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황금심 묘소와 노무현 이원우
* 문학과 가요의 접목을 시도하며
등단 과정) <誌友 文藝> 3회 천료(김사림 시인) ‧ ’76 舊 <隨筆文學>(김승우 교수 발행. 서울애 차주환 교수 추천) 초회 추천 ‧ ’83 <한국수필> 추천(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장), ’97 <힌글문학> 소설신인상(서울대 구인환 교수 추천) 등 / (경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 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 ‧ 한국문인협회 문인복지 위원 ‧ 한국전쟁문학회 자문위원 ‧ <표암문학> 자문위원 겸 주간 ‧ 국제PEN 가입 심의 위원 ‧ 대한가수협회(한국 유일 정통가수협회) 중앙 회원‧ <실버넷뉴스> 문화 예술관 운영위원 ‧ 유튜브 ‘老兵 만세’ 대표 (이상 現)/ 前 부산 明德초등학교장 ‧ 26사단 홍보대사 겸 안보 강사 ‧ 부산북구문인협회 창립 회장 및 5대 회장 ‧ 부산북구문화 예술인협회 회장 ‧ UNESCO(유엔 산하 전문기관 부산협회 사무총장 및 부회장 ‧ <문학과 비평> 운영 이사 / (저서) 소설집 <母部隊 여군 만만세> 등 5권 ‧ 수필집 <대통령의 오줌 누기> 등 15권 ‧ 기타 4권 등/ (일반상 및 표창) 황조근정훈장 ‧ 자랑스런 부산시만상 봉사 본상 ‧ 부산 교육상 ‧ 자랑스런 부산교대인상(박세직 장군과 공동 수상) ‧ 쿠알라룸푸르 한인회장 감사패(아동 도서 현지 전달) ‧ 유네스코 부산협회 공로상 1호 ‧ 한국애견상 ‧ 26사단장 표창장(상병 시절) ‧ 교육부 장관 표창. (문화 및 문학상) <한글문학> 소설 신인상 ‧ KNN문화대상(상금 1천만 사회환원) ‧ 화쟁포럼 문화대상(소설) ‧ <문예시대> 문학대상 ‧ 경기PEN 문학대상 ‧ 부산 PEN문학대상 ‧ <표암문학> 문학대상 ‧ <한국수필> 제정 청향문학상(정목일) ‧ 허균 문학상 ‧ 부산 가톨릭문학상 ‧ 부산수필 대상 ‧ 부산북구문학 대상 ‧ 한국전쟁문학상 등
-1- 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성당 미사 참예(參詣) 못 한 지도 몇 달 지났다. 가수 서전트리(Sergeant Rhee), 아니 가톨릭 신자 아우구스티노(복음성가 가수이기도 함)는 중얼거렸다. 아니 장탄식을 뱉었다. 아, 하느님도 ‘코로나19’가 내린 금족령(禁足令)을 어쩔 수 없으신 모양이구나. 그분이 지구촌 모든 인류에게 당신의 현존을 증명해 보이셨으면 좋으련만…. 부모의 영원한 안식을 주님께 비는 연미사(煉Missa)를 미리 넣긴 했다. 밀양 성당교우에게 부탁한 거다. 하나 덧붙이자. 서전트리는 계좌 이체를 할 줄 모른다. 그는 부득이 동인지(同人誌) 한 권 속에 지폐 5만 원 짜리 두 장을 넣어 그 형제에게 등기로 우송했다. 그렇게 하면 우체국까지 갈 필요가 없다. 노무현 유스토 형제 몫도 마찬가지. 5만 원을 자신의 저서 <천주교야 노올자>(유머 신앙 수필집)와 동봉했다. 세례명만 들으면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아는 신부(神父)에게 연미사를 봉헌해 달라며 육필 편지까지 써서 동봉했다. 오랫동안 이 편법(便法)을 쓰는 그. 그는 손을 털고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어느덧 10년 훨씬 넘었군그래. 세월이 빠르긴 하구나! 그의 노무현을 향한 일편단심(연미사)은 변치 않는다. 자신이 나가는 본당에 맡기기 쑥스러울 때가 있으면 군부대 성당을 택한다. 습관으로 몸에 밴 것이다. 그걸 아는 주위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의 우체국 행은 초지일관이다. 그만큼 그의 삶에 노무현의 영향이 컸다는 걸 더러 인정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하나 남에게 대놓고 공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 그는 노무현의 일주기 때 진영 노인대학에서 검은 넥타이를 매고 ‘허공’을 부르던 자신의 모습을 스마트폰에서 들여다본다. 상념에 젖을밖에. 그는 사진을 자신이 가입해 있는 단체 카톡 방에 열심히 올렸다. 여남은 군데다. ‘韓國戰爭文學會’, 경기PEN’, ‘경기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한반도문학회‘,‘표암문학’,‘부산북구문학회’,‘문학과 비평’,‘한국문예’등등이다. 이틀이 지났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를 시청했다. 모든 방송이 천편일률, ‘코로나 19’ 상황을 내보내고 있다. 신음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이러다가는 마침내 나까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별로 두려움은 없다. 웬만큼 살았다는 만족감 내지 안도감을 가진 지 오래니까. 이제 이것도 하나의 타성(惰性)으로 굳어졌는가 싶어 실소마저 터졌다. 그런데 켜져 있던 텔레비전 채널이 갑자기 자동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24번에서 111번으로. 제목을 얼핏 보니 ‘황금동’이다. 황금동? 아내에게 왜 저런지 까닭을 물어 볼 수밖에. 아내는 웃으며 대답한다. 막내 손자가 예약을 해 놓은 모양이라고. 100 이상 올라가면 시도 때도 없이 만화 프로를 내보내는데, 녀석이 무심결에 111에 맞춰 놓았다는 거다. 그러곤 아내는 거실로 나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우구스티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금동? 어디서 많이 들었던 이름 같아서다. 하지만 알쏭달쏭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이름이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환호성을 올렸다. “황금심(黃琴心)이다. 황금동은 황금심의 어린 시절 이름이야. 와, 오늘 갈 데가 생겼다!” 소리가 좀 컸던지 아내와 딸 내외가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셋 다 눈이 동그랗다. 아우구스티노는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아내가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딸도 마찬가지. 하지만 눈치 빠른 사위가 이윽고 던지는 말이다. “‘황금동’은, 111번에서 방영하는 중국 판타지 수사물(搜査物)이에요.” “그래? 그건 아무래도 좋네, 이보게. 황금동이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누구신데요?” “황금심 가수야. 그분 가수 데뷔 전 이름이 황금동이었어. 이런 우연의 일치라니 참 기가 막 힐 따름이네그려. 자네와 함께도 가 봤잖은가? 천주교공원묘원 말일세. 남편 고복수 가수와, 17년 전에 선종(善終)한 그들의 아들도 묻혀 있는 곳.” 그러곤 황금동 아니 황금심 마리아 내외의 가족 묘소를 찾기로 결심한다. 준비물은 <복음 성가집>, 간단한 음향기기 등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헛말이 아닌 모양이다. 아내 배(裵) 모니카도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으니까. 성당 미사를 중단한 상태라 딸은 집에 있겠다는데, 사위는 아우구스티노를 따라나서겠단다. 그럴 때 사위가 한결 좋다. 물론 손자 둘은 집에 남기로 했고. 이윽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가 묻는다. “두 분 묘소 참배 얼마 만이지요?” “지난 가을이었으니, 다섯 달쯤 되는 것 같아. 재작년 겨울에는 영하 19도 되는 날, 박 서방 과 가서 많이 떨었어. 황병기 가야금 명인(名人) 산소에도 들렀었지.” “그땐 몸이라도 괜찮지 않았어요? 당신 회전근개파열과 오십견 수술받은 지 겨우 다섯 달이 고. 운전도 오랜만에 하는데 말이에요. 박 서방한테 운전 맡기세요.”” 아우구스티노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날씨는 좋았다. 이윽고 공원묘원 입구에 차가 닿았다. 꽃가게 몇 군데가 눈에 들어온다. 아우구스티노는 단골인 ‘백합화 꽃집’이란 현판이 걸린 집의 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가 오갔다. 여섯 달 가까운 시일이 흘렀다는 둥, 코로나 바람에 장사가 잘 안 되어 어쩌느냐는 둥…. 아닌 게 아니라 평소와는 달리 주인아주머니는 울상을 짓는 게 아닌가? 아우구스티노는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얼마나 힘 드느냐며…. 그는 지갑에서 5만 원 짜리 석 장을 끄집어낸다. “자, 3만 원 짜리 꽃다발 세 개와 5만 원 짜리 한 개 만들어 주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더 이상 안 팔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안 팔려도 좋습니다. 9만원 매상 올렸으니…. 요즘엔 15만 원 이상 팔린 적이 없어요, 하루 종일.” “쯧쯧, 저걸 어쩌나. 참, 백합화 좀 많이 섞어 주셨으면…. 전 백합화의 흰색이 좋습디다.” “근데, 형제님 아니 가수님. 백합화는 흰색보다 다른 색이 더 많아요. ‘백합화’라면 흰 백(白) 으로 여기시는데, 실제는 일백 백(百)을 쓰거든요. 어쨌든 흰색을 많이 넣을게요.” “아차, 제가 그걸 몰랐군요. 오늘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동차로 돌아와서 꽃 가게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더니, 모두들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우구스티노의 제언으로 넷은 ‘한 송이 흰 백합화’를 목청에 실었다. 가시밭의 한 송이 흰 백합화/ 고요히 머리 숙여 홀로 피었네/ 인적이 끊어진 깊은 산골에… 이어 아우구스티노가 던지는 농담(?) 하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보는 거야. 백합화는 무슨 색입니까?” 사위가 맞장구를 친다. 아마 열 중 일고여덟은 ‘흰색’이라 대답할 거라고. 아우구스티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 배우고 때로 익히면(행하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허허. 여기서 사람들이 ‘설’을 말씀 言 변이 아닌 심방 변(忄)인 悅로 여기는데, 아니거든? 說은 기쁠 ‘열’로도 쓰인다구! 묘원 관리 사무실에 들러 부산이 고향인 은(殷) 팀장에게 인사를 했다. 셋을 실은 자동차는 경사가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오른다. 셋은 저 유명한 황병기 가야금 명인 묘소부터 찾았다. 한말숙 원로 작가의 부군이다. 몇 년 전 선종한 분. 묘원에 올 때마다 들르니까 낯설지는 않다. 거기서 셋은 묵주기도를 바치고 복음 성가 ‘살아 계신 주’를 봉헌했다.주 하느님 (개신교는 ‘하나님’) 외아들(개신교,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아우구스티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복음 성가야. 오늘 따라 신상옥 안드레아 형제가 생각나네. 그의 테이프 를 통해 내가 그걸 배웠잖아? 꺼져가는 내 생명을 건졌고, 그걸 부천의 개신교 ‘경찰방송’ 에서 찬양하다니 그게 은혜요 은총이야. 같은 주님이신데, 그분을 믿는 신자들 간에 반목이 있으니 서글퍼. 드문 경우지만,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도 있잖아?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고. 어느 목사가 말했어. 두 종교 사이에는 개종이란 말이 안 맞는다는 거야. ‘쇄신(刷新)’이라더군.” “그 말이 근사하군요. 근데 황병기 교수님과 한말숙 소설가님, 두 분은 세례를 늦게 받으 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신 모양이야. 그 로맨스는 뒷날 이야기함세.” 다음은 가까운 곳에 있는 최희준 가수. 그 앞에도 섰으니 ‘살아 계신 주’를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셋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은 뒤에 ‘맨발의 청춘’과 ‘하숙생’도 열창(?)했다. 특히 아내가 열렬한 최희준의 팬으로서 ‘하숙생’에 거의 목이 멘다.
-2- 이윽고 셋은 곧장 황금심 ‧ 고복수 내외의 묘 앞에 다다랐다. 마지막 남은 꽃다발을 놓고 향까지 피웠다. 묵주 기도 ‘환희의 신비’를 봉헌하는 가운데, ‘살아 계신 주’와 ‘주 날개 밑을’부르려니 눈시울부터 젖는다. ‘살아 계신 주’는 그렇더라도 ‘주 날개 밑’은 왜? 아니 내친김이니 여기서 밝히자. 그럴 만한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다. 아우구스티노의 문학(소설) 스승 고(故) 이규정 교수가 그리워서다. 선종하기 전 철인처럼 보이던 그였다. 한데 그의 와병 중, 전화를 걸어 보면 왠지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나는 게 아닌가? 아우구스티노는 수시로 수화기에 대고 그에게 ‘주 날개 밑’을 불렀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마치 자신이 손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건네면서…. 지하철 역 플랫폼에서 그러노라면 승객들이 이상하다며 바라보기도 했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들르는 황금심 ‧ 고복수 내외 유택. 거기 둘만이 누워 있는 게 아니다. 가족 묘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거다.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아들 고병준의 묘소도 있다. 바로 곁이다. 자리를 깔고 셋은 앉았다. 갖고 간 과일이며 과자, 통닭 들을 놓고 소주를 따르곤 큰절을 했다. 그러자 아우구스티노가 고복수의 ‘타향살이’ 노래비 앞에 섰다. 음향기기는 이미 조작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곤 미리 만들어온 MR 반주를 재생시키는 게 아닌가! 전주(前奏)가 일정 부분 나오자 그가 목소릴 높인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었소//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 이번엔 누선(淚腺)으로부터 뜨거운 액체가 솟구치는 것 같더니, 몇 방울 잔디 위로 낙하한다. 타관에 온 지 ‘십여 년’이다! 서러움과 외로움이 복받쳐 올라서다. 또한 부산 여기저기 노인학교에 수업을 다니면서, 그 많은 노인 학생들과 목이 메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슬쩍 훔친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의 특별한 걸 내가 연출하려 해. 여보, 당신은 황금심 선생님의 ‘낙화유정’이란 곡을 알 겠지? 우선 그걸 내가 불러볼게. 다시 한 번 부창부수요.” 낙화 유정 뒷골목에 누구를 찾아/ 정든 고향 다 버리고 흘러온 타향/ 하룻밤 풋사랑을 화투장에 점을 치니/ 내도 날짜 애태우며 내도 날짜 애태우며/ 기다리는 여자라오… 한숨을 돌리는 겸 잠시 쉬는 사이 아내가 묻는다. ‘내도’ 날짜라니, 그게 뭐냐고? ‘내도’가 틀린 게 아니냐는 반응 혹은 의아심이다. 화투 치는 화류계 여성이라면, 당연히 ‘2월 매조(梅鳥)’가 맞을 거라는 자기주장도 곁들인 셈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매조’는 일본말 찌꺼기라 ‘내도(來到)’로 바뀌었다고. ‘내도’는 한국 소설가협회 K 이사장의 유권 해석이기도 하지만, 우리말 사전에도 나와 있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어떤 지점에 와 닿는 거라나? 그 다음에 아우구스티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온 노래는, 사위 보스코로선 예상 밖이었다. 서울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역시 MR로 만들어 온 반주에 맞추어 그가 목소리를 높였는데….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근처 주차장, 방금 차에서 내린 참배객 몇이 고개를 든다. 나아가 그들은 뜻밖에도 손을 흔들었다. 재생시켜 들어보자.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허공 속에 묻어야만 할 슬픈 옛이야기/스쳐버린 그날들 잊어야말 그날들/ 허공 속에 묻힐 그날들… 두말할 할 나위 없이, 조용필의 ‘허공’이고말고. 아우구스티노는 애국가 독창 아니 선창(先唱)을 전 국민(?) 앞에서 함으로써 방송 캐스터와 해설자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었다, 몇 년 전에. 그 아우구스티노의 목소리는 그때보다 더 진화되어 2절까지 갈수록 우렁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노래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절창으로 변환되어, 바람결에 실려 수도 없는 유택을 뒤덮었다. 드넓고 높낮이가 이어진 천주교 공원묘원이, 궁창(穹蒼) 밑에서 긴 침묵에 빠졌다고 해야 하나? 마침내 그는 그야말로 정색을 하고 말했다. “노무현과 내가 불렀었던 ‘허공’이야. 2000년 4월이었지. 다시 말하지만, 동향인(同鄕人)인 한 살 위인 정풍송 선생이 가사를 짓고 곡을 붙인…. ‘허공’은 공전의 히트곡이고말고. ‘작사 가 ‘정욱’과 작곡가 ‘정풍송’은 같은 사람이야. 주제가 민주화라는 데에서 우리 모두로 하여 금 깊은 생각에 젖어들게 한다고 해야겠지. 나는 부엉이 바위 위에 노무현의 생전에 수도 없 이 올라갔었어. 김해에 사는 내 학교 동기생들과 함께. 오늘 여기 온 것도 ‘허공’에 얽히고 설킨 노무현과의 인연을, 여기 누워 있는 많은 고인들에게 고(告)하고 싶어서여라고 하자구.” “….” “얼마 안 있어 대선 투표 날이잖아? 2000년 4월 13일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로 되돌아가 고 싶어. 모니카 당신은 기억나? 며칠 앞두고 내가 강서 노인 학교 개학식과 십년 뒤 노무현 모교 맞은편 진영노인대학에서 ‘허공’을 부른 걸.” 아내는 오히려 뜻밖의 말을 한다. “아니, 그 양일(兩日)에 당신이 금사향의 ‘낙화유정’을 학생들과 제창하는 바람에 그게 노인 들에게 회자되지 않았어요? 당신이 쓴 글에 의하면, 진영노인대학에선 한 시간 내내 ‘허 공’을 입에 올렸다는 일화도 있어요. 지치지도 않았어요?” “음, ‘회자(膾炙)’라, 당신이 그야말로 정곡을 찔렀어요. 사실 이 자리에선 ‘허공’과 ‘낙화유 정’이 어울리는 화두라 해야 하겠소.” 거듭 말하지만 이들이 있는 데가 저 유명한 황금심(마리아) ‧ 고복수 내외의 묘소 앞이다. 제삼자들의 눈에 비치는 셋의 모습은?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언뜻 보아 고인(故人) 둘의 가족이 아닌 듯한 노부부와, 젊은이가 제법 오랜 시간 버티고 서 있다! 그 제삼자들 중 몇몇은 아우구스티노 일행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리라. 반면 정색을 하는 인들 왜 없으랴. “노무현 형제는 정말 내가 잊지 못할 사람이야. 어디선가 내가 이야기 했지. 내가 2년 늦게, 그가 2년 먼저 태어났다 치세. 44년이 생년이었다고 가정해 보자는 뜻이지. 나는 일반 고등학교를 거쳐 교대에 진학했을 거야. 노무현 형제도 상고를 졸업하고 교대에 갔을 테고. 그랬더라면 클래스메이트로 교유(交遊)하면서 62세까지 교직에 있다가 정년퇴임했을 확률도 높아. 그러고서 매주 수요일 오후와 화요일 오후 진영노인대학 및 김해 노인대학에 나란히 나가 수업을 했다면 그 이상 아름다운 삶이 없었을 텐데, 쯧쯧.” 가끔은 어디서든 둘이서 콘서트도 열었을 거라 아우구스티노는 진단했다. 마침내 그는 약간 주춤하는 것 같더니, 둘은 국립 현충원을 거쳐 마침내 적군 묘지까지 다녀왔을지 모른다고 부연했다. 말끝을 흐렸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은 시공을 초월하지만, 존재는 한다며 아리송한 명제 하나도 덧붙였다. 이어지는 그의 말 “노무현 개인의 삶이나 정치를 내가 들먹인다는 건 언어도단이지. 중언부언하지만 그가 44년 생이었다면, 그는 아직 살아 있고말고. 그를 예찬할 근거도 있어. 군에 가서 충실히 복무하고 상병으로 제대했다는 사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이야.” 오늘 따라 아우구스티노가 말의 속사포를 쏘듯 한다. 아내와 사위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둘은 아우구스티노야말로 별칭이 괴짜라는 소문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걸 여지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셋은 마치 각자의 시간을 가지려는 듯이 이 가족의 묘지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름대로의 추억에 침잠한다. 아내 모니카도 대중가요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으니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다. 사위 보스코도 음악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성격이라 마찬가지.
-3- 아우구스티노의 사뭇 뒤얼크러진 상념 속으로 우리 몰래 같이 들어가 보자. 중언부언하지만, 노무현 그가 말이다. 대통령을 지내지 않았다 치자. 그가 그렇게 비명횡사(非命橫死)했을 리 만무하다. 그냥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그는 아직 우리 곁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숨 쉬며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 국가 원수가 그것도 극단 선택을 한 거다. 모든 국민에게 치욕을 남겼다. 입이 열 개라도 죽어서인들 그가 할 말이 있으랴!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는 아직도 남달리 그에게 연민의 정을 쏟는다. 그의 죽음은 생전의 공(功)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고 통탄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부인이 돈을 받았던 안 받았든 그 혐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부끄럽게 여기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치자. 하나 그걸로 남편인 자신의 목숨을 가뭇없이 사라지게 한다면 미덕이 아니다. 그래 아직도 혹자는 그의 죽음에 ‘서거’란 말을 쓰기 주저한다. 아우구스티노도 그렇다. 거듭 곱씹어보자. ‘서거(逝去)’란 말은 아무에게나 해당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렇다. 국가 원수(元首)가 숨을 거두었을 경우를 뜻하는 말이다. 이승만이나 윤보선,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란 주어 뒤에 ‘逝(갈 서, 죽을 서)’와 ‘去’로 짝 지어진 이 말로 서술했다. 참 최규하도 마찬가지였지. 그 밖에는 아무리 높은 인사도 ‘해당사항 무’였고말고. 한데 노태우와 전두환에 이르러 제동이 걸렸다. 한데 그들 모든 대통령 부인들이 별세했을 때? 어떠했는지 아리송하니 재론하지 말자. 서거! 단언컨대 국가 원수 외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아무리 고승(高僧)일지라도 예외 없다. 원효대사가 이 시대에 살았다 치자. 그가 세상을 떠난다 해도 열반이나 입적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회자(牧會者)인들 그의 죽음을 대변하는 말은 ‘소천’ 외는 없다. 천주교 추기경의 경우도 ‘선종(善終)’으로 못 박지 않았던가. 여기서 잠깐, ‘소천’은 우리말 사전에도 아직 등재되지 않았다. 개신교 신자들에게 분발(?)을 촉구하는 이유다. 인터넷에 겨우 뜨긴 했지만, 한자 병기(倂記)가 안 되는 상태라 아쉽다. 다만 로마 교황은 다르다. 바티칸의 수장(국가 원수)이기도 해서다. 교황이 숨을 거두었을 때만은 ‘선종’이 아닌 ‘서거’라 한다. 가톨릭 신자라도 그걸 모르는 이가 상당수더라. 이런 ‘서거’를 오염시킨 실로 경악할 만한 일이 있었다. 노(魯) 아무개 인사 이야기다. 그는아우구스티노의 중학교 후배다. 정치 자금을 불법으로 받은 걸로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그는 죽음을 택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데 장례 위원회에서 국회 출입문 위에다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애도(哀悼) 노 ㅇ ㅇ 의원님 서거’라고. 참으로 얼토당토않고 남들로 하여금 분통을 터뜨리게 하지 않았던가! 그건 고인을 오히려 욕되게 하는 처사였다. 하기야 김정일의 죽음을 두고 ‘사거’라 하던 어느 의원보다야 욕 덜 얻어먹을지 모를 결과다.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김일성이든 서거가 될 수 없고말고. ‘사거’도 마찬가지. 셋은 ‘사망’이다. 글쎄, 큰 인심 써서 ‘별세’라 미화시켜 주었다 치자. 적지 않은 국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리라. 노태우도 전두환도 ‘사거’ 소리조차 듣기 힘들었으니까. 이러다가는 이명박과 박근혜, 문재인이 이승을 떠난다면 국민들은 그들의 죽음을 두고 뭐랄지 두렵다. 혹시 ‘사망> 별세> 사거’ 정도로 끝날 건 아닐까? 이 고민(?)은 잇따라 이승을 떠난 두 대통령을 푸대접한 업보 아닐는지…. 차제에 차라리 말이다. 국민을 편 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별세’로 통일함은 어떨까? 모든 지도자의 죽음을 두고 말이다. 며칠 전 사극(史劇) 촬영을 하다가 말이 넘어져 죽었다. 그때도 약속이나 한 듯이 ‘말 사망(死亡)/동물 학대 논란!’으로 제목을 뽑았더라. 이러다가는 발에 밟혀 죽은 개미에게도 ‘사망’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을는지…. 그렇게 지나치다 보면 텃밭에서 기르던 상추 몇 포기가 죽었을 때도 ‘사망했다’라고 무심결에 내뱉을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과 동식물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 죽음을 나타내는 말은 ‘별세’와 ‘사망’이라 통일함은 사람 사는 세상의 하나의 이상(?)이다. 부쩍 노무현이 관련되는 꿈을 많이 꾸는 요즘이다. 오늘밤에도 그가 몽중에 나타나 이러면 어쩌나? 그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이다. 전에처럼 행여 이런 말까지 그와 아우구스티노 사이에 오간다 해도 말릴 재간이 없다. “형제님의 재미있는 수필을 읽었습니다. 어린 상주가 아버지를 여의었더라면서요? 고인의 친 구들이 문상을 왔는데…. 어찌된 셈이냐고 위로를 곁들여 물었더니 상주의 대답이 이랬다고 했습니다. ‘아부지가 선반 위에 벼루를 얹어놓고 낮잠을 잤는데, 지진 때문에 벼루가 아부지 이마 위에 떨어진 거라에. 지 까짓 게 사망 한 하고 베깁니꺼?’” “당신이 숨 거두는 날에도 난 진영노인대학에서 수업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선종’이 라 했어요. 하지만 학생들은 대부분 불교 신자들이라 그 뜻을 몰랐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서 거’라 쓰고 설명을 했습니다. 제가 고집을 꺾은 셈이지요. 충정을 이해해 주세요.” 모두가 허망하다. 노무현, 고복수 ‧ 황금심 내외 및 아들의 죽음도 말이다. 선종이라 한들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가? 사망이라 한다고 해서 그 두 음절이 그들의 영원한 안식에 훼방이 될까? 그 셋은 주님의 말씀을 좇으며 살았었다, 이승에서 말이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아우구스티노는 4백자 원고지 두 장에다가 미리 써서 낙관까지 찍은 편지를 꽃다발 속에 끼웠다. 고영민 안드레아 복음성가 가수에게 쓴 거다.
고영민 안드레아 형제님 안녕하신지요? 고복수 요셉 선생님 ‧ 황금심 마리아 선생님 내외분의 유택을 아마도 열 번 이상 찾아왔을 서전트리(Sergeant Rhee)라는 사람입니다. 본명은 아우구스티노입니다. 대한가수협회 정회원이기도 하지요. 914가 제 회원 번호입니다. 오늘도 저는 아내, 그리고 사위와 함께 ‘살아 계신 주’를 여기서 봉헌했습니다. 저 혼자 ‘타향살이’와 ‘낙화유정’을 불렀습니다. 고향이 부산(안태 고향 밀양)인 저는 오랫동안 무료 노인학교에 몸담았던 까닭으로 형제의 부모님 두 분의 이 곡들을 항상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40대 초반에서 80대에 접어든 오늘까지. 거기 개입(?)한 이가 있었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상세한 사연은 다음에 만나 뵙고 말씀드리기로 하지요. 제가 무료 운영한 노인 학교는 21년간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 거의 거르지 않고 문을 열어왔었습니다. ‘타향살이’와 ‘낙화유정’은 필연으로 여길 만큼 줄기차게 학생들과 불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강서노인학교와 진영노인대학에서 ‘낙화유정’이 거듭나게 됩니다. 동향인인 정풍송 선배의 ‘허공’도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흩날렸습니다. 타관에 와서 외로움과 슬픔을 두 분의 유택 앞에서 삭이었습니다. 저는 복음성가 가수이기도 합니다. 몇 년간 부천의 경찰 방송(개신교 방송)에서 월 1회 ‘복음성가’로 찬양을 했으니까요. 거기 오는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공인(?)을 받았습니다. 그 방송국 앞에 형제님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급선무가 하나 있습니다. 코로나가 물러났다 치십시다. 곧장 진영노인학교로 달려갈 겁니다. 거기 150명 학생들 앞에서 제 스무 번째 콘서트를 열고 싶습니다. 실력이 되느냐구요? 글쎄요, 단 한 가지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제 소설집 <연적의 딸 살아 있다> 출판 기념회를 서울 평양 냉면옥에서 열었을 때 180명이 운집했습니다. 쟈니리 형님과 ‘허무한 마음(정원 히트곡)를 듀엣으로 소화시켜 호평을 받았지요. 몇 달 전엔 그 형님과 ’뜨거운 안녕‘을 열창했습니다. 중앙지에서 보도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지요. 현수막에 적을 제목입니다. <고복수 ‧ 금사향 내외분 히트곡, 노무현 애창곡 콘서트> 제게 간이 반주기가 있어서 다른 걱정은 별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형제님을 한 번 뵐 수 있었으면 하여 비상수단(?)으로 연락드립니다. 전화 주시겠습니까? 010-4731-43** 아우구스티노 올림
아직 덜 녹아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하다. 기어를 1에 놓고 천천히 차를 모는 수밖에 없다. 근데 건너편 황병기 가야금 명인의 유택 앞에 청년 셋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놀랍게도 군인도 하나 섞여 있지 않은가! 호기심을 느낀 아우구스티노가 빠른 걸음으로 그리로 다가갈밖에. 한데 군인이 아우구스티노를 보더니 거수경례를 올려붙인다. 충성! 부사관, 새파랗게 젊은…. 처음엔 아누구스티노가 착각을 했다. 자신이 베레모를 쓰고 있으니, 군의 대선배임을 간파한 그 부사관이 그저 예의를 표시하는 줄 알았던 거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3년 전, 동작동 현충원 휴게실에서 인사를 드렸던 오창배입니다.” “오, 자네 당시 국방부 국악 군악대 소속 병사였지…. 하사 진급이라니 어찌된 셈인가?” “예, 가야금 연주를 군악대에서 좀 오래 해 보고 싶었습니다. 부사관으로 임관되었지요.” “잘 했으이. 처음 만나던 날 내가 자네에게 물었지, 황병기 가야금 명인을 아느냐고. 그날 자네 대답이 가야금을 가까이하는 연주인 치고 교수님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일세.” “예, 저도 그걸 기억합니다. 교수님을 사사(師事)한 저희가 그분의 유택을 참배하는 게 도리 인 듯하여 1년에 한두 번 뵈러 옵니다. 집이 여기서 가까이 있으니까요.” 참, 그날 휴게실에 동석한 사람이 있었는데, 전 한국야구위원회 Y 사무총장과 예비역 L 중령 등이었지.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화두로 올리고 나서 아우구스티노는 자동차에 다시 올 랐다. 내친김이라 한말숙 원로 작가에게 부사관과의 조우를 설명했다. 작가는 너무 놀라더라.
-4- 귀가하는 30분여 시간 아우구스티노는 온갖 슬픈 회억에 잠겼다. 탄식이 소리로 터져 나오려는 걸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코로나가 아니면 밀양성당 노인대학-자주 가서 수업했었다-에 들러 ‘불효자는 웁니다’ 등을 그곳에 모이는 고향 노인(학생)들과 더불어 열창할 수 있는데…. ‘귀향 기념 이(李) 아우구스티노 콘서트’라 이름 해도 좋지 않은가? 다행히(?) 그 노인대학은 천주교 신자만 다니는 게 아니다. 노인이면 누구나 입학 자격이 있는 곳이라 무슨 곡(曲)이라도 상관없다. 이교도와 섞여 공부하는 자체가 금상첨화 혹은 화룡점정인 셈이라 하자. ‘밀양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 엄마의 애창곡 ’열아홉 과부가 스물아홉 딸을 데리고’, 밀양 출신 작곡가 박시춘의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도 있다. 삼랑진 남백송의 ‘방앗간 처녀’는 또 어떤가? 뭐니 뭐니 해도 그중 으뜸은 정풍송의 ‘허공’이리라! 무엇보다 불자였던 엄마 아버지를 위해서 ‘찬불가’ 몇 곡 선보이고도 싶다. 자신이 <실버넷뉴스> 기자 발대식 합창단 발표회를 할 때 지휘하던 기억이 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다른 곡은 몰라도 그 ‘청산…’만은 모두의 귀에 익었으니, 신부나 수녀들조차 거부감을 갖지 않으리라. 휘파람에 노래 가사를 실어 허공에 날린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생전에 불자였던 엄마 아버지다. 두 분 별세 한 지 반세기도 훨씬 넘었건만, 아직도 아우구스티노는 이 찬불가를 가르려 드리지 못한 점이 맘에 걸린다. 그러는데 사위가 한마디 한다. “아버님, 역대 대통령 중 유택을 참배하신 분은 누구누구입니까?” “어? 이걸 어쩌나! 아무도 없다네.” “아니, 현충원에 그렇게 자주 다니셨는데….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의 묘소가 거 기 있지 않습니까?” “내가 깜냥이 안 돼. 차라리 이름 없는 병사의 유택 앞에 서고 싶은 마음에서이기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에는 가 보셨습니까?” “천만에, 내가 그렇게 그의 모교 맞은편 진영노인대학에 부지런히 드나들 때도 정작 그 생각은 하지 않았네. 대신 부엉이 바위는 전혀 낯설지 않아.” “앞으로도 안 가실 색각입니까?” “두고 봐야지. 노태우 전두환의 유택까지 찾는다는 결심이 선다 치세. 위 대통령들뿐만 아니 라,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의 영전에서 거수경례를 붙일 용의는 있지,” 그러면서 아우구스티노는 말이다. 만약에 그럴 경우 그 모든 전직 대통령의 애창곡들을 몇 개씩 찾아내어 콘서트 형식을 빌어서라도 불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그의 아내의 얼굴에는 부정(否定)의 표정이 얼핏 스친다. 어쩐지 순수성을 잃는다는 염려에서일까? 아우구스티노는 부지런히 메모한다. 진영노인대학에서의 콘서트, 세 주인공 추도곡이다. <고복수 요섭 (형제) 히트곡> 타향살이 ‧ 사막의 한 ‧ 짝사랑(손인호의 ‘짝사랑’ 아님) /<황금심 마리아 (자매) 히트곡> 낙화유정 ‧ 삼다도 소식 ‧ 알뜰한 당신 ‧ <노무현 유스토 (형제) 애창곡> 허공 ‧ 상록수 ‧ 아침 이슬 ‧ 목포의 눈물 등 그러나 저러나 그는 오늘도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 중얼거릴 것이다. 아니 기도할지 모른다. “오랫동안 노무현 형제를 꿈에서조차 못 봤다. 오늘 밤 그가 나타나 내게 말해 주었으면…. ‘저는 만고의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사위도 자식인데, 장모님께 참척을 겪으시게 했으니 말이 지요. 형제님에게도 죄송한 까닭입니다.’”
(등단 과정) <誌友 文藝> 3회 천료(김사림 시인) ‧ ’76 舊 <隨筆文學>(김승우 교수 발행. 서울애 차주환 교수 추천) 초회 추천 ‧ ’83 <한국수필> 추천(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장), ’97 <힌글문학> 소설신인상(서울대 구인환 교수 추천) 등 / (경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 한국가톨릭문인회 이사 ‧ 한국문인협회 문인복지 위원 ‧ 한국전쟁문학회 자문위원 ‧ <표암문학> 자문위원 겸 주간 ‧ 국제PEN 가입 심의 위원 ‧ 대한가수협회(한국 유일 정통가수협회) 중앙 회원‧ <실버넷뉴스> 문화 예술관 운영위원 ‧ 유튜브 ‘老兵 만세’ 대표 (이상 現)/ 前 부산 明德초등학교장 ‧ 26사단 홍보대사 겸 안보 강사 ‧ 부산북구문인협회 창립 회장 및 5대 회장 ‧ 부산북구문화 예술인협회 회장 ‧ UNESCO(유엔 산하 전문기관 부산협회 사무총장 및 부회장 ‧ <문학과 비평> 운영 이사 / (저서) 소설집 <母部隊 여군 만만세> 등 5권 ‧ 수필집 <대통령의 오줌 누기> 등 15권 ‧ 기타 4권 등/ (일반상 및 표창) 황조근정훈장 ‧ 자랑스런 부산시만상 봉사 본상 ‧ 부산 교육상 ‧ 자랑스런 부산교대인상(박세직 장군과 공동 수상) ‧ 쿠알라룸푸르 한인회장 감사패(아동 도서 현지 전달) ‧ 유네스코 부산협회 공로상 1호 ‧ 한국애견상 ‧ 26사단장 표창장(상병 시절) ‧ 교육부 장관 표창. (문화 및 문학상) <한글문학> 소설 신인상 ‧ KNN문화대상(상금 1천만 사회환원) ‧ 화쟁포럼 문화대상(소설) ‧ <문예시대> 문학대상 ‧ 경기PEN 문학대상 ‧ 부산 PEN문학대상 ‧ <표암문학> 문학대상 ‧ <한국수필> 제정 청향문학상(정목일) ‧ 허균 문학상 ‧ 부산 가톨릭문학상 ‧ 부산수필 대상 ‧ 부산북구문학 대상 ‧ 한국전쟁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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