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지의 power culture interview 설치미술가 최정화
생활예술의 달인, 공간 디자이너 최정화
그를 만나기 위해 평창동에 있는 토탈미술관으로 갔다. 토탈 서포트라는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다. 전시장 입구에 세기의 선물이라는 탑이 서 있다. 그리스의 3대 건축 양식인 이오니아, 코린트, 도리아 양식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서양의 양식들이 섞여서 동양의 탑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 놓으니 경계가 없다. 서양의 것도 동양의 것도 아니다. 보는 사람이 알아서 느끼면 된다. 그가 노린 답이 무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양극화와 분리가 확연한 우리 사회에 주는 그의 메시지다. 흑백논리, 좌우논리, 가만히 있는 우리를 줄 세우게 하는 것들에 대한 그의 대응이 모든 것을 섞어 놓았구나! 무릎이 쳐진다. 굳이 거창하게 떠들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건 소통과 화합과 다양성의 존중이다.
토탈미술관을 나와 종로에 있는 작업실을 찾아갔다. 낡은 이층의 주택, 대문을 열고 먼저 반지하의 공간으로 들어서니 홍콩에 전시된 색즉시공이름의 검은색 비닐 연꽃이 전기로 작동되어 피었다 오므렸다 한다. <숨 쉬는 꽃>이라고 한다. 집안 입구에는 대구 미술관에서 전시된 연금술이 서 있다. 플라스틱 바구니의 오묘한 조합, 그의 집안 곳곳은 가장 값싼 플라스틱으로 치장되어있다. 그냥 아무렇게 있으나 아무렇게 보이지 않는다.
“왜 예술이 귀하고 높은 곳에 있어야 하나요? 그리고 왜 소수가 독점해야 하는 거지요? 전 세계 인구가 80억이면 예술도 80억 개가 존재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의 이런 마인드이다. 단박에 그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리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이것저것을 보여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배열에 의하여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스승은 추사 김정희라고 한다. 추사가 누구인가? 조선 시대를 통틀어 뛰어난 조형 예술인이며 선각자였다. 그가 추구하는 실사구시의 예술 세계가 그려진다. 소설가 이인성 선생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한없이 낮은 숨결>을 통하여 해체와 결합에 대한 소설의 새로운 구성이 그를 놀라게 했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의 예술 원천은 시장바닥이고 거칠고 억센 시장 아줌마들이고 그곳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라고 한다. 가장 높은 생각들이 가장 낮은 현실들과 만나서 종이 아닌 횡으로 그의 옆에 있다.
“그 분들의 조형미는 대단해요.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대단하고요. 시장에 서 있으면 즐거운 구상이 저절로 나오지요.”
그는 홍대 회화과를 나왔다. 그림을 그렸고 인정도 받았지만 재미없어서 그는 무엇이든 재미있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폴발레리가 그랬다고 하던가!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그대는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라고... 그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살아왔다.
“예술이 아름답고 예쁘고 좋은 것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장 하찮은 것으로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 내는 그의 작품들은 원색을 선호한다. 왜 원색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색동감이란다. 생기발랄, 생생활활,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반짝반짝 윤이 난다. 무엇이든 그렇다. 더러 칙칙한 이 세상살이에 예술이 주는 위로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 작품이 기념촬영의 대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웃음을 주고 싶어요.”
사진 속에서 그는 간혹 웃음을 짓고 있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진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은 그닥 웃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웃음을 갈구하고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의 바람대로 그의 작품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찍혀져 여기저기 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하고 동참하고 싶어 한다.
2008년 서울 디자인올림픽에서 그는 <천만시민 한마음 프로젝트-모이자 모으자!>라는 작품을 기획했다. 그가 모은 재료는 버리거나 재활용으로 분리수거함에 있는 플라스틱 생활용기들이었다. 전국에서 생수병이나 플라스틱 통들이 모여 들었다. 누구나 집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하찮게 버려지는 것들이 엄청난 양으로 모였다. 그는 이 재료들로 올림픽 주경기장의 외벽을 둘러쌓았다. 최대 십만명 넘게 앉을 수 있고 크기도 어마어마한 경기장의 외벽이 몇 미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사천여명 가까운 인력이 동원되어 그 작업을 해야 했다. 그의 구상과 추진력이 놀랍기도 하고 그 폐자재를 통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도 감동스럽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뭉치고 모이면 때로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음을, 그리하여 아무 것인 이들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도 유일무이하게 알려져 있지만 외국에서는 더 호평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곳곳에 있고 일 년에 반절은 해외 전시를 위하여 국내에 있지 못한다. 상해 홍차오 국제공항 앞, 프랑스 리옹, 싱가폴, 말레이시아,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는 파주 헤이리와 창원에도 그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이 하찮은 재료들로 만든 작품이 왜 사람들을 즐겁게 할까? 바로 이 하찮음 때문이다. 베이징의 갤러리 Pekin Fine Arts에서는 크기가 각각 다른 여러 명의 울트라맨을 ‘엎드려 뻗쳐’ 시킨 작품이 큰 호응을 받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새롭게 배열하여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 셈이다. 인간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이 반복적으로 오듯 그의 작품들도 반복의 연속이다. 그 반복을 통해서 그는 새로운 생산을 시도한다. 구태의연한 반복이 아닌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지만 큰 틀에서만 하루가 있을 뿐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는 것이다.
나는 그의 작업실에 진열되어 있는 연꽃이나 연금술, 종교 대표 주자들의 조각품 그중에서도 유난히 노란 부처상과 2층의 황금칠을 한 방에 펼쳐져 있는 꽃들을 보며 그가 가진 불교적 색체를 규정하려고 하지만 그는 무언가 틀에 넣어 사고하려는 내 생각에 고개를 갸웃한다.
“물론 불교적인 색체가 있겠지요. 어릴 때 불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것도 맞고요. 그런데 제가 경계를 없애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이마저도 어떤 틀에 넣고 싶지는 않아요.”
그의 작업은 모든 것을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해체해서 다시 배열하고 큰 모양을 만든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하고 흐트러뜨리고 다시 모은다.
그의 정갈함은 어쩌면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자유로운 품성은 어머니가 주셨다고 생각한다. 오남매의 장남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기질을 살려나간다. 아버지가 정이면 어머니가 반이고 자신이 합인 셈이다.
그는 어릴 때 친구가 없다고 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초등학교 내내 여덟 번이나 전학을 가서 친구들에게 늘 똑같은 자기소개를 해야 했던 아이는 친구를 사귀기도 전에 그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웠고 혼자 있기를 즐겨했다. 모든 것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탑처럼 세워지고 쓰러지고 지워졌다가 다시 세워졌다.
그는 외로움은 너무 익숙해서 그 외로움 때문에 즐겁기도 하단다. 외로움도 제대로 된 외로움이 있다는데 외로움의 기쁨, 기쁨의 외로움을 느끼다보면 무엇이 외롭고 외롭지 아니한지 굳이 분간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외로움에 대한 화두는 그에게 그리 신경 쓰이는 시간이 아닌 듯하다. 외로운 그 시간들은 공상을 끌어내고 그의 재미난 상상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다.
그는 바쁜 것도 즐긴다. 그 와중에서 혼자인 것도 즐긴다. 그때 그는 외로움이 아닌 온전한 휴식 사이로 간다.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썬텐을 하고 늘어지게 누워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동시에 돌아가지만 해외 전시 때는 그 전시만을 위하여 시간을 내므로 그때 그는 자신에게 휴가를 준다.
그는 자신을 거의 작가라고 말한다. 초기에는 간섭자라는 별칭으로 자신을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작가라는 호칭보다 그가 스스로 지어준 가슴시각개발연구소 소장이라든지 공간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수많은 인터뷰를 하지만 아직도 수줍어서 맥주를 한 잔 마셔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는 내게도 맥주를 권한다. 그가 가진 수많은 모습 중에 가장 천진하고 수줍은 모습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다.
술을 즐기는 탓일까?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젊고 신선한 기운을 받고 싶어서일까? 그는 공간 디자인을 하는 사람답게 그가 놀고 싶은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왔다.
1990년대 황금이라는 뜻을 가진 <올로올로-olloollo>에서 그는 혼자 놀 수도 있고 함께 놀 수도 있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주인이 바뀌었어도 아직 그 카페의 실내 내부는 그대로라고 한다. 1991년에는 카페 <오존>의 인테리어를 맡으며 전시하고 놀 공간을 만든다. 그러다 대학로에 카페 <살>의 아티스트 디렉터로 실내내부를 꾸미고 운영은 동생 정덕진씨에게 맡긴다.
“살은 경상도 말로 쌀이기도 하고 죽이다는 의미의 살(殺)이기도 하고 피부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렇게 다중적인 의미가 좋아요.”
카페 <살>에는 그가 말한 다중언어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 문인부터 음악인 무용가까지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그곳에서 서로 소통하며 예술적 교감을 나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복합문화공간 <꿀>을 이태원에 연다.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차나 술도 마실 수 있는 공간에서 그는 자기가 꾸미고 싶은 자연스런 설치물들을 척척 걸쳐놓았다. 아쉽게도 <꿀>은 올 초 문을 닫았다. 그는 이런 공간들에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 도리어 손해를 봤다. 그래도 그에게는 자기자신과 사람들이 놀 공간이 필요하다. 그의 카페는 잠시 휴업 중이다.
그래도 그에게는 딸린 식구들이 많다.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또 다른 작업실이 있고 그곳에는 또 다른 작업가들이 있다. 일곱 여덟 명 내외이니 부양가족까지 하면 소규모 기업이다. 그가 이렇게 바쁜 이유도 그것에 있다.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 나누어야 한다. 매우 자유롭고 싶어 해서 어떤 책임이나 부채로부터도 자유로울지 모른다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규정을 싫어하고 무한한 상상력을 동경하고 매번 같은 하루이되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그가 식구들을 위한 책임감에도 열심인 모습은 여러 가지 그의 모습을 정당하고 단단하게 보이도록 한다. 먹고 사는 것까지도 거부하는 모습이 예술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가나 예술이라는 말을 거추장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들이 즐비한 작업실 이층 테라스에서 전 주인이 남겨놓고 간 항아리들이 둥그렇게 놓여있다.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작이 아닌 무언가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어떻게 재배치하는가!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지붕 옥상에는 김장할 때 쓰는 붉은 자주색 고무통이 놓여 있다. 회색 방수포가 칠해진 바닥은 정갈하다. 여기에도 그가 만들어내고 싶은 세계가 보인다.
“저는 예술이 대단한 게 아니라 누구나 다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병따개는 일반적인 모형이 아니다. 작고 네모난 직사각형의 나무판에 나사를 박고 그 사이로 병뚜껑을 넣어서 지렛대 원리로 병을 딴다. 새로운 발견은 기존에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도구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한다.
그의 진열장 아래에 놓여 있던 신랑신부 인형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잡는다. 신랑신부가 바라보는 유리는 깨져 있고 그 앞에는 총이 여러 자루 놓여있다. ‘여기에도 의미가 있는 거지요?’ 그는 살짝 웃어 보이고 나는 알은체를 한다. 여기저기 간혹 쓰레기들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들도 자세히 보면 정갈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실에 놓인 연금술사 옆으로 순하고 가녀린 양의 박제는 왜 거울을 보고 서 있는 걸까? 그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무엇을 그리워하는 걸까? 애초 그 양은 양으로 태어난 것이 맞는 걸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값비싼 모형들이 즐비하고 웅장하고 장대한 것들과 초라함이 섞여 있는 그의 작업실은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오늘도 부지런히 세상을 기웃한다. 광주에서는 거시기, 만물상 - 사물에서 존재로가 전시되어 있고 오는 11월과 12월 대구 리안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세기의 선물과 또 다른 작품을 뒤섞어 <생생활활: 生生活活>이 전시된다.
빛이 지구까지 오는 시간을 재는 단위를 광년이라고 한다. Light Year! 가벼운 나날! 세상의 진리는 이처럼 모순을 결합하여 온다. 그래서 진짜가 된다. 그는 그 단어에 요즘 꽂혀 있다.
살아있는 것은 역동한다. 역동하는 것에는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는 것에는 존재만 있다. 존재 그 자체가 본질이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의 사유를 부채질한다. 이 지극히 가벼운 시간 안에서 무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그의 플라스틱이 보여주는 매트릭스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 이번에는 예술생활 하러 가자!
글 사진 신희지
<차와문화> 11월-12월호 중에서
첫댓글 오늘자 조선일보에 최정화 작가님의
대구 전시회 기사가 났네요.
그래요?
워낙 유명하셔서. . .
그런데 무지 소탈해요
거기 고향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