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부흥하는 목장 만들기
주일이면 교회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예배를 마치면 교인들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도 나누며 매우 친한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예배당을 나서면 모두가 남남의 삶을 살아간다. 아무런 상관없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자기의 일을 하며 아무생각 없이 지낸다. 그러다 주일이 돌아오면 예배를 드리는 정해진 시간에 또다시 만나서 인사를 나누며 지낸다. 늘 이런 식의 관계성 속에서 수년 아니 몇 십년간을 함께 지내며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강단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설교하면서 외쳐도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소홀한 관계 속에서 너는 너 나는 나의 삶을 살뿐이다. 지난주에 주어진 말씀을 실천에 옮기지 않거나 기억조차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수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명령한 것은 알고 있으나 전혀 상관없는 생활을 하며 교회에 다니고 있다. 이런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하도록 변화시킬 수가 있을까? 그것은 오직 작은 공동체인 밴드와 목장에서만 가능하다.
목장의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작은 공동체인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밴드와 미성숙한 자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교회에 나온 새 신자들이 모이는 목장은 경직됨이 없이 유연성 있게 모여 그리스도인의 삶과 생활을 나누는 은혜의 장이 되기에 유익하다. 모임의 장소, 시간, 횟수, 규모에 있어 융통성있어 자연스럽게 모이기가 쉽다. 또한 당시의 상황에 대응하기가 쉽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참여도가 높으며 유연성이 많아 매우 유익한 모임이다. 모임도 가정, 사무실, 상점 혹은 야외 등에서도 유동성 있게 모임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목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을 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이곳에서 인격적인 의사소통이 되고 자기의 아픔과 고민을 치료할 수 있는 열린 장이 목장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밴드원들과 함께 모이는 목장 모임을 통해 신앙생활을 알게 되고 일상 생활의 구체적인 삶이 나누어진다. 이 모임은 성경공부모임도, 기도회도, 친목회도 아니다. 목장모임은 예전의 속회나 구역 등의 모임들과는 현저하게 다르다. 작은 공동체모임이나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밴드나 몇사람의 밴드원들과 아직 미성숙했거나 신앙생활의 초보자들이 함께 모이는 목장은 에서는 거리낌없이 복음화를 위한 교육으로 양육하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성숙에 도움은 주는 매우 유익한 모임이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행 20:20)
바울은 2-3년간 에베소에 머물며 교회사역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 에베소 교회가 안정되었다. 이 때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에게 「어디서든지 꺼림이 없이 가르쳤다」고 했다. 무엇을 가르쳤나?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르쳤다. 무익한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쓸데없는 교리 논쟁에 얽매이려 한다. 그것들(선 창조론이니 후 창조론이니 하는 것들)이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 20:27)고 했다.
이 말은 에베소 교인들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며 가장 유익한 것들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목장이나 밴드에서는 신앙생활의 권면과 위로를 주는 모임이다. 때로는 책망도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해 나가는 생활도 하여야 한다. 그러면 믿음의 식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I.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야 한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28장30절에서 31절을 보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 혹은 하나님의 다스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다스림 그 자체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의 본질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매우 유익한 것으로 죽어 천국 가는 것에만 소망을 두는 정도의 신앙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지으신 이 모든 세상, 곧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날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11:20)고 예수님이 말씀하였듯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좇아낸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이 땅을 지배했던 흑암의 나라, 사탄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림으로써 파괴되고 빛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적인 생각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난 이후에도 자신의 육신적인 뜻대로만 행동하려 한다. 하지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는 나오나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하여 나온다. 하지만 자신의 뜻을 따라 산다는 것은 주님의 뜻과 상반된 것이다.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고 있는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18)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바로 서 있는 자리를 말한다. 이것이 ‘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우리는 그 자리에 안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의로움’만 주장하다 보면 지나치게 냉정하고 정죄함만 무성해져 서로간에 살벌한 적대감만이 생겨나게 된다. 의로운 삶을 주장하는 자리에 반드시 평강이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실수하기 쉬운것이 바로 의로움을 주장하다 화평을 깨트린다는 것이다. 일이 늦어 진다하여도 화평과 함께 의로움이 어우려져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 투쟁이나 싸워 쟁취함으로 의로움을 주장해 승리한다해도 그 자리는 갈등과 증오가 생겨나게 된다. 이런 곳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는 옳은 일이 조금 늦어진다 해도 화평을 유지하며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이삭이나 요셉 그리고 다윗 같은 사람을 예를 들어 의로운 길을 가면서 화평을 유지해 나간다. 힘들고 오래 걸리는 세월 속에도 의로움과 화평을 함께 하며 승리의 생을 보냈다. 화평은 통한 의가 승리하고 나면 그 자리에 기쁨이 있다. 의만 주장해 평화를 깨고 이겼다고 하자. 그 평화가 깨져버린 자리가 기쁨의 자리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기쁨이 함께 공존해 나가는 자리인 것이다.
지도자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해 가르쳐야한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사만 강조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능력과 말씀을 이해하고 함께 모여 유익 된 삶을 나누는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곧 하나님 나라가 세워져 나가는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목장의 식구는 6-7명 정도가 적당한데 이 안에는 반드시 장성한 그리스도인인 밴드원이 2명에서 3명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양육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육해10명에서 12명 정도가 되면 그 목장은 늦추지 말고 밴드원인 몇 명과 함께 분가를 계획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적으로 목장을 성장시키는 지름길이다.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와 ‘존(Zone)'의 지도자인 디렉터들은 자신을 먼저 진리와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도록 무장하여 성도들을 올바로 가르쳐 양육해 나가야 한다. 마 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 하셨다. 예수님은 설교나 성경을 음미하라 하지 않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했다. 듣기만 하지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히신다. 목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임이지 성경 공부하는 모임이 아니다. 그러므로 목장은 ‘순종하는 모임’ 다시 말해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모임’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유익 된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화 되도록 목장을 세워나가는 방식을 갖도록 가르쳐야 한다.
∘ 목장의 식구를(새 신자포함) 복음화 시켜야 한다.
주님께 나온 그 순간부터 복음을 접하게 해 복음화 되게 하여야 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성경 말씀으로 그들을 낳아 복음화해야 된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모르거나 복음화 시켜주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다시 목장을 떠나게 된다. 목장안에 있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인 밴드원들중의 지도자는 새로 찾아온 식구에게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복음화 하는 일이 늦어지거나 양육하지 않으면 교회와 목장을 떠나게 된다. 우리는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드시 복음화 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과제이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방법만이 그들로 하여금 목장에 머무르게 하는 길이고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방법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죄와 흑암의 세력에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곧 그 분과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목장의 식구들을 복음화 시킨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으로 키워 전인격이 그리스도께 순복 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무엇을 하든지 또한 어느 장소에 머무르고 있든지 주님이 우리의 전 삶을 주관하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입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5-20)
※목장에서는 새 신자를 위한 배려를 각별하게 신경 써 복음화해야 한다. 새 신자만을 돌보고 양육하는 훈련된 사역자(MD섬김이)를 키운다면 그들을 통해 목장의 식구로 쉽게 정착시킬 수가 있다.
* 교재: 새 신자를 100%정착시켜라(밴드목회연구원 출판)
∘ 수련회를 통해 목장의 식구를 복음화를 하도록 하라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를 찾아온다. 그리스도인으로 미성숙한 이들에게 교회에 나와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발견케 하는 수련회가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오게 해야한다. 수련회를 통해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생활을 발견하게 하며, 또 회개하도록 적절한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새신자나 목장의 식구들은 수련회에서 여러 강의를 들은후 기도하면서 그 내용을 실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면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함으로 복음화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믿음의 식구에 대한 감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복음화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구원의 기쁨과 감격 속에 살게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 복음화이다. 새 신자를 복음화시키기 위해 구원과 성화에 대해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가) 죄인임을 알게 하여 회개시켜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그 선악과를 먹음으로서 하나님의 생명줄에서 떨어진 영적 시체가 되었다. ‘죄’란 하나님 없이 자기 맘대로 결정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곧 교만으로 하나님과 맞먹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죄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여 심판하셔야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자신의 아들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 십자가에서 우리를 감싸고 대신 죽으신 것이다. 바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용서의 사랑이 만난 곳이다. 내가 한일은 죄밖에 없는 데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지은 죄는 하나님 없이 내 맘대로 결정하고 살아오게 한 교만이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이 죄를 해결해 주심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긍휼이며 은혜인 것이다.
자신의 죄악을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 이는 하나님과 분리되게 한 죄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과 나를 분리시킨다. 죄인의 몸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해 그 분께 나갈 수 없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이지만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예수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오게 하여야 한다. 당신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죄에 대해 회개하도록 알려주고 일깨워 주어야 한다.
목장의 리더인 목자는 어떻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가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기도회를 통해 사탄의 일을 버리며 그런 것에서 떠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담배, 알코올, 마약, 미신, 사술, 두려움, 향락된 생활에 얽매여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옛 생활을 벗어나 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나) 예수 그리스도안에 들어가 그분의 소속이 되겠다는 믿음을 갖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소속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소속되기 위해 그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고 하였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운명공동체가 되겠다는 고백이기도 한다. 시시한 믿음이 아니라. 인생을 예수그리스도께 송두리째 거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만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포기하게 한다.
구원받기 전까지는 오직 자신이 하나님 없이 자기 맘대로 결정하며 살아온 인생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만 하나님이 맘대로 다루시고 만드실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믿음이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것으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임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주’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그 분께 순복해야 만 한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모든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수면욕, 오락, 식욕 절제 훈련)
당신의 생각이나 집과 차 그리고 은행잔고와 은사와 시간 등의 모든 것을 주님 위해 사용토록 가르치고 권면하자.
-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열쇠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만나는 삶을 가르치고 그분과 대화 방법도 가르쳐야만 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떨어져 나간 것은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당신의 주인의 자리에서 밀어내고 자기가 주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죄인이었다. 그러므로 구원의 사람은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임을 알고 그분이 쓰고 싶은 대로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믿음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인 것이다.
다) 성화 되어 가는 그리스도인를 양육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제 구원을 받았으면 과거의 삶에서 바뀌어진 엄청난 신분의 사람이 된 것이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안에 소속을 가졌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한 가족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 한다.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자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면 공동체 속에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사랑의 삶이 나타나고 인격이 변화된다.
* 교재: 성화훈련 가이드북(밴드목회연구원 출판)
2. 목장의 일원이 되게 하라
공동체 속에 들어오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대해 배우도록 한다. 가장 중요한 것 즉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관계 맺는 방법> 이다. 목장의 리더자인 목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치하여야 성공적인 목장을 이루어 나갈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야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할수 있는 것이다.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목장 안에서의 강팍한 사람을 다룰 수 있으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을 은혜로 잘 다룰 수가 있는 것이다. 목장의 모든 구성원들은 주님과 영적인 관계를 바로 맺으며 본이 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반응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도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5:16) 예수님은 사역이 분주한 가운데에도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아가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아버지로부터 능력과 지도를 받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기도하신 것이다. 목장의 리더인 목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있으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열매를 맺는 능력을 얻게 된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기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아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목자는 목원에게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었음을 알게 한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라 하였다. 목장의 모든 목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이 능력이 임하기 위해서는 기도 운동이 목장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내적 변화로 가치관이 예수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기뻐하며 살아간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이웃과의 관계(다른 사람)
사람들이 정보를 얻어 유익한 삶을 살아가는데는 12.5%가 자신의 지식에 의해 얻어지고, 87.5%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다고 스텐포드 연구소의 조사를 통해 발표했다. 이처럼 대인관계는 자신이 살아가는데 매우 유익한 것은 물론 신앙성장에 크게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사업자들이 경영에 실패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이유는 종업원들의 무관심과 부주의가 68%라 한다. 마찬가지로 목장의 목원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목자만이 목장을 성장시킬 것이다. 목장은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가족이다.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와 같이 서로 사랑하며 넓은 마음으로 모두를 대하는 자세가 목장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구원받은 자가 공동체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함을 알게 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공동체 속에서 모여서 쓸데없이 시간 낭비말고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유익한 주제들을 설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목원들 간에 친밀한 관계를 가진다면 비전과 성격, 은사와 영적 감동을 나누어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이 비전과 지도력을 나누어주었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비전과 지도력을 나누어주었다. 목장이 바르게 성장하려면 목자와 목원들과의 관계가 깊어야 함은 물론이고, 교회의 사역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음이 성숙된 신앙생활을 하는데 매우 유익할 것이다. 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기 위해 쓰여진 교재를 참고하라.
* 교재: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라(밴드목회 연구원 출판)
3. 부모의 교육(Paranaesis)과 체계적인(Katechesis) 교육을 하라.
1) 부모의 교육인 파라내시스(Paranaesis) 교육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형태이다.(목장)
바울이 각 교회에 서신서를 통해 한 교훈을 말한다. 정해진 프로그램(Program)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하는 실시하는 것 즉,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경우에 따라 교훈하고 권면한다. 그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도록 교육하고 교리에 따르도록 순간 순간 지도하는 것이다. 불규칙하나 필요를 따라 하는 영적인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2)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교육하는 방법을 케테케시스(Katechesis)라 한다. 다시 말해 프로그램화 되어있는 교육이다.(교회)
학교의 교육과정처럼 체계화되어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권면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은 유익하며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을 통해 적용을 발표케 하고 보고서 (Report)를 작성 제출케도 한다. 학교 생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속의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육에 실행가능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가르쳐야 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42)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1-7)
가르치고 심방하고 구제 등은 모두 사도들이 처음에 했으나 사람이 많아지면서 문제의 발생으로 일곱 집사를 세워 교회 제반문제를 처리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일곱 집사 세운 후 점점 믿는 자의 수가 증가하여 많아졌고, 예루살렘 교회는 계속해서 흥왕 해져갔다.
3) 기도와 말씀전파에만 전념하는 목사 - 제반문제에서 벗어나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8-10)
회당에서 바울이 설교하자 받아들이는 자가 없고, 비방까지 했다. 이에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함께 지내며 2년 동안 말씀을 가르쳤다. 그렇게 하자 3년 후에는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가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이같은 방법이 밴드원을 통한 목장운동의 위력이다. 바울의 제자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된 것이다.
부모가 가르치는 교육(목장)인 카테케시스에서 가르칠 것들.
*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을 교육하라.
산상수훈 - 기독교윤리, 그리스도인의 삶, 정의, 정직, 순결, 새로운 삶,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 예수 닮아 가는 생활. 사회 관심 갖는 훈련도 해야 한다. 세상 권력자도 채워주지 못하고, 교회만이 채워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공동체를 철저하게 세워나갈 수 있는 모임이 밴드와 목장모임이다.
약 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 섬김의 도리에 대해서, 그리고 복음화하는 방법이나 시간을 사용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
의사, 약사, 심리학자, 학문 있는 자 들 모두에게 자신의 것을 개방해 가난한 자나 힘없는 자들을 위해 자원해 봉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성경공부를 통해 사회 봉사하도록 의식화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집안일 외에 어떤 일을 하지 않는 주부들에게도 자원하여 교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도록 훈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교인이라고 누구나 교회가 추구하는 것과 고수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야한다. 그리고 나서 성례, 교회의 절기와 각종 의식에 관해 가르쳐 하나님 나라의 성숙한 시민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목장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을 키워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교재: 생명으로 들어가라.(출판: 밴드목회연구원)
밴드와 목장모임을 어떻게 가르칠까?(마 28:19-20)
예수님은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제자 삼아 자신의 명령을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목장은 말씀에 순종하는 그룹(Group)이지 성경 공부하는 모임이 아니다. 다시 말해 목장은 행하는 모임이지 들기만 하는 모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목장 모임은 「행동하는 모임」 곧, 「순종하는 모임」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주어졌다면 일정한 틀에 박힌 시간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임을 알고 계속적으로 생활화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목장에서는 단지 학습내용을 읽고 어떻게 할 지를 계획한다. 학습 내용 중 “서로 사랑하라” 했으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논의하고 실천 계획을 세워 행동으로 움직인다. 목장 모임의 주안점은 실천하는데 있으며 말씀에 순종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임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해도 실천이 중요하다. 만일 기독인의 모임인 목장이 실천하는 즉 순종하는 모임이 아니면 「어리석은 자들의 모임」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누가 어리석은 자인가?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이며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다.
① 밴드모임에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분량에 이르는 영적인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
밴드 모임의 첫 번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으로 순종이 필수적이다. 두번째 목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그리스도인은 설교를 들음으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성장한다. 아무리 예배에 빠지지 않아도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 같이 전혀 가치 없는 삶이다.
②밴드는 양이 아니고 질(Quality)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목장안에 있는 목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계속적으로 성장하도록 한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질적 성장을 위해 한 단계 더 강화된 그리스도인들의 밴드모임에 참여하도록 하라. 목장의 구성원은 모두 성장해 밴드원이 내게 함이 목적이다. 예수님은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셨지 막연히 무언가 하라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제자를 만들라」 명하셨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질이 형편없다. 죄책감에 억눌려 살고 세상적 가치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믿는자나 불신자나 다를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바르게 그리스도인의 자세와 삶을 가르치지 않아 불쌍하게도 아무 쓸모 없는 무능하고 참된 하늘나라 백성답지 못한 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희생물이 되어 있다. 교회성장의 정체는 설교 때문은 아니며, 교회가 싫증나서도 아니다. 목장을 통한 참된 그리스도인 다운 질적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안을 보면 종교인은 끓고 있는데 참된 그리스도인(밴드원)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21세기의 교회는 거듭난 참된 성도인 밴드원들의 모임을 통해 철저한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그들을 통해 증가하는 목장 운동을 일으켜 세상을 복음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들은 말씀을 따라 행하도록 삶을 확인 (점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관대함에 대해 말씀을 듣고 배웠다면 그것을 실제로 지켜야한다. 당신은 얼마나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합니까?
1)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쳐라
예수님은 12제자를 두고 모든 시간을 바쳐 가르쳤다. 우리는 16명이면 족하다. 숫자 불리기 위해 질을 떨어뜨리지 말자.
< 남편에 대한 공부 >
① 남편이 가정의 머리다. 그 의미는?
A의 사람 - 머리의 의미는 가정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B의 사람 -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이라 말한다.
C의 사람 - 가정의 두뇌가 되는 것이다.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교육이다.
② 가정의 머리가 된다는 것을 생활 속에 어떻게 수행해갈 것인가?
A의 사람 - 남편의 권위는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상황 속에 일어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라 말한다.
③ 순서 정해 첫 번째 형제에게..
“자신이 생각하기에 형제님은 가정에서 머리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지금까지 그런 줄만 알았는데 공부해 보니까 “나는 좋은 머리가 못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저는 3일간 아내와 말을 안하고 있는데 그녀가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아내의 사랑 때문에 그 상황을 당신이 머리로 받아들이려하지 않는가?
④ 당신은 가정에서 좋은 남편입니까?
2) 소그룹인 목장이 갖춰야 할 요소와 특징
① 헌신(Devotion)이다. - 기도, 찬양, 예배, 하나님과의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기도만이 아니라 영혼을 깨끗게 해야한다.
② 토론(Discussion)이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며 토론의 소재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나 그 밖의 것을 선택할 수 있다.
③ 프로그램화(Programing)이다.
학습 후 결론을 모든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행할지 구체적으로 정하게 된다.
설교(Message) 가지고 각자 집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결정하고 그것을 적어오게 한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 알게 한다.
최선을 다해 토론과 협의를 하고 순종하지 않아도 탈퇴시키지 마라.
왜냐하면 목장인 (소그룹) 여가활용이나 취미활동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④ 증식(Multiplication)이다.
이것은 6개월-1년 정도 지나 목장의 회원 중 1명이 밴드원이 되어 다른 목장을 인도하는 자가 될 때 목장 증식은 끊임없이 가능하다.
3) 소그룹 운영 방법
10분 - 서로 인사(Ice Break)
20분 - 기도와 찬양
40분 - 학습준비
60분 -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교육(Paranaesis)
학습된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 프로그램화하는 과정. 서로 교화시키고 상담하며 권면하고 간증하며 문제를 나누고 이야기한다.
※ 간증이나 협의 사항을 토의한 후 불신자나 주변인에 대해 토의 권고, 기도로 끝맺는다.
만일 지나쳐버린 문제가 있거나 개인 혹은 가족이 어떤 것을 특별히 요청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다.
우리가 뉴스에 관해 토의가 된다면 정치적 상황과 이웃, 파업과 같은 것에 대해 토의하고 그 상황에서의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한다.(무주택 자, 아동 학대등)
4) 목장(소그룹)의 두 가지 지도형태
소그룹은 인간 지향적(person oriented)이며 일 지향적(task oriented)이다. 그래서 일 지향적 지도자와 인간 지향적 지도자 이 두 가지를 겸비해야한다.
① 일 지향적 지도자란?
어떤 것을 이루려는 비젼(Vision)을 가지고 그 그룹(Group) 원들로 하여금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끌고 나가는 지도자이다. 예를 들어 교회 건축의 비젼(Vision)이 있다면 저마다 필요와 욕구를 가지고 있기에 교회 건축도 중요하나, 각개인의 필요를 희생시키거나 대치시켜서는 안 된다.
개인의 필요를 돌보지 않고 교회 건축으로 자기 성취를 이루려는 지도자는 그 그룹(Group)을 파괴시킬 것이다.
② 극단적 지도자는 「집단 지향적 지도자」이다.
이 지도자는 각 개인을 돕는데 전력을 다한다. 어려운 자를 재정적으로 돕고, 마약, 알콜중독, 그 밖의 문제를 해결토록 돕는다. Party 열어 함께 모이게 한다. 그러나 좋은 모임이 아니다. 그 파티나 활동이 끝나면 서로에 대해 지쳐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공통의 관심사가 없으면 지치기 쉽다. - 집단 지향적 지도자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나 오래가지 못해 결국은 무너진다.
③ 집단 지향적이며 일 지향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 예수 그리스도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지도력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계속 성장한다.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세상과 하나님이 화목케 되는 것이다. 교회 건축도 필요하나 주된 과업은 아니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 개개인은 그리스도안에 세워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그룹 속에 이런 지도력을 가진 자를 함께 두면 바람직한 운동이 될 것이다. 즉, 집단 지향적인 지도자와 일지향적인 지도자가 섞여있는 공동체이다.
5) 건강한 교회는 이 두 가지 종류의 Group(집단체제)를 가지고 있다.
① 인간 지향적인 생활 Group (Life Group) - 모든 그리스도인은 생활Group에 속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지체의 구성원이 되는 상태이기에 생활집단은 자발적으로 일하고 잘잘못을 넘어 가족처럼 서로에게 속해있다. 마치 자녀가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그냥 자녀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② 행동집단(일 지향적) - Action Group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 Group을 떠나게 권고한다. 왜냐하면 일을 하는 Group 이기 때문이다. 목장(Life Group)은 구성원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밴드(Action Group)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행동집단에 속해 있다면 대단히 이상적이다. 12제자를 예수님이 부르신 목적은 두 가지를 겸비하기 위함이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장 13-15)
소속(함께 있게 하시고)과 사역(행동) - “보내사”라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총명해 보이는 사람만 소속된 것으로 본다. 수줍고 내성적인 자들로 잠재된 Action Life 가 있기에 소속과 함께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이 생활집단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회적 관심과 복음화를 추구하는 집단인 것이다. 그 목표를 위해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행동해야만 할 것이다.
목장 활동은 어떻게 할까?
① 정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1달에 1번 모이고 활동여부에 따라 추가적으로 모임. 얼마쯤 지나면 자주 모일 필요 없이 회수를 줄이나 더 의미 있는 모임으로 가꿔가야 한다.
․실천을 결의했으면 매주 모이는 대신 1달 1번 정도 모여 실천시간을 충분히 갖고 보고와 점검을 정확히 하면 된다. 자주 모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임과 모임시기에 어떻게 우리의 행함이 중요하다.
② 서로를 도와 복음화시키라
바베큐 파티에 초대하거나 야외모임 등에초대해서 함께하느 시간을 가져라. 그들을 초대해 가급적 부담을 주지말고 간단히 기도하고 음식 함께 먹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제자화 하려는 사람을 1주 1번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며 목장 모임과 모임사이에 개인적으로 한시간 정도 만나 관계를 친밀하게 하라. 목장의 수가 만일 12명이라면 1일 1시간씩 12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아침식사나, 점심 또는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도 있다.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는 목원들 개개인과 그들의 가족의 문제를 알아 기도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익숙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목장의 목원의 개인과 그 가족들이 「함께 하는 생활」인 수련회를 통해 관계를 갖는 것이 매우 좋은 방법이다. 이 수련회는 설교 듣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알고 관계 속에서 교제를 나누며 영적 성장을 돕도록 하는 수련회이다. 이 수련회는 6개월에 1번 정도하면 좋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 주었으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수련회 통해 그와 비슷한 환경을 갖는다. 이로 인해 우리들은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를 잘 알게된다.
수련회 통하여 가족들간의 교제와 자녀 대하는 방법, 그리고 자녀들과의 관계에 대해 간증의 시간도 갖는다.
상호 인격적 관계를 맺어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정기적 모임」과 「주중에 갖는 개인과의 만남」 그리고 「정기적인 소그룹 모임, 수련회」등은 매우 중요하다.
③ 일정시간을 정해 생활화 시켜라.
농부가 씨 뿌려 수확을 계획하듯이 목장도 목표와 시간을 미리 정해 단계적으로 공동체운동을 하는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예를 들어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을 좋은 남편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면, 열매를 거두기 위해 점검하고 확인하며 수확기를 기다려야 한다.
④ 작은 공동체인 목장은 유기적인 것이지 독립된 모임이 아니다.
서로 도와 목장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시킴으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도록 하여 건강한 생활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목장은 사역 지향적인 동시에 공동체의 교제 지향적이어야 한다.
목원과 정기적인 모임 가져야 하며, 친구들을 전도 하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한다. 또한 기간을 정해놓고 가르쳐 확인과 점검을 통해 수확을 기대해야 한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비유를 들면서 열매 없는 나무를 찍어 버리라 말씀하였듯 열매 없는 수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소그룹은 반드시 열매를 기대하며 활동하라.
밴드화 운동-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라(딤후 2:2)
이제 교회는 듣는 체제에서 행하는 체제로 바꿔야 하는데 이런 실천하는 교회를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필요하고 이 밴드 모임을 통해 성도들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밴드 모임의 본질적 내용은 성화운동을 통해 자신을 철저하게 성찰하도록 해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같을 그리스도인을 키워나가는 모임이다.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였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면서 ‘너희가 나보다 더 큰일을 할 것이다’라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이일은 이루어 졌다. 이들을 통해 세계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지금의 교회 역시 철저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해 그들에 의해 교회와 사회가 변화 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따라 행동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교회와 세상을 책임지게 된다. 이러한 건강한 그리스도인을 세워나가는 공동체가 밴드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예수화 즉, 복음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녀를 복음화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복음화란 가르쳐 지키게 하는 생활을 말한다. 세상적인 상식만 알게하는 세속화가 아니다. 만일 양치질하는 법을 부모가 보여 줌으로 그가 양치질을 한다면 그 부모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 진것이다. 식사할때의 예절이나 공손한 말을 쓰게 하고 인사성 바르게 하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만 멈춰져 있다면 부모가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자녀들에게는 예수화 즉, 복음화시켜 성경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공동체 운동을 행하는 것이 밴드교회의 특징이다.
자녀에게 머리감는 법,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법을 칠판을 놓고 가르치지 않는다.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으나 자녀들 스스로 한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본 그대로 하는 것이다. 어릴 때 머리감기 싫어한다. 그러나 부모는 머리감아라, 머리감자 하지 머리감는 법에 대해 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먼저 자신을 통해 삶을 보여 주시고는 구체적으로 일을 시켜 본 그대로 행하게 하였다.
예수님이 교회에 목사를 세우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① 온전히 성숙을 시키는 사명이 목사직 -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교회에 나오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성도를 온전히 성숙시켜 주님의 일을 감당케 하는 것이 목사의 사명임을 명심하라.
교회를 교인들로 하여금 울고 떠들어대는 어린아이로 머물게 말고 영적으로 성숙케 하여 주님의 사역을 하도록 해야한다. 그 사역은 양들이 다른 양을 낳는 일이다.
이것이 증식체제인데 이 증식은 수를 증가하도록 함이 아니고 질(Quality)이 수반되어야 한다. 10명 증식을 원한다면 나와 동일한 열명을 증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12제자를 양육했고, 12제자는 자신과 같은 12명을 양육하는 것이다.
엡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온전한 성숙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숙한 자는 사람의 궤술이나 간사한 유혹에 빠져 요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해 다른 제자를 키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자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제자화는 그리스도에까지 자라는 것인데 인격적으로나 사역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함같이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에게 가르침 받은 것을 다른 이에게 가르치고 그들은 그것을 다른이에게 가르치기를 바랐다. 충성된 이에게 말이다. 이것이 제자화이다.
②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라. - 봉사
예수님의 가르침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다. 기독교는 가르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제자화하여 실천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삭개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 나눠주고 회개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변화시켜 행동하게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실행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이제는 듣는 자리에만 익숙해져 있는 자들을 실제 행동에 옮기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했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고 자신을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서신을 통해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 받으라 말하고 나아가 삶을 실천하는 신자들을 보여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모범적 교회는 데살로니가 교회이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전 1:6-9)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도들과 주님을 본받아 타지역의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났으나 그들 스스로 성장해 다른 성도들의 모범이 되는 수준에까지 성장한 것이다. 교회는 자발적으로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이 많아야 무기력하지 않는 것이다.
③ 삶을 통해 가르치라 - 교회는 유기체적 몸이다.
단체에 잘 따르면 그 단체모임에 좋은 회원이다. 오늘날 교회도 마치 세상의 어떤 단체와 같은 모임으로 전락해 있다. 그저 좋은 교인이라 하는 사람을 평할 때 모임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는 자나 십일조와 헌금을 잘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잘 따르는 사람 말입니다. 그들이 교회 밖에서 즉 보이지 않는데서 무슨 행동을 하든지 상관없다. 교회안에서만 잘하면 된다는 식의 교인만 배출했다. 이는 분명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목사는 어떤 단체의 장에 불과할 뿐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키우는 밴드는 성경적인 지식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삶 자체를 실천하여 교회와 가정은 물로 사회까지도 변화를 주는 모임이다. 예를 들어 목사(장로)가 그 전날 가정에서 다투고 화해하지 않은 체 설교중이나 대표중에 가정의 평화와 사랑을 말하고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장성한자 아니며,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도 없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인 밴드원은 말보다 삶을 보여 줌으로 가르쳐 나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다. 오늘의 교회는 삶의 전달보다 지식전달에 치중하고 있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교회가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교육하라.
교재: 밴드로 들어가라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일깨워 줄수 있는 곳은 거듭난 자들의 모임인 밴드원들의 모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제 교회는 직분이라는 직위보다 형제라는 가족 공동체인 사랑의 관계가 좋아야한다. 함께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가 되면 교인들이 서로서로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와 돌봄이 나타난다. 교회당보다 한가족이 되는 소그룹 모임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디서나 제자화 할 수 있다. 학생은 학교에서, 사무원은 사무실에서 회사원은 회사에서 제자와 할 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진다.
밴드 모임이란?
① 인간관계를 개선시키는 곳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려할 때 율법적으로 하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형제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하는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다 해서 교회에서 추방시킨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실천한다면 율법주의적 신앙입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제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요. 은혜는 자원하고 사랑함으로 할 것입니다.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에 두려워한다면 율법적인 것이기에 아무 유익이 없다.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강제로 하든 은혜로 하든 가난한 자에게 돈을 준다면 분명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지만, 강제로 한 것이라면 그 행위는 하나님 나라 책에 기록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원함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남을 공항까지 부탁 받고 데려다 줄 때 억지로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내용은 죽은 행실이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도함이 하늘의 면류관이 있기 때문이란 말을 듣고 그 면류관만 위해 전도한다면 예수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 어떤 혜택을 받기 위해 산다는 말이다.
선행의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하나님이 받기도 하시고 안 받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아닌 사랑으로 오는 선행을 원하시고 그 것을 받으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라. 주변의 이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드린 것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사랑함으로 자원하여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행하는 「박애정신이나 선행」이 아닌 형제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자연스럽게 행하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이런 종류의 사랑이 실천되려면 먼저 인간관계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커피나 마시고 음식이나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 때까지 가까워져야 한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진정한 교제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교제는 말이 아닌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으로 태어나 길러진 한 가족이 되는 서로 사랑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신같이 사랑하셨듯이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같이 사랑할까?
사랑의 행위는 올바른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먼저 인간관계의 질을 향상시켜야만 한다.
② 밴드 안의 모임에서 영원한 사랑을 가지라.
그리스도인은 혼자 사는 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라고 하셨다. 즉 작은 모임을 기대하셨다는 말이다. 이런 관계에 있는 사람은 서로 헌신하면서 관계를 죽을 때까지 지속시킨다. 일종의 가정의 가족이 된다.
㉠ 밴드모임이란 영원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일정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영원한’이란 「다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며 자신은 완전한 의인인 양 행세한다. 그러나 의인은 어디도 없다. 교회가 잘못된 요소를 가지고 있다해도 여전히 주님의 교회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라 해도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랑에는 감정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기복 있으나 점점 알아가면서 진정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 밴드모임은 헌신적이다.
바울은 소그룹모임을 디도, 디모데, 에바브로 디도, 빌레몬으로 구성했는데 그들은 서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했다. 예수님도 자기 사람을 사랑하니 끝까지 사랑했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하셨다.
인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완전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그 소그룹 속에 잘못한다면 덮어주고 고치도록 인도하며 그를 사랑하며 보호해주려 노력하여야만 한다. 조금 잘못하는 자가 있다해서 그 모임에서 떠나게 한다거나 몰아낸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끊임없이 만나 삶을 나누며 서로 돕고 사랑으로 하나되어 동일한 목적아래 행하는 능력이 소그룹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③ 작은 공동체인 밴드는 불변적 가족의 일원이다.
12제자들처럼 불변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불변적이지 않은 그룹은 계속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성숙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불변적 그룹 속에서 서로를 자유롭게 도와야 한다. 새로운 만남이 계속되는 그룹이라면 하나님 사역에 큰 방해꾼이 되는 새사람이 될 것이다. 계속 초보에 머물러 잡담과 험담을 하게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사탄의 행위가 나타나 단단히 묶여 있는 결속을 깨트려 버리려 한다. 소그룹 안에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가 있다면 그 모임은 유지될 수 없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게 될 것이다.
요일 3:16의 원리를 토대로 인간관계를 맺고 그 회원이 배척되지 않게 함이 중요하다.
새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장하나?
성장은 증식이지 비대해짐이 아니다. 밴드에 들어감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다. 새사람이 들어오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또 새사람에 신경을 쓰다보면 기존의 구성원은 자연스레 빠져나간다. 기존의 소그룹에 새로운 구성원을 유입시킴은 묘지가 느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왜 불변적 그룹이 필요할까?
㉮ 증식에 의해 성장키 위해서이다. 6명이 완전히 성장하면 독자적 목장모임을 형성할 능력을 지니게 되어 6명은 자연 36명이 될 것이다. 밴드원에 의해 모여지는 소그룹 모임인 목장은 그룹 안에서 인원이 불어나 초보단계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고 구성원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계속 되는 것이다. 숫자만 늘게되면 구성원 중 80%을 잃게된다. 우리는 자녀들이 늦게 귀가하면 무엇을 하다왔느냐고 묻는다. 자연 목장도 안정되면 자연히 이런 상태가 된다.
㉯ 불변적 그룹은 우정의 관계가 안정되어야한다.
목장은 성장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더 이상 모임에 참석 않는 경우도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원인으로 떠날 수도 있다. 1-2개월 절친하게 지내기는 쉽다. 하지만 서로를 잘 알게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로에 대해 실망도 하고 험담도 일삼아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우정의 관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이 갈증의 과정을 지나면 절친한 관계가 되어지면, 약점이나, 단점을 들춰내도 사랑한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밴드에서는 불변적 우정의 관계를 넘어서서 서로에 대해 사랑을 실천해야만 한다.
㉰ 목장의 회원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모두가 목장의 식구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아보며 도와주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 실직자가 있지만 다른 구성원이 교회와 함께 돕는 것이다. 또 도움 받는 자는 그들의 노력과 관심에 감사의 표시를 해야한다. 사랑은 상호 교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움을 준 사람의 일손을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실직했다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의지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책임 있는 자를 만들라.
㉱ 목장과 밴드는 서로를 조언해주는 곳이다.
직장을 옮길 때나 집을 사고 팔 때의 최종적 결정을 자기 자신이 내리나 그룹 속에서 조언을 듣는 것이 큰 유익이 된다.
㉲ 목원과 밴드원은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목장에 모이지 않는다면 주일 모임에 참석하는 개인일 뿐이다. 한 몸이 되지 못해 계속 겉돌게 된다.
④ 목장과 밴드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소그룹모임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일부분인 지체들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목장과 밴드모임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지지만 결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이 성장하고 아름다워지며 강하게 되려면 몸 전체가 서로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 목장이 자체적으로 자율권을 가지고 자체에서 교육내용을 정하고 원하는 것을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시키는 행위이다. 자율이 주어진다 해도 항상 교회와 하나가 되어 움직여 나가야 한다.
가르침은 지도자를 통해 만들어지고 그 지도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교회 전체가 동일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목장 자체가 교회는 아니다. 목장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해있으므로 재정의 관리의 책임은 교회가 맡는다. 목장모임은 교제하고 영적으로 성장하며, 영적인 필요를 채우고 서로 권면하며 기도해주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므로 목장은 교회와 항상 동일한 교리와 교육과 양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교회의 목적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교육과 양육은 교회가 해야한다.
⑤ 목장회원은 한가족이다.
복음으로 하나가 된 영적 가족이 목장의 일원이다. 목장모임은 성장하고 권면하며 치료하고 필요를 채우며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키 ㅗ위한 모임이다.
밴드와 목장은 교회의 목적에 부합되는 활동을 해야한다. 교회의 목적과 목표를 나누어 교회의 모든 일에 참석하여 교회전체가 함께 성장해야만 한다.
목사는 죤과 목장의 지도자를 만나고 행정직의 장로와 다른 부류의 지도자인 집사, 교사, 찬양대원을 만나고 성도와 만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들의 가치를 하나님께 두도록 이끌어야만 한다.
목장모임은 몸과 관계를 맺고 있어야만 한다. 만일 분리된 목장이라면 인정받지 못하고 교회를 파괴시키게 된다. 죤을 통한 목장모임이 교회의 방해거리가 되어서는 안되고 교회사역이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져 나가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목장모임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교회 전체를 이끌고 인도하며 목양하는 능력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장과 목장의 모임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 나가기 위해서는 밴드 모임이 잘 이루어져야한다. 목장은 경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제 1 장 하나님의 우선 순위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6-20)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공식과 방법을 찾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안에서 성장해 갈수록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과 전혀 다를 자리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주님이 원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밴드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구원의 열매인 하나님의 우선 순위(God's Priorities)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세 가지의 기본적인 신앙의 표준이 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체험)으로 아는 것과 복음을 전파하여 잃어버린 자들에게 찾아가 영혼을 구원해 내는 것이며, 한영혼을 복음화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것(장성한 그리스도인인 밴드원)이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아야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부르셨다! 여기서 ‘안다’함은 경험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그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매일 매일을 기도를 통해 그와 함께 하며 그를 개인적으로 직접적인 경험(체험)과 간접적인 경험(삶의 열매)을 통해 날마다 알아 가는 일에 모든 신앙 생활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밴드 속의 목장 사역은 또 하나의 교회 조직 속의 프로그램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밴드교회의 원리는 구원의 확신을 통해 날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자라 가는 성화인 것이다. 이런 과정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영적인 깊은 교제와 기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성령의 직접적인 체험(개인적인 경험)과 간접적인 열매(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영적 원리와 지침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매일 그와 교제할 때만 효력이 나타나게된다.
당신은 예수님으로부터 온 연애편지를 읽는 것을 좋아하는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연애편지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신선한 말씀이 필요하다.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매일 우리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복음전파 를 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야 한다.
예수께서는 많은 시간을 당시의 세리와 죄인들에게 할애하셨다. 그의 마음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 있었다. 예수를 미워한 사람들은 죄인들이 아니라 종교지도자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의 관심보다는 교회 정책과 개인적 의견, 자기 중심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마귀의 일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생활, 공포, 이혼, 학대, 배교, 인공유산, 유물론, 탐욕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가 밴드 사역에 헌신하는 진정한 동기는 주님이 오신 이유, 즉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문제의 해답이시다. 그는 위대한 구원자이시다. 그분은 자신에게 마음과 삶을 열고 나오는 모든 남자와 여자, 아이들을 새사람 되게 하기 위해 오셨다. 성경은 말씀한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들어본 적도 없는 그를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리 세대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가는 일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위임받았다. 밴드사역은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영적인 도구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을 확실히 알고, 마태복음 28장에서 제자들에게 "가라" 고 말씀하셨다. 그는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가끔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잊어버린다. 믿는 자들이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복음을 나누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주님, 우리는 부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우선 순위에 맞춰서 우리의 우선 순위를 정해야겠습니다 |
새신자를 복음화시켜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고 명령하셨다. 한 영혼을 복음화 시키는 것은 목장에서 할 일중에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 복음 사역이 으뜸이 되지 않는다면 그 영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포기하고 그 목장 공동체를 떠나게 될 것이다. 한 영혼에 대한 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밴드 사역은 또 하나의 종교 프로그램에 불과하게 된다.
예수님은 세상을 개인에서 개인으로, 가정에서 가정으로 변혁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은 그의 수많은 추종자들 중에 오직 열 두 명만을 제자로 지명하셨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4)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한 목적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하시면서 주님은 그들을 집중적으로 복음화 시켜 사역인 전도를 하게 하신 것이다. .제자는 배우는 자요, 학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운 것을 행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준비해 주셨다. 그는 삼 년 동안 긴밀하고 일상적인 교제를 통해 자신의 삶을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이 이 열 두 사람과 함께 하신 것과 전도 사역을 통해 교회 최초의 밴드교회의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것은 성서에 대한 단순한 지식 전수가 아닌 실제적으로 행함이 있는 생활을 보임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행함이 있는 교육이 올바른 기독교임을 보여준다. 당신이 젊은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려면, 당신이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정직한 예산을 작성하는 것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 자신이 어떻게 정직하게 예산을 세우는지를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새 신자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주님이 명하셨다면 그와 함께 기도하라! 우리는 우리의 생활로 본을 보여 줌으로써 성경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다.
성경에는 제자 삼는 일에 대한 많은 예가 나와 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를 제자 삼았다(행16:1). 디모데도 뒤에 다른 사람을 제자 삼도록 보냄을 받았다. 그는 바울에게 배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부탁 받았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모세는 여호수아를 40년 동안 함께 하는 생활로 제자 삼아 지도자 훈련을 준비시켰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 하는 생활로 그를 지도자로 양육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성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은 오늘날의 교회에 사랑의 제자도의 진리를 회복하고 계신다. 그는 제자를 삼으라고 우리들을 부르셨다.
기독교는 주일날 앞사람의 뒤통수를 보면서 교회 의자에 그냥 앉아 말씀이나 감상하며 듣고있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알고,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가서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제자를 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양육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이루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도와 복음전파, 제자훈련을 위한 복음화, 이 세 가지의 신앙이 체계가 세워져야 참된 그리스도인인 지도자를 양성할수가 있다. 이 세 가지의 신앙의 체계는 계속 반복되어 훈련이 되어져야 한다.
작은 공동체 운동에 대해서 성경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작은 공동체운동을 통한 성서적인 훈련계획은 무엇입니까?" .
제 2 장 밴드에 대한 성경적인 비전
주님의 교회인 밴드 교회를 효과적으로 세우기 위해 예수님의 훈련모델을 따르도록 계획하였다. 밴드란 ‘묶는다’는 뜻으로 마치 예수님이 12제자를 묶어서 양육함으로 복음화 사역하게 하였다. 마찬가지로 밴드 교회도 믿는 자 중에 택하여 묶어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집중적으로 훈련 양육한다. 작은 단위모인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원들을 계속적으로 성화시켜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게 한다. 이렇게 장성한 그리스도인에 의해 목장은 계속적으로 분가하여 목장을 키워나간다. "밴드원에 의해 세워진 목장의 연합"을 우리는 ‘존(Zone)"이라는 용어로 사용한다.
밴드원을 통해 함께 하는 목장은 모든 사람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목장 안에서 각 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시작할 수 있다. 목장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친구나 이웃에게 전할 수 있도록 훈련과 교육, 격려를 받는다.
우리는 작은 공동체 교회의 시초부터 ‘밴드원’을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갈 믿음의 장부로 세워나간다. 처음에는 ‘돌봄과 나눔’이라는 "교제" 를 강조했지만 나중에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위한 ‘성화’에 강조점을 두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말씀동행을 통한 삶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밴드와 목장은 단순한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모임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 형성된 신약의 교회를 경험하고 나타낼 수 있는 장소이다. 밴드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나누고 그리스도의 치유하시는 사랑을 가지고 이 왜곡된 세상으로 나가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교회로서의 우리의 비전은 "예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세우고 가정에서 가정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민족에서 민족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주님의 말씀의 원리는 어떤 문화나 민족, 인종집단에도 적용되고 채택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어느 곳에 살든지 간에 당신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예수를 위해서 이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다음의 지침들과 원리들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가정으로" 원칙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다락방의 120명의 제자들이 어떻게 3000명의 새 신자들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 그 비밀은 사도행전 2장 46-47절에서 볼 수 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에서 모이고 또 가정에서 작은 공동체로 모였다. 또한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그들은 개인적으로 서로 섬기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아갔다. 그리고 주님은 날마다 구원받는 자들을 더하게 하셨다. 사도행전 20장 20절에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다" 고 선언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쓴 편지는 그가 사람들의 가정에서 만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졌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만난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가정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롬 16:3-5)(한글 개역성경에는 "가정에 있는" 이란 말이 삭제됨.)
바울은 또한 아리스도불로와 나깃수의 가정에도 안부를 전하고 있다(롬 16:10-11) (개역성경에는 권속으로 번역) 친구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도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 인사한다.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몬 1:2)"
교회사를 통해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는 신약에 나오는 성도 개인의 가정에 모이던 소그룹 형태의 교회개념을 차츰 잃어버리고, 대신 큰 건물로서의 교회개념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제임스 룻츠(James H. Rutz)는 그의 책 열려진 교회(The Open Church)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A.D. 323년 경, 그러니까 교회가 탄생한 지 300년이 지난 후에야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지금 "교회 건물"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그 300년 전에 교회는 거실에서 모였다! 콘스탄틴 대제는 323년에서 327년 사이에 콘스탄티노플과 로마, 예루살렘, 이태리의 여러 곳에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 건물을 건축했다! 이후에는 전 유럽의 커다란 도시마다 커다란 "교회건물" 들이 세워졌다.
성전의 사역은 연합예배, 교육, 축제를 하는 데는 맡은 유익이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교회개념이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성도들' 개념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계심을 알아야한다. 가정이나, 직장, 학교, 그 외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어떤 장소에서도 교회는 충분히 모임을 가질 수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향을 사람들에게 끼칠 수 있다.
초대교회의 모습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행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오늘날 교회는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소모적인 프로그램들과 여러 모양의 이벤트식의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 방법들도 장점이 있겠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교제 속에서 형성되는 개인적인 관계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 많은 도시 교회들이 점차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래서 도시주민들은 차를 몰고 머리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대형 교회는 교통 혼잡으로 지역 주민에게 많은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도시 중심부에도 교회는 남아 복음을 나누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사역을 함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제는 원래 하나님께서 계획하여 세우신 신약의 교회모습들을 다시 회복하여 초대 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워야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되어 지는 시점이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5)
성서는 우리를 "산 돌(살아있는 돌)" 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성도들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와 다른 성도들을 묶어서 신령한 집이나 공동체로 세우신다. 기독교는 실제적인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세우시기 원하는 다른 신령한 돌은 누구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는 "산 돌" 로서 사단의 세력을 파할 수 있다. 수천 개의 돌이 접착되어 커다란 돌 벽을 이루는 것을 상상해 보라. 수많은 돌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돌들이 살아서 동시에 당신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다면 얼마나 두려워하며 놀랄지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일에 동참할 때, 사단은 바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각각의 살아있는 돌은 한 번에 몇 개씩의 다른 성도들과만 접촉할 수 있다. 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것처럼 소그룹 안에서 관계들을 통해 서로 연합되어 있다. 열 사람이 모여 한 마음과 한 뜻을 품으면 어둠의 왕국에 굉장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마귀는 우리를 홀로 고립시켜서 그리스도 안의 다른 형제, 자매의 지원을 끊어놓는 것을 좋아한다.
소그룹 안에서 우리는 격려와 기도, 실제적인 도움을 통해 몇 명의 다른 사람들(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모든 목자들이 주님 되신 예수님께 순종할 때 전체 교회는 그 지역 사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신약성서에서 바울이 "사역자" 를 이야기할 때는 목사나 지도자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를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1-12)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을 사역자로 부르셨다. 그는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부르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역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도록 하셨다. 예수 안의 평범한 신자인 당신과 나를 주님은 부르셔서 사람들에게 나아가 사역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사역은 소그룹 모임을 통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스나이더 (Howard A. Snyder)는 급진주의자 웨슬리 (Radical Wesley)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요한 웨슬린 (감리교 창시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생애와 사역은 부흥운동을 싹틔운 교회구조를 만들고 적용하는 것이었다. 30년 후, 1768년에 감리교에는 40개의 순회설교구와 27,341명의 신도가 있었다...1798년까지, 그러니까 웨슬리가 죽은 후 7년이 지날 때까지는 총 149개의 순회설교구와 101,712명의 성도로 증가했다. 19세기가 되면서 영국인 30명 중에 한 명은 감리교인이 되었다.
감리교 부흥의 열쇠는 소그룹에 대해서 모든 새 신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웨슬리는 그것을 속회(class meeting)라 했다.
속회는 사실상 다양한 이웃들 속에서 만나는 작은 공동체 교회인 목장이었다. 속회의 속장(남자, 여자)은 훈련자였다. 보통 속회는 일주일에 한 번 저녁에 한 시간 정도씩 모였다. 각 회원들은 자신의 영적인 진보와 특별한 어려움이나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기도를 받았다‥‥‥ 어떤 글에 따르면 사실 "대부분의 회심자가 생기는 곳" 은 속회 모임이었다.
밴드를 통해 자연적으로 생긴 속회모임은 감리교인을 확장 시켰고, 널리 퍼진 감리교인들을 하나로 묶는 제도로 밴드원들이 있었다. 이러한 소그룹 운동이 수십 년간 감리교 부흥운동을 지탱해주었다. 감리교 부흥운동은 한 국가를 휩쓸어버린 지속적인 부흥이라기보다는 연합 신도회 (United society)와 속회조직을 통해 연결되고 전파된, 간헐적이고 가끔은 지역적으로 국한된 일련의 운동을 가리킨다. 속회가 연합하여 연합신도회를 형성한다. 밴드 교회에서는 목장이 연합하여 존(Zone)을 이룬다. 속회모임이 없었다면, 부흥운동이 영국에 깊은 영향을 남기기도 전에 부흥의 불길이 쇠잔해 버렸을 것이다... 여기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요즈음은 소그룹을 지도하거나 교회의 책임을 맡을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웨슬리는 중요한 사역과 지도를 하기 위해서 열 사람마다 한명을, 때로는 다섯 사람마다 하나씩을 세워나갔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시간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고 부유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남녀 노동자, 아내와 남편, 젊은 농부들이었다. 그들은 훈련도 거의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제도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말이 거짓임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웨슬리는 대중들에게 나아갔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의 수 천 명을 지도자로 세웠다.
그 이후로 차츰 감리교인들은 교회건물에서 모이는 주일아침의 예배모임을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속회모임에서 가지고 있던 책임을 소흘히 여기게 되면서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 사역을 밴드원들의 사역을 목회자 교회 건물 중심으로 모이게 함으로 부흥운동은 차츰 쇠퇴했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끼치는 일은 약화되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똑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일 아침예배만 강조한다면 이같은 현상이 한국교회에 재현될 것이다. 교회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작은 공동체 운동이 종종 광범위한 부흥운동을 가져왔던 것을 기록하고 있다.
교회사가인 러브레이스 (Richard Lovelace)가 기도와 도움을 주는 신자들의 소그룹을 주장했던 것처럼 1세기 이후로 갱신운동에 불을 붙인 것은 집에서 모이는 "작은 공동체"였다. 우리가 지금 밴드훈련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목장의 기도모임이 활성화되도록 교회는 전략에 도입해야 한다. 위대한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광범위한 영적 부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교회'(ecclesiolea in ecclesia)의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제도적인 교회를 성경적인 교회로 바꾸라. 전통적인 교회 구조를 벗어라!
"부서지지 않으면 고칠 필요가 없다" 는 격언과 같이 오늘날 기존의 교회구조가 하나님의 계획하신 교회와 거리가 멀어져 있음에도 잘못된 전통을 고수하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주님이 만족케 하는 교회가 아닌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교회로 가고 있다.
"비공식" 교회로서 밴드 교회는 목장 모임이라는 비전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약교회의 유형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전통적인 교회구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전통 중에서 한 가지 따르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목장들의 연합으로 모여 있는 여러 "존(Zone)"들이 주일 아침에 드리는 예배 모임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위해 당신은 당신과 다른 견해를 실현할 만한 용기가 있는가? 전통에 의하면 주일 아침에 신자들은 교회건물에 모여야 한다. 하지만 성서에 의하면 신약에 나오는 신자들은 성전에서 모이고 흩어져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교회사는 교인들이 한 주간의 첫째 날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가정으로의 사역이 오히려 강조되고 있고, 250년 이후까지는 교회건물이 없었다는 점을 보면 성도들이 주일 아침에 가정에서 모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일 아침에 회중들이 한 건물에서 만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 교회건물에 모이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심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모이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전통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인가?
물론 모든 전통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전통은 거룩하고 선한 것도 있다. 하지만 전통 자체가 하나의 생명을 갖게 되면 우리는 문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는 방법을 더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에 개방적이고 신축성 있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밴드와 목장조차도 규범화되고 관습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우리가 융통성을 가지고 교회건물을 주간 내내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한 죤이 주일 오후에 건물을 사용하고, 다른 모임은 주일 밤에, 또 한 죤은 토요일 아침에, 나머지의 죤은 주간의 매일 밤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 건물을 죤들이 사용한다고 생각해 보라! 굉장한 효율성이 아닌가?
목장의 신자들은 주일예배 후에 가정에서 모일 수도 있다. 건물을 빌리고 유지하는데 드는 돈이 절약되어 선교나 구제사업에 쓰일 수도 있다. 신자들은 주일저녁에 목장 모임을 갖고 주중에 한 날을 정해서 밴드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아울러 주중에 죤 모임(여러 목장이 연합한 모임)의 예배를 교회 건물에서 모일수도 있다. 물론 신자들 중에 큰집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 죤의 멤버들은 그 집에서 정기적으로 만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선교를 위해서 기금을 많이 모을 수 있다!
과감하게 평신도에게 마당을주라
모세는 계속 이스라엘 백성간의 수많은 논쟁과 문제점들을 듣고, 해결하느라고 굉장히 지쳐 있었다. 그는 삼 백 만 이상의 백성들을 섬기는 책임으로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신의 사건을 말하고자 몇 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많은 목사님들을 생각나게 한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탈진해서 위태위태하게 교회사역의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드로를 통해 그와 백성들이 탈진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이드로가 제안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백성들 중에 유능한 자들을 뽑아서 백성들의 문제를 듣게 하고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해결하고 어려운 것만 모세에게 가져오도록 하는 것 이다.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 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대에게 인가하시면 그대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출 18:21-24)
모세는 먼저 천부장을 세우고 각 천부장 밑에 열 명의 백부장을 두었다. 백부장 밑에는 오십부장 두 명이 있었고, 각각의 오십부장 밑에는 다섯 명씩의 십부장이 있었다.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일 경우에만 그런 문제를 다를 수 있는 능력을 받은 모세에게 가져오도록 했다.
교회에서 모세가 사용한 그 제도를 똑같이 만들어서 규범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그 구조를 결정하는데 주님이 주신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그 자리에 만드신 분이시다. 그 분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훨씬 이전에 모세가 사용한 위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대 부흥의 기간에 사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권위와 책임을 위임하고 자신들은 가장 중요한 일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2-4)
오늘날 담임 목사가 교회행정에 사로잡혀서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가 이드로 원리를 적용하려면 행정적인 문제를 잘 다루는 준비된 성도들에게 책임과 권위를 위임하면 된다. 목사들이 작은 공동체의 지도자인 목자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넘겨주지 않는 한 이 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목장 안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목사나 장로들의 책임이지만 목장 안에서는 밴드원들과 목자들이 목원들의 보호를 책임져야 한다.
많은 목사님들이 다른 사람들(평신도들)에게 그들의 성도들을 맡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한다.
모세는 바로에게 주님의 명령을 전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주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이 새 언약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이 주안에서 자신의 건강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역을 맡길 줄도 아는 대범한 목회를 하여야 할 것이다.
목사가 다른 성도들에게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교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장은 고통을 동반하고, 성공과 함께 실패의 위험도 있는 것을 기억하고 대비하라. 평신도에게 먼저 성화를 위한 공동체운동의 제도인 밴드원이 되게 한후 서로 사랑과 권면과 책망을 하도록 하여 성숙의 장을 만드러 주어야 한다. 그후에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를 세워주면 결코 교만하거나 교회를 어렵게 하는 일은 없다. 이러한 완전 제도가 없이 머리만 커지는 지도자를 키운다면 분명 교회는 문제속에 허덕일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면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가족 가운데 우리를 어떻게 세우시는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제 3 장 영적인 가족
요단강을 건넌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를 점령하고 아이성으로 전진하였다. 하지만 아이성에서 그들은 굴육적인 패배를 당했다. 여호수아는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은 백성들 중에 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께서 누가 죄를 지었는지 지적해 주신 방법이 흥미롭다. 주님은 간단하게 누가 죄가 있는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여호수아는 지파, 족속, 가족을 차례로 내려가서 죄가 있는 한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에서 책임을 갖는 단위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수 7:16-18)
가족인 목장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보시는 방식은 가끔 우리의 방식과는 다르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산 개인으로 보신다. 또한 동시에 영적인 가족 안에서 그의 백성들을 평가하신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확대가족이 있다. 내 가족은 같은 집에서 나와 같이 산다. 우리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어떤 경우에 나는 부모와 형제, 자매, 그리고 조카들과 함께 지내기도 한다. 일년에 한 번쯤은 사촌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만나기도 한다. 나는 그들 모두의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엄연히 나의 가족인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주일 아침의 성도들의 모임을 통하여 핵가족(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목장)이 아닌 영적인 확대가족으로 많은 모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영적인 가족은 어떻게 효과적일 수 있는가? 부분적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다양한 영적인 단위 (가족, 족속, 지파)의 일부러 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주님은 우리를 자연적인 가족의 성원으로 파악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족같이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목장이다. 교회가 하는 일의 거의 대부분을 우리의 가족들이 행하듯 목원도 한다. 우리 목장의 가족 안에서 우리는 가르치고 기도하고 믿지 않는 자들과 믿음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가정인 목장에서 목원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었는 경우가 많아야 한다. 목장이 활동하는 것도 우리의 친 가족과 비슷하다. 사실 밴드로서의 교회모임은 일종의 영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족속으로서의 교회인 죤과 죤의 연합인 교회
하나의 작은 가정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 모임이 목장이고, 큰 가정은 여러 목장이 서로 관계를 갖고 있는 죤으로 온 가족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밴드와 목장의 목원들이 모여 긴밀하게 연합하고 죤(Zone)을 이루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가족이며 이죤이 함께 모이면 한 교회(신당제일 교회)라 한다.
가정에서 가정으로 모이는 신약성경의 성도들이 바로 영적인 족속이다. 그들은 단순히 영적인 대가족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6장에 따르면 로마의 교인들은 서로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도시 전체에 걸쳐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지파로서의 교회인 지방과 교단
관계 영적인 "지파" 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교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는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같은 비전을 가지고 모인 모임인 지방이 이에 해당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열두 지파와 수많은 족속 그리고 가족들로 이루어졌다.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의 자녀로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주님도 그의 교회가 전체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지파, 족속, 가족들에 속한 성도들로 이루어졌다고 보신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_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6, 28)
이제 벽은 허물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른 지체와 연결되지 않은 지체가 있다면 그들은 곧 실제적인 교제나 책임을 지는 지체로서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한 몸을 되기 위해 자신들의 장벽을 넘어 마음을 열고 관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모든 지파들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자신이 가진 은사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일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의 연합
교단이나 지방에 소속되지 않는다고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 교회, 교단. 교회모임들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다른 비전을 인정할 때, 연합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인정하고, 후원하고, 위해서 기도해 줄 때, 주님은 큰 일치로 축복해 주신다.(밴드 교회가 커진다면 이것이 필요한 조직임)
미국 육군과 해군, 해병, 공군, 해안 경비대가 연합을 이루기 위해 자기의 책임과 전문영역을 버린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각 군이 다른 군과 분명한 의사소통을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완수할 때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같은 원칙이 교회에도 적용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역들을 전심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영적 지파"에 속한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후원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그분의 교회를 굳건히 하실 것이다.
나는 우리 지방의 다른 지파(교단)의 수 천명을 대표하는 영적인 지도자들과 공동 관심사를 놓고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 안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몇 달 전에 목사들과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가까운 휴양소에서 기도하고 교제하고 서로 배우고 함께 농구도 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동안 주님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주님께서 그의 왕국에는 경쟁이 없다는 것을 교회에 가르쳐 주신 계기가 되었다.
주님께서 기드온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자신이 그의 가족과 족속, 지파,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확대가족의 한 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삿 6:14-15)
예수님께서는 5000명을 먹이실 때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이상의 것을 보셨다. 주님은 각 개인을 보시고 백명씩 또는 백명씩 무리 지어 앉도록 하신 것이 더 실제적이라는 것을 아시고 명령하셨다.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막 6:39-40)
모든 사람들에게는 소그룹에 소속되어 그 안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은 하나님이 주신 욕구가 있다. 어떤 경우에 상처나 고통, 과거의 긴장된 관계들 때문에 이러한 욕구가 거부되는 일도 있지만 더 깊은 곳을 살펴보면 그 욕구는 분명히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의 책임자로 세워주신 사람들로서, 우리는 한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새 부대 (소그룹)를 준비하지 않으면 마귀가 건강하지 않은 집단을 만들기 좋도록 문을 열어놓는 것이 된다. 이 모조품 집단은 험담하고 불평하며 그리스도의 몸에 영적인 암을 퍼뜨리고, 거짓으로 예배드리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제 주님과 협력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건강한 소그룹을 만들어 그들이 가짜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자.
우리들이 사용하는 용어
모든 교제(또는 그리스도의 몸)는 교회의 정체 구조에 대해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서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유한 용어들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지도자와 성도들의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 리더나 지도자에 관련된 용어들을 몇 차례 바꿨다.
한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담임목사와 사역자들은 성도들에 대해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죤(목장의 연합)을 인도하는 사람인 디렉터와 목자는 반드시 목사의 은사를 가질 필요는 없다. 그는 지도의 은사나, 사도의 은사를 받았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은사들을 함께 받았을 수도 있다. "담임목사 (senior pastor)" 나 "교역자 모임 (team of pastor or minster)" 는 교회의 최고 책임자나 공동책임자들이며 죤 디렉터나 목자는 소그룹 교회의 책임자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는 "죤 디렉터(엘더:지역의 전임(?) 평신도 사역자)" 와 "목자(소그룹의 목장 사역자)" 라는 말은 똑같은 말로 지도자를 의미한다. 목장과 죤의 지도자가 목사안수를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지역적인 신자들의 모임을 지도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돌보는 사역에서는 교역자들이 평신도 리더 모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죤 디렉터나 목장의 목자는 성도들이 목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지역교회의 목사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목사에 대한 이미지는 바로 만물박사이다. 그는 설교하는 전문가이고 병자를 방문하고 예산을 심의하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적인 봉사를 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은 이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이 소 그룹(목장이나 밴드)에서 효과적으로 사역하도록 감독하는 일이었다.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 1:17)
사람 낚는 어부인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그물" 한 가지는 바로 목장이다. 그물은 찢어지고 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구멍을 통해 고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물을 기워야 한다. 누가 그물을 수선할 수 있겠는가? 죤의 지도자들로 목장을 인도하는 목자 모임이 그물 수선에 맡은 역할을 담당한다.
죤의 사역자의 임무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기도하고 일하고 그가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관계를 형성해간다. 가정에서 가정으로 찾아다니면서 목장의 목자 및 죤 디렉터 (여러개의 목장을 관리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며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목장을 운영하기 위한 전략을 지시 받도록 돕는 일을 한다. 이런 일들을 통해 고기 떼가 빠져나가지 않고 새로운 "물고기" 들이 잡히도록 '그물"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
체계의 필요성
앞에서도 말했지만 또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고 사역을 준비시키고 다른 성도들을 섬기도록 하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소그룹을 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목장이 목자와 목원의 열정으로 부흥을 크게 가져왔다 하여도 몇 년이 지나 살펴보면 점점 쇠퇴하게 된다. 이유는 사람들을 섬기고 관리할 영적인 체계가 없고, 따라야 할 지침이나 조직, 그리고 영적인 지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얼마 안되어 많은 사람이 주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유는 사람들이 관리가 소홀한 틈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지도력과 영적인 체계에 대해 알기를 원하신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의 뼈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를 이룬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뼈들도 나머지의 부분들이 기능을 원활하게 하도록 계속 자라야 된다. 똑같은 원칙이 교회에도 적용된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자라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구조도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체계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 뼈가 우리 몸을 지탱해 주지 않으면 우리 몸은 바닥에 쌓인 한 더미의 신경과 핏줄, 근육과 피부 조직에 불과할 것이다. 적절한 교회 체제가 없으면 그리스도의 교회는 원활하게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목장안에서 주님은 목원들을 섬기도록 목자에게 권위를 주신다. 목자들은 주님의 영적인 보호 외에도 그를 목자로 임명한 죤의 지도자와 교역자들의 영적인 보호를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죤 디렉터가 여러 개의 목장을 관리하는 직분을 맡을 수도 있다. 이들을 지역 사역자(Zone director)라 부른다. 대체적으로 지역 사역자들은 소속된 목장을 관리하게 된다. 죤의 교역자는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죤 디렉터들을 격려하고 함께 기도하면서 목자들과도 긴밀히 협조하면서 사역한다.
목장이 배가되려고 하면 죤 디렉터는 목장이 배가하는 과정을 관리하게 된다. 죤 디렉터와 교역자도 목장의 배가성장을 이루는 과정 동안에는 목자와 함께 사역을 한다.
죤의 구성원들이 어려움이나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러한 구조는 아주 적절하다.
사역에 있어 여러 모양의 분야에 너무 많은 통제를 하게 되면 유연성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게 된다. 영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특별히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음이 유익할 것이다.
처음으로 시작하는 경우 죤 디렉터나 목자들을 다른 회원들이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신뢰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죤의 구성원들이 그 목장 안의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친밀해져서 모든 일을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몸의 지혜
우리는 교인들에게 찾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자유롭게 찾아가라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 교회 안 밖에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상담자가 되여 신앙생활을 도와줄 수 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가 책임을 요하는 것이면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목자나 죤의 디렉터나 교역자에게 마음을 열고 상담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들이 이렇게 되려면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먼저 형성되어 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12)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함께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동체를 이루는 곳이다. 이 공동체를 우리는 "한 몸" 이라고 부른다.
손가락이 "나는 손에 붙어있고 싶지 않다" 고 말할 수 없다. 손에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 손가락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함으로 손 전체에도 손해가 된다.
초대교회의 공동체의 모임은 클럽회원이나 친목회에 모이는 자와는 다른 것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성도들에게 실제적으로 돕기 위해 헌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적인 가족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신다. 단지 주일 예배만 드리는 자로 남기를 원하시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주일 아침 예배에는 참석하지만 죤안에 있는 목장의 생활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교회 명부에 올려놓는다.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해도 목장의 회원이 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지체로 헌신하는 자가 아니며, 한 몸된 공동체원도 아닌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 즉 소그룹인 목장과 밴드에 참여함으로 구체적인 헌신함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주일아침 예배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는 광범위하고 생동감 넘치는 우리의 비전을 다 경험할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은 주일 예배만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어떤 지체로서의 사명이 주어졌는지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계속적으로 주일 예배만 참여할 수 있다. 목장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는 우리 목장의 회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에 대한 헌신은 우선적으로 목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목장 안에서 교회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 죤의 가족에게는 굉장한 일이다. 수 년 전부터 나는 밴드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많은 교인이 목장에 참여하기도 하나 한걸음 더 성숙하는 밴드 모임안에 들어오지 못하거나 들어오지 않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의 한 몸된 공동체 원이 되기를 포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밴드 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이 죤 안의 목장에서 어떤 사역을 할까? 하는 행위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진정으로 죤 안의 참된 그리스도인인 밴드속에 있는 사람들과 살아있는 관계를 형성하거나 같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자녀가 대학에 가서 매일 저녁 식사 때 가족들과 함께 앉아 있지 않더라도 그는 분명히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똑같은 원칙이 죤 안의 밴드와 목장안에서도 영적인 가족으로 적용된다. 공식적인 모임에는 나오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전화나 편지를 통해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과도 친밀하게 지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식사를 같이 하는 등, 함께 하는 방법들이 많이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정규적인 모임에 직업상의 이유로 참석치 못하는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신자들을 위한 성서적 기초 과정
새 신자가 죤안의 목장에 들어오기를 원할 때 그는 무엇을 믿어야 할 지를 알고 싶어한다. 각 교회마다 새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모든 가족들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듯이, 각 교회 가족들도 성경에 대해 다양한 이해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주제나 성경적 교리에 대해 회원들이 확실히 알기를 원하는 교회도 있다.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밴드성서대학의 기초과정 (Band Biblical Foundation Course)" 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목자나 준목자(예비목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선 이 과정을 완전히 마쳐야 한다. 목자들은 그들의 목장의구성원들인 목원에게 이 과정을 이수하도록 권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과정은 1주일에 1회씩 3개월 교육과정으로 3과목을 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밴드목회 연구원에서 출판된 교재를 사용한다. 이 교육은 수요일 예배시간에 과목별로 학습을 한다.
시간이 없는 목원을 위해서는 목장모임이나 각자의 집에서 개인적으로 학습을 지도 받을 수도 있다.
열 두 번의 과정인 3회를 통해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을 알게 된다. 과정을 마치지 않은 회원들에게는 목장모임에서 교회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기 전에 이 과정을 이수하도록 권유한다. 특히 새 신자가 왔을 때 이 학습 과정을 알려주어 새로 온 사람이 목장 안에 자리 잡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게 한다.
밴드 성경기초과정을 3권의 책으로 만들어 출판했다. 목자들은 교훈과 질문을 위한 완벽한 이 책을 사용해서 새 신자를 교육하고 주님이 주신 기본적인 영적 원리를 익히도록 돕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가족이 독특하고 다양한 것처럼 각 목장의 목원들은 자신들만의 지침을 세워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나가는데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다. 특히 M,D 과정들을 통해서, 새로 나온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교회에서와 목장에서 쉽게 적응해 자리 잡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주님께서 그를 목자로 부르신다고 느낄 수도 있다. 목장의 목자의 자질과 책임은 무엇인가? 목자는 어떻게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는가? 다음의 세 장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제4장 목자의 자격
1.소명 받았음을 알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서, 가르치고 제자를 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특별히 목장을 인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확신하고 주님이 목자의 사명을 주셨다면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저는 저희 목장의 사람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하나되게 해서 주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목자로 세워 주셨다면 당신은 평안과 믿음, 그리고 그 사역에 대한 갈망을 주실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세우시는 방법들은 민주적(대중적 투표)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주적(神主的: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하심을 우리는 따르는 것임)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주님이 당신을 부르신다면 마음에 확신과 영적인 스승들과 하나님은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것을 알게 하여 확인해 주기도 한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딤전 3:10)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
자기가 지도하는 양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지도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역은 사람들이 인정할 때까지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확증이 없다면 좀더 기다려야만 한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뜻을 보여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2.목장 인도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목자나 준 목자로서 주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일에 부르심을 받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다.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을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더 할 수 없이 큰 기쁨이다. 주님의 제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어부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목장 사역에 부르심은 거룩한 소명이고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목장을 인도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지체 안에서 아주 생동감 있는 일이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놀라운 보상이 따른다.
빌립보서 3장 14절에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장을 인도하라고 부르실 때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이다.
3.목자의 갖추어 나가야 할 자질
목장의 목자나 준 목자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역에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목자는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아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권위를 부여받는다. 소명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목자는 자신이 섬기는 사람들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조건에 자신이 합당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 특별히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 사람 밑에서 봉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겸손하게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목장을 인도하는 목자가 반드시 신학교를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은 목자는 목장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목장의 목자는 자신의 모임에서 성도들을 실제적으로 섬기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며, 어려움과 고난중에 주님을 신뢰케 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보다도 넘치게 사역을 하려는 태도를 더 요구하신다.
어떤 사람이 신학교를 나와서 사람들을 지도할 훈련과 지식이 갖추어져 있다해도, 그가 바로 목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목장을 인도할 책임을 맡기기 전에 평소 목장 안에서 섬길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 중요하다.
참된 목자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목장 안에서 자기 시간을 사용해서 다른 지체들과 ‘상합(相合)할 수 있어야 한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내 뼈가 부러진다면 뼈가 다시 붙고 다 낫기 위해서는 몇 주가 걸린다. 교회는 관계로 형성된다.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 목자는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목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구원과 물세례, 성령 충만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은사나 치유의 경험도 당신의 확신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목원들에게 나누되,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믿음을 세우는 데 그 이야기를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하라. 믿음이 세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종종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고 사람들이 특별하게 서로 연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목장의 목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종종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고 사람들이 특별하게 서로 연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목장의 목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데 새로 들어온 사람이 그 방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느끼고 흐느끼면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증거는 목자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고 치유하셨던 사건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중에 일어나는 것이다.
목자들은 또한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목자는 현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를 생생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목자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
목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스데반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_ 택하여(행 6:5)
목자는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여 믿음을 나타내 보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그런 은사를 활용하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도록 도와 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목자가 자비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목장의 구성원들은 자비의 중요성을 잘 모르게 될 것이다. 리더가 성령의 역사 하심을 경험한 일이 없다면 회원들은 성령의 역사 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목자가 성령의 은사를 확신하고 있지 않으면 그 제자들도 성령의 은사를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이다. 만약 이런 영역에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목사님이나 다른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여야 한다. 목자가 판단하기에 목장이 성장하기를 원하는 분야에 필요하다면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과 함께 하여 서로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 폐쇄적인 목장을 만들지 마라. 믿음은 바로 이런 것이다.
4.교회의 비전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목장의 가족들 모두는 교회의 비전을 수용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목자들은 주님께서 우리 목원들에게 주신 명령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밴드 성서대학의 성경과정을 완전히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모든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목자는 본 교회의 사역과 뜻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 하나님의 일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교회의 지도자들과. "마음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목자가 불평을 하거나 교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해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교회에 대해 충성할 수 없으며 교회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에 대한 충성이 없으면 양무리에게 큰 해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혼동을 일으켜서 다른 목자를 또는 다른 교회의 지도자를 구해 떠나게 될 지도 모른다.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의심의 씨를 뿌려놓아서 새 신자들이 잘못된 신앙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목자가 영적 지도자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다면, 주님께 바로 그런 태도를 고쳐주시도록 간구 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 잘못을 고백하고 위해서 기도해주면 치유함을 받을 수 있다(약 5:16).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다(갈 6: 7). 우리가 주 안에서 지도자 된 사람들에게 행한 대로 우리의 영적인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행할 것이다. 당신이 충성스럽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충성할 것이다. 당신이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지도자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이 그들에게 반기를 들거나 충성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의 차이를 놓고 기도하며 그가 세우신 지도자들과 의논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목자는 "나는 우리 목장의 식구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보기 위해 내 삶을 바쳤다" 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매튜 헨리 (Matthew Henrry)는 그의 유명한 주석에서 "영적인 부분들을 가르치는 스승들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어야 한다" 고 쓰고 있다. 훌륭한 목자는 "나는 성경을 나누고, 모임을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문제에 얽매여서 일주일을 망칠 수는 없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목자의 목장은 망하게 되어 있다. 목자는 항상 다음과 같은 태도를 지녀야 한다. "저는 여러분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당신은 모든 일을 혼자 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법을 배우라. 인간은 자기가 직접 해 보면서 배우는 존재이다. 목자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재능과 은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자기의 일들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목자는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선 촉매자가 되어야 한다. 목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역할과 책임의 목록을 작성하라. 그리고 각 회원들이 자신들의 은사가 이 다양한 역할들 중에서 어디에 적당한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만들어라..
목원들에게 목장에 대해 어떻게-느끼고 있는지, 당신의 지도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질문을 해 보라.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적당할 것이다.
"당신이 나라면 지금과 어떻게 다르게 하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을 더 잘 섬길 수 있지요?"
"내가 기도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5.목자는 열정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당신의 목장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보살피고 그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신이 예수님과 다른 이들을 열정적으로 섬기면 목원들은 당신의 목장에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목자의 첫째 조건이 하나님의 일에 대한 열정이다. 열정은 전염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있게 인도해 주는 사람을 따르고 싶어한다. 당신이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하나님의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주님은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하라고 명령하셨다! 열정 있는 리더는 열정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낸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교회의 목장의 목자로 사용하셨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신약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다(롬 16: 3).
6.교회에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배생활, 기도생활, 전도와 기도생활 및 봉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자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우리의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교회가 발전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7.목자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 13:!7)
책임이 란 무엇인가? 책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회계하는 것" 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해 헌신적으로 살았는지에 대해 주님과 회계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한다. 개인적 책임이란 말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른 사람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개인적 책임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주님으로부터 찾아내고, 그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일을 하는 것을 회계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목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에 대해 자신과 목원을 점검함으로 신앙생활과 사명에 승리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 안에서 올바로 세워 졌는가를 분별하려면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에 있어서 주님과 영적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지는 일이 기쁨이 되는가? 만약 영적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부담스런 짐이 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잘못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여 개인적으로 훌륭하게 살고 있는지, 목장의 사역은 영적이고 관계 중심적으로 잘 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최종적으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목장의 각 성도들에 대해서 주님 앞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목장의 목자는 교회의 지도자들의 연장이다. 성경에 의하면 각 교회의 목사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께 "책임을 진다." 목장의 목자들은 목장 안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사역함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돕고 섬기는 아주 귀한 직책인 것이다.
그래서 목자들은 자신의 사역 영역과 목장 안의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께서 그 위에 세우신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의논하고 기도해야 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 교회적으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보호수단이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목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과 주님이 교회에 세우신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의 책임자와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주님과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8.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유형을 보자.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살펴보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모세의 경우: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0-12)
모세는 기본적으로 "내가 누구관대..."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거의 모든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이런 감정을 느낀다. 내가 처음 공적인 기도를 할 때 나는 종이에 기도내용을 써서 읽었다. 너무 떨렸다! 그리고 내가 처음 소그룹을 인도한 것은 정말 굉장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호수아의 경우: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
주님께서는 새로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를 계속 격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 분의 능력을 의지한다!
기드온의 경우: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 6:13-16)
주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셨을 때 그는 심하게 저항했다.
예레미야의 경우: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렘 1:6-8)
예레미야는 목장 인도를 시작할 때 많은 젊은 리더들이 느끼는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 사람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셨을 때 자신들이 부적합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점이 주님께서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그들은 모두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한 사람들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약한 것을 통해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신다. 고린도 후서 12장 9절에서 주님은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활동하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목장의 목자나 교회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필요한 재능들이 없고 매사에 실수만 한다고 생각되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당신에게는 좋은 친구인 주님이 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의 중심이 바른 자리에 있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복한다면, 앞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것을 준비해 주실 것이다.
제 5장 목자의 의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주님을 알고 잃어버린 자들에게 다가가서 제자를 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목자의 기본적인 과업이다. 신자들의 소그룹 활동을 격려하면서 섬기는 책임을 다하려면 우리의 우선 순위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가족들을 섬기는 것 다음으로)는 주님이 우리의 가족인 목장의 구성원인 목원을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목장의 목자는 기도 할 책임이 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겔 22:3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 "사이에 서라" 고 부르시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의 목장 안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성경 말씀이 우리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목장 안에 있는 각 사람들을 위하여 매일의 기도하는 일에 "책임을 다할 것을(Cover)" 진심으로 작정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특히 우리 가족과 친구들 중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목원의 친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현재까지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나 "예비 그리스도인 (pre-Christians)" 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표현에는 믿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기도는 다른 가치 있는 일들과 마찬가지로 배우고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습관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힘써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19)
목자가 목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에 힘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기도한 것을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또한 당신은 매일 매일 영적인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악의 권세를 결박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과 자유를 선포할 권세를 주셨다. 우리가 영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면 목장 모임을 가로막는 분열의 영들을 막아달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악한 영들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이 악한 영들에 의해 조종될 때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히 목장 안의 여러 일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우리의 대적들이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목장 목원들의 지도자로서 당신은 "기도를 은밀하게" 해야 하며 그들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능이 나타나게 된다.
만일 누군가가 생명을 좌우할 만한 문제로 갈등하거나 귀신에 사로잡힌 행동을 하고 있다면 목자는 정규적인 목장 모임 외에도 이 사람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더 많은 기도와 상담, 사역과 치유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사단의 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일대 일로 사역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는 종종 담배를 피우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을 만난다. 그 사람도 담배 피우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끊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그의 목장의 목원들과 함께 나눌 용기는 없어 보인다. 이때는 단 둘이 만나 대화를 함으로 솔직해질수가 있는 것이다. 목자는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하고 그는 목자에게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을 할것이다. 목자는 그에게 "죄(담배)가 나를 주관치 못하리라" (롬 6:14)는 말씀을 고백하도록 하라. 그 후 몇 주 동안 그를 점검하며 격려해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권면하고 기도해 준다면 결국 그는 자유로운 신앙인이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 10장 3, 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목자가 기도로 뒤에서 목원들을 돕는다면 목장의 모임은 영적으로 보다 더 조화롭고 성숙해질 것이다. 목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즉시 응답해 주시고 그 표적과 기사가 목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9-12(참고:에베소서 1:15-21, 3:14-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서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 빌립보서 1:6절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따라 목장에 속한 사람들과 주님이 그의 나라로 불러 주신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목자가 목원들과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해 주고 있는 사람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된다.
그러므로 목자는 지도자로서 당신의 목원을 위해 기도의 규범을 세워야 한다. 주님은 분명하게 "너는 기도할지라" 고 말씀하셨다. 가능하면 언제나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갖는 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1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기본적인 문제들을 놓고 당신의 예비목자와 함께 기도하라. 이 기도를 통해 서로 목장에서 변화되고 있는 영적인 성장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응답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의 죤 디렉터나 담당 교역자들과 함께 기도하라. 그들과 함께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매두 중요한 것이다.
목원들이 서로 기도 짝 지어 기도하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이 짝은 매달마다 또는 때때로 바뀔 수 있다. 영적 전쟁을 위한 기도팀들을 갖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영적 생활을 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목장의 그룹 기도도 중요하다. 이 기도는 목원들과 영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게 하고 관계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임을 잊지 말라! 원수는 의심과 불신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통화선을 끊으려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목장이 기도의 은사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특별히 기도의 분야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당신의 그룹에 영입하라. 당신이 "중보의 영" 을 지닌 사람과 함께 기도한다면 목장의 목원 전체가 기도의 능력을 체험케 될 것이다. 함께하는 기도는 목원의 단결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목자는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격려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성숙치 못하고 불안경한 목장의 목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 자원해 스스로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격려하기보다는 그들을 통제또는 억압하려고만 한다. 목자를 세우신 목적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지 사사건건 통제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8)
우리는 목원들이 스스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해서 그들이 매사에 목자만 의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가정 생활의 건전성, 직업에 대한 근면성, 자녀 양육에 대한 관심, 집안의 많은 문제들에 대한 대처, 교회 생활과 신앙생활의 규범에 대해서 목자가 이해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상담을 해야 하며, 성경에 의해 분명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밖에 본인 많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항들은 권면은 하되 그분의 양심에 맡겨 두어야 한다.
목자의 몇가지 원칙
1. 목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경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항상 영적 지도력을 유지해야 한다(신자들 개개인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바를 깨닫기 위해서는 누구의 의견을 듣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야 한다).
2. 목자는 그가 섬기는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제정된 가치들과 원칙들에 어긋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3. 목자는 다른 신자의 생활 속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자기의 것인 양 사칭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신자는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4. 목자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악용하거나 속이거나 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을 위하는 것으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예를 들면, 금전적거래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나 심리적인 것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생활에 투자한 것에 대해 보답을 바라는 것).
죤 디렉터 - 여러개의 목장을 관할 하는 리더
우리는 자신의 목장을 지도하고 또한 다른 몇 개의 목자들을 관할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죤 디렉터 (Zone Director)" 라고 부른다. 1개의 죤인 여러개 목장의 책임을 목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함께 사역을 맡는다. 이러한 경우에 죤 디렉터는 그가 맡고 있는 목자들 사이에는 이미 관계성들이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그가 감독하고 있는 목장의 목자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며 목자들과 함께 필요에 따른 기도와 격려를 위한 모임을 주재하는 것이다. 또한 죤 디렉터들은 자기 관할 하에 목장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제하고, 야유회를 가고, 가르치는 등의 일들을 위해 모이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들은 목자로서 겪는 경험들을 나누며 자신들이 책임지고 있는 목자들과 영적인 통찰들을 분명하게 나눔으로써 목원들을 섬기고 교회 목사를 철저히 섬겨 한 공동체이며 지체로 여겨야 한다.
죤 디렉터들은 훈련을 받으면서 예비 목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우리 교회는 "목자들의 훈련 과정" 을 준비해 놓았다. 이것은 미래의 목장의 지도자들이 목장의 인도를 시작하기 이전에 마쳐야 하는 과정이다. 또한 목자를 위한 훈련의 날이 있는데 금요일에 열리며 또한 목장 지도자들을 위한 다양한 웍샵과 훈련 과정들을 수요일에 이루어진다. 다른 모임들은 전 교회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전 교회적인 차원의 주제들은 교회의 목자들과 목원들이 모여서 영적인 훈련 및 격려의 시간으로 함께 모여 서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의 훈련은 장래의 목자들이 자신의 죤에 속해 있는 목장의 목자에게 받는 일대 일 훈련이다.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현장 훈련(on-the-job-training)이다: 목자가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병원에 갈 때 그와 동행해야 한다. 또는 목자가 낙심한 자를 만나서 그의 믿음을 위해 기도할 때 준(예비) 목자와 함께 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며 현장 훈련을 해 주셨다. 예수님은 생애의 대부분의 시간을 맡은 군중을 가르치는데 사용하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을 훈련하는데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것, 이것이 계속 반복되기를 원하신다.
훈련 중에 있는 준 목자들은 현장 훈련뿐만 아니라 훈련 과정에서 배운 성경의 원리들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말씀에 기초를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실재적으로 말해서, 준 목자들은 한 목장을 맡기 전에 목장의 여러 모임들과 주간 찬양 모임, 밴드에서 개인적인 영적 훈련과 자기 성찰을 하며 주어진 사역 등에 정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최선이다.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약들을 기억하고 항상 제 시간에 도착하는 훈련을 쌓아서 조직적인 삶을 사는 것이 몸에 배이도록 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잊는 일이 계속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고 지도자를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목장을 시작한다면하면 그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는 준(예비)목자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을 자신과 함께 목장에서 함께 사역하며 목원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준(예비)목자들을 동시에 훈련시키거나 한 번에 한 명씩 훈련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훈련을 위한 성경적인 방법은 그것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이끄는 훈련이든 나아가서 지도자로 만드는 훈련이든, 디모데 후서 2장2절의 말씀같이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목장은 모든 사역의 기초적인 훈련 기관이 된다. 선교사들이 갑자기 기적적으로 하루 밤사이에 훈련되어서 타지역에 보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오랜 시간동안 훈련받고 숙련된다. 지도가 되기 위해서는 현장 훈련에 개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할(hands-on) 때 가장 효과적이다. 지도자는 우선 성실성, 겸손 그리고 남을 섬기려는 의지 등의 성품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목장의 준(예비)목자들에게는 세 가지의 유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발전적인 준목자, 영구적인 준목자, 그리고 촉매적인 준 목자이다. 세 가지 형태의 협력 지도자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발전적인 준목자
미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훈련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12명의 보조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베드로를 그의 주요 조력자로 훈련시킨 것으로 보인다.
2. 영구적인 준목자
장래의 지도자가 아니지만 목장이 배가되어 나뉠 경우, 새로 생긴 목장에 안정감과 연속감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하나의 목장이 두 개의 목장으로 증가할 경우, 이들은 이 새로운 목장들 중 하나의 준목자가 된다. 이 사람은 항상 지원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로 임명되지는 않는다.
3. 촉매적인 준(예비)목자
교회의 지도자에 속한 사람이다. 그는 "다섯 가지 사역의 은사"를 갖고 있거나 당신의 목장의 회원으로 교회에서 지원해 주는 스텝이다. 이 사람은 순회 사역을 하고 다른 목장들의 사역에 있어서도 책임을 지기 때문에 직접적인 목장 인도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목자에게 매우 도움이 되고 목장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훌륭한 자원과 본보기가 될 것이다.
새로운 준(예비) 목자의 선정
목자가 목원 중 어떤 사람이 훌륭한 예비목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을 때, 그는 목장의 사역들을 도울 예비목자를 임명하는 일에 대해 우선 죤 디렉터와 상의해야 한다. 기도를 해 본 후에 준목자인 예비목자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확신이 서면 그에게 앞으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고 기도하라고 조언한다. 그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확신한 이후, 그리고 목장의 여러 회원들이 이에 동의하면 임명식을 계획해야 한다. 준 목자는 목장의 회원들과 죤 디렉터와 교회 지도자들이 드리는 기도와 함께 안수를 통해서 임명된다.
목자에 대한 준(예비) 목자의 책임
준 목자로서의 책임은 목자와 함께 기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목자를 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준 목자는 목장이 성숙해지고 양적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하는 목장,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제자가 되는 목장을 세워나가려 노력한다면 여러가지 방법으로 목자를 섬기게 될 것이다. 그 목장의 리더인 목자가 없을 때 준 목자가 지도력을 행사하여 목원과 함께 기도하고, 훈련과 권면으로 양육하는 등의 실제적인 봉사를 함으로 목자를 돕게 된다.
목원들에 대한 준(예비) 목자의 책임
준 목자는 자신의 목자를 섬길 뿐만 아니라, 협력자로서 목장을 위해 부지런히 기도할 것이다. 전화를 통해 목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정규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또한 직접 시간을 내어 훈련받고 있는 자들을 특별히 감독하고, 위로하고, 강건케 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 봉사의 실제적인 방법들 중에는 필요에 따라 모임까지 태워다주는 것과 목원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새 신자들을 특별하게 보살펴주는 것들을 행사하여야 한다.
목회자(Pastor)의 마음을 소유함
각목장의 목자는 그의 목장의 사역자로 "평신도 목회자(Lay Pastor)" 라고도 한다. . 목장의 리더는 항상 목원들을 기도와 권면과 교제로 기꺼이 섬겨야 한다.
목장의 지도자인 목자를 "평신도목회자들" 이라 부르는 것은 전통적인 "목회자"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목원을 섬기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목장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종들이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목장의 목자라 하는 직분은 초대교회 집사의 위치와도 같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목자라는 용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전을 분명히 구체화 해주는 것임을 확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모든 목장의 목자들은 목회자의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을 지녔다는 것은 기도와 정규적인 격려와 실제적인 봉사로 사람들을 섬기고자 하는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봉사의 생활을 함으로서 궁극적인 목회자와 같은 사역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십대 소녀가 그녀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어머니처럼 돌볼"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진정한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나중에 그녀는 한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을 갖게 될 것이다. 이와 동일한 원칙이 목자로서 "목회하는" 자들에게 적용된다. 목자들은 죤 디렉터들과 그 지역의 영적 지도자인 교역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모든 목원들이 사역할 수 있게 양육해 사역에 충성하게 함이 중요한 것이다.
본이 되라
목장을 성장시키려 하면 원수는 때때로 우리를 속이고 우리가 "그런 일을 경험해 본적이 없고 그런 상황에 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을 그 사역을 진정으로 도울 수 없다고 유혹한다. 예수님이 마약과 술을 하신 적이 있는가? 예수님이 이혼한 적이 있는가? 물론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셨다. 우리의 환경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할 수 있으며 주님이 우리 안에서 기적을 행하심을 볼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개인적인 필요들과 문제들을 사람들과 나눔으로 본을 보일 수 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예전에 자신이 겪은 갈등들을 털어놓고 주님께서 어떻게 그의 말씀을 통해 이기게 하셨는지를 함께 나눌 때 우리는 하나도 감출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앉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높은 자리에 앉히려 할 때 우리는 교만이라는 영역에서 우리 자신을 원수에게 내어놓는 꼴이 된다.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우리의 영적인 수준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느끼지만 이는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우리는 목원들에게 우리 자신의 의견들을 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 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다. 만일 대답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속이지 말라. 그들에게 솔직하게 모른다고 이야기하라, 그러면 당신은 대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교회의 전체 지체 안에 죤 디렉터와 목사님들, 전도사님 그리고 다른 은사자들을 주신 이유이다.
명심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신다. 또한 주님은 당신의 증거를 목장 안에 있는 주님의 백성을 격려하시는 강한 도구로 사용하신다. 당신은 단지 하나님이 당신의 삶에서 이전에 행하셨고, 지금 행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행하실 일들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만일 그들이 명백히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강한 충고와 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의 잘못을 고쳐 주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그저 그들을 계속해서 사랑하고 들보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에게 와서 조언과 도움을 구할 것이다. 그들은 당신 안에서 모범을 보게 될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들은 사람들과 선하고 신실한 관계를 맺기 위해 시간(필요한 모든 시간)을 들인다. 우리는 목장 모임의 장에서만 관계를 맺을 것이 아니라 목장의 바깥에서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 목장 밖의 사회 속에서 비공식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신뢰를 쌓으면 점차로 목원들의 삶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목원들과 친분을 맺지 못했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충고와 교정을 받기 어렵게 될 것이다.
목장과 죤의 재정
우리 교회의 맡은 목장들은 헌금이나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kitty)" 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십일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헌금이다.) 이 "재정"은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매우 도움이 된다.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급하게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한테 돈을 거둘 필요가 없어진다. 보통은 급박한 일이 있을 때 해당되는 목장이 재정을 자체적으로 감당을 할 수 있지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는 연합 목장인 죤이 함께 할 수 있다. 경험상으로 볼 때 목자나 준(예비)목자가 회계를 하나 "재정"의 관리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좋다. 이 "재정"의 돈은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나 병에서 회복한 사람들에게 혹안 새신자들을 위한 꽃을 사주기 위해 자주 사용되곤 한다. 많은 돈이 필요한 경우나 목장하나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재정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에 목자는 죤 디렉터나 담당 교역자를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목장과 죤의 사회적 활동
목자들은 주기적으로 회원들이 더 발전된 관계를 맺게 하는 여러 활동들을 주관해야 한다. 소풍, 공공 사업, 봉사활동, 공동 식사 그리고 지역 전도 활동들이 하나의 목장이 참가할 수 있는 활동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영역에 은사가 있는 사람들은 활동을 계획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게 되어 책임을 느끼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명심하라, 목장들은 주어진 영역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일에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 또한 우리의 주된 목적은 기도하면서 잃은 영혼에게 나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라.
모든 구성원들이 각각의 활동에 꼭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들은 야구 경기나 기술 강습회에 같이 갈 수도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르기 위한 훌륭한 활동들이다.
목장은 또한 조반이나 휴일의 식사, 점심 식사 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또 다른 선택은 한 죤이 모두 모여 연합 활동을 하는 것이다. 연합 활동을 위한 계획을 시행하기 전에 교회의 지도자들과 만 이 활동이 교회의 다른 활동과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는가를 확인 점검해야 한다.
생일과 기념일
생일과 기념일은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주님이 당신의 목장에 배치하신 어떤 신자들은 돌봐 줄 가족이 없을 수도 있고 가족이 다른 나라에 살수도 있다. 생일이나 기념일과 같은 특별한 사건들을 기억해서 카드를 보내 준다든지 파티를 열어주면 그들에게는 엄청난 격려가 될 수 있다.
목원 중 한 사람이 회원들의 생일과 기념일의 목록을 만들고 사진을 복사해 붙여서 모두에게 배포하면 좋을 것이다. 목장이 성장하고 증가하게 되면 이 목록은 계속 갱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보는 목장이 증가된 이후에도 관계가 지속된다면 계속 사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