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ㅣ 서울지하철노조는 4월 27일부터 29일까지 ‘민주노총 탈퇴와 새로운 상급단체 설립 및 가맹’ 안건에 대한 조합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53%의 찬성으로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되었다. 민주노총의 창립을 함께 하고, 1999년 파업투쟁 등 주요한 투쟁을 전개해 온 “남한 최대의 지하조직” 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많은 충격을 주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노조의 민주파 활동가들은 이 탈퇴투표를 부결시키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였다. 민주노총 탈퇴라는 결과가 나온 지금, 중요한 것은 탈퇴부결투쟁과정과 더 나아가 노조어용화 과정에 대한 지하철 노조 활동가 주체들 스스로의 활동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없이 전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지하철노조의 탈퇴의 적법성이 이슈가 될 뿐이다. 지하철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근행 동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고민의 단초를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우선 기본적인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탈퇴 이전에 어용세력이 노조집행부를 어떻게 장악할 수 있었다고 보는가? 그리고 민주파는 왜 밀려났다고 보는가?
99년도 4.19파업투쟁과 2004년의 전국 궤도사업장 연대투쟁, 그리고 2008년도 지방정부의 창의혁신 구조조정에 대한 반대투쟁을 거치면서, 실제적인 성과보다는 조합원들의 피로도가 가중되었으며 그 내면에는 ‘쉽게 가보자’는 대리주의, ‘해결사’를 기다리는 기류가 조합원들 내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노사협조주의 세력들은 이러한 현장정서를 이용하여 집행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민주진영이 밀려난 이유는, 투쟁에 있어서는 협조주의세력과 변별되나 싸움을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에서는 자본가 정당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을 만나는 ‘정치적 해결’ 방식을 취하면서 두 진영의 변별이 조합원들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공공부문 구조조정, 필공사업장으로서 필수유지제도라는 노동악법도 투쟁하는 현장의 기세를 거세한 면도 있다.
2. 이번 부결투쟁에서 모든 민주파가 공동투쟁했다. 지금은 노조집행부의 탈퇴가 적법하냐는 시비가 이슈가 되고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부결투쟁과정에서 주체들의 대응과 전망이다. 부결투쟁에서 느낀 한계와 문제점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가?
부결투쟁 과정에서 ‘출세주의자’들에 대한 도덕적인 면과 집요함(정연수 집행부 들어서 같은 사안을 거듭 총회에 부의)에 대한 공격이 주를 이루었다. 자주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의 규약 상 상급단체 변경의 건은 총회 조합원 2/3의 찬성이 요구되나 현 집행부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을 토대로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가지고 보수, 자본, 언론사의 주목을 이끌어 냈다. 조합 민주주의와 집중제의 위기를 중심으로 투표과정에 치열하게 결합하지 못한 부분이 평가되어야한다. 선전물에 있어서의 물량공세와 승진이나 통신기기 지원 등 경제적인 요구들이 이 투표와 직결된다는 협조주의 세력들의 속물주의적인 선전들이 세를 형성하는 부분도 있었다.
3. 울산의 미포조선에서는, 국민파 현장조직의 경우 부결투쟁에 동참하지 않기도 했고, 또 민주노총 탈퇴가 무려 70%로 가결되었음에도 현장에서 공식적인 평가조차 없었다. 탈퇴 그 자체보다도 자각이 없는 대다수의 활동가들이 더 문제라고 본다. 지하철은 어떤가?
기업노조가 자본과 정권을 상대한다는 것은 버거운 싸움이다. 그래서 연대하고 교육을 배치하면서 투쟁동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90년대 이후 노동조합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은 교육과 학습에서 멀어졌다. 집행부는 관성적이면서도 정형화된 대응으로 한 해 한 해의 임단협 투쟁을 정리해 내면 집행부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자조해왔다. 이것이 전부였다. 조합원은 임금과 복지부분만 재대로 정리해주는 자판기가 필요할 뿐,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도 별 중요치 않게 보는 분위기가 세를 이루었다. 활동가들은 중산층화 되어가는 조합원 대중들의 역진하는 의식을 ‘자각없이’ 추수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지하철도 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그런 경향들이 있다.
4. 어용세력들이 이른바 국민노총을 결성 중이다. 특히 지하철 노조가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KT와 함께 굉장히 주도적이다. 복수노조 시대에 이들 어용세력이 만든 국민노총이 어떤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자본주의에서 조합원들의 일부나 대표들이 출세와 명망을 위해 자본가와 정권에 노골적으로 추파를 보낸 사례는 국내, 국외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과거(삼성이나 유럽)에는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의 지도부를 매수하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경쟁적으로 자본가나 정권의 품으로 안기려는 모양새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쟁이 많다는 것은 챙길 게 적다는 얘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타임오프 반대를 하는데 ‘뜨지도 않은’ 제3노총의 입장은 찬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하철 노조 조합원들의 저항성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그것도 잠시일 것이다.
5. 민주노총 탈퇴라는 결과,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인 민주파의 현실 때문에 매우 어려운 활동조건에 놓여있다. 향후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지하철 현장에서 활동할 생각인가?
민주노총 탈퇴라는 결과 때문에 활동조건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90년대 말 이후 계속 힘들었다. 복수노조는 삼성에서 필요한 노조형태다. 우리는 우리들의 ‘낯짝’이 이러저러하게 변한다면 이러저러한 낯짝 안에서 활동할 것이다. 조합원들의 48%는 아직도 87년도 대투쟁을 진실로 가슴 속에 안고 계신다. 별의 별 거지같은 꼴들을 다 봐왔어도 늙은 노동자들의 가슴은 아직도 식지 않았다. 그리고 ‘세련된’ 인문교양강좌가 아닌 노동자학습과 교육이 부지런히 배치된다면 ‘활동’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