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보물-탐라순력도 탐방
관덕정 & 제주목 관아
*기본반에 이어 심화반에서도 나의 무지와 무신경에 스스로 놀라며......
제주 중에서도 서귀포 쪽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시내 중심부를 통과할 일이 많지 않았다. 통과했더라도 네비게이션 보느라 주변을 잘 살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 조천에 머물고 있는 나는 얼마 전 시내 중심부를 지나다가 말로만 듣던 관덕정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서울 중심부에 있는 숭례문이나 덕수궁, 경복궁 옆을 지나가는 듯 한 느낌이었던 그 곳이 바로 그 유명한 관덕정이었던 것. 그냥 지나치기에도 몹시 눈에 띄는 이 건축물을 이제서야 인식한 나의 무신경함에 스스로 놀랐다.
문화탐방지도사 수업을 듣게 된 이후로 이정표를 볼 때도 그렇고, 주변을 볼 때도 그렇고, 훨씬 자세히 보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 정말 맞다. '올레 함께걷기'를 할때도 수업 때 들었던 이야기나 보았던 장소가 나오면 그렇게 반갑고 아는 체를 하고 싶어진다. 옆사람에게 설명까지 하고 있는 것. "문화탐방지도사 수업 때 배웠는데 이러이러 하대요~" 이런 식이다.
지난 학기 문화탐방지도사 기본반을 듣고 난 후 어려워서 심화반은 안 듣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내가 이러고 있다니. 교수님의 놀림감이 될 만하다 ㅎㅎ.
3주차 수업을 통해 내가 무심코 지나친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가 제주의 원도심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이 빈번했던 한반도 곳곳이 그러하듯 제주 관덕정과 목관아도 소실되고 복원되는 과정의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있었다.
"지나 간 역사 뭘 그렇게 연연해 해?"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이러한 역사의 현장을 지켜내기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에 존경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제주의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자 정체성인 '관덕정'
관덕정 앞마당에 서서 여기저기 둘러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각 빌딩들로 가득한 조금은 삭막한 도심에 이런 여백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4칸에 팔각지붕으로 지어진 단층건축물이다. 관덕정 내부에는 觀德亭(관덕정), 耽羅形勝(탐라형승), 湖南第一亭(호남제일정) 세 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실내 벽면에는 작자미상이나 격조 높은 7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관덕정 뒤뜰에는 사라진 월대를 대신한 오래되고 마모된 희미한 선덕대가 있었다.
월대는 탐라국의 모습이 남아있는 것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탐라국왕이 있었다는 권위의 상징 같은 곳. 김정 목사가 월대라는 이름을 못 쓰게 해서 선덕대로 바뀌었다고.
관덕정이 있는 무근성은 옛날 성터라는 의미.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뒤쳐진 곳이나 당시에는 부자들이 살던 곳이라 현재에도 기와집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관덕정은 제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3곳이 있다. 광주. 대구.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라 할 수 있기에 보물 제322호로 지정된 이 건물의 정확한 명칭은 '제주 관덕정'이다. 셋 중 제주 관덕정의 규모가 가장 크다.
1448년(세종30) 목사 신숙청에 의해 지어진
관덕정은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후 성종, 숙종, 영조 대에 걸쳐 중창하고 현재의 모습은 철종2년에 재건한 것을 1969년과 2006년에 보수한 것이데 건축기법 자체는 17세기 양식이라고 한다.
시멘트를 지붕에 바른 모습이 살짝 에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용성을 강조한 재료 사용이라 이해해얄 듯.
관덕정이라는 이름에서 '관덕'은 예기에 나오는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유래되었다.
"활을 쏘는 것은 덕을 보는 것과 같다." 활을 쏘는 것이 단순히 무술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과녁에 명중시키는 활쏘기는 목숨과 연관이 있는 만큼 '덕'이 포함되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덕정은 활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각 지역의 사람들이 모이는 소통의 장소였던 것. 제주 5일장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고 이재수의 난 때 분노한 군중들이 천주교도들에게 보복을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4.3의 시작과 종결이 된 곳도 이곳이었다.
1970년대에는 분수가 있어서 광장의 역할을 이어갔고 현재는 입춘굿이 열린다. 일제시대 때 없어졌다 부활해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제주의 역사가 응축된 현장이자 제주목 통치의 중심지 '제주목 관아'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관덕정만 남기고 다 훼손되어 20여년 전만 해도 그 자리에 제주경찰서와 민가들이 들어앉아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제주목 관아가 있었던 자리. 터라는 의미로 '목관아지'라고 불렀다. 복원 후에야 제주목 관아로 바뀐 것.
조정에서 파견된 제주목사가 근무하던 제주목 관아는 1999년 시작해서 2002년 복원되었다.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으로 탐라순력도 등을 참고해서 고증.
외대문, 중대문을 비롯해 목사의 집무실 홍화각, 집정실 연희각, 연회장으로 쓰였던 우연당, 휴식 시간을 보내던 귤림당, 2층 누각인 망경루가 복원되었다.
복원에 사용된 기와 5만여 장 전량이 제주시민의 헌와로 모아졌다는 것을 들으니 제주인들이 제주 역사의 현장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존경심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목 관아 들어가는 입구에 하마비가 있었다. 수령 이하 모두 말에서 내려라는 의미.
외대문을 통해 들어서자 제주목 역사관이 있었다.
제주목역사관을 가득 채운 286명의 제주 목사들.
우리 심화반 김용운 회장님의 선조를 286명의 목사 리스트 103번에서 볼 수 있어서 우리 모두 신기해 하고 환호했다. 기본반에 이어 심화반까지 나와는 몹시도 대조되는 김용운 회장님의 제주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학습에 대한 열정이 이와 관련있는 건 아닐지 ㅎ
처음 설명 들을 때는 제주 목사라는 직책이 좌천의 의미로 볼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러기엔 또 정3품의 높은 벼슬이라 헷갈린다.
원래 목사의 품계는 정3품 가운데 당하관에 해당됐다. 그러나 제주목사는 정3품 중에서도 당상관인 문무신을 주로 임명해 다른 지역 목사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한다. 제주목사는 관찰사의 임무까지 겸했는데 목 관아 내에 있는 홍화각이 관찰사 임무를 볼때 사용하는 곳이었다고.
제주목은 목사와 정5품의 판관이 있었고 대정과 정의현에는 정6품의 현감이 다스렸다. 현감이 제주목 판관보다 낮은 품계라 종속된 관계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큰 범위에서의 일은 제주목사와 판관이 하지만 제주도내 지방자치에 가깝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통해 서울 기준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 몇몇 직업군에서 제주 발령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당시를 상상해보면 이곳으로 발령나면 받아 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겠다싶다.
상피제로 인해 제주 출신은 제주목사가 될 수 없었기에 바다 건너 누군가 오긴 와야 했는데 부임을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래서인지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10개월일 정도로 2년 6개월의 목사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고 부임을 명 받고도 여러 일신상의 이유로 오지 못한 사람도 12명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양한지 286명의 목사 중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싶은 어이없는 행적을 남긴 이도 있었고 58명 정도만이 선정을 베푼 목사로 평가 받고 있다. 상당히 낮은 비율이었으니 이런 관리들 하에서 제주 사람들의 삶이 녹록지 않았겠구나 싶다.
그 와중에도 제주에 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감동을 주는 목사도 있었고 제주도를 연구하는데 열심인 목사들도 있었다.
그 중 보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탐라순력도를 남긴 이형상 목사가 대표적.
목 관아 내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망경루로 이동했는데 이곳은 임금이 있는 서울을 바라보며 그 은덕에 감사하며 예를 올렸던 곳이다. 또한 제주 앞바다로 침범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망경루 1층 내부 공간에는 <탐라순력도>를 주제로 한 체험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화공 김남길(金南吉)을 시켜 제작한 기록화첩.
체험관에서는 1700년대 조선시대 제주의 사회생활, 명승지, 방어유적, 진상 풍경 등 이형상 목사가 제주를 순력하면서 보여주는 여러 상황들을 그래픽패널 및 영상물을 통해 당시 제주의 생생한 생활상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탐라순력도의 원본은 제죽국립박물관에 있다.
<TMI>
*문화탐방지도사 수업에 대한 나의 심경변화 단계
-1단계 기본반-내가 이 수업을 왜 신청했지? 이 길은 내 길이 아닌데...
-2단계 심화반-기본반만 하기로 했으면서 왜 또 여기에?
-3단계 국립제주박물관아카데미 '문화유산으로 살펴 보는 제주'-4개월간의 수업 신청
===결론적으로 나는! 이미 발 내디딘 이 세계, 이 내용들에 살짝 중독 되었구나. 그보다 더한 욕구는 좀 더 정확하고 자세히 알고 싶구나. 그래서 계속 이런 수업을 신청하는구나! ㅎㅎ
첫댓글
우련당 연못에다
파란하늘 하얀구름 잘도 담으셨소.
글 쓰는 재주도 선비다웁고 ㅎㅎㅎㅎ
박물관아카데미까지?
훌륭하오이다.
제주에서의 삶이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어요~^^
저의 수기가 딱딱하고 고지식한 보고서 같다면, 총무님의 수기는 잘 다듬어진 수필 같습니다. 온기가 있고 인간적인 냄새도 나고 잘 읽었습니다. 또한 제 집안사를 언급해주셨어 영광입니다. 수고했습니다.
열정이 느껴지네요 선배님. 문탐 기본반 후배로부터
아니 이렇게 심화반 후기에 답글을 달아주는 기본반 후배님의 열정이 더 대단하시네요. ㅎㅎ
고생하셨습니다
너무잘쓰셔서 부담이되네요
선생님~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간단한 소감위주로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회장님과 총무가 글이 쓸데없이 길었나싶네요. ㅎ
우리 총무님의 알찬 글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무지는 엄살~ 그 중독된 욕구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