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公 12年(紀元前 530年)
十二年春, 齊高偃納北燕伯款于唐, 因其衆也. 三月, 鄭簡公卒. 將爲葬除, 及游氏之廟, 將毁焉. 子大叔使其除徒執用以立, 而無庸毁曰 : 「子産過女, 而問'何故不毁?' 乃曰, '不忍廟也, 諾將毁矣.'」 旣如是, 子産乃使辟之.
십이년춘, 제고언납북연백관우당, 인기중야. 삼월, 정간공졸. 장위장제, 급유씨지묘, 장훼언. 자태숙사기제도집용이립, 이무용훼왈 : 「자산과녀, 이문'하고불훼?' 내왈, '불인묘야, 낙장훼의.'」 기여시, 자산내사피지.
[解釋] 소공 12년 봄에, 齊나라 高偃이 北燕伯 款을 唐지방으로 돌려보낸 것은, 당 지방에 백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3월에, 鄭나라 簡公이 죽었다. 장례식을 위하여 길을 닦아나가다가, 游氏의 사당에 이르자, 이를 헐어 버리려 했다. 그러자 子大叔이 그 인부들로 하여금 도구를 가지고 서있게 하고, 헐지 못하게 하면서 말하기를, 「子産이 너희들이 있는 곳을 지나갈 것이니, 그때 자산이 '왜 헐지 않았느냐?'고 묻거든, 이르기를, '사당을 차마 헐 수 없으나, 허락하신다면 앞으로 헐겠습니다.'라고 답하라.」고 했다. 그래서 인부들이 그렇게 말하자, 子産은 곧 그곳을 피하여 가게 했다.
司墓之室有當道者, 毁之, 則朝而堋. 弗毁, 則日中而堋. 子大叔請毁之曰 : 「無若諸侯之賓何?」 子産曰 : 「諸侯之賓能來會吾喪, 豈憚日中? 無損於賓, 而民不害, 何故不爲?」 遂弗毁, 日中而葬. 君子謂 : 「子産於是乎知禮. 禮無毁人以自成也.」
사묘지실유당도자, 훼지, 즉조이붕. 불훼, 즉일중이붕. 자태숙청훼지왈 : 「무약제후지빈하?」 자산왈 : 「제후지빈능래회오상, 기탄일중? 무손어빈, 이민불해, 하고불위?」 수불훼, 일중이장. 군자위 : 「자산어시호지례. 예무훼인이자성야.」
[解釋] 그때 한 묘지기의 집이 길을 막고 있었는데, 이 집을 헐어 버린다면, 아침나절에 하관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을 헐지 않는다면, 정오나 되어서 하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子大叔이 이 집을 헐자면서, 제후들의 대부를 이런 일 때문에 너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고 하니, 子産이 말하기를, 「제후의 대부들이 우리의 장례식에 회장을 온 터이니, 어찌 정오라고 꺼리겠소? 대부들에게 별 손해가 없고, 백성들도 해롭지 않으니, 왜 하지 않겠습니까?」라 하고, 드디어 헐지 않고, 정오에야 장례를 지냈다. 군자들이 비평했다. 「자산은 이로 보아서도 예를 아는 사람이다. 예는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기의 목적만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夏宋華定來聘, 通嗣君也. 享之, 爲賦蓼蕭, 弗知, 又不答賦. 昭子曰 : 「必亡. 宴語之不懷, 寵光之不宣, 令德之不知, 同福之不受, 將何以在?」 齊侯衛侯鄭伯如晉, 朝嗣君也.
하송화정래빙, 통사군야. 향지, 위부료소, 불지, 우부답부. 소자왈 : 「필망. 연어지불회, 총광지불선, 영덕지부지, 동복지불수, 장하이재?」 제후위후정백여진, 조사군야.
[解釋] 여름에 宋나라 華定이 노나라를 방문한 것은, 송나라 새 임금 원공이 등극한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를 대접하며, 蓼蕭라는 시를 읊으니, 뜻도 알지 못하고, 답시도 읊지 못했다. 그래서 소자가 말하기를, 「화정은 반드시 망할 것이다. 잔치에서 대답할 말을 생각지도 못하고, 은혜에 대한 답례도 할 줄 모르며, 훌륭한 덕도 모르고, 함께 축복할 줄도 모르니,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했다. 제나라 임금, 위나라 임금, 정나라 임금이 진나라로 가니, 진나라의 새 임금 소공에게 새로 조회하기 위해서였다.
公如晉, 至河, 乃復. 取郠之役, 莒人愬于晉, 晉有平公之喪, 未之治也. 故辭公. 公子憖遂如晉. 晉侯享諸侯, 子産相鄭伯辭於享, 請免喪而後聽命. 晉人許之, 禮也. 晉侯以齊侯宴, 中行穆子相, 投壺, 晉侯先.
공여진, 지하, 내복. 취경지역, 거인소우진, 진유평공지상, 미지치야. 고사공. 공자은수여진. 진후향제후, 자산상정백사어향, 청면상이후청명. 진인허지, 예야. 진후이제후연, 중항목자상, 투호, 진후선.
[解釋] 노나라 소공이 진나라로 가다가, 황하에 이르러, 곧 돌아왔다. 郠이란 땅을 빼앗은 싸움이 있었을 때, 莒나라 사람이 진나라에 호소했었으나, 진나라에서는 평공의 장례가 있어, 중재하지를 못했었다. 그래서 노나라 소공의 방문을 사양한 것이다. 그래서 公子 憖만이 그 길로 진나라로 갔었다. 진나라에서는 제후들을 대접하려 하니, 그때 정나라 자산은 정나라 간공을 아직 장례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장례나 끝낸 가을에 진나라의 명령을 듣겠다고 요청했다. 진나라 사람이 이를 허락하니, 이는 예의에 맞는 일이었다. 진나라 임금이 제나라 임금과 잔치를 할 때에, 中行穆子가 듣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投壺 놀이가 벌어져, 진나라 임금이 먼저 시작했다.
穆子曰 : 「有酒如淮, 有肉如坻, 寡君中此, 爲諸侯師.」 中之. 齊侯擧矢曰 : 「有酒如澠, 有肉如陵, 寡人中此, 與君代興.」 亦中之. 伯瑕謂穆子曰 : 「子失辭. 吾固師諸侯矣, 壺何爲焉, 其以中儁也. 齊君弱吾君, 歸弗來矣.」
목자왈 : 「유주여회, 유육여지, 과군중차, 위제후사.」 중지. 제후거시왈 : 「유주여승, 유육여릉, 과인중차, 여군대흥.」 역중지. 백하위목자왈 : 「자실사. 오고사제후의, 호하위언, 기이중준야. 제군약오군, 귀불래의.」
[解釋] 이때 중항목자가 말하기를, 「술이 淮水만큼 많고, 고기가 모래섬만큼 많으니, 우리 임금님께서 맞히시면, 제후들의 스승이 되실 것입니다.」고 했다. 그랬더니 화살이 적중했다. 이번에는 제나라 임금이 화살을 집어 들고서, 술이 澠水만큼 많고, 고기[肉]가 언덕[陵]과 같으니, 寡人이 이를 맞히면, 진나라 임금 대신 흥하리라.」고 했는데, 화살이 적중했다. 이때 伯瑕가 중항목자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말을 잘못했소. 우리 임금님은 본디부터 제후들의 영수인데, 투호는 무엇 하려 해서, 적중하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게 했소. 제나라 임금은 우리 임금님을 약하게 보아 돌아가서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오.」라고 했다.
穆子曰 : 「吾軍帥彊禦, 卒乘競勸, 今猶古也. 齊將何事?」 公孫傁趨進曰 : 「日旰君勤, 可以出矣.」 以齊侯出.
목자왈 : 「오군수강어, 졸승경권, 금유고야. 제장하사?」 공손수추진왈 : 「일간군근, 가이출의.」 이제후출.
[解釋] 이에 중항목자가 말하기를, 「우리나라 군대가 강하고, 군대들도 다투어 근면하니, 지금도 옛날과 같습니다. 제나라가 장차 무슨 일을 할 것인가요?」라고 했다. 이때 대부 公孫傁가 급히 달려가서 말하기를, 「날이 한낮이 되어 임금님께서 피로하시니, 나가셔야 합니다.」고 하여, 제나라 임금은 나왔다.
楚子謂成虎, 若敖之餘也, 遂殺之. 或譖成虎於楚子, 成虎知之, 而不能行. 書曰 : 「楚殺其大夫成虎.」 懷寵也. 六月, 葬鄭簡公.
초자위성호, 약오지여야, 수살지. 혹참성호어초자, 성호지지, 이불능행. 서왈 : 「초살기대부성호.」 회총야. 육월, 장정간공.
[解釋] 楚나라 임금이 成虎를, 若敖의 잔당이라 하여, 곧 죽여 버렸다. 느 사람이 초나라 임금에게 성호를 참소했는데, 成虎는 그것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래서 경문에 이르기를, 「초나라가 그 대부 성호을 죽였다.」고 한 것은, 성호가 임금님의 총애를 너무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6월에, 정나라 簡公을 장사지냈다.
晉荀吳僞會齊師者, 假道於鮮虞, 遂入昔陽. 秋八月壬午, 滅肥, 以肥子緜皐歸. 周原伯絞虐, 其輿臣使曹逃. 冬十月壬申朔, 原輿人逐絞, 而立公子跪尋, 絞奔郊.
진순오위회제사자, 가도어선우, 수입석양. 추팔월임오, 멸비, 이비자면고귀. 주원백교학, 기여신사조도. 동십월임신삭, 원여인축교, 이립공자궤심, 교분교.
[解釋] 晉나라 荀吳가 거짓으로 제나라 군사와 회합하려 간다고 속여, 鮮虞에게 길을 빌어, 그 길로 석양으로 쳐들어갔다. 가을 8월 임오일에, 肥를 멸하고, 肥나라 임금 緜皐를 데리고 돌아왔다. 周나라 대부이며 원나라 임금인 교는 그의 여러 신하들을 학대했으므로, 그들 무리를 집단적으로 도망가게 만들었다. 겨울 10월 壬申 초하루에, 원나라 신하 일동은 그 임금 교를 몰아내고, 그의 동생 公子 跪尋을 임금으로 세우자, 絞는 郊란 땅으로 달아났다.
甘簡公無子, 立其弟過. 過將去成景之族. 成景之族賂劉獻公, 丙申, 殺甘悼公, 而立成公之孫鰌. 丁酉, 殺獻大子之傅庾皮之子過, 殺瑕辛于市, 及宮嬖綽王孫沒劉州鳩陰忌老陽子.
감간공무자, 입기제과. 과장거성경지족. 성경지족뢰류헌공, 병신, 살감도공, 이립성공지손추. 정유, 살헌태자지부유피지자과, 살하신우시, 급궁폐작왕손몰류주구음기로양자.
[解釋] 甘나라 簡公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우 過를 세웠다. 그런데 이 과는 장차 성공과 경공의 족속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성공과 경광의 족속들은 劉獻公에게 뇌물을 주어, 丙申日에, 甘나라 悼公을 죽이고, 成公의 孫子 鰌를 세웠다. 丁酉日에, 獻大子의 스승 庾皮의 아들 過를 죽이고, 瑕辛도 시장에서 죽여 버렸는데, 宮嬖綽, 王孫沒, 劉州鳩, 陰忌, 老陽子도 함께 죽음을 당했다.
季平子立, 而不禮於南蒯. 南蒯謂子仲. 吾出季氏, 而歸其室於公. 子更其位. 我以費爲公臣.」 子仲許之. 南蒯語叔仲穆子, 且告之故. 季悼子之卒也, 叔孫昭子以再命爲卿. 及平子伐莒克之, 更受三命.
계평자립, 이불례어남괴. 남괴위자중. 오출계씨, 이귀기실어공. 자경기위. 아이비위공신.」 자중허지. 남괴어숙중목자, 차고지고. 계도자지졸야, 숙손소자이재명위경. 급평자벌거극지, 경수삼명.
[解釋] 季平子가 집안의 대통을 잇자, 南蒯를 예우하지 않았다. 그래서 南蒯가 子仲에게 말하기를, 「내 季氏를 몰아내고, 그 재산을 공실에다 바칠 것이오. 당신은 그 지위를 대신 계승하시오. 나는 費란 땅을 차지하고 공신이 되겠소.」라고 했다. 그래서 자중이 허락했다. 南蒯는 또 叔仲穆子에게도 그런 말을 하며, 그 까닭도 말했다. 季平子의 아버지 季悼子가 죽을 때, 叔孫昭子는 재명으로 卿이 되었다. 그랬다가 季平子가 莒나라를 정벌하여 이기자, 다시 三命을 받았다.
叔仲子欲構二家, 謂平子曰 : 「三命踰父兄, 非禮也.」 平子曰 : 「然.」 故使昭子, 昭子曰 : 「叔孫氏有家禍, 殺適立庶, 故婼也及此. 若因禍以斃之, 則聞命矣. 若不廢君命, 則固有著矣.」
숙중자욕구이가, 위평자왈 : 「삼명유부형, 비례야.」 평자왈 : 「연.」 고사소자, 소자왈 : 「숙손씨유가화, 살적립서, 고야야급차. 약인화이폐지, 즉문명의. 약불폐군명, 즉고유저의.」
[解釋] 이에 叔仲穆子가 계씨와 숙손씨 두 집안의 불화를 만들어 내고자 하여, 계평자에게 말하기를, 「三命으로 부모의 지위를 넘어선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고 했다. 계평자도 말하기를, 「그렇다.」고 하고서, 숙손소자에게 사퇴하기를 권했으나, 숙손소자는 말하기를, 「우리 숙손씨 집안에 재난이 있어,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으므로, 제가 이런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에 집안의 재난으로 인하여 제가 죽게 되면,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이 명령을 취소하지 않는 한, 굳게 이 자리를 지키겠습니다.」고 했다.
昭子朝, 而命吏曰 : 「婼將與季氏訟, 書辭無頗.」 季孫懼, 而歸罪於叔仲子. 故叔仲小南蒯公子憖謀季氏. 憖告公, 而遂從公如晉. 南蒯懼不克, 以費叛如齊. 子仲還, 及衛, 聞亂, 逃介而先, 及郊, 聞費叛, 遂奔齊.
소자조, 이명리왈 : 「야장여계씨송, 서사무파.」 계손구, 이귀죄어숙중자. 고숙중소남괴공자은모계씨. 은고공, 이수종공여진. 남괴구불극, 이비반여제. 자중환, 급위, 문란, 도개이선, 급교, 문비반, 수분제.
[解釋] 그래서 叔孫 昭子가 조정으로 나가, 담당 관리에게 말하기를, 「내가 계씨와 더불어 소송을 할 것이니, 서류를 작성할 적에 편파적으로 놀면 안 된다.」고 했다. 계손씨는 두려워하여, 죄를 叔孫 昭子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러므로 叔孫 昭子, 南蒯 公子 憖이 모여 季氏를 도모하기로 했다. 이때 公子 憖은 소공에게 말하여, 소공을 따라 진나라로 갔다. 남괴는 이기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비 땅에서 반란을 일으켜 제나라로 가 버렸다. 公子 憖은 돌아오다가, 위나라에 이르러, 고국에 난리가 나, 모두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부사를 먼저 귀국시켰던 바, 부사가 교의까지 왔다가, 비 땅의 남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리를 듣고, 곧 제나라로 도망쳤다.
南蒯之將叛也, 其鄕人或知之, 過之而歎, 且言曰 : 「恤恤乎! 湫乎攸乎. 深思而淺謀, 邇身而遠志. 家臣而君圖, 有人矣哉.」
남괴지장반야, 기향인혹지지, 과지이탄, 차언왈 : 「휼휼호! 추호유호. 심사이천모, 이신이원지. 가신이군도, 유인의재.」
[解釋] 남괴가 바야흐로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 그 마을 사람들이 더러는 그것을 알고, 남괴의 집안을 지나가면서 한탄하여, 말하기를, 「걱정이로다. 안됐다. 생각은 깊으면서 행동이 천박하고, 몸은 가까운데 뜻은 멀구나. 가신으로 임금을 꾀 하러하니, 이런 사람이 다 있구나.」고 하였다.
南蒯枚筮之, 遇坤[☷☷]之比[☵☷]曰 : 「黃裳元吉, 以爲大吉也. 示子服惠伯曰 : 「卽欲有事, 何如?」 惠伯曰 : 「吾嘗學此矣, 忠信之事則可, 不然, 必敗. 外彊內溫, 忠也. 和以率貞, 信也. 故曰 : 「黃裳元吉.」
남괴매서지, 우곤[☷☷]지비[☵☷]왈 : 「황상원길, 이위대길야. 시자복혜백왈 : 「즉욕유사, 하여?」 혜백왈 : 「오상학차의, 충신지사즉가, 불연, 필패. 외강내온, 충야. 화이솔정, 신야. 고왈 : 「황상원길.」
[解釋] 남괴가 점을 쳐 보게 하니, 坤卦가 比卦[☵☷]로 변하는 패가 나왔다. 설명하기를, 「누런 치마는 원래 길하다고 하여, 매우 길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子服惠伯에게 보이면서,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겠소이까?」고 하니, 子服惠伯이 말하기를, 「나도 일찍이 이 패를 공부해 보았는데, 忠信의 일이라면 가하나,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반드시 패합니다. 밖으로는 강하고 안으로는 온순한 것이, 忠입니다. 화평으로써 정절을 거느려 나가는 것이, 信입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黃裳元吉.」이라 한 것입니다.
黃中之色也, 裳下之飾也, 元善之長也. 中不忠, 不得其色, 下不共, 不得其飾, 事不善, 不得其極. 外內倡和爲忠, 率事以信爲共, 供養三德爲善, 非此三者弗當.
황중지색야, 상하지식야, 원선지장야. 중불충, 부득기색, 하불공, 부득기식, 사불선, 부득기극. 외내창화위충, 솔사이신위공, 공양삼덕위선, 비차삼자불당.
[解釋] 그런데 황색은 중간색이고, 치마는 아래쪽의 장식이며, 으뜸은 선의 우두머리입니다. 중심이 충성스럽지 아니하면, 누런 제 빛을 나타내지 못하고, 아래쪽이 공손하지 않으면, 치마의 제 장식이 되지 못하며, 일이 착하지 아니하면, 그 극치에 달할 수가 없습니다. 안팎이 서로 조화된 것을 충이라 하고, 신용으로써 일을 행하는 것을 공이라 하고, 삼덕을 공양하는 것을 선이라 하는데, 이 세 가지가 아니면 그 괘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且夫≪易≫, 不可以占險, 將何事也? 且可飾乎. 中美能黃, 上美爲元, 下美則裳, 參成可筮. 猶有闕也, 筮雖吉, 未也.」
차부≪역≫, 불가이점험, 장하사야? 차가식호. 중미능황, 상미위원, 하미즉상, 삼성가서. 유유궐야, 서수길, 미야.」
[解釋] 또한 대저 ≪周易≫으로써, 위험한 일을 점쳐서는 안 되니, 장차 무슨 일 때문일까요? 또한 몸 부위부터 정리함이 좋을 것입니다. 중심이 아름다운 빛이 황이고, 위쪽이 아름다운 것이 원이며, 아래쪽이 아름다운 것이 상이니, 이 세 가지가 겸비해야 점을 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족한 것이 있어, 점괘가 비록 길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했다.
將適費, 飮鄕人酒, 鄕人或歌之曰 : 「我有圃, 生之杞乎. 從我者子乎? 去我者鄙乎? 倍其鄰者恥乎, 已乎已乎. 非吾黨之士乎.」 平子欲使昭子逐叔仲小, 小聞之, 不敢朝, 昭子命吏謂小待政於朝曰 : 「吾不爲怨府.」
장적비, 음향인주, 향인혹가지왈 : 「아유포, 생지기호. 종아자자호? 거아자비호? 배기린자치호, 이호이호. 비오당지사호.」 평자욕사소자축숙중소, 소문지, 불감조, 소자명리위소대정어조왈 : 「오불위원부.」
[解釋] 바야흐로 남괴가 費땅으로 갈 때에, 동네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하니, 동네 사람 중에 혹 노래를 부르기를, 「우리 채마밭에, 구기자가 자랐네. 우리를 바라는 자는 자네인가?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자는 야비한가? 이웃을 배반하면 부끄럽겠지. 아서라 말아라.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로다.」고 하였다. 계평자가 숙손소자로 하여금 숙중목자를 쫓아가게 하니, 숙중복자는 이 소식을 듣고, 관리로 하여금 숙중목자로 하여금 조정에 나와,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게하고서 말하기를, 「나는 원망의 집합소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楚子狩于州來, 次于潁尾, 使蕩侯潘子司馬督囂尹午, 陵尹喜帥師圍徐以懼吳. 楚子次于乾谿, 以爲之援. 雨雪, 王皮冠, 秦復陶翠被, 豹舃, 執鞭以出, 僕析父從.
초자수우주래, 차우영미, 사탕후반자사마독효윤오, 능윤희솔사위서이구오. 초자차우간계, 이위지원. 우설, 왕피관, 진복도취피, 표석, 집편이출, 복석보종.
[解釋] 초나라 임금이 주래 지방에서 사냥을 하다가, 潁尾에 묵으면서, 蕩侯, 潘子, 司馬督, 囂尹午는, 尹喜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徐나라를 포위하게 하여 오나라를 두렵게 했다. 그리고 초나라 임금은 乾谿지방에 머무르면서, 그들을 후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때마침 눈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초나라 임금은 가죽 모자를 쓰고, 秦나라에서 보낸 갖옷과 비취 깃을 섞어 짠 외투를 입고, 표범 가죽 구두를 신고, 채찍을 가지고 나와 섰는데, 僕析父가 뒤따르고 있었다.
右尹子革夕, 王見之, 去冠被, 舍鞭, 與之語曰 : 「昔我先王熊繹與呂伋王孫牟燮父, 禽父並事康王, 四國皆有分我獨無有, 今吾使人於周, 求鼎以爲分, 王其與我乎?」
우윤자혁석, 왕견지, 거관피, 사편, 여지어왈 : 「석아선왕웅역여여급왕손모섭보, 금보병사강왕, 사국개유분아독무유, 금오사인어주, 구정이위분, 왕기여아호?」
[解釋] 이때 右尹 子革이 저녁 문안을 드리니, 초나라 임금은 그를 만나 볼 때, 모자와 외투를 벗고, 채찍을 놓고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는데, 「옛날 우리의 先王 熊繹이 呂伋 王孫牟 燮父,` 禽父와 함께 주나라 康王을 섬겼을 때, 그 네 나라만 없었으니, 지금 내가 사람을 시켜, 求鼎을 나누어 달라면, 강왕은 우리에게 그것을 주겠는가?」하였다.
對曰 : 「與君王哉. 昔我先王熊繹辟在荊山, 篳路藍縷以處草莽, 跋涉山林以事天子, 唯是桃弧棘矢共禦王事. 齊王舅也, 晉及魯衛, 王母弟也, 楚是以無分, 而彼皆有. 今周與四國服事君王, 將唯命是從, 豈其愛鼎?」
대왈 : 「여군왕재. 석아선왕웅역피재형산, 필로람루이처초망, 발섭산림이사천자, 유시도호극시공어왕사. 제왕구야, 진급로위, 왕모제야, 초시이무분, 이피개유. 금주여사국복사군왕, 장유명시종, 기기애정?」
[解釋] 이에 자혁이 대답하기를, 「임금님께서는 주실 것입니다. 옛날 우리 先王 熊繹 임금은 荊山에 치우쳐 있으면서, 대나무로 만든 수레를 타시고 남루한 옷을 입으시면서 풀숲 속에 사시고, 산림 속을 헤치고 가서 천자를 섬겼으며, 오직 복숭아나무 활과 가시나무 화살로 천자를 만들어 호위했었습니다. 그리고 제나라는 임금님의 외삼촌이고, 진나라`노나라`위나라는, 임금님의 동모제들인데, 우리 초나라만 몫이 없었고, 그들은 모두 몫이 있었습니다. 지금 주나라와 다른 네 나라가 모두 임금님을 섬기면서, 오직 명령만 기다려 복종하고자 하니, 주나라가 어찌 구정을 아끼겠습니까?」라고 했다.
王曰 : 「昔我皇祖伯父昆吾, 舊許是宅, 今鄭人貪賴其田, 而不我與, 我若求之, 其與我乎?」 對曰 : 「與君王哉. 周不愛鼎, 鄭敢愛田?」
왕왈 : 「석아황조백부곤오, 구허시택, 금정인탐뢰기전, 이불아여, 아약구지, 기여아호?」 대왈 : 「여군왕재. 주불애정, 정감애전?」
[解釋] 이에 다시 초나라 임금은 말하기를, 「옛날 우리 皇祖의 伯父 昆吾는, 옛날 許땅에 사셨는데, 지금 정나라 사람은 그 땅을 탐내어,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으니, 만일 우리가 그것을 요구하면, 그것을 우리에게 주겠는가?」라 하고 묻자, 자혁은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돌려 줄 것입니다. 주나라가 구정을 아끼지 않는데, 정나라가 감히 땅을 아끼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王曰 : 「昔諸侯遠我而畏晉, 今我大城陳蔡不羹, 賦皆千乘, 子與有勞焉. 諸侯其畏我乎?」 對曰 : 「畏君王哉. 是四國者. 專足畏也. 又加之以楚. 敢不畏君王哉?」
왕왈 : 「석제후원아이외진, 금아대성진채불갱, 부개천승, 자여유로언. 제후기외아호?」 대왈 : 「외군왕재. 시사국자. 전족외야. 우가지이초. 감불외군왕재?」
[解釋] 초나라 영왕이 다시 묻기를, 「옛날에는 제후들이 우리나라가 멀다고 진나라를 두려워했는데, 지금은 우리가 陳, 蔡, 不羹에다, 크게 성을 쌓아 놓고 있고 병거도 1 천 대나 되는데, 이것이 모두 지네가 수고해서 된 것이네. 그러니 제후들이 우리들을 두려워할까?」라고 하자. 자력은 말하기를, 「임금님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진`채`불갱 등 네 나라만으로도, 두렵게 하기에 족한데, 또 우리 초나라까지 더하니, 어찌 임금님을 감히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工尹路請曰 : 「君王命剝圭以爲鏚柲敢請命.」 王入視之. 析父謂子革. 吾子, 楚國之望也, 今與王言如響, 國其若之何?」 子革曰 : 「摩厲以須, 王出, 吾刃將斬矣.」
공윤로청왈 : 「군왕명박규이위척비감청명.」 왕입시지. 석보위자혁. 오자, 초국지망야, 금여왕언여향, 국기약지하?」 자혁왈 : 「마려이수, 왕출, 오인장참의.」
[解釋] 이때 공윤노가 들어와 청하기를, 「임금님께서 저더러 홀의 구슬을 깎아다가 도끼 자루에 장식하라고 하셨는데 어떤가 보시지요.」라고 하자, 영왕은 들어가 그것을 보았다. 이 사이에 析父가 子革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 초나라의 명망인인데, 지금 임금님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마치 소리에 음향이 뒤따르듯 하니, 나라를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라고 하니, 子革이 대답하기를, 「내 말의 칼날을 갈고 있다가, 임금님이 사심을 나타낼 기회가 오면, 그 마음을 싹 잘라 버릴 작정이오.」라고 했다.
王出, 復語, 左史倚相趨過. 王曰 : 「是良史也. 子善視之. 是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 對曰 : 「臣嘗問焉. 昔穆王欲肆其心, 周行天下, 將皆必有車轍馬跡焉. 祭公謀父作祈招之詩以止王心. 王是以獲沒於祗宮. 臣問其詩而不知也. 若問遠焉, 其焉能知之?」
왕출, 부어, 좌사의상추과. 왕왈 : 「시량사야. 자선시지. 시능독삼분오전팔삭구구.」 대왈 : 「신상문언. 석목왕욕사기심, 주행천하, 장개필유거철마적언. 제공모보작기초지시이지왕심. 왕시이획몰어지궁. 신문기시이부지야. 약문원언, 기언능지지?」
[解釋] 이윽고 초나라 영왕이 다시 나와, 이야기를 할 때, 좌사 의상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이때 영왕이 말하기를, 「저 사람은 훌륭한 사관이네. 자네는 잘 봐주게. 그는 삼분`오전팔삭`구구를 모두 읽을 수 있네.」라고 했다. 이에 자력이 대답하기를, 「제가 일찍이 의상에게 물어 본 일이 있습니다. 옛날 목왕이 그 마음을 방자하게 갖고자 하여, 천하를 두루 돌아다녀, 어디에나 그가 타고 다닌 수레바퀴 자국과 말발굽 자국이 있게 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공 謀父가 祈招라는 시를 지어 목왕의 마음을 가라앉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목왕은 지궁에서 편안히 돌아가시게 된 것입니다. 신이 이 시에 대하여 의상에게 물어 봤더니 그는 알지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더 먼 옛날 것을 물어 본다면, 그가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했다.
王曰 : 「子能乎?」 對曰 : 「能. 其詩曰, '祈招之愔愔, 式昭德音. 思我王度, 式如玉式如金. 形民之力, 而無醉飽之心.'」
왕왈 : 「자능호?」 대왈 : 「능. 기시왈, '기초지음음, 식소덕음. 사아왕도, 식여옥식여금. 형민지력, 이무취포지심.'」
[解釋] 영왕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자네는 그 시를 알고 있는가?」라고 하니, 자혁은 대답하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시는 이르기를, '祈招의 음악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덕음을 밝히네. 우리 주나라 천자의 법도를 생각하기를, 玉이나 金같이 소중하게 여기네. 백성들의 힘을 부리는 데 분수가 있게 하고 취하고, 포식하는 마음을 없게 하네.'라고 했습니다.」고 했다.
王揖而入, 饋不食, 寢不寐, 數日, 不能自克, 以及於難. 仲尼曰 : 「古也有志, 克己復禮, 仁也. 信善哉. 楚靈王若能如是, 豈其辱於乾谿?」 晉伐鮮虞, 因肥之役也.
왕읍이입, 궤불식, 침불매, 수일, 불능자극, 이급어난. 중니왈 : 「고야유지, 극기복례, 인야. 신선재. 초령왕약능여시, 기기욕어간계?」 진벌선우, 인비지역야.
[解釋] 이에 영왕은 읍을 하고 들어가, 먹어도 밥맛이 없었고,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기를, 며칠 동안이나 하였으나, 스스로 절제할 수가 없어, 급기야는 난을 당했다. 仲尼[공자]가 이를 평하여 말하기를, 「옛 책에,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仁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좋은 말이다. 楚나라 靈王이 만약에 아와 같이 했다면, 어찌 그가 건계에서 욕을 당했겠는가?」라고 했다. 진나라가 선우를 정벌하니, 肥에서의 싸움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