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김소월/ 낭송 서상철 동영상( 고김광석 추모시낭송) 김소월의 "초혼(招魂)"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빗겨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KBS 1TV가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 프로그램 ‘시인만세’ 방송에 앞서 인터넷과 우편엽서, 면접을 통해 벌인 조사 결과다. 1만8298명이 참여한 ‘국민 애송시’ 설문에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1557표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윤동주의 ‘서시’(1377표), 3위 김춘수의 ‘꽃’(667표), 4위 윤동주의 ‘별 헤는 밤’(409표), 5위 천상병의 ‘귀천’(372표), 6위 한용운의 ‘님의 침묵’(288표), 7위 이형기의 ‘낙화’(282표), 8위 정지용의 ‘향수’(244표), 9위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220표), 10위 김소월의 ‘초혼’(194표), 소월(본명 김정식:1902~1934)의 시에서 사랑의 상실은 이처럼 가차없이 절절하다. 그의 사랑에 대한 갈구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 이후 이별과 그리움이라고 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우리 말의 가장 아름다운 분화구로 터트렸다고 할 만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막론하여 읽는 사람을 그 뜨겁고 눈물겨운, 그리고도 리드미컬한 언어의 호수 속으로 빠뜨린다. 흥겨운 듯 눈물겨우니 이를 어쩌노!
그의 사랑의 깊이와 그에 응하는
말의 질서는 음악으로도 적절하여 우리 시 중 가장 많은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고 있다. 소월의 대표작 〈산유화〉만 해도 남인수의 가요로, 조수미의 가곡으로 모두 애창됐다.
〈먼 後日〉은
소월의 생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의 맨 앞을 장식하는 것으로 보아 소월 자신도 대표작으로 생각한 듯하다. '못 잊겠지만 그런대로 한 세상 지내시라며 떠나간 임'(〈못잊어〉), ' 심중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임', 그래서 '산산이 부서진,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 현재('오늘')도 과거('어제')도 아닌 먼 미래('후일')에도 잊을 수 없다고, 잊으면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그 '임'이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임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단순한 세속적 사랑의 대상을 이미 '저만치'(〈산유화〉) 초월한 자리의 임을!
소월은 서른 셋이라는 황금의 나이에 생아편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자결은,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날 있으리다. (〈못잊어〉)라거나,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가는 길〉)이라고 한 그의 '임'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순교'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세상을 뜬 소월에겐 김정호(金正鎬)라는 셋째 아들이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이남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간혹 서정주 시인의 집을 출입했다고 하는데 미당의 회고에 의하면 기차에서 수레를 밀고 다니는 장사가 되었다가 그것도 아내의 병간호 때문에 못 하게 됐고, 나중에는 국회 의사당의 수위로 살았다 한다. 최고의 '국민 시인'의 아들의 삶 치고는 서글픈 사연이다. [해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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