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이야기1(이재영)
석유 이야기1
석유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시대에 따라 연구개발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용도로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와 지구 온난화같은 환경문제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석유는 가장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다. 앞으로 두 번에 걸쳐 석유의 기원에서 미래 에너지까지 전망해 보겠다. |
1. 생성과 특징
석유(rock oil or petroleum)는 말 그대로 돌에서 나오는 기름이다.
Petroleum의 어원은 라틴어인 petra(rock)와 oleum(oil)에서 유래했다.
주로 백악기와 쥬라기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석유의 기원은 100~20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구약성서는 '노아의 방주'에서 방수를 위해 역청을 사용했다고 기록했으며, BC 2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사용했다.
BC 500년경 고대 페르시아 사원에서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항상 꺼지지 않는 등불을 석유로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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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형성 지층 구조 |
석유가 고여 있는 암석층(저류암)은 단단한 사질암으로 공극이 많고(porous) 공극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저류암은
사방이 단단한 암석(근원암과 덮개암: 공극이 없거나 있더라도 공극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안에 갇혀 있다. 이 덮개암을 지나 저류층까지 구멍을 뚫고
들어가면(drilling) 갇혀 있던 원래의 높은 압력으로 석유가 뿜어 올라온다.
원유의 주성분은 탄화수소(hydrocarbon)이며, 탄소원자(carbon, 원소기호C)와 수소원자(hydrogen, 원소기호H)의 수나 연결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원유의 주 성분>
탄소수 |
화학식(CnH2n+n) |
명칭 |
단위중량(g/ml) |
1 |
CH4 |
메탄 (methane) |
0.415 |
2 |
C2H6 |
에탄 (ethane) |
0.561 |
3 |
C3H8 |
프로판 (propane) |
0.585 |
4 |
C4H10 |
부탄 (butane) |
0.600 |
5 |
C5H12 |
펜탄 (pentane) |
0.626 |
6 |
C6H14 |
헥산 (hexane) |
0.660 |
7 |
C7H16 |
헵탄 (heptane) |
0.684 |
8 |
C8H18 |
옥탄 (octane) |
0.704 |
9 |
C9H20 |
노난 (nonane) |
0.718 |
10 |
C10H22 |
데칸 (decane) |
0.730 |
11 |
C11H24 |
운데칸 (Undecane) |
0.741 |
12 |
C12H26 |
도데칸 (Dodecane) |
0.766 |
메탄에서 부탄까지는 가스상태로 존재한다. 메탄(1C)과 에탄(2C)은 액화가 어려우나 프로판(3C)과 부탄(4C)은 액화가 쉬워, 프로판은 용기에 담아 취사용으로 부탄은 휴대용 라이터에 많이 쓴다.
펜탄(5C)은 용매(solvent)로 주로 쓰고, 헥산(6C)부터 데칸(10C)은 휘발유(gasoline), 등유(kerosene), 경유(diesel), 중유(heavy oil), 비행기유(jet fuel) 등을 만든다.
운데칸(11C) 이상은 윤활유(motor oil)나 아스팔트를 만들고 탄화수소를 합성하여 탄소의 수가 수백에서 수천까지되는 플라스틱 제품(polyethylene, polypropylene 등)을 만든다.
이와 같이 연료 외에도 나일론과 같은 합성섬유, 플라스틱, 화장품, 약품, 페인트, 도로포장재료 등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석유로 만든다.
원유를 가열하면 끓는점이 낮은 것부터 높은 것 순으로 증발하여 기화하는데, 이것을 식혀 차례로 용기에 담아LPG(-42℃∼-1℃), 휘발유(30℃∼180℃), 등유(170℃∼250℃: 등잔, 가정난방용), 경유(240℃∼350℃: 디젤엔진용), 중유(A, B, C로 나눈다: 대형 보일러 등 산업용), 윤활유(350℃ 이상)로 분리하여 뽑는다.
원유공장은 이와 같이 원유를 증류(蒸溜)하여 여러 가지 유분으로 분류하고, 불순물인 황분 등을 제거하며(脫黃이라고 한다), 촉매를 첨가하여 탄화수소에 반응을 일으켜 성질이 다른 탄화수소를 만드는 분해, 개질(改質) 과정을 거쳐 양질의 석유제품을 만든다.
이와 같은 증류, 탈황, 분해, 개질 등의 공정을 총칭하여 석유정제라고 한다.
2. 역사
15세기말 프랑스에서 oil sand를 발견하여 석유를 뽑으려고 15~20m까지 땅을 판 것이 인류가 시도한 최초의 석유굴착이다.
1850년대에 영국은 석탄을 증류하여 등유를 뽑아내는 정제법을 개발하였고, 1859년 미국에는 500 여 개의 석탄유 제조공장이 있었다.
이 석탄유와 경쟁할 상업적인 유정개발은 1853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타이터스빌(Titusville, Pennsylvania)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그러나 불을 밝히는데 쓸 수 있을 만큼 대량의 원유를 뽑아내기 위한 시도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우연히 철도 승무원 출신인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를 만났고 드레이크는 1858년 봄 Seneca Oil Company를 세우고 타이터스빌 오일 크릭(oil creek)에서 굴착을 시작했다.
여러 차례 굴착이 어려워 고생하던 중 윌리암 스미스(William Smith)라는 유능한 굴착인부를 만난다.
강관을 박아 유정을 굴착하는, 그들이 처음으로 고안한 방법으로 23m 정도 파내려가던 어느 날 드디어 원유를 발견했다.
이 때가 1859년 8월 27일 토요일이었다. 그 동안 은행 융자가 끊길 위험과 무모한 짓이라고 놀렸던 주위 사람의 비아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한 우물 아니 한 유정 만 팠던 노력이 일 년 만에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처음 생산량은 하루 35배럴에 불과했지만 당시 시장수요로는 충분한 양이었다고 한다. 드레이크의 성공으로 타이터스빌 유전지대에는 수많은 굴착공사가 시작되어, 석유 열기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오일크릭의 산유량은 최초 연간 2,000배럴에서 10년 동안에 500만 배럴로 크게 늘었다. 19세기 말 텍사스가 등장하기까지 펜실베이니아 유전지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지대였다.
1892년 스핀들탑 언덕에 처음 굴착을 시작한 이래 수년간 막대한 돈을 투자했지만 석유 징후가 보이지 않자 많은 사람이 포기했지만 루카스는 굽히지 않고 계속 굴착을 했다.
자본이 다 떨어져갈 무렵, 굴착기가 지하 347m에 닿는 순간 석유가 지상 46m까지 솓구치는 석유벼락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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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들탑 거셔(Spindletop Gusher), gusher는 분유정을 뜻함. |
하루 10만 배럴의 석유가 치솓는 것을 막는데 무려 9일이나 걸렸다고 하니 주변이 얼마나 많은 석유로 뒤덥혔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이 후 스핀들탑이 있는 버몬트는 3개월 만에 인구가 1만에서 3만으로 늘었고 이어 인구 5만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1902년까지 600개 이상의 회사가 생겼고 285개의 유정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버몬트는 많은 정유회사가 모여 있으며 휴스턴이 석유 중심도시로 자리를 잡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후 세계 곳곳에서 유전을 개발하여 현재 약 1만 수천 개의 유전이 있다. 세계 최대의 유전은 1948년에 발견한 사우니아라비아의 가와르 (Ghawar) 유전이다. 가와르 유전은 약 1,700억 배럴을 매장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3,400여 개 유정에서 하루 450만 배럴을 생산하는데 이는 전 세계 하루 생산량인 8,250만 배럴의 5.5%나 된다.
일반적으로 채취 가능한 매장량이 5억 배럴 이상이면 거대유전이라고 한다. 현재 전 세계에는 200개 정도의 거대유전이 있다.
2007년 석유회사 BP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석유 확인 매장량은 약 1조 2,379억 배럴로 이는 앞으로 전 세계 인구가 약 42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그 중 약 61%가 중동 지역에 매장(생산량과는 무관) 되어 있다.
앞으로 석유가 40여 년 후에는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심해나 북극 등 그 동안 발견되지 않았거나 발견하기 어려웠던 지역이 탐사와 채굴기술의 발달로 계속 개발될 것이므로 이 수치는 당분간 계속 유지할 것이다.
현재 세계 최대 산유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순이다. 한국은 소비에서 세계 9위, 수입에서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1940년대 자동차 출현으로 석유 소비가 급증하고, 1ㆍ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연료확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세계는 석유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의 두 차례 오일쇼크와 근래의 유가급등과 급락이 야기한 경기하락은 총성없는 에너지 확보 전쟁이 더욱 치열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3. 탐사와 운송
석유를 생산하려면 먼저 유층을 찾아야 한다. 유층을 찾는 작업을 탐사라고 한다. 탐사는 지질조사, 물리탐사, 시추탐사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처음에 지질조사를 한다. 육상이나 해역의 지질을
사진판독과 현장답사로 매장 여부와 가능성을 판단한 후, 경제성이 있으면 지하지층의 상태를 조사하는 물리 탐사를
한다.
물리탐사는
자력, 중력, 지진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으나 지진탐사가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많이
이용한다.
지진탐사는 우선 다이나마이트나 기계 압축공기를 사용하여 인공적으로 지진을 일으킨다. 지진파가 다른 경도ㆍ밀도를 가진 암석의 경계면에서 반사하여 지표로 되돌아오는 것을 측정한 후 지하의 지질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태아의 상태를 파악하는 초음파검사와 유사하다. 물리탐사 결과 석유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면 시추탐사 단계로 들어 간다.
시추탐사는 한 곳이 아닌 몇 곳의 유정(시추정)을 파서 석유 부존을 확인하고 유전의 규모, 구조, 성질 등 경제성을 판단한다.
시추 깊이는 저류층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석유층은 보통 1~4km 깊이에서 발견되며 가스층은 보통 6km 이상 깊이에 있다.
시추 비용은 석유 개발비의 50~60%를 차지하는데,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육상시추는 개 당 100만 ~ 1,000만 달라, 해상시추는 3,000만 달라 이상 든다.
1980년대까지 탐사기술이 떨어져 지질조사 만으로 시추하였다. 10개 공을 시추하면 9개 공이 건공(dry hole or well: 석유나 가스가 나오지 않는 시추공)일 정도로 성공률이 낮았다. 석유 개발업자들은 이 10%의 확률에 운명을 걸었다.
그러나 장비가 발달하고 컴퓨터가 등장하여 땅 속 깊은 곳의 지질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 탐사 성공률이 30~40% 수준으로 높아졌다. 이러한 신기술은 심해유전이나 생산비를 겨우 건질 만한 유전(한계 유전)도 개발할 수 있게 했다.
석유운송은 1870년대까지 주로 술을 담는 나무통(barrel: 42 갤론)을 이용하였다. 드럼(drum: 55갤론)을 쓰는 지금도 유가는 배럴 당 가격으로 매긴다.
그 후 운송량이 늘어나면서 석유운송 탱크트럭이나 기차 또는 파이프라인을 이용하였다.
유조선은 나무 석유통을 실은 여객선에 냄새를 너무 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하기 시작했다.
파이프라인은 일반 차량이나 기차 운송이 날씨나 노조 파업으로 영향을 받는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설치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육상 파이프라인 설치는 교통국(DOT: department of transportation)이 허가한다. 이는 파이프라인 설치가 도로계획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총공사비와 유지관리비 등을 고려하여 최적의 운송수단을 선택하는데, 대륙간 석유수송은 주로 유조선을 이용한다. 대륙간 파이프라인 설치보다 유조선으로 나르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초대형 유조선(VLCC: very large crude-oil carrier)은 약 220만 배럴(약 30만 톤, 60kg 성인 500만 명의 무게)의 원유를 운송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하루 사용하는 양이다. 한국은 이런 선박으로 매일 한 차례씩 중동 등 산유국에서 원유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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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NG-FPSO와 LNG 운반선 |
가스는
파이프라인으로 운송하기도 하며 장거리 운송은 가스를 액화시켜 LNG(liquefied natural gas:
액화천연가스)선으로 운송한다.
가스를 낮은 온도(영하 163도C)로 액화시키면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 가스 600척에 해당하는 양을 한 척의 LNG선으로 운송할 수 있다.
최근에는 LNG-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선을 이용하여 심해에서 굴착한 가스를 해상에서 바로 액화시켜 LNG선으로 옮겨 운반하는 방식을 개발하였다. 이 방법은 육상까지 가스관을 설치할 필요가 없어 가스를 육상까지 보내기 어려운 격리된 가스유정에 유리하다.
삼성중공업은 2009년 7월에 부가가치가 높은 LNG-FPSO선을 석유회사 쉘로부터 수주하여 앞으로 15년 동안 10척을 제작한다. 참고로 대형 LNG-FPSO선은 약 45만m3의 LNG를 저장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이 약 3일간 소비하는 양에 해당한다.
석유 이야기2
석유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 시대에 따라 연구개발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용도로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플라스틱 폐기물 처리와 지구 온난화같은 환경문제가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석유는 가장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번 호에는 석유와 관련된 사건과 인물, 그리고 미래 에너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
석유와 경제
이제 유가는 금값이나 주가같이 중요한 경제지표가 되었다. 이는 유가가 경제 흐름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70, 80년대의 석유파동이나 현재의 유가급락으로 인한 경기침체 등을 고려할 때 석유가 경제를 어느 정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가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배럴 당 3 달러(현재가 20 달러) 선을 넘지 못했다. 1979년 제 2차 석유파동 때 배럴 당 42 달러(현재가 97 달러)를 넘었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꾸준히 배럴 당 30 달러 선을 유지했다.
2008년에 사상 최고가인 140 달러에 이르렀던 유가가 2009년 초 30 달러 선까지 떨어진 유가 충격은 미국의 부실대출 여파와 맞물려 세계경제를 불황의 낭떠러지로 몰아 넣었다. 현재 유가는 배럴 당 70 달러 선으로 안정세를 취하고 있으나 석유회사들은 투자를 미루고 있고 대체에너지 개발도 취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불황이 올해 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가가 계속 배럴 당 70 달러 선은 유지되어야 모든
산업투자와 미래에너지
석유가 이렇게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기까지에는 석유회사의 역활이 컸다. 1870년 미국의 ‘스탠다드’를 시작으로 세계에는 많은 석유회사들이 세워졌다.
1890년 네덜란드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로얄 더치’라는 회사를 세웠다. 로얄 더치는 후에 영국의 ‘쉘’과 합쳐 ‘로얄 더치 쉘’이 되었다.
1908년 영국은 ‘앵글 페르시안’(후에 브리티쉬 페트롤륨, BP)을 세웠다. 이 선진국 석유 메이저는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생산량과 가격을 조정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막상 석유를 생산하는 저개발 산유국은 10%의 이익도 챙기지 못했다. 이같은 석유회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 1960년 베네쥬엘라를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란, 이라크 등 5개국이 모여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를 설립하였다. 지금은 11개국으로 늘어난 이 기구는 전 세계 석유수출량의 85%이상을 차지하고 생산량을 조절하며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73년 중동의 여러 나라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이집트가 공격했을 때 미국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자 OPEC는 그 보복으로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 우방국에 석유를 팔지 않았다. 이것이 제 1차 석유파동이다.
197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영국과 미국의 석유이익을 빼앗고 두 나라에 석유수출을 금지하면서 제 2차 석유파동이 발생한다. 1990년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발발한 제 1차 걸프전과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제 2차 걸프전은 모두 석유가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19세기 중엽부터 석유의 가치를 실감하면서 세계는 석유 확보 노력을 넘어 전쟁까지 치르게 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해상병참로 차단으로 독일은 석유를 수입하지 못해 결국 패배한다. 그 뒤 1939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세계평화를 위협하자 연합국이 이들에게 석유를 공급하지 않아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이 때도 석유를 손아귀에 쥔 편이 승리했다.
아프리카 유전을 빼앗으려던 독일의 롬멜은 석유공급이 막혀 탱크를 버려둔채 철수해야 했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한 일본도 남중국해의 석유공급로를 차단 당하여 결국 손을 들었다.
지금도 선진국이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카스피해 근처의 여러 나라에게 경제나 군사원조 등의 호의를 베푸는 것도 알고 보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가정책적으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세계 20대 석유회사는 아래와 같다.
세계 20대 석유 기업 랭킹(2006년 기준)
(출처:http://www.energyintel.com)
순위 |
회사 |
국가 |
국가 지분율(%) |
1 |
Saudi Aramco |
|
100 |
2 |
NIOC |
|
100 |
3 |
ExxonMobil |
US |
|
4 |
BP |
|
|
5 |
PDVSA |
|
100 |
6 |
Royal Dutch Shell |
UK/Netherlands |
|
7 |
CNPC |
|
100 |
8 |
ConocoPhillips |
US |
|
9 |
Chevron |
US |
|
10 |
Total |
|
|
11 |
Pemex |
|
100 |
12 |
Gazprom |
|
50 |
12 |
Sonatrach |
|
100 |
14 |
KPC |
|
100 |
15 |
Petrobras |
|
32.2 |
16 |
Adnoc |
UAE |
100 |
17 |
Lukoil |
|
|
18 |
Petronas |
|
100 |
19 |
Eni |
|
30 |
19 |
NNPC |
|
100 |
석유왕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를 빼놓고 석유를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그는 1870년 스탠다드 오일을 설립하여 미국 등유(Kerosene) 시장의 90%를 장악했고 회사를 분해, 매각하면서 천문학적인 재산을 모았다.
1911년 독과점법 위반으로 34개의 회사로 분리되는데 그 때 생겨난 회사들이 현재의 Conoco, Amoco, Chevron, Exxon, Mobil 등이다.
그는 역사상 제 1의 부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당시 그의 재산은 2008년도 현재가치로 3,183억 불이다. 금세기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을 크게 능가한다.
그는 대학과 의학재단 그리고 교회 등에 5억 5천만 불을 기증했다. 젊었을 때의 꿈이 10만 불을 벌고 100살까지 사는 것이었는데 그는 550배의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2년이 모자라는 98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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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 록펠러(좌), 선박왕 오나시스(오른쪽 위), 자동차와 포드와 T형 자동차(오른쪽 아래) |
1906년 터키 이즈미르에서 그리스의 부유한 담배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오나시스는 1931년 중고 선박을 사들여 해운업에 입문했다. 1939년 그리스 최초의 탱커 선주가 되고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뉴욕에 해운회사를 설립, 해운왕국을 구축했다.
그는 당시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형 유조선을 만들어 제 때에 물량을 조달하면서 신용을 쌓았다. 빈 배로 돌아가더라고 납기일을 꼭 맞추려고 노력하여 비싸도 확실하게 일하는 회사로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며 해운시장을 석권하였다. 130억 달러의 왕국을 일군 그가 197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유했던 유조선과 화물선 선단(250여 척)은 웬만한 나라의 해군보다 더 큰 규모였다.
오나시스가 돈을 번 계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고 있었지만, 오나시스는 적극적으로 연합국의 식량, 원유, 철광석 등 해상운송을 담당했다.
그러나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오나시스의 배는 절반 이상 침몰했다. 하지만 기회는 오히려 전후 부흥 사업에서 왔다.
1950년대 이후 석유가 에너지원으로 보편화되면서 그는 대형 유조선을 잇따라 발주했고, 과거의 연합국은 그에게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수송 독점계약 등 원유 수송을 잇따라 맡김으로서 전쟁 중에 바친 그의 헌신에 보답했다.
그리스에 가면 희한한 동상이 하나 있다고 한다. 사람같기도 하고 짐승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동상이다. 머리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며, 발에는 날개가 달린 동상 아래 적힌 글은 이렇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나를 봤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
나의 이름은
'기회' 이다.
오나시스는 이 기회를 잘 포착했고, 한번 잡은 기회는 최선을 다하여, 지극 정성을 드려,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사업이 그랬고, 그의 애정 편력도 그랬다.
그는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와의 열애와 배신,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 미망인 재클린과의 결혼으로 많은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자동차 발명은 석유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거기에는 자동차왕 포드(Henry Ford, 1863 ~ 1947)의 공로가 크다.
1879년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하면서 석유 램프는 점점 사라지면서, 등유 소비는 현저히 줄어 들었다. 1886년 다임러와 벤츠가 가솔린(휘발유) 엔진을 만들었고 1897년에는 디젤엔진이 발명되면서 자동차 시대가 등장한다.
포드 자동차가 1908년부터 생산한 ‘T형 포드’는 자동 공정을 통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대 당 판매 가격을 당시의 2,000 불에서 260 불로 낮춰 약 1,700만 대를 팔았다.
이는 당시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이적인 성공이었다. 이는 곧 미국 경제의 큰 밑받침이 되었다.
석유와 미래에너지
아래 그림처럼 화석 에너지 즉, 석탄, 석유, 가스가 지구 전체 가용 에너지원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소비 추세는 지난 수 십년 동안 변함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본다.
이유는 대체에너지나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석유나 가스값을 수 세기안에 추월할 수 없고, 액화석탄(CTL: coal to liquid)이나 액화가스(GTL: gas to liquid) 등 가스를 액화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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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너지원 소비 현황 |
하지만 석탄은 앞으로 233년, 석유는 44년, 가스는 61년을 쓰면 고갈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연소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을 일으켜 재생에너지 개발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란 태양열, 태양광, 풍력, 조력, 조류, 파력, 바이오매스, 지열, 수소에너지와 같이 아무리 소비하여도 없어지지 않고 무한하게 공급되는 자연 에너지를 말한다. 재생에너지는 환경 친화적이고 에너지원이 무한하나, 상용화 단계까지는 아직 효율성이나 경제성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기서는 차세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전 중간 단계로서, 아직까지는 풍부한 석탄과 가스를 이용한 새 기술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석탄을 비행기 연료로 쓸 수 있을까?
대답은 석탄을 액체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석탄액화 혹은 CTL(coal to liquid)로 불리는 이 기술은 고체 연료인 석탄을 휘발유나 디젤유같은 액체연료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1923년 독일에서 처음 개발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석탄액화 기술로 총 650만 톤의 기름을 만들었다.
1980∼9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석유수입 통로가 막히자 핵발전소를 짓고 석탄액화 시스템을 적극 도입했다. 지금도 남아공에서는 수송에 쓰이는 연료의 30%가 액화석탄이다.
액화석탄의 장점은 석탄보다 수송이 수월하고 공해가 적고 무엇보다도 석탄 매장량이 석유보다 많다는 것이다. 석유가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매장되었지만 석탄은 비교적 다양한 지역에 매장되어 있어 안정된 공급이 가능하다. 특히 미국 내 석탄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매장량보다 많다.
미국 내 액화석탄 사업자들은 세제 혜택을 받아 액화석탄 생산 단가를 낮추면 가격이 배럴 당
40 불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석탄과 저임금 노동력으로 배럴 당 25
불에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액화가스(GTL: gas to liquid)는 50여 년 전에 개발했지만 최근에 와서 상용화하고 있다. LNG(liquefied natural gas)나 LPG(liquefied petroleum gas) 등은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여 가스를 액체 상태로 보관ㆍ운송한 후 사용할 때 다시 가스상태로 전환한다. 하지만 GTL은 가스의 화학성질을 변화시켜 액체로 만들고 그 액체상태로 연료나 나프타용으로 쓴다.
연료용으로 쓰는 액화가스는 단독으로 혹은 디젤과 혼합하여 쓰기도 하는데, 석유보다 열효율이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낮아 자동차 연료로 많이 쓸 것으로 보인다. 2008년 2월에는 에어버스 A380이 처음으로 액화가스를 사용하여 독일과 프랑스를 시험 비행하기도 하였다.
석유회사 쉘의 조사에 따르면 액화가스를 사용한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휘발유 차량의 10% 정도 밖에 않된다고 한다. 지금 쉘은 카타르에 하루 26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액화가스 공장을 짓고 있다.
이와 같이 가스는 석유보다 매장량이 풍부하고, 열효율이 높고, 환경오염이 적다. 운반ㆍ사용 시의 불편과 위험을 개선한 액화가스는 신에너지원으로 각광 받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