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를 바라보며 환상의 해안 길을 걷는 남파랑길(#41)
2022년 11월 20일 (일) 날씨 : 흐리고 가끔 비 기온 : 섭씨 11~17도
거리 15.3km 4시간 40분 동행 : 22명
원천항-천하마을 몽돌해변)
<프롤로그>
구름이 많이 낀 날씨는 남부지방으로 향하는 내내 침침하고 공기도 뿌연 안개로 좋지 못하다.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며 전 세계가 축구로 열광하는데 부상으로 겨우 참가한 손흥민에 대한 안타까움이 매스컴에 요란하다.
20년 전 히딩크 사단이 연습경기에서 연이어 5:0 대패를 당하여 온 국민을 걱정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염려된다.
남해읍에서 고개를 넘으면 바로 앵강만이 나오고 시작지점인 원천항이다.
이곳에는 남파랑길 안내소가 있는데 지도와 여러 자료를 얻을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22명이 길을 걷는 이번 여정은 바닷길과 산길, 언덕이 반복되어 쉽지 않다.
흐린 날씨에 바다 색깔도 뽀얀 모습이고 어둡다. 다행히 파도는 잔잔하고 썰물이어서 갯벌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 있다.
캠핑장을 지나 바로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상주면 도로를 따라 노도 옆 벽련 마을로 한참을 걷는다.
도로여서 지나는 차량들이 많아 위험하다. 빠른 시일에 데크를 설치하여 사고도 예방하고 편안한 걷기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남파랑길 안내소>
<앵강만>
<남해도는 황금 드라이브 코스다>
남해의 한가운데 산과 바다가 절묘한 풍광을 이루는 남해도는 귀여운 강아지가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 다리 사이로 움푹 들어가 만을 이루고 있는 해안에는 많은 몽돌이 있어 밀려오는 파도와 부대끼며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꾀꼬리 소리와 같다고 하여 ‘꾀꼬리가 우는 바다’ ‘앵강만’이 되었다.
앵강만에서는 호구산과 설흘산이 잘 보이며 걷기도 좋지만, 자동차로 드라이브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호구산은 남해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의 높이는 해발 650m이고 호구산에 자리 잡고 있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절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갖가지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고, 계곡의 맑은 산자락 아래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로 흘러든다.
호구산은 용문사를 품고 있는데, 절 안으로 들어서서 산세를 살피면 호랑이와 용에서 따온 산과 절이 이름과는 달리 사방이 포근하고 온화하다.
남해에서 제일 큰 사찰인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세웠다는 보광사의 사운이 융성해지면서 근처에 들어섰던 많은 절들과 함께 지어졌다.
조선 숙종 때 수국사로 지정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은 사찰이기도 하다.
설흘산(해발 488m)은 남면 홍현리의 망산(해발 406m)과 인접한 산이다.
이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깊숙하게 들어온 앵강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또한 여수만 건너편의 여수 해안지역 뿐만 아니라 한려수도의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도 조망할 수 있다.
설흘산 정상 부근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있다.
원래 봉수대라는 것은 주위를 넓게 관측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되는데, 설흘산 봉수대는 왜구의 침입을 금산 봉수대와 사천 전남 등지에 연락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벽련항과 노도>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 노도>
이정표와 길 안내 리본에 의지하며 걸어와 바닷가로 내려서면 앞에 잔잔한 바다와 벽련마을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벽련마을은 마을 형상이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연화라고 했고, 마을 앞 섬 노도 역시 연꽃이 물위에 떠있는 모양이라서 연화라 부르다가 벽련이 되었다.
갯벌에는 돌을 쌓아 만든 석방렴이 보인다. 석방렴은 경사가 적은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밀물 때 조수를 따라 돌담으로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갇히면 잡는 방법이다.
조그만 섬이 보이는데 화계마을 문둥병(한센병) 부부가 낳은 딸이 혼자 살다가 목단이라는 별이 되었다는 목단 섬이다.
벽련 방파제와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바다 가까이에 섬 하나가 있는데 노도라고 한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배 젖는 노를 만들 때 쓰던 목재를 많이 생산해서 노도(櫓島)라 유래되어 부른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1637~1693)이 유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김만중은 1689년(숙종 15) 노도에 유배 와서 1692년 56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유배 기간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을 집필하였다.
섬에는 김만중이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墟墓), 초옥이 있던 터가 남아 있으며, 서포 김만중선생 유허비와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사화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4대 서예가로 불리는 자암 선생은 남해를 찬양하는 경기체가 "화전별곡" 을 그의 배소 노량에서 지었다.
그리고 후손 유의양은 남해의 유적, 절경, 세시풍속 등을 기행문체로 쓴 ‘남해문견록’을 남기기도 했다.
<금산>
해수욕장 뒤로는 예로부터 ‘남해소금강’이라 불렸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금산이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금산은 해발고도 701m로,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금산을 소금강 또는 남해금강이라고 한다. 금강산을 개골산(皆骨山)이라 부르는데 비유하여 금산을 개암산(皆岩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본래 신라 원효대사의 기도처로서 보광산(普光山)이라 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이 산에서 수도하면서 기원한 결과 그 이상을 달성하여 왕좌에 오르게 되었다.
은혜를 갚기 위하여 비단 ‘錦(금)’자를 써서 ‘보광산(普光山)’에서 ‘錦山’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구운몽길 안내판
노도와 두모마을
두모마을
‘드므개’라는 마을 이름에서 개명이 되면서 두모 마을로 바뀌었고, 드므개는 큰 항아리처럼 담긴 바닷가라는 뜻이다.
해안 절경 지대
양아마을
산길이 끝나고 대량(大良) 마을인데 남해군 누리집에 나오는 마을 연혁이 흥미롭다. 400여 년 전 경기도 임진강가의 양아리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이주의 사연은 밝히지 않았지만, 조상 대대로의 터전을 마을 단위로 이주해 온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주했으리라 추측)
이주민들은 이전에 살던 '양아'리라는 지명을 이곳에서도 그대로 사용했다.
마을이 큰 마을과 작은 마을 두 개로 나뉘었는데 이곳은 '대양아'라 부르다가 대량마을이 되고, 다른 마을은 소양아(소량마을)라 부른다.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에필로그>
길이 바다에 바짝 다가가고 시야가 열리면 다도해의 멋진 풍광이 절경이다.
숲을 즐기면서 걷는 옛길인데,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새로운 표현일지 모르지만 바닷가 산길이며 오솔길처럼 낭만적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좀 위험하다 싶으면 말뚝을 박고 밧줄로 보행자의 안전을 도모하여 다행이다.
‘대침투 작전간 교전수칙’과 군부대 사격장인 듯 ‘사격장 안전 수칙’이 적힌 안내판을 보며 힘겹게 숲을 헤치며 척박한 길을 걸어가자 바닷가에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상주은모래비치 해수욕장이다. 금산을 배경으로 송림과 은모래 해변 그리고 앞바다에 목도를 끼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다.
기암괴석과 절경의 금산(錦山)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좌우로 뻗어 내린 산세(山勢)가 아늑하게 감싸고 있다.
남해에 임한 좁은 만(灣)의 입구는 목섬과 돌섬이 파도를 막아주어 천연호수라 부를 만큼 수면이 잔잔하다.
해저는 기복이 없고 인근에 강물이나 다른 바다 공해에 오염될 것이 없어 물이 맑고 깨끗하다.
백사장은 160,000㎡, 길이 2㎞에 이르고 수온 또한 23∼25℃로 따뜻하여 해수욕장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해수욕장 뒤로는 예로부터 ‘남해소금강’이라 불렸을 만큼 경치가 빼어난 금산(701m)이 있다.
상주해수욕장 이니셜 조각상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
바닷가 산길 입구
목도와 바닷가 절애
바닷가 절경을 보며 걷는 남파랑길
천하마을과 몽돌해수욕장
백사장에 검은 쇳가루가 많아서 '쇳개'라 불렸는데, 한자로 '쇠 금(金)'과 '개 포(浦)'를 써서 금포(金浦)라고 하였다.
반농반어의 마을로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바다 물메기'가 특산물이다.
조선 초기 이 마을 뒷산에 사찰 해운암이 있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여수시 항일암으로 옮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곳에는 아직도 이를 뒷받침하는 비문이 남아 있다고 한다.
몽돌 해수욕장과 송림 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을 지나 산속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노파가 왜 악산(험산)으로 가냐고 걱정한다.
심한 오르막을 지나니 웬걸 좋은 도로가 나오고 멋진 별장이 나오고 군대 숙소가 길을 막는다.
건물 뒤편을 따라 이동하니 바닷가 풍경이 멋지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제대로 자리하며 세월을 낚고 있다.
바닷가 숲을 빠져 나오니 몽돌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가 나온다.
비가 뿌리기 시작하여 우비를 쓰고 왼쪽으로 도니 천하마을이 반긴다.
천하 몽돌해수욕장은 접안시설이 없어 배를 댈 수 없다 보니 청정 해수욕장 그 자체다.
금산에서 내려온 하천물이 바다로 곧바로 흘러 들어가서 해변 바닷물이 계곡물처럼 투명하며 크고 작은 몽돌이 해변 전체에 깔려 있다.
규모가 작고 도로변에서 보이지 않아 조용한 해변인데 시설이 알차고 바닷물이 매우 깨끗하다.
천하 몽돌해수욕장만의 특별한 점은, 밀물과 썰물의 조화로 1년 중 한 번 먼 바다에서 모래가 밀려와 몽돌해변 한편을 덮으면서 몽돌백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 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1개월 정도가 그 기간이다.
여기서 천하(川下)는 내 아래라는 뜻이란다. 천하마을은 상주면과 미주면의 경계 마을이며, 송정해수욕장과 상주해수욕장의 중앙에 있고 몽돌해수욕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내아래(내~아래)라 불리는 이 마을의 이름은 금산에서 뻗어 내린 쇳개골(金浦)과 내래 골(川下)에서 유래한다.
수많은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하천을 이루어 사철 풍부한 물을 미조면민에게 제공하였다.
산행이 끝나고 일행들은 삼천포항으로 이동하여 싱싱한 회로 뒤풀이하며 하루의 피로를 날려 버렸다.
건어물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도 구입하고 버스에 올라 귀가를 서두른다.
묘한 감정들이 참가자들에게 마이크를 돌리며 14명의 산전수전 산행 경험을 들었다.
에피소드와 바람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이나 앞으로의 계획도 들을 수 있었다.
작지만 오히려 훈훈하고 감칠맛이 나는 버스 안의 뒤풀이 인터뷰로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부산 오륙도 해안을 향해 달리는 남파랑길 여정이 순탄하기를 기원해 본다.
몽돌 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