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십칠칙(十七則)
국사삼환(國師三喚) 국사가 세 번 부르다.
역(譯)
국사(國師)가 시자(侍者)를 세 번 부르자 시자가 세 번 대답했다. 국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저버렸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렸구나! 國師三喚侍者, 侍者三應. 國師云, 將謂吾辜負汝, 元來卻是汝辜負吾.
역(譯)
무문이 말했다. 국사의 세 번 부름은 망상을 피운 것이고, 시자의 세 번 대답은 본바탕을 공손히 드러낸 것이다. 국사가 나이 들어 마음이 외로웠는지 소머리를 눌러 풀을 먹이려 했건만, 시자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니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자, 말 해 보라. 어느 곳이 저 시자가 국사를 저버린 곳인가? 나라가 맑으면 재주 있는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고, 집안이 부유하면 자식이 버릇없다. 無門曰 國師三喚, 舌頭墮地, 侍者三應, 和光吐出. 國師年老心孤, 按牛頭喫草, 侍者未肯承當, 美食不中飽人餐. 且道, 那裏是他辜負處. 國清才子貴, 家富小兒嬌.
송(頌) 역(譯)
게송으로 읊다. 구멍 없는 쇠칼을 사람에게 씌우려 하니, 그 허물이 자손에게 미쳐 등한할 수 없도다. 선가(禪家)의 문호(門戶)를 떠받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맨발로 칼산을 올라야 하리라. 頌曰鐵枷無孔要人擔, 累及兒孫不等閑. 欲得撐門并拄戶, 更須赤腳上刀山.
사족(蛇足)
혜충국사(慧忠國師)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법제자(法弟子)다. 하남성(河南城) 남양(南陽) 자애산(白崖山)에 암자(庵子)에서 40년간 두문불출(杜門不出)로 살았다. 당(唐)나라 숙종(肅宗)과 대종황제(代宗皇帝)가 국사(國師)로 모셨기 때문에 혜충국사(慧忠國師)라고 부른다. 황제가 국사가 입적(入寂)하면 국사를 위해서 무슨 일를 해드려야 하느냐고 묻자,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라고 했다고 한다. 무봉탑(無縫塔)은 이음새가 없는 형체도 모양도 없는 탑을 말한다. 이런 혜충국사가 하루는 시자(侍子)를 세 번 부른다. 부를 때마다 시자는 녜!, 녜!, 녜! 하고 응답(應答)을 한다. 그런데 세 번 부르고, 세 번대답(對答)을 하였는데, 내(國師)가 너(侍子)를 저버렸다고 여겼는데, 반대로 시자 네가 나를 저버렸다고 꾸짖는 화두(話頭)다. 이 공안화두(公案話頭)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다. 부모가 자식을 부르면 자식은 바로 대답을 한다. 열 번 불러도 똑같이 대답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혜충국사의 속내는 무엇일까? 부르는 국사도 허물이 있고, 대답하는 시자도 허물투성이라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 선사들의 언어(言) 화두(話頭)다. 화두(話頭)는 의심(疑心)을 키워서 타파(打破)하는 것이다. 지식이나 생각으로 헤아려서는 풀리지 않는다. 혜충국사의 간 쓸개 속을 훤히 꿰뚫고 보려면 화두(話頭)로 삼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매불망(寤寐不) 집중몰입(集中沒入)해야 아~ 하고 깨달게 된다. 공안화두(公案話頭)는 모두가 다 언어길도 끊겼고 생각 길도 몽땅 끊긴 말들이다. 국사삼환(國師三喚)도 글자는 넉자 지만, 혜충국사가 쳐놓은 은산철벽(銀山鐵壁) 관문(關門)이다. 관문(關門)을 열고 들어가려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납승(衲僧)의 자내증(自內證) 수행(修行) 안목(眼目)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혜개선사 평창은 평등지(平等智)와 차별지(差別智)를 바꿔 잘못 평한 것이다. 본체상(本體相)에는 조실(祖室) 시자(侍子)가 나이가 같으나 현상 차별상(差別相)에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화옹송평(和翁頌評) 역(譯)
한가한 조실 늙은이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혀를 빼고 세번이나 응답을 했네, 본지 풍광자리야 똑같은 한 몸뚱이인데 혜충국사 세 번이나 공연한 짓 했네그려! 祖室閑翁喚侍子 侍子吐舌應答三 本地風光同一體 空然慧忠辜負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