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23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수필부문 당선작] 김종찬 외
■최우수상
참나무 예찬론 / 김종찬
가을산에 오르니 도토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반지르르 갈색 윤이 나는 도토리가 앙증스럽다. 때가 되면 무르익어 절로 떨어지는 자연의 법칙은 가을이 깊었음을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자루를 메고 온 산을 누비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토리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끈히 끼니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때에도 도토리를 쓸어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에게 도토리는 간식에 지나지 않지만 동물에게는 먹이인 셈이다. 산속 야생동물들의 생사가 달린 식량이기에 줍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다람쥐나 청설모와 같이 작은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멧돼지와 반달가슴곰처럼 덩치가 큰 동물과 곤줄박이와 어치 등 날짐승에게도 도토리는 중요한 먹이일 것이다. 그들이 숨겨놓고 찾지 못한 도토리는 싹을 틔워 참나무가 늘어나면 숲은 풍성해진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대로 나무와 동물들이 서로 도와가며 공생하고 있었다. 참나무는 살아서 도토리를 내어주고 죽어서는 우리 살림살이에 유용하게 쓰인다. 내구성이 높고 단단해서 원목가구나 도마로도 쓰인다. 어떤 참나무는 광산 막장의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전역을 하고 집에 와보니 가정형편이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공무원을 퇴직한 아버지는 퇴직금으로 장사를 하다가 가게를 닫았고 어디엔가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많이 봤다. 집안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아버지는 늘어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애를 태우시다가 끝내 집안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 아직 고등학생이던 막내는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태에 놓였다. 할 수 없이 나는 등 떠밀리듯이 먼 친척이 근무하는 탄광으로 가게 되었다.
강원도 **광업소에 취업을 하고 일터에서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얻었다. 당장 돈을 벌어 집안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현장은 갑반 을반 병반 3교대로 24시간 작업을 했다. 갑반은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오후 5시에 퇴근하며 을반은 오후 4시에 출근하여 12시에 퇴근하고 병반은 밤 11시에 출근하여 아침 8시에 퇴근했다. 첫날 갑반에 소속되어 작업복과 장비를 지급받고 간단한 안전사고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는데 신참은 난장에 남아서 참나무 몇 그루를 막장으로 가져가야 했다. 그때부터 좋은 참나무를 가져가려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밀치며 곧고 적당하여 쓰기 좋은 것을 가져가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여기서는 양육강식이 통하는 곳이다. 그렇게 선택된 참나무는 갱도를 따라 지하 100미터 가까운 막장으로 운반되었다. 먼저 들어온 조원 3명이 앞 조가 발파한 석탄을 끌어내고 그 자리에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참나무를 받쳐주었다. 기둥 2개와 천장에 1개 그 외에 사이사이에 작은 참나무를 지탱해 줘야 안전했다. 한 막장에 선산부 1명에 후산부 3~4명이 투입되고 나머지 작업자들은 갱목 운반 조달 등 채광 보조 작업을 했는데 작업을 주도 하는 조장 역할이 선산부였다. 그외 작업을 보조 하는 작업자들을 후산부라고 불리었다. 주로 안전을 책임지는 선산부는 도끼로 참나무 모서리를 깎아서 참나무 기둥이 움직이지 않도록 잘 고정했다. 내가 가져온 참나무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을 보면서 가정의 경제를 받쳐주고 사회와 국가의 경제도 떠받쳐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각 가정마다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화력발전소에서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여 전기를 생산하기도 하므로 막장을 떠받쳐 주는 참나무가 한 몫을 한 셈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조원들이 둘러앉아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반찬도 변변찮은 도시락도 꿀맛이었다. 안전모를 벗으면 까만 땀이 흘러내렸다. 검은 얼굴에 유난히 이빨만 하얗게 빛이 났다. 식당이 따로 없었다. 앉은 곳이 식당이고 볼일 보는 곳이 화장실이 되었다. 나는 점심을 먹은 후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반나절 힘든 노동이 한순간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야!~ 이 간나 새끼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담배를 피워 당장 끄지 않간네 ” 깜짝 놀라 담배를 끄고 멍하니 있으니 뒤이어 “당장 땅에 머리 박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땅에 머리를 박았다. 선산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내려만 보고 일어나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막장에서는 혹시나 가스유출 폭발이 있을 수 있으므로 흡연을 금지하였던 것이다. 막장에서 조장인 선산부는 착암기로 석탄벽을 뚫고 그 속에 화약을 넣어 폭발을 시킨다. 그러면 하루 고된 일과가 끝이 났다. 일행은 탄차를 타고 갱 밖으로 나와 헬멧 등을 반납하고 탈의장으로 갔다. 작업복을 벗고 샤워를 하며 온몸에 달라붙은 탄가루를 씻어냈다. 그제서야 본래의 얼굴로 돌아왔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일행은 삼삼오오 근처 식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탄광에서는 돼지고기를 자주 먹었다. 돼지고기가 탄가루를 씻어 내려준다는 믿음이 대대로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에 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셨다. 취기가 오르자 막장에서 담배 피운다고 호통쳤던 선산부 조장이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까는 “자네가 미워서 벌을 준 게 아니네, 막장은 원체 위험한 곳이어서 조심하라고 그런 것이니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말게” 라고 하면서 막걸리 한 잔을 건넸다.
비 온 다음 날 선산부 조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산에 가자는 것이다. 날씨 좋은 날에 가자고 하니 이때 가야 할 일이 있다며 재촉을 했다. 할 수 없이 준비를 하여 약속 장소에 나갔다. 산에 오르려니 미끄럽지만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 상쾌하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등산로를 따라 이름 모를 야생화와 나무들이 두 팔 벌려 환영이라도 하듯이 피어있었다. 한참을 오르다가 등산로를 벗어나 길이 없는 곳으로 일행은 기어 올라갔다. 고목이 쓰러진 장소에 이르자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커다란 망치로 쓰러진 참나무를 내리쳤다. 쿵~쿵~ 산울림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하면 참나무 속에 있던 표고버섯 균사가 골고루 퍼져서 버섯이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다하고 쓰러져 죽은 참나무가 마지막으로 버섯균사를 몸에 받아들여 꽃을 피우듯 표고버섯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서 마치 순국선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쓰러져간 사람들, 그들은 가고 없지만 역사는 그들을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렇듯이 참나무는 살아서는 숲이 되어 동물과 곤충을 키우고 죽어서도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산속에 있는 집에 들렀더니 뒤뜰에 참나무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추운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장작더미였다. 나무가 숲을 지키고 숲은 사람을 지켜주고 있었다.
■우수상
추모의 숲을 가꾸며 / 변재영
산문에 든다. 서늘한 음이온이 코끝에 와락 달라붙는다. 미물의 목숨도 거두지 말라는 팔공산 은해사의 금포정, 꺾이는 대신 굽이쳐 자라는 길을 택한 노송의 의지에 몸이 자연스레 낮아진다. 불국정토에 뿌리내린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나무는 불이법문이 아닐까. 솔잎처럼 뾰족하던 마음이 금세 평안, 풍요, 치유 이런 어휘들로 채워져 숨통이 탁 트인다.
법당 언저리, 생과 사의 들목이랄까. 푸른 다리를 건너면 작은 간판이 반긴다. ‘자연과 영원으로 가는 길’ 이곳 수림장이 내 일터다. 구조조정이 대세이던 2005년, 나는 한참 더 일할 나이에 파란 낙엽으로 떨어져 남루한 시간 앞에 서 있었다. 기적 중에 가장 신비하고 아름다운 기적이 인연이라고 했던가. 그런 나를 이곳 고향의 숲이 거두어 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 옛날 땔나무를 줍고 풀씨를 훑고 다녔던 인연이 한몫했으리라. 유년시절, 나는 이 숲에서 가재를 잡고 산딸기를 따먹으며 푸른 꿈을 키웠다.
영혼을 품어 더욱 청정해진 숲은 산 자나 죽은 자나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 아름드리 송림이 주축이지만 느티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등 잡목도 있다. 우리 민족의 상징인 소나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동반자다. 솔가지 꽂은 금줄을 쳐서 생을 외치고 송죽처럼 꿋꿋이 살다가 소나무 관에 누워 언덕바지 솔밭에 묻히는 게 선조들의 소원이 아니었던가. 한때 나도 내세에 묻힐 서너 평의 땅을 탐낸 적이 있다. 하지만 ‘추모의 숲’을 가꾸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사후까지 생색낼 인생도 아니다. 죽어서 한줌 분토로 풍화되어 나무 한그루라도 키울 수 있다면 생전에 받기만 했던 나무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영혼일망정 나무의 눈으로 피돌기를 하다가 뭇 생명이라도 품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영생이 어디에 또 있으랴. 실한 열매라도 맺어 멧짐승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다면 이 또한 보시가 아니겠는가.
추모의 숲을 가꾸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애육하는 어미처럼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나무를 심고 가지를 쳐주고, 아픈 곳도 살피고, 빈혈기가 돌면 영양제 주사도 놔줘야 한다. 그러다가 나무가 영혼을 품으면 명찰 하나를 달아준다. 내세의 호패인 셈이다. 비석을 대신한 한 조각 명패에는 생전에 나무가 되고픈 고인의 애틋한 마음이 묻어있다.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심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식목을 할 때마다 가슴이 뿌듯해진다. 장차 누군가의 영생목(永生木)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야릇한 흥분까지 인다. 퇴직 후 다시 본향의 숲으로 회귀하여 근본 없는 나무의사로 노년을 푸른 산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나는 아마도 전생에 비탈을 즐기는 한 그루의 다복솔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림장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무둥치에서 1m정도 떨어진 위치에 50㎝가량의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골분을 한지에 싸서 넣는다. 그리고는 상제들에게 그 위에 황토를 뿌리게 하고 흙을 도로 메우는 것으로 장례는 끝이 난다. 무릇 인생은 공수래공수거가 아닌가. 영생의 숲에는 작은 돌비하나도 허락하지 않는다. 빈부귀천도 남녀노소의 구별도 필요 없다. 누구든 ‘홍길동 나무’ 5음절로 통한다. 큰 나무라고 우쭐댈 일도 작은 나무라서 주눅들 일도 없으니 천국이 따로 있겠는가. 그저 한그루의 나무가되어 숲의 일원으로 어울릴 뿐이다.
수림장은 숲을 살리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풍수지리설 때문이리라.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산림이 무덤으로 사라지고 있다. 고관대작이면 한술 더 떤다. 오죽하면 ‘묘지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붙었을까. 후손들에게 묘지강산을 물려주며 무슨 꿈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근래에 화장 문화가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납골묘만 늘어날 뿐, 수림장은 16%정도로 미미하다. 숲을 지키고자 중국 주은래의 유골은 비행기로 본토에 뿌려졌고, “내 무덤에 벌초를 하지 말라. 나는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가리라”고 외친 시성 백거이의 묏등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다. 이보다 더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일이 또 있으랴.
뉴질랜드의 레드우드 숲을 본적이 있다.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벌목보다 새로 심는 나무가 많은 나라다. 독일의 흑림을 벤치마킹한 것이 우리네 그린벨트지만 이마저 벌레 먹은 나뭇잎처럼 묘지와 납골당으로 숭숭 구멍이 뚫려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환상적인 레드우드 숲도 천혜의 자연이 그저 준 선물은 아니다. 사람이 가꾼 노작이다. 그들은 자신의 주택 내에 불편을 주는 나무 한그루를 벨 때에도 이웃에 동의를 구하는 등 나라의 허가를 얻기까지 반년 이상의 시간을 두고 고민한다.
나무를 대하는 예의도 다르다. 산을 내려온 후에야 피부에 머금은 피톤치드까지 에어먼지떨이로 탈탈 털어내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숲에 들기 전에 신발까지 물로 깨끗이 닦는다. 어쩌면 인간이 솔잎혹파리를 옮기는 주범일지도 모른다. 산을 닮아 그런지 숲을 닮아 그런지 그들은 언제나 사람보다 나무를 먼저 생각한다. 우리가 나무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나무를 섬긴다. 그들처럼 숲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도 담배공초 하나로 온 산을 잿더미로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은 결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의 전유물도 아니다. 숲에는 뭇 생명이 산다. 나무와 풀 그리고 꽃들만 사는 것도 아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숲 속에 둥지를 틀고, 기어 다니는 벌레, 뛰는 짐승도 숲에 보금자리를 가꾸며 그 은총을 발라먹고 산다. 맨발의 탁발 스님 또한 그 숲에서 살아가지 않는가. 나무를 닮으려고 노력하면서……. 문명이 사람의 삶을 춤추게 할 수는 없는 법. 숲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숲, 그 숲과 더불어 물아일체가 되어 공존하는 것이 진정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숲은 어울림이다. 큰키나무와 난쟁이나무, 침엽수와 활엽수, 욕심껏 감아 올린 넝쿨식물까지 같은 집에 산다. 미처 채우지 못한 공터에는 여린 풀들이 빼곡하게 목숨을 꽂고 있다. 더 낮은 곳에는 바닥을 기는 이끼도 있다. 그들은 귀천 없이 서로 엉키고 풀어져 살갗을 부비며 한줌 햇살을 나눈다. 무질서가 곧 질서라고나 할까. 욕심 없는 그들만의 셈법이다. 우리의 삶도 서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아름다운 화음이 되고 그림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큰 나무일망정 혼자서는 결코 숲이 될 수 없다는 푸릇한 무언의 가르침 하나, 내 삶의 원점인 이곳 숲에서 배운다.
한그루의 나무로 자연에 회기 하는 수목장이야말로 묘지로 신음하는 우리 산하의 숲을 지키는 길이며 산자와 죽은 자가 하나가 되는 공간이 아니겠는가. 무덤이 사라진 오롯한 숲을 상상해본다. 후손들이 대대손손 건강하고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알고 있다. 고작 내 한사람의 몸부림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인지. 그러나 믿는다. ‘나비효과’의 기적도 있지 않는가. 추모의 숲을 넘어 ‘섬김의 숲’을 가꾸는 나의 작은 몸짓이야말로 미래세대에게 꿈과 희망의 씨앗을 남기는 아름다운 약속임을.
끝물 쓰르라미 울음이 수그러진 송림에 노스님의 절절한 독경소리가 숲을 적신다. 또 한 잎의 갈잎으로 떨어진 어느 생이 나무가 되는 순간이다. 육신을 거름으로 남긴 저 영혼도 봄이 오면 가지마다 잎사귀로 꽃으로 돋아나 나무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읽을 것이다.
■우수상
느티나무의 위안 / 이현숙
그 나무 아래에 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굵은 밑동은 몇 사람쯤 너끈히 뒤로 숨길 수 있을 만큼 두꺼웠다. 그러나 거인 같은 나무는 몸통이 움푹 파인 채 속이 빈 강정처럼 겹겹이 껍질만을 둘러싼 몸으로 서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마치 총을 맞은 것처럼 바닥에서 그루터기를 지나 줄기의 한가운데에 이르기까지 큰 구멍이 나 있고 흙바닥 사이로는 천근이 울퉁불퉁 드러나 있었다. 사람이라면 부지하지 못할 그런 몸으로 살아있다는 것도 용하지만 여전히 어린 잎들은 돋아났고 신록의 푸른 봄을 무성히 싹 틔우고 있었다. 돌아앉은 그 나무의 아름드리 풍성한 나뭇잎만 본다면 아무도 나무의 몸이 비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채지 못할 만큼 나무는 연신 싱싱한 잎을 만들어 끌어안고 있었다.
오래된 나무의 처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무들은 자신의 나이를 둥근 몸통 안의 나이테에 매년 성실히 동그마니 새기지만 그 나무는 나이를 알려줄 몸이 없어 자신도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하는 듯했다. 300년은 더 되었을 것이라고 100년도 살지 못한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언젠가 나무에 불이 났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무의 몸 안은 새까맣게 피가 말라 칡처럼 까만 나무껍질이 너덜거리는 살점으로 붙어있고 불에 그슬려 까맣게 탄 속은 검은 피가 굳은 것 같았다. 뻥 뚫린 몸통 안에는 속이 타들어 간 듯 괴로웠던 지난 세월이 그대로 정지한 채 새겨졌다. 이불처럼 하늘을 덮고 땅과 하늘을 이을 날을 꿈꾸는 나무는 속이 텅 빈 동굴 같은 몸으로 한 잎 한 잎 이파리를 낳았다. 속도 없이 그 세월을 버텨 냈다. 오히려 속이 없어서 더 견디기 쉬웠을까.
텅 비어있는 아름드리 몸통은 내장을 다 빼앗기고도 무수한 어린 초록 잎들을 낳아서 하늘을 뒤덮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잎들이 대신 말한다. 봄밤의 스산한 바람에 몸을 흔드는 여린 5월의 잎들은 어미의 속이 다 타버려 텅 비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투명한 연초록 얼굴이 하늘을 닮아있다. 어미의 사라진 붉은 내장을 먹고 물이 오른 연두색의 연한 잎들이 살랑살랑 노래를 부르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미의 몸통은 본 적도 없고 볼 필요도 없다는 어린잎들은 어미의 팔에 매달린 채 우듬지 끝에서 이제 곧 떨어질 것 같은 갓 태어난 생기의 물방울을 떨구고 있었다. 개울 건너 맞은편 작은 나무들을 보면서 제 어미만큼 큰 나무는 없다고 으스대던 순간에도 자신이 지탱하고 있는 굵은 어미의 몸통을 상상할 것이다. 튼튼하고 강인한 어미가 가져야 하는 당연한 몸통을. 그래서 즐겁게 바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무는 하지 못한 말들, 하고 싶었던 말들,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말없이 땅속에서 얽어 텅 빈 속을 땅속에 도로 묻었다.
몸이 없어도 나무를 나무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게 하는 기둥도 없이 새로운 잎을 만들고 푸르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몸도 없는 거인 같은 나무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기적 같은 나무의 생존을 바라볼수록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산 아래 작은 마을의 초입을 지키고 있는 그 나무는 느티나무였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주변을 돋우고 몇 개의 운동기구와 긴 벤치와 동그란 쇠 그네를 세웠다. 그 옆에는 작은 정자가 꾸며져 나무 주변은 작은 놀이터나 사랑방처럼 안락하고 편안해 보였다. 바닥에는 조약돌들을 깔아 더 운치 있는 길을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보다 오래 살았던 그 나무를 사람들은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 그네는 녹이 슬고 마지막으로 흔들린 지 오래되어 보였다. 지난 어떤 날들에는 정자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고 아이들은 그네를 타며 나무 주변을 뛰놀았을 것이다. 이제 그네를 탈 아이도 자라서 마을을 떠났고 정자에 앉아 세월을 보낸 사람들도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마을은 그네의 녹만큼 낡아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 보았고 지금도 홀로 지켜 보고 있는 나무가 외로워 보였다.
나무의 움푹 파인 몸 안으로 나는 천천히 들어갔다. 한 사람이 쑥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나무의 안은 깊었다. 텅 빈 나무는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마치 관에 들어간 듯 잠시 나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삼백 살도 넘었을 나무의 세월 안에 서 있다. 축축하고 느린 나무의 숨소리가 들렸다. 깊고 그윽하고 누긋한 긴 한 번의 나무의 숨이 나에게로 들어와서 한동안 나에게 머물렀다. 서늘하고 축축한 수백 년 나무의 시간이 나를 비켜 가 내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나무속의 나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나무의 눈과 마주칠 것만 같아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나는 움츠러들었다. 손을 뻗어 옆의 거칠고 축축한 검붉은 속을 만져보았다. 금방이라도 물이 쏟아질 듯 나무의 속살은 젖어 있었다. 알맹이 없는 빈 껍질 같은 몸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으로 뿌리로부터 물을 끌어 올리려 전력을 다해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반짝반짝 무성한 잎들을 보여주던 나무의 속이 이토록 처참하고 보잘것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나는 거대한 나무가 가련하고 애처로워 한치도 몸을 돌릴 수 없이 나무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나는 나무가 되었다. 나무의 빈 몸이 되어 세상을 본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저 밖에 있다. 내가 지나왔던 길이 길과 이어져 내 앞에서 구부러져 있다. 그러나 그 길들은 나와 무관한 세상이 된 것처럼 또한 냉담해 보였다. 나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런 것이었을까.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시간을 함께 살며 삶의 비밀들을 묵묵히 간직하고 있을 느티나무.
길 위의 나는 뒤돌아가지 못하고 앞만 보며 도망치는 토끼처럼 내달리며 살았다. 시간과 일과 사람에게 내몰리어 갈 곳이 없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나무 앞으로 흘러와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여전히 하늘을 우러러 속이 텅 빈 채 어린 잎들을 흔들고 서 있는 나무를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아무 말 없이 내 속을 다 알고 있다고 나무는 텅 빈 속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불에 타 몸이 패는 상처를 입었어도 여전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느티나무는 지친 나를 침묵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 느티나무 앞에서 사는 것이 녹록지 않다고 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낡아서 녹이 슨 작은 그네에 몸을 구겨 넣었다. 나무 곁에서 그네도 나도 흔들리고 있었다. 시간도 일도 사람도 모든 것이 흘러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무엇이든 줄 것만 같은 가슴 뚫린 느티나무가 주는 말 없는 위로를 받고 나는 나무의 속처럼 가벼운 몸과 마음이 된 것 같았다.
온전한 모습이 생명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듯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힘이 존재를 존재케 한다. 몸의 구멍을 안고 아픔을 말없이 견디어 내는 느티나무는 지금도 거기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앞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나에게 내가 가진 구멍을 자신의 구멍으로 메워 준 특별한 느티나무를 내가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도 또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위안을 느티나무는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러한 기쁨으로 느티나무는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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