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본 문 / 마태복음 16장 16∼18절
주 제 / 성령은 거룩한 공교회를 통해 성도를 그리스도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작성일 / 2023년 6월 18일. (№ 23-25)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6∼18)
Ⅰ 거룩한 공교회란? (마 16:16∼18; 엡 2:18∼19)
2023년 신앙생활의 목표를 외치자. “기초를 다시 세우자”(눅 6:47∼48)
지금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믿음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중이다. 지난 시간에는 ‘성령’을 배웠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써, ‘우리를 도우시고, 일깨우시고, 마침내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배웠다.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천국으로 인도하실까? 사도들은 “거룩한 공교회를 통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오늘은 ‘거룩한 공교회’를 배우려고 한다.
첫째, 거룩한 공교회는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이다. (마 16:16∼18)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16장 16∼18절을 보라.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6∼18). ‘시몬’이 예수님을 고백했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주이시며,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 즉 ‘반석’이라 명명하시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예수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즉 “예수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주이시며,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이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사도들이 가르치는 ‘거룩한 공교회’는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성령은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교회를 통해 예수를 배우게 하고, 교회를 통해 예수에 대한 믿음을 굳게 세우게 하고, 교회를 통해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도록 훈련하게 하여서 천국백성으로 양육하신다.
둘째, 거룩한 공교회는 ‘하나의 교회’이며, ‘보편적 교회’이다. (엡 2:18∼19)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를 보면 이런 내용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써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까워지게 하셨고, 십자가로써 한 몸 되게 하셨다.” 이런 내용이다. 왜 한 몸 되게 하셨을까? 에베소서 2장 18절을 보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유대인이 천국으로 올 때에 한 몸 되어 오기를 기다리시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보혈로써 하나 되게 하셨고, 성령은 그들이 교회를 통해 한 몸으로써의 삶에 익숙하게 하시고, 익숙한 한 몸으로 천국가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사도들이 가르치는 교회는 ‘하나의 교회’이다.
에베소서 2장 19절을 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성전의 구조를 보면, 순차적으로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지성소’가 있고, 제사장이 들어가는 ‘성소’가 있다. 레위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는 ‘성전 뜰’이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방인의 뜰’이 있다. 이방인은 설령 하나님을 믿는다 할지라도 유대인 다음이었다. 이방인은 성전에서조차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제 차별은 없다”고 선언한다. 모든 성도는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귀족이든 천민이든 모두가 동등한 하늘시민이며,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선언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거룩한 공교회는 ‘보편적 교회’이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의 교회’, ‘보편적 교회’로 초대하셨다. 그 안에서 ‘하나 되는 훈련’, ‘평등하게 되는 훈련’을 받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 되고, 평등함으로써 얻는 기쁨을 알게 하신다. 천국은 그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로 초대하여서 하나 되고 평등하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Ⅱ 거룩한 공교회를 고백하는 사람은 (엡 4:1∼3)
그렇다면, ‘하나의 교회’, ‘보편적 교회’로 초대받는 우리는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천국백성’으로 길러지는 것일까?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 성령이 교회로 초대하신 목적에 부응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3가지 길을 가르친다.
첫째,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교회에서 우리의 신분은 ‘초대받은 사람’이다. ‘주인’이 아니다. 그러니 초대받은 사람답게 겸손하게, 온유하게 생활해야 한다. 간혹 교회에서 우월의식을 표현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앞에서 우월의식을 표현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통해 겸손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간혹 교회에서 화내고, 고함치는 사람을 본다. 초대받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설령 주인일지라도 손님을 초대해놓고 화내거나 고함치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온유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성령이 우리를 교회로 초대하신 것은 겸손과 온유를 배우고 익혀서 천국백성으로 가꾸어지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한다.
둘째, 오래 참는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엡 4:2) 여기서 ‘용납하다’(아네코)란 말은 ‘너그럽게 대하다’란 뜻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럽지만, 얄미운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도 바울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한다. 사랑하면 너그러워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쉽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을 보면, 무엇이 사랑인지 15가지를 소개한다. 그 중 가장 먼저 소개하는 사랑이 ‘오래 참음’이다.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다.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오래 참을 수는 있지 않은가? 그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오래 참는 사랑이 서로를 용납하게 한다.
성령이 우리를 교회로 초대하신 목적은 오래 참는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사람으로 가꾸기 위함이다. 천국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교회에서 오래 참는 생활을 익혀야 한다.
셋째,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 겸손하고 온유한 생활로, 오래 참는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생활로 하나 되게 하신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여서 점점 든든한 하나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든든한 하나로 만들어지는 모습을 사탄은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의 ‘본성’을 자극한다. ‘욕심’을 자극하고, ‘자존심’을 자극하고, ‘우월의식’을 자극하여 분쟁을 일으키게 한다.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교회를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싸우는 것 싫다. 교회가 왜 싸우냐?” 이러면서 교회를 떠난다. “나는 거룩하니까”란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아주 비겁한 행동이다. 사도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고 말한다. 성령이 무엇으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였나? 겸손한 생활과 온유한 생활로, 오래 참는 사랑으로 용납하는 생활로 하나 되게 하셨다. 겸손과 온유와 용납함이 평안의 줄이다. 이 줄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 더욱 겸손하게, 더욱 온유하게, 더욱 용납함으로써 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게 해야 한다. 자신들이 잠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었음을 의식하고 부끄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사탄과 싸워 이기는 길이고, 성령의 초대에 부응하는 길이고, 천국백성으로 가꾸어지는 길이다.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란 고백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겸손과 용납함으로 하나 되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교회를 통해 천국백성으로 가꾸어지고 있습니다.”란 고백이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성령의 초대를 받아 영광교회로 모였습니다. 겸손과 용납과 하나 됨을 배우고 익혀서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가꾸어지게 하소서. (아멘)