑 모습>
<Zagreb에서 80여 km 떨어진 작은 도시 Varzdin에서의 특별한 아침>
여행을 할 때 내겐 아침에 일찍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96년 유럽에 있을 때도 이 습관은 나의 여행의 진면목이 되었고, 실제 상당한 효과도 보았다.
몽블랑 샤모니에서 이른 새벽 산기슭을 올라 마주 했던 알프스 야생화와의 만남은 너무도 화려한 경험이었다.
미리 주변 지리도 익히고, 숨어 있는 고장의 진주를 보는 맛이 쏠쏠했었다.
자그레브를 관광하고 일행들을 태운 버스는 1시간 가량 길을 되돌아 작은 소도시 바라진으로 향한다.
피곤함에 지쳐 주변 슈퍼마켓에서 산 과일과 맥주로 한 잔하고 골아 떨어졌는데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해 뜨기 전이라 골목을 이리 저리 누비며 일출 장소를 찾아 동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너무도 훌륭한 조망터를 발견했다.
마을 뒷산 정도로 여겼는데 박물관 건물과 시내 성당의 첨탑 그리고 붉은 지붕의 마을 모습이 카메라에 너무 잘 어울렸다.
아직 해 뜨기 전이라 주변 사물을 이리저리 맞추며 공을 들이는데 눈부신 일출이 다가왔다.
동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너무도 아름답고 훌륭한 장관이었다.
주변 사진과 목가적 풍경 그리고 마을의 세련되고 소박한 모습들이 아침 햇살에 멋진 색감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호텔에 돌아와 로비에 있는 사진 모습이 우연히 목격되었는데 일출 때 찍은 박물관의 모습과 같았다.
이 마을에서 알아주는 멋진 건물이었으며, 오히려 전시된 사진보다 내가 찍은 아침 풍경 사진이 훨씬 아름다웠다.
나무도 우연히 다가왔던 크로아티아 작은 도시 바라진의 아침 풍경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아마도 영원히 동유럽 여행의 묘미를 간직할 수 있었던 그윽하고 멋지며 특이한 체험이었고 우연이었다.
이런 행운은 나중에 포스토니아 근처의 마을에서 석양 무렵 동네를 둘러보며 또 한 차례 다가왔다.
남보다 부지런한 자만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다는 여행의 진리를 증명한 특이한 경험이었다.
<바라진 시내>
<성당 돌담의 아름다운 풍경>
<바라진 시내>
<산뜻하고 청아한 느낌의 성당 모습>
<동유럽 고풍의 바라진 아침 풍경>
<호텔 근처 슈퍼 마켓>
<묵었던 호텔 모습>
<바라진 시내 지도>
첫댓글 웅장한 건축물들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네요...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입니다..
한적하고 여유로워보입니다 구경잘했습니다
동유럽과 발칸 반도는 쉽게 가 볼 수 없는 곳이지요. 언젠가 시간이 되시면 꼭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산행기는 아니지만 참고 할 자료로 올렸습니다.
공산주의 색깔을 벗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유가 어울린 멋진 곳입니다.
역사와 민족 그리고 조상들이 남겨준 문화 유산이 있어 넉넉하고 여유롭게 살더군요.
바쁘고 시끄러우며 매사 큰 일이 벌어진 것처럼 소란떨며 사는 우리 민족의 애환이 비교됩니다.
건물과 음식 그리고 삶 자체에서 풍기는 유러피언들의 속살을 보는 즐거움이 좋습니다.
나도 이 사람들의 한적하고 여유로운 모습들이 부럽습니다. 마가 성당의 장난감 같은 모습도 참 귀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